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다가오고, 독일은 우울한 안개에 휩싸였다.
코로나19 이전부터 경제성장은 이미 멈춰섰다.
출처 : FT
산업 실패와 무서운 중국 경쟁에 대한 이야기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서로 다른 종류의 나쁜 소식들이 겹치고 쌓이면서, 서로의 영향을 키우는 심리 상태에 놓여 있다. 이로 인해 앞으로 더 나쁜 일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위협이 겹쳐지며, 깊은 병적 침체감에 빠져 있다.
트럼프가 정말로 나토(NATO)에서 탈퇴한다면 어떻게 될까? 두 번째 중국발 충격과 독일의 산업 생산 감소가 사실은 이제 막 시작된 것이라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출처 : FT
만약 2020년대의 독일이 정말로 ‘유럽의 병든 사람’이라면 어떻게 될까?
그리고 그 위기의 여파를 타고 극우 정당인 AfD가 독일 정치의 전면으로 계속 전진한다면 어떻게 될까? 유권자의 3분의 1을 극우가 장악하는 상황에서, 독일 민주주의는 어떻게 작동할 수 있을까?
출처 : Dawum
AfD 지지층의 뚜렷한 특징 중 하나는, 이들이 자신의 개인적 처지만이 아니라 독일 사회 전체의 전망에 대해서도 매우 깊은 비관론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2023년 당시 AfD 유권자의 62%는 독일이 ‘체제 변화’ 없이는 해결될 수 없는 중대한 위기를 향해 가고 있다고 답했다. 그들은 당시 녹색당 지지자들과는 극명하게 반대되는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 언론 보도의 종말론적 어조는 오히려 AfD가 하던 주장을 대신해 주고 있는 형국이다.
출처 : Chartbook 235
<파이낸셜타임스>의 지면에서는 독일 경제가 하강 국면에 들어섰다는 느낌을 이렇게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무엇이 독일 산업의 쇠퇴를 멈출 수 있는가?”
현재 분위기는 폴리글룸(polygloom)—즉 단일한 인과로 설명될 수 없는 이질적이고 복합적인 우울, 각 요소의 단순한 합보다 훨씬 더 심각한 전체적 위기감—그 자체다. 기차 문제든, 폭스바겐이든, 범죄든, 무너진 다리든, 국가대표 축구팀 위기든 어떤 나쁜 소식이든 전반적인 침체감을 더욱 증폭시킨다.
나는 몇 해 전 여름, TV프로그램 패널이 ‘인플레이션 쇼크’라고 불리던 문제를 논할 때 처음으로 이런 누적적 비관의 경향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고 느꼈다. 그 후 몇 년이 지나 정권이 바뀌고 대규모 공공투자가 예고되었음에도, 위기가 서로 얽혀 증폭되고 파국이 다가온다는 느낌은 오히려 더 강해진 듯하다.
독일 현대사에서 이런 집단적 침울함의 순간이 처음은 아니다. 1990년대 후반에는 독일 사회를 두고 “막힌 사회”(blockierte Gesellschaft)”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1990년대 후반에도 성장 둔화가 있었다. 하지만 그 시기의 가장 시급한 문제는 통일 이후의 대규모 실업과, 사회보험 및 실업보험 제도의 기능 부전이었다.
출처 : FT
그러나 1990년대 후반의 ‘막힘’(blockage)이라는 느낌은 단지 노동시장 때문만은 아니었다.
당시 독일은 미국과 영국이 주도하던 신자유주의 개혁 흐름, 즉 레이건-클린턴, 대처-블레어라는 이중 충격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인식이 퍼져 있었다.
적녹 연정은 발칸에서의 외교적 시험대에 올랐고, 이어 조지 W. 부시의 돌발적 당선, 9·11 테러, 이라크 전쟁이 뒤따랐다. 이 시기는 미국 보수주의가 유럽의 ‘상식적’ 정치와 본격적으로 갈라지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 등 많은 지식인들이 ‘분열된 서방’을 선언한 것도 이 시기였다. 되돌아보면, 이는 두 번째 트럼프 행정부로 이어지는 흐름의 시작이었다.
