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물과 제국주의

세계에서 산업자본주의를 탄생시킨 산업혁명은 영국에서 면직물 산업을 통해 일어났다그러나 영국을 비롯한 북유럽 국가들은 원면을 전혀 재배할 수 없었다다시 말해산업자본주의가 탄생할 당시부터 이미 본국은 원재료를 그것이 생산되는 외부 지역에서 꾸준히 공급받는 데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이 상황은 지금까지 단 한 치도 변하지 않았다시간이 지나면서 도시 중심부(본국)의 산업 자본주의에서 생산되는 상품 구성은 새로운 제품이 낡은 제품을 대체하며 변화해 왔다그에 따라 필요한 원재료의 구성도 바뀌었지만여전히 상당한 비율의 원재료가 도시 중심부 밖에서만 구할 수 있으며본국은 이런 원재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한다이렇게 안정적 공급을 확보하려는 필요성은 도시 중심부 자본주의가 외부” 세계에 대해 제국주의적 지배를 유지하려는 강력한 동기를 제공한다.

전통적인 부르주아 경제학은 이런 원재료가 정상적인 상품 교환을 통해 본국에 공급된다고 본다즉 이들 원재료가 이미 상품으로 생산되고 있다고 가정하며가격 변동을 통해 충분한 공급이 확보되어 제국주의적 지배를 따로 행사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하지만 이는 모든 원재료 생산이 이미 자본주의적 조건에서 이뤄지고 있으며원재료 회사들이 본국 자본에 속해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사실상 이 논리는 세계 곳곳에 이미 제국주의가 전면적으로 퍼져 있다고 가정함으로써 제국주의의 필요성을 부정한다다시 말해도시 중심부와 외부의 구별 자체가 없다고 전제한다. “외부가 이미 본국에 합병·동화되었다고 가정하기 때문이다제국주의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려는 부르주아 경제학이 사실은 제국주의가 이미 만연하다고 은연중에 전제하는 아이러니가 여기 있다.

제국주의적 확장을 부정하려는 부르주아 경제학의 두 번째 논거는, “외부에서 공급되는 원재료가 본국 총산출 가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극히 작다는 점을 든다이런 원재료가 전체 산출 가치에서 미미한 비중을 차지하는데그것을 확보하기 위해 세계적 제국주의 지배를 추구한다는 것은 터무니없다고 말한다.

이에 대한 반박은 해리 매그도프(Harry Magdoff)가 저서 ⟪제국주의 시대⟫(The Age of Imperialism)에서 제시했다그는 제조업 생산은 어떤 경우든 사용가치로서의 투입물이 없이는 불가능하며이 사실은 원재료의 교환가치가 최종 산출 가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아무리 작더라도 변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교환가치는 사회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본국 자본의 힘에 의해 원재료의 교환가치는 극단적으로 낮아질 수도 있고심지어 0에 가까워질 수도 있다그러나 생산을 위해 실제로 원재료를 사용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피하며이를 외부에서 조달하는 것은 도시 중심부 자본주의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원재료에 담긴 교환가치가 작다는 이유로 그것이 생산에서 갖는 중요성을 무시하거나그 원재료 공급지를 통제하려는 시도가 부차적이라고 보는 것은 심각한 오류다.

