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자구호선박에 탑승했던 한국인 활동가들. 왼쪽부터 동현, 해초, 승준. 출처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항해 한국본부.
팔레스타인에 집단학살이 일어난 지 3년이 되는 날을 앞에 두고 있다. 2007년부터 해상과 육지에서 가자에 행해진 봉쇄를 뚫기 위한 항해에 나는 올해 초 참여했었다. 감옥선에 갇힌 뒤 이스라엘이 불법 점령한 땅의 아슈도트 항구로 옮겨져 가혹 행위를 당한 것은 사흘 정도의 일이었지만 그 시간은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의 처지를 조금이나마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함께 항해에 참여한 동료의 여권을 취소하는 한국 정부의 국제적으로도 유례없는 일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지 말할 자리도, 또 이스라엘 대사 초치라는 성과도 있었다. 대통령의 입에서 네타냐후가 전범이라는, 그가 한국 땅에 발을 들이면 체포할 방안을 검토해 보라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집단학살은 멈추지 않았다.
팔레스타인 땅에 집단학살이 일어난 지 3년이 지났다. 이 말은 집단학살이 3년째 이어지고 있기보다는, 3년 전에 시작했고 지금은 얼마간 끝이 났거나 상황이 나아졌다고 믿고 싶게 한다. 명목뿐인 휴전이라 해도 이전보다 사람들이 단기간에 대규모로 살해당하는 빈도가 줄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에 사는 사람들도 상황이 나아졌다는 말에 수긍할까? 팔레스타인에서는 여전히 수도와 하수 시스템이 붕괴된 채로, 의약품도 구호품도 먹을 것도 거의 구할 수 없는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이번주 초에도 이스라엘 드론은 팔레스타인 사람이 탄 차량을 타격했고 탑승자는 불에 타서 목숨을 잃었다. 현재 팔레스타인 땅의 사람들은 집단학살을 통과해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집단학살 속에서 그것을 살아내고 있다. 자스비르 푸아르의 말처럼 집단학살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살상하는 행위만이 아니라, 그들이 특정한 방식의 삶을 살도록 강제하는 것이기도 하다.1

참세상 자료사진. 참세상 박도형 기자.
오랜 봉쇄를 겪은 가자지구는 삶의 조건이 황폐해지리라고 2012년부터 UN에 의해 예견되었다. 이스라엘은 1차 인티파다 때부터 국제적 비난을 피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살해하기보다 불구화하는 방식을 택해왔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온전하지 않은’, 곧 정치적 주체에 미달하는 상태로 그리기 위한 것이었다. 이 불구화 수칙은 가자 지역의 피해 사망자 수가 급격히 늘어난 2010년대에도 부상자 수를 감추는 데 이바지했다.2 이스라엘이 부과한 신체적, 정신적 결손은 팔레스타인 인민의 정치적 참여에 따른 대가이기도 한 바, 레바논에서 동시에 폭파됐던 3,000여 대의 무선 호출기(삐삐)에서 이를 단적으로 볼 수 있다. 2018, 2019년의 귀환 대행진에서도 사망자 수는 204명에 그친 데 반해 신체 일부를 절단한 부상자는 삼만 명 이상 발생했다. 그러므로 2023년의 알아크사 홍수 작전을 계기로 격화된 집단학살은, 이전부터 자행되어 온 저 집단학살 방식의 극단화ㅡ이제 이스라엘은 면책 효과라도 가진 것처럼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살해하는 데에도 거리낌없기 때문에ㅡ이며, 그것은 집단학살의 구조에서 필연적인 수순은 아닐지언정 예견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는 이런 관점에 설 때만 알아크사 작전을 이해할 수 있다.
이 자리를 빌려서 2023년 알아크사 작전을 둘러싼 몇 가지 사실들을 다시 한번 확인해두고 싶다. 집단학살을 지켜보는 우리가 지칠 즈음이면, 식민주의자들의 논리를 차용해 하마스에도 얼마간 이 모든 사태의 책임이 있지 않겠느냐고 내심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완벽하지는 못했다고 해도 절대적으로 정당한 투쟁이었다.
