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무식자들]

한국을 대표하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이자 공황론 전문가인 김성구 한신대 교수의 도움을 받아, 우리가 내리막길에서 마주하는 아주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문제들이 어떤 맥락 위에 놓여 있는 것인지를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관점에서 살펴보려 한다. 경제 유식자가 들으면 화끈거릴 만큼 초보적이고 유치한 질문들을 낯 두꺼운 어린 양이 되어 뻔뻔하게 해 볼 생각이다.


대담 김성구, 경제 무식자 1, 2
정리 경제 무식자 3
사진 정운

[지난 이야기]

“생산력이 진보하고 기계화가 점차 진행되면서 생산 과정에서 노동력이 계속 축출된다는 게 마르크스의 기본 축적 법칙이에요. 결국 사회에 상대적 과잉 인구가 계속 쌓여 나간다는 것이죠. 자본가 계급에게 노동력이라는 건 이윤 착취의 원천인데 생산 과정에서 노동력을 계속 축출해 나가면 이윤율이 경향적으로 저하됩니다. 자본 축적은 자본가 계급의 미래도 암울하게 만드는 거죠. 기술 진보로 인해 공장뿐 아니라 사무 노동에서도 자동화가 이루어지죠. 마르크스의 축적 법칙을 보면 자본가의 미래도 없고, 노동의 미래도 없어요. 이윤율은 저하하고 산업 예비군이 누적되고 구조화되니까요.

마르크스는 ‘이런 모순적이고 위기적인 발전 때문에 자본주의가 결국 그 체제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이런 결과를 가져오는 생산관계, 소유관계를 전복해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예측을 했던 거죠. 물론 아직 자본주의적 해결책이 소진됐다고 얘기할 순 없어요. 자본주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대안 수단이 남아 있는 건 사실이지만, 위기가 계속 심화되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에요.

위기 과정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본의 소유관계를 전복해야 해요. 재벌들을 사회화 형태로 전환해야 한다는 얘기죠. 그 위에서 국가를 통해 분배를 개선한다는 겁니다. 시장 경제의 분배 조건을 개선하는 게 아니라 시장의 기제를 국가가 대체하는 거예요. 이렇게 재벌들의 경제적 토대를 사회주의적인 형태로 전환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죠.”


근데 저도 노동자인가요?

경제 무식자          선생님, 예전에 비하면 사람들이 일하는 형태나 직종이 훨씬 다양해졌잖아요. 그래서 큰 공장에서 일하는 생산직 노동자를 제외하고는 자기가 노동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혹시 마르크스의 분석틀이 이미 낡은 건 아닐까요?

김성구          그동안 노동자들 내에서 계급 구성에 변화가 있었지만,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은 여전히 유효해요. 마르크스주의 이론에서도 노동자 계급의 구성 변화라든지 서비스 부분의 팽창, 이런 부분들을 다 분석하고 있어요. 사실 사무직 노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사무직이든 생산직이든 노동자로서 착취를 당하지만, 자본주의의 각종 지배 이데올로기가 일상적으로 작용하면서 착취 관계가 노동자들의 의식 속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는 거죠. 다만 생산직 노동자는 집단적으로 생산 과정에서 같이 작업을 하기 때문에 착취 관계가 보다 직접적으로 나타나고 그래서 착취에 대한 저항과 조직력, 임금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이 사무직 노동자들보다 더 강합니다. 사무직 노동자들은 태반이 ‘내가 노동자인가’ 이런 생각을 많이 하잖아요. 중산층이라고도 하고요. 실제로는 그게 이데올로기 효과 때문이에요. 그 사람들도 다 노동자죠.

경제 무식자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생각하든 그렇지 않든 모두 노동자라고 하면 노동자인지 아닌지 구분하는 기준, 원칙 같은 것이 있을까요?

김성구          노동자냐 아니냐를 가늠하는 절대적인 기준은 내가 자산 소득을 통해서 먹고살 수 있느냐예요. 불로 소득, 그러니까 이자 받고 이윤 배당받고 임대료 받고 이러면서 일 안 하고 평생을 먹고살 수 있는 사람들, 그리고 자본을 토대로 남을 고용해서 이윤을 영유하는 사람들, 이 사람들은 노동자 계급이 아니에요. 자산 계급이죠. 자기가 일부 자산 소득이 있느냐 없느냐는 중요한 게 아니에요. 노동자들도 일부 자산을 보유하지만 그건 부차적인 거죠. 그걸로 먹고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닌 대부분은 다 주소득이 노동 소득이잖아요. 대학 교수들도 대학에서 해고가 되면 먹고살 수 없어요. 그런데도 노동자라고 생각하는 교수는 별로 없어요. 학교에서 재단이 고용하지만 상당히 자유롭고 연구실에 자기 혼자 있고, 통제도 안 받고 그러니까 더 그렇거든요. 사무직 노동자와는

(근무 조건이) 또 다르죠. 그런데 자기가 대학 직장을 그만두고 먹고살 수 있느냐 생각해 보면 먹고살 길이 없거든요. 그럼 교수도 노동자죠. 노동자들마다 생산 조건, 근무 조건이 다르니까 사람들이 이걸 이해를 못 하는데 실제로 인구 대부분은 노동 인구예요.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해서만 먹고

살 수 있는 사람, 이 사람들이 노동자들이죠.