출처: Unsplash, Kelsey Knight

농업 원재료와 식량 작물도 본국 자본주의가 세계 토지 이용을 통제하려는 중요한 이유다본국 내 거주 인구의 수요와 함께 산업 자본주의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다하지만 여기서는 광물에 초점을 맞추겠다도시 중심부가 외부로부터 광물 수입에 얼마나 의존하는지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는 최근 미국이 희토류를 둘러싸고 경험한 사건이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 인상을 위협하자중국 정부는 미국으로의 특정 희토류 수출을 일시적으로 중단한다고 발표했다중국은 세계 희토류 생산량의 약 70%를 차지하며가공 능력은 90%에 달한다이 때문에 중국이 수출을 중단하자 미국은 즉시 난관에 봉착했다중국이 아닌 다른 나라로부터 희토류를 충분히 확보하려 했지만다른 어느 나라도 중국의 생산량을 대체할 수준이 되지 않았다결국 미국은 중국과 협상을 벌여 희토류 공급 재개를 얻어내야 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2024년 미국의 희토류 수입액이 고작 1억 7천만 달러였다는 사실이다같은 해 미국의 전체 상품·서비스 수입액이 4조 1100억 달러였음을 감안하면희토류 수입액은 전체 수입의 0.004%에 불과했다그러나 이런 미미한 비율에도 전자·자동차·풍력 터빈·고성능 자석·의료 장비 등 다양한 산업에서 희토류가 차지하는 물리적 중요성은 압도적이었다공급이 잠시만 차질을 빚어도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이는 사용가치와 교환가치 사이의 극단적인 괴리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 사건은 제국주의적 확장의 동기를 잘 보여준다중국산 희토류 의존을 줄이기 위해 미국은 그린란드 같은 다른 공급지를 물색하고 있다물론 미국이 그린란드에 관심을 두는 것은 희토류뿐만 아니라 다양한 광물 자원 때문이다그러나 중국이 희토류 공급을 일시적으로 중단한 사건이 미국의 제국주의적 탐색을 더욱 자극한 것이다대체 공급지가 중국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전 세계 희토류 매장량의 절반은 중국에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이 사례는 자본주의 제국주의가 광물 확보를 위해 얼마나 필연적으로 외부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간결하게 보여준다.

물론 이것만이 제국주의의 유일한 동기는 아니다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는 제국주의의 시장 동기를 강조했다본국 내부에서 자본 축적을 지속하려면 본국 외부의 전()자본주의 시장(pre-capitalist market)에 진출해야 하며이를 위해 외부 영토를 제국주의적으로 합병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자본주의 시장 이외에도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내부에서 위치한 국가(자본주의 국가)의 수요 같은 외부 자극이 존재할 수 있다하지만 이러한 대체적 수요는 세계화 시대에 오면서 그 중요성이 줄어들었다그러나 본국 내부만으로는 모든 원재료특히 광물을 확보할 방법은 전혀 없다이런 이유로 원재료 확보광물 확보는 자본주의 제국주의의 지속적인 동기가 된다.

따라서 남반구 국가들이 정치적으로 탈식민화한 후 경제적 탈식민화를 위해 천연자원특히 광물 자원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려 했을 때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이들 국가에 가장 격렬하게 대응한 것은 놀랍지 않다이란의 모사데그(Mossadegh), 과테말라의 아르벤스(Arbenz), 칠레의 아옌데(Allende), 콩고의 루뭄바(Lumumba)에 대한 쿠데타는 대부분 이들이 천연자원특히 광물 자원에 대한 통제를 장악하려 했던 계획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었다.

신자유주의 체제가 남반구에 강제 도입되면서이들 국가의 천연자원 통제권은 다시 본국 자본에 넘어갔다이는 이전처럼 쿠데타가 필요하지 않은더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제국주의 질서를 만들었다이제 구조적 제약이 과거 정권교체가 하던 역할을 대신했다그러나 신자유주의 질서가 위기에 빠지면서미국 제국주의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특히 남반구 국가들을 상대로 근린궁핍화(beggar-thy-neighbour)’ 식의 일방적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이 새로운 상황에서 반제국주의 저항은 더욱 거세질 것이며이들 국가가 천연자원특히 광물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으려는 투쟁도 더욱 강력해질 것이다따라서 자본주의의 위기는 제국주의를 더 취약하게 만들며동시에 제국주의는 더욱 잔혹해질 것이다.

[출처Once More on Minerals and Imperialism

[번역이꽃맘 

 
덧붙이는 말

프라바트 파트나익(Prabhat Patnaik)은 인도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이자 정치 평론가다. 그는 1974년부터 2010년 은퇴할 때까지 뉴델리의 자와할랄 네루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 연구 및 계획 센터에 몸담았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태그

신자유주의 제국주의 자본주의 희토류 트럼프 광물 원재료 산업혁명 근린궁핍화

의견 쓰기

댓글 0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