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2일 만도 평택공장에서 1998년생 청년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나는 HL만도에서 36년째 일하고 있다. 이 글은 한 기업의 사고 수습 절차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안전을 무엇으로 취급해 왔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사과문? 적시된 겸직 직함
사고 다음 날 회사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제목의 13줄짜리 글을 사내에 게시했다. 유사 사고 방지, 조사 협조, 책임 있는 수습, 안전 수칙 준수를 말했다. 그러나 현장 노동자들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글의 내용이 아니라 그 아래 적힌 명의였다. 'CSO·CLO 총괄대표 김 **'.
최고안전책임자(CSO)와 최고노무책임자(CLO)를 한 사람이 겸임한다. 안전책임자는 생산과 비용보다 위험 제거와 노동자의 생명을 앞세워야 하는 자리다. 노무책임자는 생산 차질과 인건비, 노사 갈등과 회사의 리스크를 관리하는 자리다. 두 요구가 충돌하는 순간 한 사람의 판단 안에서 무엇이 뒤로 밀리는지, 이번 사고 이후의 6일이 그대로 보여줬다.
지난 23일, HL만도 사측이 개시한 사과문. 출처: 금속노조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사고 아니다
10년 전 같은 ABS 가공공장에서 인터록(Interlock, 두 개 이상의 장치나 시스템이 안전하거나 정해진 순서대로만 동작하도록 서로 제어하는 장치) 부재로 노동자가 끼여 1년 넘게 요양한 사고가 있었다. 그러나 인터록 보강과 후속 조치는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 인력도 마찬가지다. 14년간 제대로 된 신규 채용이 이뤄지지 않는 사이, 설비 유지·보수 같은 정비업무는 소규모 외주업체의 몫이 됐다. 생산에 상시적으로 필요한 업무를 인력 충원 대신 외주로 돌리면 작업 정보 공유가 끊기고 안전관리 체계는 약해진다.
과거 사고의 경고를 무시하고, 필요한 안전설비와 인력 투자를 미뤄 온 결과다. 이번 사고는 안전 관리 시스템의 실패다.
[사고 이후 6일의 기록]
- 7월 22일 사망사고 발생. 노조 긴급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즉각 개최 요구, 회사 거부
- 7월 23일 김** CSO·CLO 총괄대표와 소수노조가 임금·퇴직금 소송 관련 합의
- 7월 24일 고용노동부 평택지청장과 유족의 평택공장 방문
- 7월 27일 사고 발생 닷새 만에 첫 산업안전보건위원회 개최
- 7월 28일 작업 중지로 멈춰 선 MCT 설비 가공 부품을 노사협의 없이 외주 가공해 투입하려다 노동조합이 저지
이 일정이 말해주는 것은 분명하다. 사망사고 바로 다음 날, 안전과 노무를 함께 총괄하는 책임자가 처리한 일은 사고 조사도 전 공장 산안위 개최 지시나 노사합동 안전 점검도 유사 설비 가동 중지도 아닌 통상임금 소송 관련 합의였다. 회사는 긴급 산안위 요구는 거부하면서 노무 리스크와 소송 문제에는 즉각 대응한 꼴이다. 합의의 대상과 적용 범위에 따라 지배·개입 부당노동행위, 노조 간 차별, 비조합원과의 형평성 논란까지 불러올 수 있는 사안을, 굳이 사고 다음 날 처리해야 했을까?
7월 28일은 더 노골적이다. 작업 중지 명령으로 평택공장 전체의 MCT(머시닝센터) 설비 유지보수가 멈추자, 회사는 고장 설비의 부품을 외주업체에서 가공해 투입하려 했다. 노동조합이 이를 확인해 막았고 라인은 정지됐으며, 사측 책임자들도 그 사실을 인정했다. 자작 물량의 외주화는 단체협약상 노사 합의 사항이다. 27일 산안위에서 조사계획을 세우고 자료를 모으기 시작해야 할때, 사고원인 규명과 안전대책 협의가 끝나기도 전에 대체 생산부터 추진한 것이다.
