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생탁 막걸리 – 한남택시

박다솔 기자 / 사진 정운


이달 개봉한 영화 <깨어난 침묵>(박배일)은 감독이 “욱해서” 만든 영화다. 2014년 여름, 박배일 감독은 파업 중인 노동자 이야기를 듣게 됐다. 부산에서 가장 잘 팔리는 생탁 막걸리를 만들던 노동자 이야기였다. 뉴스에도 안 나오고, 미디어 활동가들도 나서지 않는 이야기. 직접 만나 파업 배경을 들으니 가관이었다. 회사 사장만 41명인 곳, 노동 착취와 인격 모독, 열악한 작업 환경에서 파업은 더는 참을 수 없어 지른 비명이었다. 박 감독은 직접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생탁 노동자들은 직접 카메라를 잡고 파업 과정을 기록하고 있었다. 이들이 찍은 영상도 영화에 담겼다. 거의 2년 정도 흘러 영화가 완성됐다. 영화를 네 번 봤다는 생탁 노동자는 볼 때마다 울화통이 치민다고 했다. 영화 속 상황에서 하나도 변한 게 없기 때문이다.

 

253일의 고공 농성 종료 후 흘러간 5개월

심정보(53)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한남교통분회 쟁의부장과 송복남(55) 생탁노조 총무는 지난해 4월 16일 부산시청 앞 광고탑 위에 올라갔다. 부산에서 각자 싸움을 하고 있던 노동자 두 명은 마지막 수단으로 고공 농성을 택했다. 서로 속한 노조도 달랐지만 그동안 연대를 하며 얼굴 보길 수차례. 심정보 부장의 제안으로 함께 광고탑에 오르게 됐다. 이들은 복수 노조 인정, 생탁 파업 사태 해결, 택시 사납금 폐지 등을 요구했다. 그사이 이들을 응원하는 희망버스가 한 번 다녀갔고, 계절은 세 번이 바뀌었다. 택시지부의 경우 지난해 11월, 농성 중단을 조건으로 노조 사무실 보장 등 합의를 봤지만 생탁은 사측과 협상이 진전되지 않았다. 한 사람의 합의만으로 내려올 수 없어 기약 없는 고공 농성이 계속됐다.

그들이 고공 농성을 종료한 건, 직접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부산시장의 약속 때문이었다. 12월 24일 서병수 부산시장이 직접 찾아와 구두 약속을 한 덕분에 이들은 253일 만에 다시 땅을 밟았다. 스포트라이트는 서 시장이 다 받았다. 서 시장과 두 노동자가 함께 찍은 사진이 언론을 통해 곧바로 퍼졌다. “시장님 오늘 고맙습니다. 시장님이 협상 테이블에 이렇게 신경을 쓰시니 마음 놓아도 되는 거겠죠?” 등 시민들은 문제가 해결됐다며 좋아했다.

고공 농성을 해제한 지 5개월이 지났다. 부산시가 마련한 민관 협의체는 이견으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사이 생탁 파업은 2년을 훌쩍 넘겼다. 부산시는 “공식적, 비공식적 창구를 통해 계속 회의를 하고 있다. (논의가) 안 된다는 이야기는 단정하기 힘들다”면서 왜 진전이 안 되는지 밝히기를 꺼렸다. 가장 큰 걸림돌은 단체 협약의 60세 정년 조항이다. 송복남 총무는 꼼수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전원 복직을 요구하지만, 사측은 파업하는 동안 60세가 넘은 노동자는 받아 줄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사측이 필요한 인원은 60세가 넘어도 ‘반장’ 등 직급을 주며 해고하지 않는다.”

