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어떤 시대인가: AI와 단절의 시대를 묻다

토마스 만 『마의 산』

지난주 베를린에서 열린 한 패널 토론에는 훌륭하고 합리적인 사람들이 참석했고, 그들이 제시한 제안들에 나는 대체로 동의했다.

그런데도 (요즘 꽤 자주 그런 일이 벌어지듯이) 나는 다락방에 갇힌 미친 삼촌처럼 불이 났다!”고 외치는 기분이 들었다.

왜 이런 불편함을 느꼈을까?

만약 모임의 주제가 위기와 전환이라면 (그것도 추상적 차원에서, 거시적 차원에서,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의 현실에 관한 것이라면) 과연 우리는 오래된 약속을 불러오는 것에서 답을 시작할 수 있을까?

지방사회주의(municipal socialism)의 약속 말이다(맘다니 프로젝트에 반대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뉴욕시의 정치경제에 대해서는 올여름 더 이야기할 예정이다).

혹은 역사적 사례들이 보증해 주는 물가 안정의 약속일까?

아니면 유럽연합(EU)이 실현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금융시장 및 디지털 규제에 대한 희망일까? 다른 누가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먼저 이렇게 물어야 하지 않을까. 지금은 몇 시인가?

우리는 어떤 역사적 연속성을 여전히 의미 있게 불러올 수 있는가?

혹은 적절한 반론을 받아들여 표현을 바꾼다면(h/t DC), 어떤 시점이든 여러 시간성과 여러 시간선이 동시에 작동한다는 점을 고려해 이렇게 물어야 할지도 모른다.

지금은 몇 시인가?”가 아니라,

지금은 어떤 시대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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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층위화된 시간성(layered temporality)이라는 개념과 소리에서 배음(overtones)이 겹치는 현상 사이의 유비가 떠올랐다.

우리는 단순히 하나의 음만이 아니라 그 음의 성질까지도 규정할 수 있다.

나는 무대 위에서 그 점을 설명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플루트(flute)로는 이를 쉽게 시연할 수 있다.

플루트 음색의 기초

내가 찾고 있던 단어는 (나중에 문득 떠올랐는데) 음색(timbre), 혹은 소리의 색깔(tone color)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 시대들인가?”라는 질문은 이 순간의 음색이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으로 바꿀 수 있다.

과거의 서로 다른 공명들이 얼마나 존재하는지, 미래에 대한 기대들이 얼마나 스며들어 있는지를 묻는 질문이다.

지난주 베를린에서 열린 그 패널 토론에서 우리의 차이는 미묘한 수준이 아니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시간과 소리의 세계에 살고 있었다.

함께 패널에 참석한 사람들은 듣기 좋은 역사적 선율을 연주하고 있었다. 분명 긴급한 문제들이었고 진지한 이야기들이었다. 그러나 결국 그것은 익숙한 선율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그 선율을 따라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단지 내가 손쉬운 정책 처방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세상이 너무 단절됐고, 너무 많은 균열이 생겼으며, 너무 불협화음으로 가득 차 보였기 때문이다.

뉴스를 훑어볼 때마다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소리들은 하나의 선율을 이루지 못한다.

펜데레츠키(Penderecki)의 「히로시마 희생자를 위한 애가(Threnody)」조차도 지나치게 질서정연하고, 지나치게 편곡돼 있으며, 지나치게 분명한 연극적 장치처럼 느껴질 정도다.

펜데레츠키(Penderecki), 「히로시마 희생자를 위한 애가(Threnody)」 애니메이션 악보

시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역사적 연속성을 전제하는 태도는 거의 향수에 가까워 보인다.

그 모임의 주최자는 행사 전에 내게 이렇게 말했다. 위기에 관해 이야기하는 일은 마치 오랜 친구를 맞이하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이다.

왜 우리는 선례가 여전히 유효하다고 가정하는가?

그리고 선례를 잃는다면, 과거의 고무적인 사례들도 함께 내려놓아야 하는 것 아닐까?

혹은 그런 사례들을 계속 언급한다면, 적어도 높은 수준의 자기 성찰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그러한 주장이 일종의 캠프(camp)적 감수성과 유사한 성격을 띤다는 점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아마도 내가 느낀 강렬한 단절감은 미국 자본주의와 인공지능(AI)에 관해 10분 정도 발표하기로 자원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 머릿속에는 노드하우스(Nordhaus)2021년에 제시한 노동계급의 안락사(euthanasia of the labouring classes)’라는 비전이 자리 잡고 있었다. (원문 표현 그대로)