작업 중지의 취지는 설비를 잠시 세우는 데 있지 않다. 사고원인이 밝혀지고 안전대책이 마련될 때까지 생산보다 생명을 우선하라는 법적 명령이다.
사고 설비와 같은 모델. 인터록이 설치되어 있지 않다. 출처: 금속노조
직책의 이름이 아니라 권한의 소재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는 사업을 대표·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다. 중요한 것은 직책의 명칭이 아니라 안전보건 조직·인력·예산에 관한 실질적이고 최종적인 권한이다.
그래서 회사는 이것부터 밝혀야 한다. 김** 총괄 대표에게 안전시설 투자, 인력 충원, 작업중지, 예산 집행의 최종 결정권이 있었다면 그는 이번 사고의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반대로 대표이사와 회장의 결재 없이는 일정 수준 이상을 결정할 수 없는 CSO였다면, 안전에 관한 최종 권한은 애초에 그 결재선 위에 있었던 것이고 CSO라는 직책은 대표이사의 책임을 외형적으로 분산하는 방패막이로 기능했을 뿐이다. 어느 쪽이든 답은 나와야 한다.
조사와 점검의 대상이 되어야 할 사람이 조사와 대책 수립을 지휘한다면 진상규명의 독립성과 신뢰는 확보될 수 없다. CSO 직무배제는 한 사람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자는 요구가 아니다. 평택공장의 생산목표와 원가절감 지시가 어디에서 내려왔는지, 안전 관련 보고가 어디까지 올라갔는지에 따라 정몽원 회장과 조성현 대표이사의 경영책임은 별도로, 그리고 더 무겁게 규명돼야 한다. 직무배제와 보직해임은 그 첫 조치일 뿐이다.
HL만도가 지금 해야 할 네 가지
첫째, 김** 총괄대표를 사고조사와 안전대책 수립 업무에서 즉각 배제하고 CSO 보직에서 해임해야 한다. 그는 현재 등기이사가 아니다. 주주총회 절차가 아니라 회사 내부의 임원 보직 인사 문제이며, 마음만 먹으면 오늘이라도 가능한 일이다.
둘째, 안전보건 예산권·인사권·설비 투자권·작업중지권의 최종 결정권이 누구에게 있었는지 공개해야 한다.
셋째, 사고조사에 노동조합의 참여와 안전 감시권을 보장하고, 10년 전 같은 공장 사고의 재발방지 대책이 실제로 이행됐는지 함께 재조사해야 한다.
넷째, 설비 유지·보수 업무의 외주화 구조와 인력 충원 계획을 노사협의 테이블에 올려야 한다.
금속노조와 유가족은 29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HL만도 조성현 대표이사의 공개사과 △노동조합 요구 사고조사단의 빠른 구성 및 재발방지대책 수립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HL만도의 배상 △당국의 중대재해처벌법, 산안법 등 위반사항 신속 수사와 책임자 엄정 처벌 등을 요구했다. 출처: 금속노조
1998년, 두 개의 시간
정몽원 회장에게 1998년은 외환위기와 부도의 해였다. 그러나 그에게는 다시 경영 일선에 설 기회가 있었다. 1998년생 청년 노동자에게는 돌아올 기회가 없다.
최고경영자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안전’을 예방의 문제가 아니라 사고 이후의 노무관리와 리스크 통제 문제로 다뤄 온 것은 아닌가. 일상적인 지시와 경영평가가 생산·납기·비용절감을 앞세우게 만들고 안전 요구를 후 순위로 밀어낸 것은 아닌가. 안전과 노무를 한 사람에게 맡긴 구조 자체가 근본 원인은 아닌가.
사고 직후 회사가 보여준 신속한 노무 대응만큼, 안전관리 책임자에 대한 인사 조치도 신속해야 한다. 말이 아니라 인사 조치와 진상규명, 재발방지 대책으로 책임을 증명할 차례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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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두혁은 HL만도에서 36년째 일하는 노동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