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정운]

단편선, 권나무를 듣다

 

초봄이었고, 바람이 싸늘했다. 한낮 내내 서천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밤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 아주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만나게 된 남자는 조금 지쳐 보였다. 새 앨범을 발매하기 직전이라 뮤직비디오를 찍으러 또 다음 날 이른 아침 제주도로 출발해야 한다는 그 남자는, 하지만 질문 하나하나 빠뜨리지 않고 곧고 바르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답했다. 아마 겨우 두 시간쯤 눈을 붙이고 공항으로 떠났으리라. 세월호 사건에 대해 노래한 이천십사년사월로 최근 열린 제13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포크 노래 부문을 수상한 음악가이자 교사인, 권나무를 만났다.


단편선          이천십사년사월이란 노래는 세월호 사건에 관련된 노래다. 권나무 씨는 현재 교사이기도 한데, 혹시 정치적인 부담을 느끼진 않았나.

권나무         전혀 느끼지 않았다. 만약 불이익을 받는다면 내가 교사를 할 이유가 없다. 내 마음과 감정을 노래한 것이 정치적이라면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이 다 정치적인 것 아니겠는가? 물론 그렇게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건 내 상식과 맞지 않다.

단편선          원래는 인터넷에 자유롭게 공개된 음원이었다.

권나무          세월호 사건이 있고 몇 달 후에 노래를 만들었다. 당시에 수많은 음악가가 거리로 나와 노래하기도 했는데, 당시에는 그 광경마저 나를 더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노래를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세월호와 관련된 공연도 다 못 하겠다고 얘기했는데, 앨범에 노래를 수록하자는 제안이 왔을 때 ‘그래, 이것은 마음에 대한 기록이니까’라는 생각에 음원을 드렸다. 하지만 이후에도 앨범 발매 공연 등에 참여하지 못했다. 다른 일 때문에 갈 수도 없었지만, <이천십사년사월>이란 노래를 무대에서 부를 준비가 되질 않았다.

단편선         나는 사회 운동적 성격이 강한 이벤트에 종종 참여하는 편이다. 그런데도 세월호 때는 아무것도 못 하겠더라.

권나무          무기력한데 어떻게 노래를 부르나. 나는 나에게 솔직하고 싶었던 거다. 나는 그 노래에 당위를 담지 않았다. 그래서 세월호 노래를 부른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지도 않다. 한국대중음악상에서 노래의 정치적인 의미에만 집중해 상을 준 것이라 생각지 않는다. 의미가 모든 것을 덮어 버리면 그건 음악이 아니라 정치다. 심사위원들이 정치적인 활동 혹은 음악적인 개인이 답이라는 식으로 한쪽으로만 치우쳐 있는 사람들이었다면 이 노래를 뽑지 않았을 것이다.

단편선          주위에는 행동하는 사람도 있고, 한편으론 자신의 자리에서 좋은 개인으로서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이들이 서로 존중하며 살아가는 게 좋은 방향이라 생각한다.

권나무         나는 중립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것은 어떤 반항심은 아니다. 나는 학교 현장의 부조리에 대해 한참을 떠들어 댈 수 있지만 아이들에게 내가 느낀 것을 모두 이야기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어른을 공경하는 법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어른다운 어른을 존중하는 것도 일단 존중하고 존중받을 줄을 알아야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존중받을 수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사람이지 폄하하는 사람이 아니다.

단편선         교사라는 직업을 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권나무          사춘기를 지나면서부터 인간관계를 맺기 힘들었다. 부모님의 영향이 컸겠지만 어릴 때부터 내가 편안함을 느꼈던 곳이 학교였다. 교사는 학생과 공식적으로 서로 존중하는 상태에서 관계를 맺지 않나. 그 상호 작용이 나를 안정시키고 더 용기를 낼 수 있게 하는 것 같다.

