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훈 기자 / 사진 김용욱


 

“나도 언젠가는 채식을 할 거야. 그 전까지는 고기를 잔뜩 먹고 한 서른 살부터 시작하려고.” 채식을 하는 한 후배는 20대 때 내게 곧잘 채식을 권하곤 했다. 당시는 우리가 《육식의 종말》 같은 책을 읽기도 했고 갖은 생태주의 텍스트들을 공부할 때이기도 해서 나는 ‘언젠가’라는 단서를 붙여 채식으로의 전향을 과감히(!) 선언했다. 그 ‘언젠가’가 도무지 올 것 같지 않은 나이인 서른 살이었던 건 일종의 꼼수였다. 그러나 올 것 같지 않던 서른 살이 넘은 지도 몇 해가 지난 지금까지 난 고기를 먹는다. 가끔 그 후배가 “이제는 채식을 시작할 때”라며 딴죽을 걸어 오지만 그때마다 그럴싸한 핑계를 대며 전향을 연기해 왔다. ‘베지테리언’ 대신 ‘돼지테리언’이란 농담을 주고받으며 낄낄거렸지만 사실 채식으로의 전향은 지금껏 일종의 부채감으로 마음에 자리 잡고 있다. 글로 읽은 이런저런 이야기들, 그러니까 공장식 축산 이야기, 식용 동물들을 키우면서 망가지는 생태계에 관한 이야기, 과도한 육식 섭취로 망가지는 건강에 대한 이야기 같은 것들은 계속 채식으로의 전향을 지시했다. 그러나 남의 살을 뜯어먹는 즐거움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다. 주말 저녁 삽겹살과 소주는 평화고 맥주잔 앞에 강림하신 ‘치느님’의 은혜는 사랑인데. 기획 회의에서 채식을 해 보자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어쩌면 이 부채감을 해소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1일 차 – 이제 김치는 못 먹는구나

채식에도 단계가 있다. 유제품과 동물의 알, 생선은 먹는 ‘페스코’, 생선은 먹지 않지만 유제품과 동물의 알은 먹는 ‘락토오보’, 모든 동물성 음식을 먹지 않을뿐더러 동물 실험을 통한 화장품이나 가죽 제품 등도 사용하지 않는 ‘비건’, 씨앗과 뿌리채소조차 먹지 않고 오직 땅에 떨어진 열매만을 먹는 ‘플루테리언’도 있다. 플루테리언은 감자와 시금치도 먹지 않는다.

나는 일주일간 ‘비건’으로 살기로 했다. 엄격함으로 채식을 체험하는 것보다는 채식주의자의 ‘삶’을 살아 보는 것이 목적에 더 부합하다고 여겼다. 설명한 것처럼 비건은 식생활뿐만 아니라 생활용품 사용에서도 동물을 학대하고 생명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모든 과정을 배제한다. 채식을 하기로 마음을 먹은 날 가장 먼저 한 일은 지니고 다니던 가죽 제품을 모두 내려놓는 일이었다. 허리띠와 지갑을 서랍 속에 넣었다. 그나마 신발이 ‘레자(인조 가죽)’인 게 다행이었다. 화장실로 가 스킨과 로션, 샴푸와 린스도 체크했다. 샴푸 말고는 모두 동물 실험을 하는 회사의 제품이다. 비누마저도. 일주일 동안 세수는 하지 말고 머리만 감아야 하는 걸까.

화장실에서 샴푸 통을 잡고 끙끙거리다 식사 시간이 됐다. 어머니에게는 이번 주 내내 채식을 해야 하니 일주일간 고기반찬은 내지 말아 달라고 미리 부탁했다. 그래서 마주한 메뉴는 된장찌개와 김치와 조미 김. 어머니는 ‘완전한 채식 식단 아니냐?’는 뿌듯한 눈빛을 보내 왔지만 기대한 반응을 드리진 못했다. 김치엔 각종 젓갈이 들어가 있고 된장찌개에는 동물성 조미료가 들어 있다. 맨밥에 김을 싸서 먹는 동안 당장의 이 초라한 밥상보다 ‘앞으로 김치는 못 먹는구나’ 하는 생각이 가장 아찔했다.

 

2일 차 – 감자 튀김에 왜 치즈를 올리나

동물 실험을 하지 않는 화장품 회사의 리스트를 들고 비누와 목욕 용품을 사러 나섰다. 다행히 몇 해 전부터 동물 보호 단체들이 동물 실험 반대 운동을 벌여 오면서 국내 업체들도 동물 실험을 하지 않는 회사가 늘고 있다고 한다. 비누와 보디 클렌저를 하나씩 샀는데 4만 원이 나왔다. 쉐이빙 크림은 너무 비싸서 엄두도 못 냈다. 그동안 내가 살던 세계가 아니다.

