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는 그 속도와 얽히고설킨 전개 방식에서 결코 느슨함을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는 주변에서 펼쳐지는 현실을 이해해야 할 뿐 아니라, 그것과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입장을 규정하고 또 재정의해야 한다. 세계 경제에서 중국이 눈에 띄게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는 상황이 대표적인 사례다. 중국은 세계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으며, (이번 경우처럼) 서구의 관찰자들은 그 변화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중국 발전의 속도와 규모는 그 자체로 정치성을 띤다. 이를 일종의 압도적인, 가속도가 붙은, 숨 돌릴 틈 없는 ‘광속 질주’의 정치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러한 흐름을 이해하려면, 한 걸음 물러서서 시간의 흐름을 정리하고 상황을 조망해야 하며, 특히 거시경제적 관점에서 배경을 설정해야 방향 감각과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2010년대 들어 세계는 ‘일대일로(One Belt One Road, BRI)’라는 기치 아래 글로벌 개발을 주도하는 중국의 현실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2015년에서 2017년 사이, 중국의 두 개 주요 개발은행은 세계 최대의 양허성 대출 기관인 세계은행보다 더 많은 대출을 실행했다.
출처: BU
그러다 2018년에 갑작스러운 둔화가 찾아왔고, 2020년에는 심각한 위기가 뒤따랐다. 우리는 BRI가 무엇인지 채 파악하기도 전에, 중국이 더 이상 대출하지 않으며 오히려 채권국의 입장에서 각국의 국가 부채 위기에 연루되기 시작한 현실에 적응해야 했다.
그리고 지금, 앞선 두 단계가 아직 완전히 소화되지도, 뚜렷한 결과를 내지도 못한 상황에서, 우리는 또다시 새로운 국면의 시작을 알리는 헤드라인을 마주하고 있다. 이를 ‘일대일로 2.0’ 혹은 ‘그린 도약(Green Leap Outward)’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 보도에 따르면, 호주 그리피스대학교(Griffith University)의 크리스토프 네도필(Christoph Nedopil)은 상하이에 있는 푸단대학교(Fudan University) 산하 녹색금융개발센터(Green Finance and Development Centre)와 협력해 BRI의 최신 국면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를 정리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이후 BRI 약정규모가 대폭 증가했고, 2025년 상반기에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한편, 넷제로 정책연구소(Net Zero Policy Lab)의 데이터는 2022년 이후 녹색 제조 분야의 해외직접투자(FDI)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존스홉킨스(Hopkins)/보스턴(Boston) 팀과 그리피스(Griffith)/푸단(Fudan) 팀이 서로 회의를 통해 데이터 세트가 어떻게 겹치는지를 확인하고 논의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녹색 해외직접투자(FDI)와 새로운 일대일로(BRI) 프로젝트에 관한 최근 보도를 과거의 대출 역사와 그 파급 효과, 그리고 중국이 세계와 맺고 있는 무역 및 금융 관계라는 훨씬 더 광범위하고 복잡한 정치경제적 맥락 안에 위치시키는 일이다.
연대기와 유산과 관련해서는, 보스턴대학교 글로벌 개발정책센터(Global Development Policy Center)의 글로벌 차이나 이니셔티브(GLOBAL CHINA INITIATIVE) 소속 리베카 레이(Rebecca Ray), 케빈 P. 갤러거(Kevin P. Gallagher), 정 자이(Zheng Zhai), 마리나 주커-마르케스(Marina Zucker-Marques), 얀 리앙(Yan Liang)이 작성한 최근 보고서가 중요한 시정을 제공한다.
중국은 2010년대에 대규모로 대출을 집행했고, 그 결과 막대한 부채가 누적되었다. 이에 대해 보스턴 팀은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2008년부터 2024년까지, 중국의 두 개 글로벌 개발금융기관(DFI), 즉 국가개발은행(CDB)과 중국수출입은행(CHEXIM)은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국가들에 4,720억 달러 이상을 지원했다(Ray 외, 2025).
전체적으로 보면 이 대출은 비교적 우호적인 조건(대략 연 4%)으로 이루어졌지만, 상환 시기가 도래하면 대규모 자금이 다시 중국으로 흘러 들어가게 된다.