(왼쪽) 노동도 좋지만, 자본은 더 좋다. 급속한 기술 변화의 모형화된 효과. 생산량과 임금, 전년 대비 증가율(%). 자본이 연간 10%씩 증가하고, 노동은 일정하며, 노동과 자본 사이에 탄력적 대체가 가능하다고 가정. 출처: W. D. 노드하우스(W.D. Nordhaus), 「우리는 경제적 특이점에 접근하고 있는가?, 『미국경제저널: 거시경제학』,(American Economic Journal: Macroeconomics) 2021.
(오른쪽) D. 노동계급의 안락사 초지능 자본에 의해 성장이 가속화되면 자본수익률과 실질이자율은 0으로 하락한다. 이는 J. M. 케인스(Keynes)가 『고용·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1935)에서 상정했던 상황이다.”, “[그 경우] 자본의 한계생산물이 매우 낮은 수준까지 감소해 결국 0에 가까워지고, 이는 지대생활자의 안락사, 더 나아가 자본가가 자본의 희소가치를 이용해 행사하던 누적적 억압 권력의 안락사를 의미한다.”, “(요약)케인스의 분석은 생산함수에 관한 선구적 연구를 바탕으로 했으며, 요소소득 분배에 영향을 주는 대체탄력성의 핵심 역할을 밝혀냈다. 노드하우스의 시나리오에서는 노동과 자본의 대체탄력성이 1보다 작을 경우 자본 비중은 0으로 수렴하며 자본수익률도 0으로 감소한다. 그러나 대체탄력성이 충분히 크면 노동소득 비중은 0으로 수렴하고 국민소득은 사실상 자본 소유자에게 귀속된다. 이 경우 노동계급의 안락사가 발생한다. 이는 생산량 감소 때문이 아니라 국민소득에서 노동이 차지하는 몫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출처: 노드하우스, 「우리는 경제적 특이점에 접근하고 있는가?(2021)

그리고 바로 그 댈러스 연방준비은행(Dallas Fed)의 그래프 말이다.

향후 수십 년 동안 가능한 시나리오 가운데 하나로 미국 경제의 종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도표 위에 그려 놓은 바로 그 그래프다.

<댈러스 연방준비은행 그래프>1990년 기준 달러(천 달러), 로그 스케일. (범례) 특이점: 낙관적 시나리오, 1인당 실질 GDP, AIGDP가 증가한 추세(10년간 연 2.1%), 1인당 GDP 추세선(1.9%), 특이점: 멸종 시나리오. (주) 파란색 선은 1990년 달러 기준 1인당 실질 국내총생산(GDP)을 나타낸다. 주황색 선은 1870~2024년 데이터를 바탕으로 추정한 추세선으로 연평균 성장률은 1.9%. 빨간색, 초록색, 보라색 선은 서로 다른 시나리오에 따른 가상적인 1인당 GDP 경로를 나타낸다.

아마도 내가 느낀 불편함은 니얼 퍼거슨(Niall Ferguson)이 후버연구소(Hoover Institution)에 최근 발표한 글을 막 읽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베를린의 의제에는 전혀 포함되지 않았던, 정확히 그런 종류의 전례 없는 질문을 던졌다.

우리가 말인가?” 역사학자 매슈 로언스타인(Matthew Lowenstein)2023년 논문에서 이 질문을 제기했다그는 이렇게 썼다. “인공초지능(Artificial Superintelligence)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인간은 더 지능적인 기계가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만 번영할 것이다. … 산업기술이 말을 대체하는 데는 수 세기가 걸렸지만, 강력한 AI가 등장한 이후 인간을 대체하는 데는 10년도 걸리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6,000년 전 유라시아 초원지대에서 말이 가축화된 이후 전 세계 말 개체 수는 50만 마리 미만에서 1억 마리가 넘는 정점까지 증가했다. 영국의 말 개체 수는 1811년 약 130만 마리에서 1911330만 마리로 늘어났다. 그러나 이후 급감했다. 1965년 영국 농업에 사용되던 말은 21,000마리에 불과했고, 이는 정점 대비 98% 감소한 수치였다. 미국의 농업용 말 개체 수 역시 1910년에서 1920년 사이 약 2,000만 마리로 정점에 도달했지만, 1974년에는 160만 마리로 급감했다. 감소 폭은 92%에 달했다증기기관과 이어 등장한 내연기관은 말을 쓸모없게 만들었다이 변화는 실업을 초래한 것이 아니었다인구 붕괴를 초래했다오늘날 미국에 여전히 약 700만 마리의 말이 존재하는 이유는 승마를 여가 활동으로 즐기려는 우리의 감상적이거나 원초적인 애착 때문일 뿐이다

