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Sze Yin Chan, Unsplash
전혀 옹호할 수 없는 인도–미국 무역협정을 어떻게든 방어하려는 절박함 속에서 모디 정부는 터무니없는 논리를 연이어 내놓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농민단체(Kisan organizations)가 반대해 온 미국산 붉은 수수, 대두, 건조 증류 곡물 부산물(DDGs, Dried Distiller’s Grains)과 같은 상품을 관세 없이 인도 시장에 개방하면 동물 사료 비용이 적어지고 따라서 농민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다. 다시 말해 이 논리는 농민들이 사용하는 여러 투입재의 국내 가격을 낮출 수 있다는 이유로 이 무역협정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터무니없다. 모든 관세는 국내 생산품이 수입품보다 생산비가 더 많이 들기 때문에 부과한다. 만약 더 저렴하다는 이유만으로 수입을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 애초에 어떤 관세도 존재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관세는 전혀 다른 두 가지 이유로 부과한다. 첫째, 관세는 원래 수입되었을 상품의 국내 생산을 장려하고 그 결과 국내 고용을 직접적으로 그리고 간접적으로 늘린다. 예를 들어 동물 사료의 국내 생산은 해당 부문에서 직접 고용을 창출할 뿐 아니라, 그 생산자들의 손에 소득을 쥐여 주면서 다른 다양한 상품에 대한 수요를 만들어 내고, 이는 다른 부문에서 이차적·삼차적 고용을 창출한다. 반대로 수입에 의존하면 이러한 소득과 고용 창출 효과가 해외로 “유출”된다. 둘째, 수입에는 외환이 필요하며 외환은 분명히 부족한 자원이다. 따라서 수입품을 국내에서 생산하면 귀중한 외환을 절약하는 효과를 얻는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특히 투입재의 경우 값싼 수입을 통해 최종 상품 가격을 낮추고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여 수출을 늘릴 수 있다면, 왜 그런 이점을 포기해야 하는가. 그러나 투입 비용을 낮추고 최종 상품 가격을 낮추기 위해 실제로 더 싼 수입을 해야 할 필요는 없다. 특정 투입재 가격을 낮게 유지해야 한다고 판단하면 정부는 언제든지 재정 보조금을 통해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동시에 해당 상품의 국내 생산을 장려하고 외환을 절약하며 대외 부채 증가를 억제할 수도 있다.
실제로 미국 정부는 오래전부터 농업 부문 전체에 대해 바로 이런 정책을 시행해 왔다. 보조금 규모는 매우 커서 어떤 해에는 전체 농업 생산 가치의 거의 절반에 달하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적기 때문에 이러한 보조금을 직접 소득 지원 형태로 지급할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지급한다. 미국은 국제 무대에서 인도와 같은 나라들이 지급하는 보조금을 강하게 비판하면서도, 자국 농민에게 지급하는 보조금은 “시장 왜곡적이지 않다”는 전혀 근거 없는 주장으로 금지 보조금의 범위 밖에 교묘하게 배제해 왔다. 유럽연합 역시 마찬가지다. EU도 농민들에게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면서도 제3세계 국가들이 농민에게 지급하는 보조금과 달리 자국의 보조금은 “시장 왜곡적이지 않다”고 주장하며 아무 제약 없이 허용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면화의 사례를 보자. 면화는 수입 증가가 인도 농민에게 위협이 되는 상품 가운데 하나이며, 실제로 인도 원면 시장은 이미 앞으로 닥칠 어려움을 예상하며 침체에 빠졌다. 몇 년 전 미국의 면화 농가에 대한 보조금은 농가당 최대 12만 7천 달러에 달했다. 브라질이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보조금 규모를 줄여야 했다. 그럼에도 현재 환율로 환산하면 농가당 약 1억 루피에 이르는 보조금을 여전히 지급한다. 미국에는 면화 농가가 2만 7천 가구도 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천문학적 보조금을 지급하는 일은 미국 정부에 행정적으로 충분히 관리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핵심 요점은 “값싼 수입 논리”가 완전히 허구라는 사실이다. 이 논리를 받아들이면 국내 소득과 고용이 크게 줄어들 뿐 아니라 식량 안보까지 약화한다. 보조금을 등에 업은 EU와 미국의 곡물이 인도 시장을 범람하면 수백만 명의 인도 곡물 농민이 피해를 보게 된다.