이러한 현상이 신규 대출이 급감한 시기와 동시에 발생했기 때문에, 그 순 효과는 중국이 개발 금융의 공급자가 아니라 저소득 국가들로부터 순지급을 받는 수취국으로 전환되었다는 점이다.
올해 초, 로위 연구소(Lowy Institute)는 저소득 및 취약 국가들을 대상으로 한 신규 대출과 대출 상환의 쌍봉 구조를 보여주는 인상적인 그래프를 발표했다.
출처: Lowy Institute
이러한 자금 흐름의 반전은 결코 중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한 민간 채권시장의 대출 흐름은 이보다 더 극적으로 반전되었다.

그러나 현재의 압박은 분명히 존재하며, 특히 국제개발협회(IDA) 지원 대상인 가장 빈곤한 국가들에서 그 타격이 심각하다.

보스턴대학교 보고서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중국을 포함한 주요 채권국들이 어떻게 빈곤한 개발도상국에 재정적 압박을 가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표다. 상단 패널에 나온 국가는 그중에서도 중국의 대출이 가장 큰 압력을 가하는 국가들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처럼 다양한 신호들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틀이다. 보스턴대학교가 제시한 재정 경색 상황과, 그리피스/푸단이 분석한 새로운 일대일로(BRI) 약정 자료, 그리고 홉킨스의 넷제로 정책연구소(Net Zero Policy Lab)가 수집한 민간 부문 중심의 녹색 제조 투자 데이터를 서로 조화롭게 연결할 수 있다면 매우 유익할 것이다. 과거 부채와 새로운 약정은 같은 국가에서 발생하고 있는가? 각 사례에서 채권자와 채무자는 누구인가?
그리고 이 모든 논의는 더 넓은 거시경제 및 정치경제적 맥락으로 이어진다.
나는 오늘 아침, 빈곤 국가들을 위한 양허성 대출이 충분하지 않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보스턴대학교 보고서를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나는 ‘중국을 둘러싼 거대한 우려의 장벽’ 속을 헤매고 있었다.

곧 나는 브래드 셋서(Brad Setser)의 분석으로 시선을 옮기게 되었다. 그는 서구에서 중국의 국제수지 통계를 가장 정통하게 분석하는 인물이다. 중국의 해외 대출 급증은 현재 폭등하고 있는 경상수지 흑자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자본 유출은 어떻게 통제되고 있는가? 일대일로(BRI) 투자, 양허성 대출, 외화보유액, 미국 국채 보유, 금 보유 증가는 중국의 국가 대차대조표상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
이처럼 막대한 수출 흑자는 거시경제적 수요 불균형의 결과인가? 아니면 중국 정부의 정책이 초래한 결과인가? 혹은 수입국들의 구조적 불균형이 반영된 결과인가? 이 질문들에 대해 IMF는 중국의 특수성이나 산업 정책보다는 다극화된 세계에서 발생하는 불균형에 주목하는 비교적 온건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분명한 것은, 중국의 역사적인 수출 증가가 전 세계적으로 압력을 가하고 있으며, 이는 다시 투자와 관련된 경제적·정치적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 사이먼 라비노비치(Simon Rabinovitch) 추정)의 분석에 따르면, 최근의 일대일로(BRI) 투자 급증은 베이징이 추진하는 전면적인 안정화 정책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시진핑(Xi Jinping)은 앞으로의 상황이 험난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10월 23일에 종료된 중국 공산당 최고위 간부 회의에서 그는 “예측하기 어려운 불확실성이 뚜렷하게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향후 5년 동안 중국의 발전을 보장하고 안보를 유지하는 과제가 “훨씬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시진핑이 보기에 트럼프발 불안정성에 대한 해법은, 세계를 더 가까이 중국의 영향권으로 끌어들이는 대안적 질서를 구축하는 것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일대일로(BRI)가 등장한다.
많은 BRI 참여국은 중국과의 무역 적자가 점점 심화하는 상황을 겪고 있다.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에서는 보호무역주의적인 불만이 점점 커지고 있다. 그런데도 중국은 이들 국가가 어쩔 수 없이 자신을 상대해야 하는 ‘포획된 청중(captive audience)’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일부 국가는 무역 불균형이나 채무에 대해 조용히 불평할 수 있지만, 중국이 제공하는 기술과 인프라 건설 역량은 다른 곳에서는 쉽게 찾기 어렵다. 중국은 이들 국가가 자신이 구상하는 대안적 세계 질서를 지지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길 바라고 있다. 최근 공산당 기관지는 BRI가 “새로운 글로벌 거버넌스 패러다임”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로 인해 혼란스러워진 세계 속에서 시 주석은 여전히 기회를 보고 있다.