이에 대해 슈뢰더 정부는 보다 독립적인 외교정책으로 대응했다. 동시에 ‘아젠다 2010’이라는 슬로건 아래, 적녹 연정은 노동시장과 복지 체계를 대상으로 매우 급격하고 강도 높은 개혁을 밀어붙였다. 1998년부터 2009년까지 연속적으로 재무부를 장악한 사회민주당(SPD)은, 바이에른을 비롯한 보수 성향 주정부들의 강한 지지를 바탕으로 재정 긴축을 추진했고, 2009년에는 독일 기본법에 악명 높은 ‘부채 브레이크(Bremsregel, 채무 억제 조항)’를 삽입하면서 그 정점을 찍었다.
앙겔라 메르켈 2기 내각의 전설적인 기민당(CDU) 재무장관 볼프강 쇼이블레(Wolfgang Schäuble)는 ‘검은 영(Black Zero)’이라는 재정정책을 처음 만든 인물은 아니었다. 2010년대 이후 독일의 거시경제 발전을 지배한 이 비재량적 재정정책 비전은 이미 2000년대 SPD 재무장관들이 마련해 놓은 기조였고, 그것이 쇼이블레에게로 이어졌다.
한편, 독일 자본은 세계화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독일의 대형 은행들은 런던과 월스트리트에서 무모한 모험을 감행했고, 고급 제조업 부문은 아웃소싱과 세계화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그 결과, 독일은 성장과 강력한 수출, 엘리트들의 높은 이윤, 일부 산업 노동자들에게는 안정적인 고임금 일자리를 확보했다. 그러나 동시에 불평등도 빠르게 확대되었다. 2000년대 독일의 조세 이전 전 지니계수는 서방 국가 중 가장 가파르게 상승했으며, 점점 더 빠르게 작동하는 소득심사형 복지 시스템이 그 불평등을 겨우 억제하고 있었다.
‘슈뢰더 개혁’은 독일 사회에 충격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독일 좌파를 분열시켜 여론조사에서 10% 안팎의 지지를 받는 디링케(Die Linke)를 탄생시켰다. 가까운 과거로 가면, 2010년대 사회민주당은 슈뢰더 시대와 거리를 두려 했다. 사회민주주의가 추구해야 할 과제는 보다 공정한 사회계약을 제시하는 일이었다. 올라프 숄츠(Olaf Scholz)와 그의 팀은 존엄과 존중을 강조했고, EU 차세대 기금과 코로나 대응을 통해 ‘부채 브레이크’를 흔들기 시작했다. 클링바일-메르츠 연정은 이 흐름을 이어받았고, 올해 초에는 냉소적인 의회 운영을 통해 대규모 지출을 위한 재정을 사실상 개방했다.
시대는 분명히 달라졌다.
1990년대와 달리, 현재 독일이 직면한 가장 즉각적인 문제는 실업이 아니다. 실업률이 다소 오르고는 있지만, 노동시장은 여전히 긴장 상태다. 독일 기업들은 숙련 기술 인력이 부족하다고 끊임없이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지금 독일 경제의 정체가 특히 우려스러운 이유는, 세 가지 다른 문제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급격히 변화한 지정학적 상황이다. 러시아는 즉각적인 위협으로 부상했고, 미국은 내부 위기에 빠지면서 나토의 후원국으로서 신뢰를 잃고 있다. 유럽은 독일을 필요로 하며, 독일은 산업 역량과 집단 의지를 다시 결집해야 한다. 그러나 산업 전반에 퍼진 위기감은 이 과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두 번째는 중국의 부상이다. 이는 독일이 그동안 이익을 누려온 세계화를, 경제 확장과 통합의 과정에서 독일 산업 기반을 위협하는 거대한 직접적 위험으로 바꾸어 놓았다.