… 내가 보는 관점에서 대규모 언어모델(LLM)은 내가 잘하는 일들을 점점 더 능숙하게 수행하고 있다. 제미나이(Gemini)는 가끔 환각(hallucination)’, 즉 사실을 지어내는 오류를 범하기는 하지만, 수준 높은 역사 논문을 매우 빠르게 작성할 수 있다. GPT와 다른 대규모 언어모델들은 이미 학생 과제의 상당 부분을 작성하고 있으며, 아마도 점점 더 많은 과제를 채점하기까지 할 것이다. 클로드(Claude)는 거의 모든 사람보다 코딩을 더 잘한다. 게다가 꽤 매력적인 괴짜 교수 같은 성격까지 갖추게 됐다나는 역사적 데이터와 인간의 지성을 바탕으로 경제와 정치의 변화를 예측하는 데 시간을 쏟는다. 그러나 맨틱(Mantic)의 예측 엔진은 이제 최고의 인간 슈퍼예측가들만큼 뛰어난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 현재 이용 가능한 증거를 고려할 때, 내가 본질적으로 20세기 중반의 말과 같은 존재라는 생각은 상당히 그럴듯하게 느껴진다. 다만 세계 모델(world models)이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고 휴머노이드 로봇이 달리기 같은 단순한 작업조차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한, 배관공 같은 직업의 고용 전망은 더 밝을 수 있다.

 

혹은 올봄 컬럼비아대학교에서 내가 가르친 세미나의 마지막 수업 분위기를 떠올렸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 수업의 주제는 인공지능(AI), 미국 자본주의, 민주주의였다. 점점 커지는 불안감과 진정으로 급진적인 불확실성의 감각을 나는 이전에 강의실에서 느껴본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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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하고자 한 것은 AI가 경제에 임박했거나 극적인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모두가 강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었다.

핵심은 이 질문이 시급하다는 점이다가능한 답의 범위는 실로 엄청나다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런데도 미래에 대한 기대와 수조 달러 규모의 베팅은 시장을 움직이고 있으며, 이전에는 본 적 없는 규모의 부를 창출하고 있다.

2022년 이후 나는 자본주의의 중심 동학을 지목하는 일을 꺼려 왔지만, 미국 자본 축적을 이끄는 힘은 분명 인공지능(AI)이었다. 금융도 아니고, 석유도 아니며, 군산복합체도 아니었다.

주식시장의 집중도는 역사적으로 유례없는 수준에 도달했다.

<주식시장 버블 집중도의 역사> 미국 증시 시가총액 대비 비중으로 측정한 주식시장 집중 버블의 역사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어지러울 정도의 질문들을 던진다.

어지럽고도 피할 수 없는 질문들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베를린의 그 강당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패널에 참석한 그 역사학자인 내가 이렇게 외치게 됐다.

지금은 어떤 시대인가?”

이 질문은 받아들이는 방식에 따라 지극히 역사적인 질문으로도, 혹은 비역사적인 질문으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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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몇 시간 뒤, 여름 독서를 시작하면서 나는 토마스 만의 『마의 산』(Der Zauberberg, The Magic Mountain) 서문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을 읽게 됐다. 이 소설은 1924년에 출간됐으며 1914년 이전 시대를 다루고 있다. 그 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멋진 대목이 나온다.

우리 이야기의 과장된 과거성은 그것이 어떤 위기가 삶과 의식을 관통하며 돌진해 깊은 균열을 남기기 이전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일어난다. 아니, 현재형을 의도적으로 피하자면, 일어났다. 그리고 이미 일어났었다. 그것은 먼 옛날, 옛 시절, 대전쟁 이전의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그리고 그 전쟁이 시작되면서 너무도 많은 것들이 시작됐고, 그 시작은 지금까지도 거의 끝나지 않았다. 그렇다. 이 이야기는 그 이전에 일어났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오래전 일은 아니다. 과거가 현재에 가까울수록 그 과거는 오히려 더 깊고, 더 완전하며, 더 전설적이지 않은가? 게다가 우리 이야기는 본래의 성격상 때때로 전설 같은 분위기를 띠기도 한다.

이 구절은 내게 흩어져 있던 생각들을 이어 붙여 주었다.

우리는 대전쟁을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우리와 20세기 사이에도 이와 비슷한 단절감이 존재하지 않는가?

20세기가 남긴 선례와 모델, 그리고 영감의 원천들은 우리와의 사이에 균열이 생긴 채 멀어지지 않았는가?

그 역사는 이제 전설이 된 것이 아닌가?

[출처] Chartbook 451 What times are these? Crying fire in a Berlin lecture theatre.

[번역] 하주영 

덧붙이는 말

애덤 투즈(Adam Tooze)는 컬럼비아대학 교수이며 경제, 지정학 및 역사에 관한 차트북을 발행하고 있다. ⟪붕괴(Crashed)⟫, ⟪대격변(The Deluge)⟫, ⟪셧다운(Shutdown)⟫의 저자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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