모두를 위한 경제학, 아 재벌은 빼고

경제 무식자          노동자들 아닌 자영업자나 소농들도 있잖아요. 이들이 노동자 중심의 사회로 변화시키는 데 같이하려고 할까요?

김성구          지금 사회주의가 당면한 문제는, 재벌의 독점 이윤 지배를 지양하는 문제예요. 여기에는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자영업자나 소농 심지어 중소 자본가들도 이해관계가 일치하죠. 왜냐면 독점 이윤의 지배 때문에 노동자들만 착취당하는 게 아니라 자영업자나 중소 하청 기업들도 수탈당하기 때문이에요. 이런 이해관계 때문에 노동자들의 반독점 사회화 요구에 이들도 함께할 수 있는 거죠. 독점 이윤의 지배를 지양하는 길은 재벌의 경제적 토대를 사회화시키는 거예요. 재벌들이 그룹 수준에서 생산과 투자를 전부 관리하잖아요. 이걸 국가 부분으로 넘기면 국가가 투자와 생산을 전부 관리하게 되죠. 더구나 재벌들의 독점 이윤 원리에 입각하지 않고 사회주의적 목표에 입각해 사회화된 재벌을 조절할 수 있어요. 판매와 가격 책정, 고용과 임금 결정, 노동 시간과 작업 조건 등 모든 게 재벌이 지배할 때와 달라집니다. 노동자, 자영업자, 소농, 하청 자본가, 일반 소비자들까지 재벌의 착취와 수탈에서 벗어나 경제적 생활 조건이 개선되지요. 우리가 과연 할 수 있을까요? 할 수 있습니다.

경제 무식자          사실 사람들이 재벌 체제를 인정하는 것은 재벌들이 회사를 가장 잘 운영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인 것 같아요. 삼성은 이건희, 현대차는 정몽구가 제일 잘할 거라는 생각이요.

김성구          그거야 말로 환상이에요. 최근 롯데의 형제 간 경영권 분쟁에서 보듯이 그냥 소유권 다툼일 뿐입니다. 특히나 한국 재벌은 세습으로 이루어져 있어 가장 비민주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어요. 바꿔서 생각해 보면 재벌도 하는데 국가가 못할 게 없는 거죠. 지금 그룹 총수가 이 모든 걸 다 하나요? 그렇지 않아요. 이미 기업 내에서나 재벌 내에서 운영과 관리가 상당히 사회화돼 있는 상태입니다. 누가 들어가도 다 할 수 있어요. 물론 능력은 필요하지만. 워크아웃이나 기업 회생 절차에서 채권단이나 법정 관리인이 그런 일을 다 맡거든요.

다만 그걸 사회화시킨다는 건 정치적 권력의 문제예요. 사회주의운동은 사회화를 지향하면서 사람들한테 정치적인 힘을 동원하는 거거든요. 재벌의 사회화와 경제 정책의 전환이 사람들의 이해관계와 맞닿아 있다, 대중의 삶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 이런 사실을 설득하면서 정치적인 확산을 도모하는 거예요.

헬조선을 탈출하는 방법

경제 무식자          그러니까 재벌을 사회화하는 방향으로 경제 정책을 바꾸는 것이 노동자나 자영업자, 소농 모두한테 더 이익이라는 걸 이해시키고 설득해야 한다는 말씀이네요.

김성구          청년들, 비정규직 노동자들, 자영업자들 모두 헬조선이다, 이 나라에서 죽네 사네 하는데, 이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길은 한 가지밖에 없어요. 우리나라에서 독점 재벌과 대자산 계급을 잡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요. 하청 기업 노동자들의 열악한 임금 조건은 재벌 대기업들하고 하청 기업들 간의 수탈 관계를 청산하지 않으면 개선할 수 있는 길이 없어요. 그렇지 않으면 규제라도 강화해야 합니다. 예컨대 대기업들이 높은 수탈 이윤을 얻지 못하도록 하청 계약 등에 국가가 법령을 통해 개입해서 하청 기업 노동자들 임금을 높여 주게 한다든지 해야죠. 그럼에도 중소기업이 정말 지불 능력이 없으면 국가가 중소기업 노동자들한테 임금 보조금을 지급할 수도 있어요. 대기업들, 자산 계급, 대기업에 고용된 고액 노동자들에게 높은 세금을 부과해서 그 세금으로 하청 노동자들 임금을 보전하고 각종 사회 보장을 할 수 있죠. 이렇게 해야지만 비정규직 노동자, 하청 노동자가 살 수 있어요. 다른 길은 없는 거죠.