세 번째 도전은 극우의 부상이다. 독일 연방공화국은 역사상 이처럼 크고 조직적인 정치적 도전에 직면한 적이 없다. AfD의 지지율 급등에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독일 유권자 중 상당수가 지금의 독일이 어떤 나라가 되었는지에 대해 깊은 불만을 품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독일 통일은 구 서독과 동독의 분리된 정체성이 아니라, ‘도이칠란드’라는 민족주의적 중심 참조점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이 민족주의는 여러 형태를 띠지만, 그중 우익적 형태는 다음에 대한 반대로 정의된다. 바로 독일 사회 내 세속적 다양성의 증가다. 이 변화는 극적이며, 오늘의 독일을 이해하려면 진지한 분석이 필수적이다. 귀화한 이주 배경 독일인들이든, 장기 체류 외국인이든 이 변화의 중심에 있다.
2025년 현재 독일 인구는 약 8,440만 명이며, 그중 약 2,500만 명이 어떤 방식으로든 이주 배경을 지니고 있다.
출처 : BIB
‘이주 배경을 가진 독일인’(Deutsche mit Migrationshintergrund)이란, 본인이 독일 시민권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거나, 혹은 부모 중 최소 한 명이 독일 시민권 없이 태어난 사람을 뜻한다. 이른바 ‘미그라(migra) 독일인’은 약 1,300만 명이다. 한편 독일에는 1,200만 명의 외국인이 살고 있으며, 이들은 ‘아우스랜더’(Ausländer, 독일 국적을 가지지 않은 사람) 범주에 속한다.
이 인상적인 숫자들을 1989년 독일 통일 당시와 비교하면 그 변화가 분명해진다. 당시 서독 인구는 약 6,270만 명, 동독은 약 1,640만 명이었다. 오늘날 독일 내 이주민 인구는 옛 동독 인구를 50% 이상 넘어선다.
이 정도의 규모이자 이 정도로 극적인 변화라면, 독일 사회는 구조적 대응을 피할 수 없다. 극우 정당인 AfD의 지지자들은 바로 그런 대응을 원하고 있다. AfD는 그들에게 포퓰리즘적 외국인 혐오 선동을 제공한다. 그렇다면, 중도 정당들은 어떤 답을 내놓고 있는가?
통일 이후 독일은 동독 지역 통합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다. 그러나 이제 인구 비중 면에서 훨씬 더 커진 대규모 이주민 집단에 대해서는 중앙 정부의 투자가 인색했고, 결과적으로는 불충분했다. 그 결과는 사회 불평등 지표, 각종 교육 조사, 독일의 도시와 마을 곳곳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런 상황에서, 구성적이고 관대한 정책 패키지를 기민당(CDU)의 폭넓은 정강과 연계해 제시할 수도 있었지만,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는 ‘도시 경관 정비’라는 표현을 내세우며 개 짖는 소리만 들리는 ‘도그 휘슬’(dog whistle) 정치에 기대고 있다.
이 모든 요소를 감안하면, 오늘날 독일의 궤적에 대해 깊은 구조주의적 비관론, 즉 ‘폴리글룸’에 빠지기 쉬운 환경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나는 이에 대한 반론으로 <파이낸셜타임스>의 마르틴 산드부(Martin Sandbu)가 쓴 두 편의 글을 추천하고 싶다.
첫 번째 글은, 독일 경제의 부진이 사실 여러 면에서 수수께끼에 가깝다는 분석이다. 산업의 침체가 분명히 보이지만, 이를 설명할 수 있는 경제적 요인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독일은 수출 의존도가 유럽의 다른 국가들과 크게 다르지 않고, 수출 품목 구성도 비슷하다. 그럼에도 산업의 하락 폭이 과도하게 크다. 왜 이렇게까지 나쁜 상황인지, 명확한 이유는 보이지 않는다. 두 번째 글은 여러 진지한 경제 분석가들의 의견을 모은 글이다.
