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혜
청소년 활동가로 살다가 스무 살을 맞았다. 청년초록네트워크, 청년좌파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어린이의 삶

어린이날이 돌아왔다. 어린이날에 대한 특별한 기억은 없다. 부모님과 간간이 천문대나 동물원으로 견학을 다녀왔던 기억 정도다. 견학은 나의 욕망보다는 부모님의 욕망에 근거하고 있었다. 몇 년이 지나고 나는 더 이상 견학을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어린이날마다 늦잠을 늘어지게 자고, 종일 컴퓨터를 하거나 TV를 보며 방탕하게 지냈다.

구글에 ‘어린이’로 이미지 검색을 하면 어린아이들이 무리 지어 있는 모습이나 웃고 있는 모습, 발랄한 모습들이 보인다. 어린이는 사랑스럽고 밝고 순진한 존재로 여겨진다. 나의 어릴 적 앨범에 담긴 사진들도 대부분 그렇다. 미술 학원에서 페이스 페인팅을 하는 모습, 수영장에 간 모습, 과학관에서 우주 비행사 모형과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 유치원 졸업 때 찍었던 졸업 사진….

사진에 남은 모습들과는 다르게, 내가 기억하는 나의 어린 시절은 조금 더 우울하고 침침하다. 나는 그 무렵부터 부조화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다른 아이들보다 말이나 행동이 느렸고, 또래들의 이야기를 따라가지 못했다. 무엇보다 나는 내가 그토록 탐내던 생일 파티 드레스가 나한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슬퍼했다. 낡은 앨범 속 사진들에는 모두 삭제된 모습이다.

작년 어린이날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순영 시인의 〈학원 가기 싫은 날〉이라는 시가 논란을  일으킨 날이었다.

 

학원에 가고 싶지 않을 땐

이렇게

엄마를 씹어 먹어

삶아 먹고 구워 먹어

눈깔을 파먹어

…(중략)…

심장은 맨 마지막에 먹어

가장 고통스럽게

— 이순영, 〈학원 가기 싫은 날>

 

이 시를 본 많은 이들은 섬뜩한 글과 그림에 경악했으며, ‘잔혹 동시’를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글이 경악을 부르는 이유는 ‘어린 나이’에 ‘가정의 위계’를 파괴하는 서술을 했다는 점일 것이다. 어린 나이는 사랑스럽고 밝고 순진해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낡은 앨범 속 어린 나의 진짜 모습이 삭제되어 있듯.

 

정말 잔혹한 것은 이 시의 뒤편에 깔린 배경이다. 삶의 자율성을 잃은 채 학습 노동에 시달리길 요구받는 수많은 어린이의 삶이야말로 잔혹하지 않은가. 실제로 가정의 위계를 파괴하고 스스로 삶을 쟁취할 수 없을 어린이들의 삶은 결코 사랑스럽고 밝고 순진하지 않다.

 

보호와 보호주의의 사이에서

근대 이전, 어린이에게 ‘어린이성’은 성립되지 않았다. 어린이는 ‘작은 어른’이라 불리며, 14~15시간의 강제 노동을 동등하게 치렀다. 1920년 근대 공립학교 성립 이후, 사회 전반에 어린이성이 자리 잡았고, 어린이를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이 싹트기 시작했다.

조선의 소년 운동 역시 1920년대에 시작되었다. 1921년 전국적으로 14개의 소년 단체가 설립되었다. 어린이날의 창립자로 유명한 ‘소파 방정환’도 이 시기 활동가였다. 1922년 5월 1일에는 첫 번째 ‘어린이날’이 열렸다. 제1회 어린이날에는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라, 어린이에게 수면과 운동, 이발과 목욕 등을 때맞춰 시키라, 어린이를 사람답게 대하라 등의 사항이 담긴 전단이 배포되었다. 이 전단에는 어린이를 어른과 동등한 주체로 대해야 한다는 ‘주체성’에 대한 요구와 사회적 약자인 어린이가 일상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우라는 ‘보호’에 대한 요구가 담겨 있다.

1923년 5월 1일, 조선총독부가 개최한 아동위안회는 제1회 어린이날과 사뭇 다르다. 이 행사에는 400여 명의 복지 시설 수용 어린이가 동원되었으며, 동물원을 구경하고, 선물을 나누어 주는 등의 이벤트가 진행되었다. 아동위안회는 어린이의 인권에 대한 논의나 고민은 찾아볼 수 없으며, 어린이에게 시혜를 베푸는 것으로만 그 의미가 국한됐다. 이후 어린이날은 우량아 선발 대회, 반공 의식 고취의 장 등 어른들을 위한 어린이날로 물들었다.

오늘의 어린이날은 1922년의 어린이날보다는 1923년의 아동위안회와 가까워 보인다. 어린이는 ‘주체성’이 소거된 채 밝고 희망찬 존재로 상정되었다. 어린이날은 어른에게 시혜를 받거나 볼거리를 제공하는 용도로 국한되었다. 어린이에 대한 ‘보호’는 보호라는 명목으로 권리를 박탈하고 어린이에 대한 억압을 용인하는 ‘보호주의’로 변질했다. 우리는 1922년 어린이날의 그 어떤 것도 이뤄 내지 못했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은

1923년 5월에 개최된 어린이날의 표어는 다음과 같다.

① 어린이를 재래의 윤리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그들에 대한 완전한 인격적 예우를 허하게 하라. ② 어린이를 재래의 경제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만 14세 이하의 그들에 대한 무상 또는 유상의 노동을 폐하게 하라. ③ 어린이들이 고요히 배우고 즐거이 놀기에 족할 각양의 가정 또는 사회적 시설을 행하게 하라.

 

2016년, 어린이의 윤리적․경제적 압박으로부터의 해방은 이루어졌을까. 어린이에 대한 대부분의 강제 노동이 철폐되었으나, 어린이와 청소년에게는 여전히 살인적인 강도의 학습 노동이 주어진다. 어린이와 청소년은 삶의 자율성을 박탈당한 채, 가정과 학교에서 자본의 요구를 학습한다. 오늘날 어린이와 청소년은 가부장제의 압박과 자본주의의 압박을 동시에 겪고 있다. 오늘은 어린이날이다. 우리들 세상은 어떠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