출처: BoliviaInteligente, Unsplash
블랙홀은 우주에서 가장 신비로운 천체 가운데 하나지만, 언제나 조용한 존재는 아니다. 두 블랙홀이 서로 충분히 가까워지면 나선형 궤도를 그리며 접근하다가 마침내 엄청난 폭발과 함께 충돌한다. 이어 두 블랙홀은 하나로 합쳐져 더 큰 블랙홀을 이룬다.
이 과정에서 블랙홀은 시공간의 구조를 따라 퍼져 나가는 잔물결인 중력파를 방출하며, 이 중력파는 지구까지 도달한다. 중력파는 우리 몸에도 영향을 미쳐 코와 귀 사이의 거리를 변화시키지만, 그 크기는 원자 하나보다도 훨씬 작다. 그럼에도 미국의 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관측소(Laser Interferometer Gravitational-Wave Observatory, LIGO)와 같은 거대하고 정밀한 중력파 검출기를 이용하면 이를 관측할 수 있다.
지금까지 기록된 블랙홀 병합 가운데 가장 "강력한" 사건은 지난해 검출됐다. GW250114로 알려진 이 대격변적 충돌은 새롭게 형성된 블랙홀을 전례 없이 선명하게 보여주었으며, 사건의 지평선과 관련된 미묘한 신호도 드러냈다.
연구진은 GW250114 자료를 이용해 지금까지 숨겨져 있던 신호의 일부인 이른바 직접파(direct wave)를 해독했다. 이 신호는 회전하는 블랙홀이 자전하면서 주변 시공간 자체를 함께 끌어당기는 현상을 보여준다. 이 연구 결과는 《네이처》에 발표됐다.
프레임 드래깅
중력파는 새롭게 형성된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 바로 바깥 영역에서 정보를 전달해 온다. 사건의 지평선은 빛을 포함해 어떤 것도 빠져나올 수 없는 경계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이 영역에서는 매우 특이한 현상이 일어난다. 이 이론은 회전하는 블랙홀이 단순히 공간 속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프레임 드래깅(frame dragging)이라 불리는 현상을 일으킨다고 예측한다. 즉, 블랙홀 주변의 시공간이 블랙홀의 회전과 함께 휘말려 돌아간다.
사건의 지평선에 충분히 가까워지면 어떤 것도 정지한 상태를 유지할 수 없다. 이는 소용돌이와 비슷하다. 너무 가까이 떠내려간 물체는 물의 회전에 휩쓸릴 수밖에 없다. 회전하는 블랙홀 주변에서는 물이 아니라 시공간 자체가 함께 끌려 회전한다.
직접파
직접파는 사건의 지평선 바로 바깥에서 방출되는 중력파다. 이 영역에서는 블랙홀로 떨어지는 모든 물질이 프레임 드래깅의 영향을 받는다.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은 행성이나 별의 표면처럼 실제로 존재하는 물리적 표면이 아니다. 그것은 시공간에 존재하는 하나의 경계다. 그러나 일반상대성이론은 이 경계가 회전 속도와 중력이 얼마나 강하게 작용하는지처럼 측정 가능한 물리적 성질을 가진다고 예측한다.
역대 가장 강력한 중력파 신호를 남긴 블랙홀 병합 사건 GW250114. 출처: LVK Collaboration / Wikimedia, CC BY.
직접파의 존재는 오래전부터 이론적으로 예측됐지만, 지금까지는 한 번도 검출하지 못했다. 직접파를 이용하면 새롭게 형성된 블랙홀이 얼마나 빠르게 회전하는지, 그리고 사건의 지평선에서 중력이 얼마나 강한지도 연구할 수 있다.
GW250114는 신호가 매우 강했기 때문에 이 현상을 찾기에 이상적인 사례였다. 그렇더라도 직접파 성분은 두 블랙홀이 서로를 공전하며 충돌하는 과정에서 만들어낸 다른 중력파 신호 속에 숨어 있었다. 연구진은 새로운 분석 기법을 적용해 직접파를 분리하고, 훨씬 강한 다른 중력파 신호와 구분해 이 성분을 밝혀냈다.
우리 지식의 경계에서 보내온 신호
직접파를 검출함으로써 블랙홀과 사건의 지평선에 관한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사건의 지평선은 수십 년 동안 이론물리학의 핵심 연구 대상이었지만, 사건의 지평선 가까이에서 직접 얻은 정보는 거의 없었다. 블랙홀에 이처럼 가까운 곳에서 방출된 빛은 관측하기 매우 어렵기 때문에, 중력파는 그 영역을 연구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수단이다. 그중에서도 직접파는 사건의 지평선에 가장 가까운 정보를 담고 있는 신호다.
이번 연구는 앞으로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더욱 엄밀하게 검증할 수 있는 길도 제시한다. 일반상대성이론이 옳다면 직접파와 사건의 지평선의 회전, 그리고 그곳의 표면중력은 모두 정밀한 방식으로 서로 일치해야 한다.
서로를 공전하는 블랙홀이 주변 시공간을 어떻게 뒤틀어 놓는지를 보여주는 상상도. 출처: NASA 고다드 우주비행센터/Jeremy Schnittman, Brian P. Powell.
블랙홀은 현재 인류가 이해하는 물리학의 경계에 자리한 천체다. 현대 물리학에는 중력과 시공간의 거시적 세계를 설명하는 일반상대성이론과, 가장 작은 규모에서 물질과 에너지를 설명하는 양자역학이라는 두 개의 핵심 이론이 있다.
두 이론은 모두 GPS, 반도체, 레이저, 그리고 차세대 양자컴퓨터와 같은 기술의 기반이 될 만큼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수준에서는 두 이론이 완전히 양립하지 않는다.
블랙홀은 이러한 충돌이 드러날 가능성이 있는 대표적인 장소 가운데 하나다. 사건의 지평선 근처에서는 중력이 극도로 강해지며, 시공간과 정보, 양자물리학을 둘러싼 문제를 피할 수 없다. 과학자들은 중력파를 이용해 블랙홀을 연구함으로써 현재 이론의 한계를 드러내는 단서를 찾고, 그보다 더 근본적인 새로운 이론으로 나아갈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A ‘direct wave’ from colliding black holes reveals signature of a whirlpool in spacetime
[번역] 하주영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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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 루(Neil Lu)는 오스트레일리아국립대학교(Australian National University) 중력천체물리학센터(Centre for Gravitational Astrophysics) 박사과정 연구원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