이 글들을 종합한 결론은, 적어도 잠재적으로는 낙관적이라는 점이다. 매우 우울해 보이는 독일의 산업 생산 수치는, 실제로는 독일 기업들이 제조업에서 고부가가치 서비스로 전환하는 과정을 반영한 것일 수 있다. 이 변화는 단순한 탈산업화가 아니라, ‘산업’이라는 개념 자체가 재구성되는 과정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독일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과 정확히 일치한다. 고임금·고생산성 경제를 유지하려면, 독일은 이 흐름을 수용하고 가속하며,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산드부의 글에서 제시된 두 번째 핵심은, 독일의 진짜 문제 중 상당 부분이 국내 요인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많은 독자들은 내가 지난주에 제시한 추측, 즉 최근 독일 제조업이 평균 이상으로 침체된 이유가 외부 수출 시장 때문이 아니라, 내수 시장의 침체 때문일 수 있다는 주장에 공감했다.
그리고 그 내수를 위축시킨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에릭 닐슨(Erik Nielsen)은 이렇게 말했다. “독일이 공공부채를 GDP의 약 10%나 줄였는데도, 그것이 (국내) 수요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보는 건 무리입니다.”
그가 지적한 바는 분명하다. 2009년 이후 독일의 극도로 경직된 재정정책은 공공투자와 총수요를 억제해 왔고, 그 영향은—도시 경관을 예로 들자면—일상 곳곳에서 고통스러울 정도로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다.
물론 독일의 불안은 복합적이고 다층적이다. 하지만 투자는 다중해결책이 될 수 있다. 독일은 지금 절박하게 미래에 투자해야 한다. 더 많은 장비, 더 나은 인프라, 그리고 더 강한 인간 자본이 필요하다. 2023년 10월 산드부는 FT 지면에서, 독일의 투자가 독일연방군 예산이나 철도 인프라에만 한정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 투자는 더 다양해지고, 더 분열된 독일 사회의 사회적·인간적 필요와 연결되어야 한다. 지금은 탱크와 철도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지만, 그는 여전히 이 주장이 옳다고 본다. 특히 이것이야말로 정치적 극우의 위협을 완화할 수 있는 유일한 형태의 투자이기 때문이다. 독일에는 분명 인종차별적이고 외국인 혐오적인 사람이 있다. 그러나 동시에, 합리적이지만 AfD에 기울고 있는 독일인들도 있다. 이들은 AfD만이 지난 세대 반 동안 독일 사회에 일어난 급격한 변화를 직시하고 다루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물론 AfD의 해답은 위험하고 반민주적이다. 하지만 문제는, 중도 정당들이 이 물음들에 대해 충분히 자기 방식으로 답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교육, 주거, 보건 등 가장 고통스러운 병목과 상충 지점을 해결하는 것이야말로, 지금 독일이 해야 할 최우선의 공공투자 과제다.
이런 우선순위의 전환은, 곧 정치의 대규모 재조정을 의미한다. 메르츠–클링바일 정부는 아직 희망의 정치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러나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 유럽 곳곳에서는 변화의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2008년 이후 계속 요구되어 온 것은, 대규모이자 지속적인 집단적 행동이다. 그런 점에서, 음울한 안개를 날카롭고 실천적인 질문으로 밀어내려는 산드부와 그의 서신 기고자들의 진지한 노력은 분명 의미 있다.
[출처] Chartbook 463: Polygloom - What's wrong with Germany?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
애덤 투즈(Adam Tooze)는 컬럼비아대학 교수이며 경제, 지정학 및 역사에 관한 차트북을 발행하고 있다. ⟪붕괴(Crashed)⟫, ⟪대격변(The Deluge)⟫, ⟪셧다운(Shutdown)⟫의 저자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