자영업자들도 마찬가지예요. 그 취약한 경쟁 조건을 보호하고 지원해 주려면 우리나라 재벌 대기업들과 대자산 소유자들을 잡아야 해요. 골목 상권 보호나 임대차 규제, 임대료 인하, 이런 것들을 요구하잖아요. 모두 재벌과 부동산 소유자를 규제하는 문제죠. 자영업자들에 대한 사회 보장도 강화해야 돼요.

그밖에는 우리나라가 헬조선에서 탈출할 수 있는 길이 없어요. 나머지는 다 부수적인 것들이에요. 그런데 이른바 사회적 경제는 이런 걸 안 건드리겠다는 거거든요. 이런 걸 안 건드리고, 사회적 경제의 생존 조건이나 임금 조건을 개선할 수 있느냐. 절대로 개선 못 해요.

경제 무식자          민주당도 재벌 규제가 필요하다고 하고 규제를 하겠다고 하는데 그 정도 개혁으론 안 되는 건가요?

김성구          민주당이나 정의당 할 것 없이 그런 개혁에는 재벌의 지배 체제는 수용한다는 게 전제돼 있어요. 시민 단체들이 하는 주장도 마찬가지죠. 장하준의 복지 국가론도 마찬가지구요. 그 사람들이 서로 논쟁하는 것 같지만 공동의 합의점이 있어요. 재벌 지배 체제를 용인해 주는 거죠. 그 위에서 부분적으로 재벌들의 권력을 제한하는 것이죠. 시민 단체들은 기본적으로 소자본적 관점에서 소액 주주 주장을 하는 거고, 장하준 씨 같은 경우는 노동자들과의 분배 관계를 개선하는 측면에 초점을 맞춰서 그런 주장을 하는 거죠. 재벌들의 권력을 제한하고 이윤을 통제하자는 주장을 시민운동은 소자본 관점, 장하준은 계급 타협적 관점에서 제기하는 거예요.

이런 시민운동이라든지 소자본가적인 운동으로 재벌을 개혁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런 걸로는 대중의 생활 개선을 기대할 수 없어요. 획기적인 반재벌 정책으로의 전환이 없으면 안 되기 때문에, 결국 좌파 정당들이 사회화 운동을 통해 할 수밖에 없는 거죠. 그래야 사무직, 생산직 노동자와 자영업자의 이익을 다 대변할 수 있어요. 이런 이해관계의 대립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또는 알고 있더라도 조직력과 힘이 없어서 못 하는 것뿐이죠.

경제 무식자          그럼 소액 주주 운동1 같은 것도 의미가 없는 건가요?

김성구          주식회사라는 게 사회적인 소유 형태인데 주식 지분에 대한 소유는 개인적이고 사적이에요. 사회화이긴 하지만 불완전한 사회화죠. 소주주들은 그냥 자본가예요. 소주주들의 운동이 사회주의운동일 수가 없어요. 사회주의로 가기 위한 과도기적 운동이라고 할 수가 없어요. 소액 주주들의 운동은 대자본가에 대한 소자본가들의 운동으로서 자신들의 지분에 대한 권리, 또는 자기의 지분 가치를 높이기 위해 하는 운동이라 독점과 대자본에 대한 저항이라 해도 노동자나 자영업자의 반독점과는 성격이 전혀 다른 겁니다. 자산 계급 운동이죠. 주식회사라는 것 자체가 사회화라는 과도기 형태지만 불완전한 거죠. 그렇지만 1930년대 이후에는 국가 소유, 국가 계획이라는 점차 강력한 사회주의적 형태가 나타나요. 지난 호에 말한 것처럼 이행이라는 게 현실화될 수 있는 경제적 토대죠.


[ 오늘의 경제 무식자 공부 요약 ]

공장 아니고 사무실에서 정신 노동하는 나도 노동자인가?

불로 소득(자산 소득)으로만 먹고살 수 있는 거 아니고,

자기 노동력을 팔아야 먹고살 수 있으면 다 노동자.

사회주의는 노동자가 주체라던데, 자영업자나 농민은 사회주의적 사회로의 변화에 참여 못 하나?

자영업자나 농민도 재벌의 독점 이윤 지배에 착취당하기 때문에 이들도 반독점 사회화 요구에 함께할 수밖에 없음.

이재용이나 정몽구가 경영을 잘하고 있는데 굳이 국가가 재벌을 사회화할 필요가 있을까?

기업 내 운영과 관리는 이미 상당 부분 사회화돼 있음.

걔들 없어도(없으면 더?) 잘 굴러감.

재벌 규제 강화 정도로는 부족한가?

우리 생활 수준 개선 위해선 획기적인 반재벌 정책 필요.

좌파 정당들의 사회화 운동으로 할 수밖에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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