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영미권에서는 ‘차이나맥싱(Chinamaxxing)’이 일종의 유행이 되고 있다.
나 역시 그런 열광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최근 왕칭(Wang Qing)과 내가 액센트 소사이어티 서점(Accent Society bookstore)에서 진행하는 살롱 시리즈에서, 나는 댄 왕(Dan Wang)과 딩이자(Iza Ding)와 함께 이 현상에 대해 이야기할 즐거운 기회를 가졌다. 그 대화는 매진된 청중의 열기에 힘입어 매우 흥미로운 토론으로 이어졌다.
패널 참가자들은 현재 중국 문화가 얼마나 역동적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하지만 지금의 중국 문화가 특별히 활력이 넘치는 시기라는 점에는 대체로 동의하지 않았다. 따라서 현재 서구에서 나타나는 중국 열풍은 중국 내부에서 벌어지는 문화적 활기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은 한편으로는 중국의 부상이라는 압도적인 현실,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 소비문화와 온라인 문화의 고도화, 그리고 이에 대비되는 영미권의 침체감과 서구 브랜드의 매력이 소진되고 있다는 감각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우리 대화에서는 현재의 ‘차이나맥싱‘ 현상을 적어도 일곱 가지 흐름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1.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기술관료주의에 대한 선망이다. 이는 댄 왕이 ⟪브레이크넥⟫(Breakneck)에서 제시한 논지이기도 한데, 중국은 “미래를 공학적으로 설계하는” 데 몰두한 엔지니어들이 운영하는 사회라는 것이다.

2. 두 번째는 중국을 방문한 사람들이 중국의 현실과 마주하며 받는 충격이다. 그 방문이 정부 관광기관들에 의해 연출된 것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3. 또 다른 열광의 차원은 복고적 진정성(retro-authenticity)이다. 베이징이나 충칭의 거리 풍경은 사람들에게 “발 딛고 사는” 삶의 잃어버린 세계를 떠올리게 한다.
4. 중국식 웰빙 방식에 대한 관심도 매우 크다.
5. 서구는 중국 네티즌들이 엄청난 유머 감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6. 중국 대중문화는 ‘귀여움(cuteness)’의 스타일과 각종 소품들을 만들어내는 거대한 생산지 가운데 하나다.
7. 에로틱한 영역도 있다. 데이트 시장에서 반복적으로 퍼지는 “황열병(Yellow fever, 서구권에서 주로 동아시아 여성에 대한 과도한 성적 집착이나 페티시를 가리키는 속어)” 유행에 대한 소문들이 그것이다.
이런 수렴 현상이나 각각의 구성 요소들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 것인지에 대해 어떤 전망을 내놓든 간에, 딩이자(Iza Ding)가 최근 <아이디어스 레터>(Ideas Letter)에 기고한 ‘중국 소프트파워의 씩 웃는 도전’(grinning defiance of Chinese soft power)에서 지적하듯, 이런 현상은 중국이 중국공산당(CPC)의 통제 아래 있기 때문에 소프트파워를 만들어낼 수 없다는 자유주의적 통념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물론 이런 중국 열풍을 베이징이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다. 공식 중국 역시 차이나맥싱 현상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3월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발전포럼 연단에서 이 표현이 여러 차례 언급되는 것을 들었다. 하지만 하지만 액센트 소사이어티 패널 토론에서는 현재의 유행이 선전 목적으로 능숙하게 활용될 것이라는 데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존재했다. 1950년대 CIA와 추상표현주의 지원 전략에 견줄 만한 문화적 거대전략가들이 베이징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생각은 지나치게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현재의 차이나맥싱 순간은 강렬하지만 전례 없는 현상은 아니다.
내가 떠올린 것은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에 전 세계적으로 나타났던 마오주의와 문화대혁명에 대한 열광의 순간이었다. “마오맥싱(Mao-maxxing)”은 현재의 소셜미디어 열풍보다 훨씬 더 극적인 정치적 함의를 가지고 있었다.

그 뒤에는 재키 찬(Jackie Chan) 같은 세계적인 스타들이 상징했던 홍콩 쿵푸 열풍의 시대가 있었다.
동아시아 발전주의는 오래전부터 서구에서 많은 찬사를 받아왔다. 오늘날의 기술관료적 치나맥서들(China-Maxxers) 역시 중국이 일본·한국·대만이 걸어갔던 길을 따라가고 있다는 점을 자주 이야기한다.
라부부(Labubu) 인형 열풍으로 폭발적으로 드러난 ‘귀여움’ 역시 일본과 한국의 선례들에 의해 미리 예고된 것이었다.
따라서 오늘날의 차이나맥싱 유행은 단지 중국의 새로운 경제력과 국력만으로 움직이는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 경제·정치·문화 발전이라는 더 넓은 맥락에 의해 과잉결정(overdetermined)되고 있다.
댄 왕이 강하게 주장했던 관점은,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왜 차이나맥싱이 하나의 “현상”이 되었는지가 아니라, 중국의 눈부신 발전을 고려할 때 왜 그것이 훨씬 더 극적이지 않은가라는 점이라는 것이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베이징이 자유로운 문화 활동을 억압한 결과, 중국의 문화 수출은 축소되고 단순화되었으며, 이는 전체적인 영향력을 약화한다. 더 자유로운 중국이었다면 훨씬 더 큰 영향력을 가졌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만약 카이저 궈(Kaiser Kuo)의 흥미로운 예측처럼 중국이 “진정한 문화 르네상스의 문턱”에 서 있다면 어떤 가능성이 펼쳐질지를 상상해보라.
물론 이런 질문들은 어디까지나 가정적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불균등·결합 발전의 다극 세계에서 우리가 어느 정도의 횡단적이고 교차적인 영향력을 기대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일본은 발전의 대성공 사례였지만, 유럽과 미국에 미친 영향력은 존재하되 결코 패권적이지는 않았다. 브라질은 거대한 중진국이다. 인도는 거대한 개발도상국이다. 두 경우 모두 문화적 교류는 비교적 자유롭게 이루어진다. 하지만 유럽이나 미국 문화 속에서, 더 나아가 다른 신흥국이나 개발도상국들 속에서 이들의 존재감은 특정 분야에 제한되어 있다. 음식, 축구, 그리고 특정 노동시장 부문들(예컨대 미국으로 이주한 인도계 기술노동자들)이 그런 사례다.
우리는 이런 부분적이고 부문별인 상호작용을 어떤 기준과 비교하고 있는가? 이것은 다시 한 번 194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미국이 보여준 압도적인 문화·기술·정치·지정학적 영향력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특수한 것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인가? 점점 더 다중심화(polycentric)되는 세계에서, 우리는 거시경제·지정학·대중매체·문화·정치적 힘들이 그렇게까지 강하게 수렴하는 상황을 다시 상상할 수 있기나 한가? 우리는 패권 너머에서 작동하는 소프트파워를 어떻게 다시 상상해야 하는가?
[출처] Chartbook 446 Soft power with Chinese characteristics? Notes on Chinamaxxing.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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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투즈(Adam Tooze)는 컬럼비아대학 교수이며 경제, 지정학 및 역사에 관한 차트북을 발행하고 있다. ⟪붕괴(Crashed)⟫, ⟪대격변(The Deluge)⟫, ⟪셧다운(Shutdown)⟫의 저자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