점심을 먹으러 근처에 있는 채식 전문 식당을 찾았다. 분식집 떡볶이에도 어묵이 들어 있고 백반 집에 있는 모든 음식은 화학조미료가 주재료에 가깝다. 맨밥과 김을 먹은 전날 점심 이후 먹은 거라곤 방울토마토밖에 없었다. 제대로 된 ‘식사’가 필요했다. 조계사 인근에 사찰 음식 전문점이라는 곳을 들어갔다. 메뉴판에 있는 점심 세트 메뉴 가격은 1만 9,000원이다. 부가세 포함 가격인 게 그나마 다행이었을까. 두 명이 밥을 먹고 또 4만 원에 가까운 돈을 냈다. 하루 동안 한 일이라곤 비누를 사고 점심을 먹은 게 전부인데 차비까지 10만 원에 가까운 돈을 썼다. 심지어 배가 부르지도 않다. 싼 고기는 있지만 싼 풀은 없다는 말이 생각났다. 채식을 하는 게 더 소박한 삶일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지만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는 채식이 훨씬 비싼 삶이다. 특별한 결단, 큰 결의가 없으면 일상적 채식은 한국 사회에서 어려워 보인다.

알 수 없는 허탈함과 상실감에 시무룩해 있자 함께 있던 친구가 술을 산다고 했다. 그래, 술은 비건도 마실 수 있지. 근처 술집에 들어갔다. 소주와 과일 샐러드, 황도를 주문했다. (맥주는 일반적으로 제조 과정에서 생선 부레나 동물성 젤라틴 등이 사용된다고 한다. 채식주의자를 위한 맥주도 있지만 확인이 어려워 소주를 선택했다. 샐러드 안주에 소주라니.) 평소에는 시켜 본 적도 없는 메뉴들인데. 기본 안주로 제공하는 팝콘에 손을 대다가 친구의 제지로 급하게 손을 뗐다. “그거 버터로 튀기는 거야.”

안주를 기다리며 소주 두 잔을 연거푸 들이켰다. 안주라기보다는 식사를 기다리는 마음이었다. 기다리던 과일 샐러드와 황도가 나왔고 난 울상이 됐다. 친구는 박장대소했다. 샐러드에는 요거트가 뿌려져 있었다. 황도는 우유에 담겨 있었다. 황망함에 메뉴판을 다시 들여다봤다. 메뉴판에는 수십 가지 안주가 있었지만 내가 먹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감자 튀김 위에 왜 치즈를 뿌리냐고.

 

3일 차 – 공장식 축산 취재 도전

자의보다 타의에 가까운 채식 생활은 애초 예상보다 훨씬 힘겨웠다. 단지 삼겹살과 치킨만 안 먹으면 되는 일이 아니었다. 채식을 오랫동안 지속한 사람들은 이 생활을 어떻게 견디고 있는 건지, 이 고통스런 생활을 어떻게 이겨 내고 있는 건지 알고 싶었다. 그보다는 뭐라도 이유를 만들고 싶었다. 영화 <잡식 가족의 딜레마>를 만든 황윤 감독은 근래에 본 가장 유명한 채식주의자다. 황윤 감독은 구제역 살처분으로 돼지 수백만 마리가 죽어 나가는 과정을 보고 채식을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그녀가 만든 영화 <잡식 가족의 딜레마>는 감독의 가족이 공장식 축산이 빚어낸 참상을 목격하고 자연스럽게 채식 위주의 식생활을 하게 된 과정을 보여 준다.

공장식 축산의 폐해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항생제의 대부분은 병원이 아닌 축사에서 사용된다. 항생제를 먹고 자란 가축은 항생제에도 내성이 있는 병원균을 인간에게 전파한다. AI나 구제역이 대표적이다. 산란이 불가능한 수탉들은 병아리일 때 분쇄기를 통해 ‘폐기’된다. 공장식 축산을 가능하게 한 대규모 사육은 지구 생태계를 파괴하기도 한다. 가축이 내뿜는 메탄가스는 지구 온실 가스의 단일 원인 중 가장 큰 원인이다. 이런 이야기들은 책에서 숱하게 봤다. 책에서만 보던 공장식 축산의 폐해와 참상을 직접 목격하면 나도 마음에서 우러난 채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동물 보호 단체들에 문의 전화를 했다. “공장식 축산 현장을 직접 보고 싶은데 방법이 없을까요?” 단체들은 모두 현장 방문이 어렵다고 답했다. 대부분 축사들이 현장 공개를 꺼린다는 것이다. 방역을 이유로 들지만 최근 공장식 축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축사 모습이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리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직접 접촉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인터넷을 뒤져 양계장과 양돈 농가 전화번호 목록을 만들었다. 자체 웹 사이트를 갖지 않는 농장이 많아 구직 사이트를 뒤져야 했다. 일할 사람을 구하는 농장이 적지 않았다.

30여 군데의 농장에 직접 전화를 걸어 방문 취재를 문의했다. 취재 요청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양돈 산업의 불황 취재’라고 목적을 설명했지만 취재 요청을 받아들인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역시 대부분 방역 문제를 이유로 들었다.