단편선          JTBC를 통해 보도되기도 했지만, 권나무 씨는 교사로서 ‘책상화 그리기 대회’를 열기도 하고, 지속적으로 글을 쓰게도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해 왔다. 교사로서의 태도가 음악가로서의 태도와 맞닿는 부분이 있다 생각했다.

권나무          갭이 별로 없다. 음악가로서든 교사로서든 내가 인간적으로 사람을 만난다는 점에서 같다. 책상화 그리기 대회는 단순히 ‘책상에 낙서를 허하라’는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미술 시간에 은수(학생)가 도화지에 그림 그리는 것을 힘들어해서 좀 쉬었다 하라고 했더니 도화지를 내려놓고 책상에 갈대를 그렸다. 그게 훨씬 좋았다. 그래서 그 다음 주에 책상화 그리기 대회를 진행했다. 작품 심사를 위해 전교생을 불러서 투표를 하는 등 엄격하고 진지하게 했다. 교사는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서로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니까 가만히 있자’ 이러면 안 된다. ‘못 하면 알려 주마’ 하고 알려 주는 게 교사다. 교사는 깃발을 꽂아야 한다. 그래서 내가 지금 어떤 깃발을 꽂으려는지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단편선         음악에서도 그런가.

권나무         2집에서는 깃발을 조금 더 올렸다. 1집 그림에 실린 곡들은 내가 20대 초반에 만든 노래들이라, 앨범 자체는 그때의 감정과 거리를 두고 관조적으로 만들었다.

단편선          요새 한국에서 나오는 포크 음악들에선 관조미나 거리감 같은 것을 찾기 어렵다. 에고만 존재한다.

권나무          나도 그런 것에 질린다. 한병철 씨는 투명사회에서 관계에서의 거리감 부재 때문에 인간들이 더욱 공허해진다고 했다. 요새는 SNS도 그렇고, 거리가 부재해 마치 서로가 투명해지는 듯하다. 그러면 시간이 지나고, 과연 인간이 무엇을 그리워할 수 있을까? 나도 한때는 거리가 없는 것이 아름답다 믿었지만, 1집을 만들면서는 휘둘리는 감정에서 조금은 벗어나 내 자신이 자유롭게, 용기를 내서 살고 싶다 생각했다.

단편선          1집 이후로 시간이 흘렀고, 그 사이에 우리는 서른 살을 지났다.

권나무          1집을 만들기 전에는 감정적인 자신이 싫어서 이성적이고자 했는데, 교직 생활을 시작하고,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서 또 완전히 바뀌었다. 사람은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그걸 못 하는 사람이었다. 세상에는 중립 지대가 없고, 사랑에도 중립 지대는 없다. 균형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2집에는 그런 마음이 더 담겨 있다.

단편선         음악가로서 어떤 사람으로 남고 싶은가.

권나무          음악가로서는 딱히 없다. 멋진 어른으로 살다가 잘 죽어야지. 가르칠 만큼 가르치다 못 하겠다 싶으면 교사도 관두고, 할 이야기가 없으면 음악도 관둬야지. 내 유일한 소원은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다. 덧붙여, 출근하면 아이들이 나를 반겨 주고 일터의 동료들과도 잘 지내고 음악도 꾸준히 하면서 홀대 안 당하고 그러면 되는 것이지.

단편선          마지막으로,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해 줬으면 한다.

권나무          목수든 교사든 나는 진짜 자신의 일을 잘하는 사람을 믿는다. 일의 본질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 중에선 사기꾼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나는 일 잘하는 사람을 믿는다. 반작용으로 일을 하는 게 싫다. 정성을 다해 뭔가를 만들고 거기에 대해 책임지는 게 일이다. 되는 대로 해? 이러면 일이 아니다. 이렇게 얘기하니 음악은 내겐 정말 너무나도 일이다.


단편선   사이키델릭 포크록 밴드 ‘단편선과 선원들’의 보컬이자 프로듀서다. 포크 음악의 전형을 파괴하며 늘 새로운 사운드를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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