 

생탁 막걸리, 소비자한테도 노동자한테도 참 나빴다

생탁 막걸리를 생산하는 ‘부산합동양조’는 사장이 41명인 합자 회사다. 1970년대 박정희 정부 시절, 지역 양조장을 하나로 통합하면서 부산 양조장 40여 개가 하나가 됐다. 그때부터 사장들은 수입을 n분의 1로 나눠 가진다. 40여 명이 나눠 먹는 회사 이익, 더 많이 가져가기 위해 노동자를 쥐어짰다. 생탁 막걸리를 만드는 120여 명의 노동자들은 2014년 노조가 생기기 전까지 연차 휴가, 연차 수당을 모르고 살았다. 한 달에 한 번 쉬고, 새벽 4시에 나와 일을 해도 수당을 못 받았다. 휴일 업무 강도는 월요일 배송 때문에 평일보다 더 셌지만 휴일 점심은 삶은 고구마나 달걀로 때웠다. 그렇게 축적된 연간 매출 200억에서 41명의 사장은 각자 한 달 2300만 원씩 챙겼다. 단순하게 곱하면 연 110여억 원의 돈이다. 노동자들은 여성이 130만 원, 남성이 220만 원을 받았다. 그마저도 정규직이 아닌 3분의 2가 ‘촉탁직’이었다. 2013년 우연히 발견한 사규집엔 처음 보는 노동자의 권리가 가득했다. 배송 기사 송복남 총무는 뒤늦게 노동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민주노총을 찾았고 2014년 4월 29일 파업을 시작했다.

회사는 요지부동이었다. 조합원 8명의 평균 나이는 60을 훌쩍 넘었다. 송복남 총무는 총대를 메고 고공 농성을 결심했다. “저 늙은 육십 넘은 노동자들이 말 그대로 한평생 돌아가실 때까지 패배감만 갖고 살아갈 거 아닙니까. 극단적인 방법밖에 없었어요. 투신하든지, 단식하든지, 고공 농성 하든지. 뭐 노동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건 뻔하거든요.”

 

나는 부산의 택시 노동자

심정보 한남교통분회 쟁의부장은 광고탑에 오르며 사납금 폐지와 노조 활동 보장을 요구했다. 일종의 렌트 비용인 ‘사납금’은 법인 택시 노동자들에게 족쇄로 통한다. 보통 10~15만 원 정도인 사납금을 내면 남는 게 없다는 게 택시 노동자의 주장이다.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택시 노동자의 하루가 재연된 적이 있다. 멤버들은 사납금을 맞추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그 금액을 채우는 건 무모한 도전처럼 그려진다. 하지만 ‘사납금’은 그 자체가 불법. 월급제인 전액관리제를 시행하도록 법에 명시돼 있지만 이를 지키는 택시 사업장은 거의 없고 정부마저 방치하고 있다. 올해 10월 1일부터 광역시를 중심으로 전액관리제를 시행한다고 하지만 이마저도 연기될 수 있다는 소문이 들려 노동자들은 불안하다.

회사엔 어용 노조가 있어 사납금 폐지를 요구해도 회사는 소수 노조란 이유로 이들의 주장을 무시했다. 노조 사무실도 제공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가 노조를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 ‘공정 대표 의무’ 위반 판정을 내렸지만 시정되지 않았다.

현재 심정보 부장은 복직 상태지만 실질적인 일은 못 하고 있다. 지난해 고공 농성장에서 내려오면서 몸을 회복하는 2개월 휴직 기간에 ‘정직’ 등의 징계를 받기로 했다. 하지만 회사는 배차를 차일피일 미뤘다. 지난 5월 17일 징계위원회에선 심 부장의 징계 사유를 ‘350일간 무단 이탈’로 규정했다. 심 부장을 대신해 회사와 교섭했던 관계자는 “회사가 억지 이유를 들어 사실상 해고하겠다는 의도를 내비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는 30일 2차 징계위원회가 열린다. 심 부장은 “회사에서 하기로 약속한 것 중 지켜진 게 없다”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송복남, 심정보 두 노동자는 법을 지키는 싸움을 했다. 회사에 부당 노동 행위를 그만두고, 법이 정하는 바를 지키라고 요구했다. 송 총무는 “노동 3권을 어기고 법을 어기는 건 회사인데 왜 우리가 2년 넘게 아스팔트 위에서 싸워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심 부장은 “철저하게 법이 지켜졌으면 한다. 법을 지키라는 싸움을 하는 게 서글프다”고 했다. 고공 농성으로도 풀리지 않는 문제를 이제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노동자는 말한다.

 

(워커스12호 2016.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