마찬가지로 정부가 인도–미국 무역협정을 옹호하면서 미국의 30조 달러 규모 시장이 인도 상품에 개방된다고 주장하는 것도 극도로 터무니없는 논리다. 이 수치는 미국 GDP 규모, 즉 상품과 서비스 총거래 규모를 가리킬 뿐이다. 인도가 아무리 성공적인 수출국이 된다 해도 그 시장의 극히 일부만 차지할 수 있다. 수조 달러 규모 시장 접근이라는 말은 순전히 과장된 선전일 뿐이다. 이런 논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인도에 아무리 불리한 무역협정이라도 단지 상대 경제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정당화할 수 있게 된다.
최근에는 정부가 이 협정에 반대하는 농민들을 이해관계에 따라 분열시키는 전략까지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서부 우타르프라데시(Western UP)의 농민들에게는 이 협정이 밀이나 쌀 같은 주요 작물에 영향을 주지 않으므로 반대하지 말라고 말한다. 정부 논리에 따르면 농민들은 자신들에게 영향을 미칠 때만 반대해야 한다. 잠무 카슈미르(Jammu and Kashmir)나 히마찰프라데시(Himachal Pradesh)의 과수 농가, 혹은 마하라슈트라(Maharashtra)의 면화 농가가 피해를 보더라도 그것은 그들과 상관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농민 연대를 노골적으로 파괴하려는 시도일 뿐 아니라 농민을 민주주의 시민이 아니라 단순한 사익 추구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려는 시도다. 이것은 시민권에 대한 모욕이며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나 서로의 안녕에 관심을 가져야 하며, 자신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없더라도 다른 사람의 안녕을 해치는 일에는 저항해야 한다.
이러한 터무니없는 주장들은 인도–미국 무역협정이 “불평등 조약”이라는 사실을 가릴 수 없다. 이 협정은 트럼프 행정부가 인도 정부의 협조 속에서 인도 국민에게 강요한 것이다. 인도 정부는 트럼프에게 환심을 사려 했다. 그런데 이제 미국 대법원이 트럼프의 관세 공격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대통령에게 마음대로 관세를 부과할 권한이 없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의회의 권한을 침해했다는 판단이다. 따라서 인도 정부가 굴복했던 기본적인 상황 자체가 사라졌다. 인도 정부는 이제 이 “불평등 조약”에서 탈퇴할 기회를 얻었다. 지금조차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국민은 결코 정부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는 발전 전략과 관련된 더 깊은 문제도 있다. 설령 인도–미국 협정이 불평등 조약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그 배후에 있는 기본 인식 자체가 잘못되었다. 이 인식은 “수출 주도 성장”의 이점을 강조한다. 최근 인도 정부가 유럽연합, 영국, 아랍에미리트 등과 잇따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는 배경에도 바로 이 논리가 있다. 그러나 수출 주도 성장 이론은 세계 시장의 총수요 증가가 외생적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는다. 따라서 한 나라가 높은 수출 성장률을 달성하면 반드시 다른 나라가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수출 주도 성장 전략은 글로벌 사우스 국가끼리 서로 경쟁하게 할 뿐 아니라 두 가지 추가적인 문제를 낳는다. 첫째, 수출을 촉진하려면 다국적기업(MNCs)에 레드카펫을 깔아 주어야 하고, 그 결과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의 권한이 축소되며 식민지 시대에 “치외법권”이라고 불렸던 상황이 다시 등장한다는 점에서 반민주적이다. 둘째, 경제가 분절된다. 일부 수출 부문이 성공하더라도 외국 경쟁에 노출된 다른 부문은 뒤처지고 침체에 빠진다.
민주적이고 균형 잡힌 발전 전략, 그리고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에 대해 비적대적인 전략은 산업 부문의 “수출”을 다른 나라가 아니라 국내 농업 부문으로 향하게 하는 전략이다. 이 전략은 농민 농업의 성장을 전체 경제 성장의 기반으로 삼기 때문에 더 평등주의적이기도 하다. 인도는 독립 이후 바로 이 전략을 따랐다. 이 전략이 충분히 높은 GDP 성장을 가져오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지만, 그에 대한 대응은 농지 개혁과 다른 조치를 통해 농민 농업의 성장률을 더 높이는 것이어야 했다. 신자유주의 도입처럼 이 전략을 완전히 버리는 것이어서는 안 됐다. 이 사실을 인도가 하루빨리 깨달아야 한다.
[출처] Modi Government’s Gymnastics to Defend Indo-US Deal | Peoples Democracy
[번역] 하주영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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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바트 파트나익(Prabhat Patnaik)은 인도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이자 정치 평론가다. 그는 1974년부터 2010년 은퇴할 때까지 뉴델리의 자와할랄 네루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 연구 및 계획 센터에 몸담았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