이런 서사 속에서 BRI는 ‘묶어두는 효과’를 만든다. 중국의 인프라를 수용한 국가는 중국의 전문 기술 혜택을 잃는 것이 두려워 무역 문제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영향력의 흐름은 역방향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 베를린에 본부를 둔 싱크탱크 메릭스(MERICS)는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서, 중국의 대규모 무역흑자에 대한 정책적 반응을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멕시코, 튀르키예,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8개국을 중심으로 분석했다. MERICS는 중국이 실제로는 국내산 원칙(domestic content rules), 투자 조건 등의 경제적 요구를 일부 양보하고 있으며, 이는 지정학적 여지를 남기기 위해서라고 결론지었다.
베이징은 정치적 진전을 이룰 수 있는 경우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지만, 정치적으로 포기한 국가에는 강하게 대응한다. MERICS의 조사에 따르면, 유럽연합(EU)뿐 아니라 여러 국가가 중국 수출품에 숨겨진 보조금으로 인한 피해에 대응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의 시각에서 보면, 다수의 국가와의 무역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다. 베이징은 일대일로(BRI)와 같은 대규모 국책 투자 프로그램과 자국의 거대한 수입 시장을 활용해 경제적 외교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중국은 자국 제품의 해외 시장 점유율을 정치적 정체성과 외교적 정렬을 확보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
이 보고서에서 다룬 8개 국가 가운데 멕시코와 브라질을 제외한 모든 국가는 BRI에 가입했다. 튀르키예를 제외한 모든 국가는 중국과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으며, 멕시코를 제외한 모든 국가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가입했다. 또한 베트남을 제외한 모든 국가의 5G 네트워크에는 화웨이(Huawei)가 참여하고 있다. 이러한 외교적 정렬은 경제적 마찰에 있어 중국이 양보할 수 있는 정치적 기반을 의미한다.
중국의 통상 제재 대응을 비교해보면 분명한 경향이 드러난다. 중국은 지정학적 이득이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 경제적 이익보다 정치적 성과를 우선시한다. 그 결과, 개발도상국이나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 중국 제품에 대한 수입 규제를 시행해도, 중국은 대체로 보복 조치를 자제해 왔다. 반면, 중국이 정치적으로 설득할 수 없다고 판단하거나 자신의 ‘경쟁자’로 규정한 국가들에 대해서는 훨씬 강경하게 대응한다. 이는 유럽연합이 중국 전기차에 대해 관세를 부과한 이후의 위협, 혹은 과거 미국과의 무역전쟁, 대만·일본·한국·호주·캐나다 등에 대한 경제적 보복 사례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이코노미스트의 시각에서 보면,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 중국의 자본과 수출을 흡수하면서 BRI로부터 얻는 이익을 유지하려고 한다. 베이징은 이를 잘 알고 있으며, 자국 주도의 새로운 세계 질서를 확장하기 위해 BRI 대출을 확대하고 있다. 반면 MERICS는 이 이야기의 또 다른 면을 보여준다. MERICS가 연구한 주요 신흥국들에서는, 베이징이 중국의 무역흑자에 대한 반발을 일정 부분 용인하고 있으며, 이는 지정학적으로 아직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판단하는 국가들에 국한된다.
어느 한 해석만을 택하기보다는, 이처럼 불균등하면서도 상호작용을 하는 흐름을 깊이 있게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차트북 461에서 그랬듯, 이는 명확히 규정된 새로운 질서를 수립하는 일이 아니라, 질서를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에 관한 이야기다.
[출처] Chartbook 462 One Belt One Road 2.0. China's new paradigm?
[번역] 하주영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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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투즈(Adam Tooze)는 컬럼비아대학 교수이며 경제, 지정학 및 역사에 관한 차트북을 발행하고 있다. ⟪붕괴(Crashed)⟫, ⟪대격변(The Deluge)⟫, ⟪셧다운(Shutdown)⟫의 저자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