 

4일 차 – “그래도 내가 우선 살아야지”

그냥 머리를 들이밀기로 했다. 용인에 있다는 한 양계장 주소를 손에 들고 무작정 찾아갔다. 전날 전화로 취재 요청을 한 곳 중 그나마 가장 호의적인 곳이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니 3시간이나 걸렸다. 택시 기사 아저씨는 진입로가 좁다며 양계장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내려 줬다. 좁은 길을 따라 양계장 입구로 걸어가는데 축사 구린내가 나기 시작했다. 비가 내려 냄새가 더 심해진 듯했다. 길을 따라가다 양계장에서 일하는 것 같은 이를 만났다. 명함을 건네고 취재를 왔다고 말했다. 사장님을 만날 수 있겠냐 물었더니 순순히 사무실로 안내해 준다. 사무실은 농장 입구 바로 근처에 있었고 양계장은 사무실에서도 더 깊숙이 들어가야 있는 것 같았다. 사장에게 명함을 주면서 취재 요청을 했다. 사장은 어제 받은 전화도 기억하고 있었다. “방역 문제가 있어서 관계자 아니면 양계장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3시간이나 걸려 온 길을 무위로 돌릴 수 없어 떼를 썼지만 사장은 요지부동이었다. “닭들이 병 걸려 다 폐사하면 책임 질 겁니까?” 사장은 자신과 농장 내부나 한 바퀴 둘러보고 돌아가라고 했다. 이 양계장에는 1만여 마리의 닭이 있고 대부분 산란계, 달걀을 낳는 닭이라고 했다.

조심스레 닭들이 얼마나 좁은 케이지에 있는지, 항생제는 얼마나 사용하는지, 산란을 하지 않는 수탉은 어떻게 처분하는지 물었다. 달걀을 수거하고 선별하는 시스템은 전부 기계화돼 있고 그에 따른 우리 안에 닭들이 들어가 있다고 했다. 하루에 1만 개에 가까운 달걀이 생산되는데 그걸 일일이 손으로 수거할 수는 없다는 설명도 따랐다. 더 묻지 않았는데도 설명이 뒤따른다. 닭 가격은 갈수록 하락하고 대기업 납품 단가도 계속 하락하고 있다는 하소연이다. 공장식 축산에 대한 비판 여론이 많아지지만 공장식으로 운영하지 않으면 생산량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작 공장식 축산을 포기하면 당장 양계장 운영도 힘겹다고 했다. “어쨌든 산목숨 키우는데 누가 함부로 하고 싶겠어요. 그래도 내가 우선 살아야지.”

 

채식

맨부커 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는 폭력을 거부하는 인간의 상징으로 ‘채식’을 선택했다. 주인공은 스스로 나무가 돼 간다고 믿었다. 생명을 죽여 그 살을 먹고 살아가는 육식은 폭력적이다. 현대 사회는 과도한 육식 생활에 익숙해져 있다. 한국에는 소만 340만 마리가 있다. 갓난아기부터 노인 병원 와상 환자까지 다 쳐서 인구 14명당 한 마리 꼴이다. 돼지는 1000만 마리나 된다. 과도한 육식 문화가 공장식 축산을 유발했고 이제는 공장식 축산이 육식 문화를 추동한다.

그러나 인간은 잡식 동물이다. 송곳니의 발달이 증거 하듯이.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도 육식을 통한 단백질 섭취는 뇌 용적량을 늘렸고 결국 문명을 이루어 내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다른 생물을 죽여 잡아먹는 육식은 폭력적이지만 세상 모든 생물이 다른 생명의 죽음을 딛고 생존한다. 당위적이고 의무적인 육식을 강요할 수 없다. 공장식 축산도 마찬가지다. 공장식 축산이 불러온 재앙의 책임을 축산 농가의 노동자들과 자영업자들에게 돌릴 수 없다. 당장 공장식 축산을 중단하라는 구호는 어쩌면 공장식 축산으로 밥을 벌어먹는 사람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일이다.

‘채식주의자의 삶’은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끝났다. 이 원고를 마감하는 대로 난 동물성 조미료가 잔뜩 들어간 라면을 끓여 먹을 생각이다. 다만 그 전과는 달리 생각하게 된 것이 있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고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라는 질문이다. 원칙적인 채식을 주장하든, 자연스런 육식을 이어 가든 아니면 그 중간 어디쯤이든 애초에 시작은 그 질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내가 먹어 생을 유지하게 하는 이 음식이 원래는 식물이든 동물이든 또 하나의 생명이었음을 인식하는 것, 그래서 내 생명은 결국 다른 어떤 생명을 딛고 있음을 자각하는 것.

난 앞으로도 채식주의자로 살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나 내가 먹을 동물들이 살아 있는 동안 쾌적하고 행복하게 살길 바라고, 죽을 때 고통은 최소화하길 바란다. 좁은 우리에서 싸구려 GMO를 먹고 자란 소보다는 풀밭에서 풀을 뜯고 자란 소를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육식을 덜 해 지금보다는 더 적은 동물들이 인간의 식탐 때문에 죽길 바란다.

바람을 하나만 더 덧붙이면 채식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더 저렴한 가격으로 생활용품과 음식을 구매할 수 있으면 좋겠고 술집에서 안주를 고를 때 선택의 폭도 더 넓어지면 좋겠다.

 

(워커스12호 2016.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