“하마스의 공세가 마치 아무 맥락도 없이 튀어나온 것 같지만, 이들은 사실상 1948년 이래 이스라엘군에게 가장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불과 몇 시간 사이, 하마스를 억제하기 위한 시설로 사용되었던 곳들과 가자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제거하기 위해 존재하던 여러 시설들이, 바로 우리 눈앞에서 사실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짓밟혔다. 팔레스타인 전투원들과 민간인들이 이스라엘에 돌진하자, 그 순간 ‘이스라엘이 유대국가이자 민주국가’라는 신화는 현실과 충돌해 버렸다. 비유대계 주민들에 대한 책임을 외면한 채 만들어 낸 이스라엘이라는 신화는 잔혹한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라는 현실과 충격적이고도 비극적으로 충돌했으며, 궁극적으로는 회복 불가능한 것이 되었다.”3
이스라엘이 상상하도록 강요하는 팔레스타인 땅은 1948년의 나크바를 잊지 못하는 상태에서, 가자 지구와 서안 지구로, 반으로 갈린 예루살렘으로, 시리아에서부터 레바논, 요르단에 걸쳐 전 세계에 분산된 팔레스타인 땅 외부로, 그리고 시온주의자들의 감옥으로 분할된 채 존재하는 땅이다.4 그리고 그 땅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체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천명한 것이 10월 7일의 작전이었다. 민간인이 연루되는 등 계획을 벗어난 측면이나 더 명확한 목표가 없었다는 점을 우리가 비판할 수 있을지언정, 팔레스타인 문제는 이제 껍데기뿐인 평화로 유지되는 억압 체제의 지속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식민체제를 겨냥하게 되었다. 우리는 되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왔다. 그런데도 무장투쟁이 필요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 모두가 팔레스타인인이다’라는 시위 구호는 집단학살에 공모하는 모든 행태에 맞선 거부와 저항의 조건을, 곧 팔레스타인의 조건을 우리가 ‘은유를 버리고’ 체현할 것을 스스로에게 요구하게끔 한다.5 나도 사람이 어느 순간에나 싸울 수 없다는 것을, 투쟁의 시간과 공간을 가늠해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안다. 하지만 시간이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리파트 알아리르는 손에 보드마커 하나만 남아 있어도 자신의 집에 침입하는 IDF 병사에게 그것을 던지겠다고 말했었다. 설령 그게 자신이 살아서 할 수 있는 마지막 행위여도 말이다.

참세상 자료사진. 참세상 박도형 기자.
그런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식민체제와 싸울 수 없는 것 같다. 이미 상품으로 꽉 들어찬 세계에 무기와 건설 장비를 판매하고, 자원을 불법 수탈하고, 국민연금으로 학살에 투자하며 상품화를 가속하는 방향과는 다른 자유를 위해서라면 더욱 그렇다. 다음카카오에서 연재 중인 <지옥사원>이라는 웹툰에서는, 지구에서 불행을 더 만들어내기 위해 악마 하나가 이승으로 파견된다. 악마의 계획은 식음료를 판매하는 대기업에 취직해 모두가 먹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음식을 파는 것이다. 그 음식을 먹으면 사람들은 우울해하지 않고, 자신의 문제를 대면하지 않을 수도 있다. 작중의 사회에서 이는 ‘중독’이 아니라 ‘선호’로 표현된다. 팔레스타인에 가해지는 집단학살을 생각하면서 잘 살 수는 없는 것 같다. 그런데 그게 나쁜 삶이냐고 하면 그렇지 않다고, 여기에는 그저 다른 방식으로 상상한 삶이 있다고 말하겠다.
한국에 돌아와서 마주한 장소 몇몇은 내게 미래의 팔레스타인을 떠올리게 했다. 하나는 강정 마을이다. 뒤늦게 그곳을 찾아 해군 기지를 처음 봤을 때, 이미 몇십 년은 버티고 섰던듯 끝없이 펼쳐진 장벽은, 강정의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활동하고 있는지 궁금하게 했다. 그곳에 있는 건 내가 지레짐작했던, 운동이 끝나고 이어지는 절망이 아니었다. 그곳의 활동가ㅡ활동가라고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실지도 모르겠는데ㅡ는 강정이 다른 장소가 아니라고, 그의 삶이 특별한 방식의 삶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집회, 도저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집단학살의 와중에도 팔레스타인의 소식을 듣고 친구들의 얼굴을 보고 거리를 걷고 싶은 마음에 찾곤 했던 그 집회가 아니었다면 가자지구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닿고 싶다는 마음도, 그 길에 함께 할 사람들도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10월 3일에 우리는 집단학살을 막아내는 것만이 아니라 미래에 올 해방공간을 얼핏 보여주는 장소를 구성하기 위해 모이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2026년 10월 3일(토) 14시, 보신각에서 열리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집단학살 3년 규탄 집중집회' 포스터
[1], [2] Jasbir Puar, . Puar and Abourahme, This Death Is Not One, Bilna’es, 2026 수록.
[3] 타레크 바코니, <봉쇄와 저항: 하마스를 포함하는 팔레스타인 투쟁의 역사>, 39쪽. <<가자의 목소리>>, 모사브 아부 토하 외 지음, 이나현 옮김, 돌베개, 2025[2026] 수록.
[4] Laura al-Tibi and Amr Amer, Against the Structural Weight of Catastrophe: A Poetics of Negation, 15쪽, Bilna’es, 2024.
[5] 모하메드 엘쿠르드, <<완벽한 피해자>>, 박종주 옮김, 마티, 2025[2026], 201쪽.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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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은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항해 한국본부’에서 활동하는 활동가입니다. 지난 5월 구호선박 ‘키리아코스 X’호를 타고 가자지구로 향하던 중 선박이 이스라엘군에 나포되면서 억류되었습니다. 석방 후에는 구금 과정에서 겪은 이스라엘군의 가혹행위를 증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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