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에 치러진 칠레 총선 1차 투표에서는 극우 세력의 충격적인 약진과 새로운 좌파 진영의 붕괴가 드러났다. 이는 가브리엘 보리치(Gabriel Boric) 대통령이 이끌어온 운동에게는 압도적인 타격이었지만, 완전한 패배는 아니었다.
초보수 네오권위주의 정당 공화당(Partido Republicano, PR)의 대통령 후보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 출처: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 공식 홈페이지
2021년 대선 결선에서 유망한 새로운 좌파 연합의 후보로 나서 승리한 전 학생운동 지도자 가브리엘 보리치 이후, 칠레는 11월 16일 처음으로 총선을 치렀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는 강경 우파가 칠레의 지배적 정치 세력으로 부상했다. 이들은 12월에 열릴 2차 결선에서도 손쉽게 승리할 것으로 보이며, 이는 반동 정당들에게 유리한 전국적 재편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이번 총선은 군사정권 시기 제정되어 핵심적인 신자유주의 원칙과 제도를 헌법에 고정시켰던 1980년 헌법을 대체하려는 시도가 압도적으로 부결된 이후 처음 치러진 선거이기도 하다. 2022년 헌법 국민투표와 마찬가지로, 의무투표제는 절박한 요구를 지닌 대규모 노동계급 유권자들을 투표장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보리치의 광범위전선–공산당 연정은 이들의 요구에 거의 응답하지 못했다. 그 결과, 오늘날 이 유권자들은 실용적 해결책을 기대하며 극우 세력이나 반이데올로기적 선동가들에게 표를 던지고 있다.
이번 선거 결과는 개혁과 사회주의 정치에 치명적이지만 결정적인 타격은 아니다. 칠레는 이제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José Antonio Kast)가 이끄는 초보수 네오권위주의 정당 공화당(Partido Republicano, PR)과, 요하네스 카이저(Johannes Kaiser)의 반동적 자유지상주의 정당 국민자유당(Partido Nacional Libertario)의 연합에 의해 통치될 가능성이 커졌다. 칸비오 포르 칠레(Cambio por Chile) 연합은 중도좌파 연합 콘세르타시온(Concertación)과 함께 1990년 독재 이후 30년 동안 칠레를 공동 통치해온 옛 중도우파 블록을 사실상 종속시키며, 국가의 정당체계와 정책 의제를 다시 짜고 있다.
반대편인 좌파는 크게 위축되었다. 급부상한 극우 세력은 노동계급 기반 안으로 깊숙이 침투했고, 그 안에는 과거 보리치를 지지했던 유권자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모든 유권자가 강경 자유시장주의와 ‘강경 대응’ 정치로 이동한 것은 아니다. ‘상식적 능력주의 정책’을 앞세우며 좌우를 모두 비판하는 포퓰리스트 아웃사이더 정당, 사람들의 정당(PDG)은 이번 선거에서 3위를 차지하며 정치권을 뒤흔들었다. 극우는 칠레 진보진영에 강한 타격을 가했지만, 신권위주의 극단주의를 받아들이길 꺼리는 시민들, 그리고 여전히 좌파를 지지하는 일부 유권자들은 남아 있다. 이들은 좌파가 다시 노동계급을 위한 의미 있는 개혁을 추구하는 승리 가능한 정치 세력으로 재구성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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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총선에는 다섯 개의 중요한 정당·연합이 경쟁했다. 이 광범위하고 다양한 구도는 칠레의 정당체계가 확실히 독재 이후 지배적이었던 중도 연합에서 벗어났음을 보여준다. 2021년에는 신좌파부터 극우까지 여섯 명의 주요 후보가 경쟁했으며, 그 안에는 중도 연합의 잔존 세력과 두 명의 반체제 아웃사이더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해에는 초보수주의자 카스트가 28%로 1위를 차지했고, 보리치가 26%로 뒤를 이었다. PDG의 ‘상식’ 선동가 프랑코 파리시가 13%를 기록하며 모두를 놀라게 했고, 다른 어떤 후보도 8분의 1을 넘기지 못했다.
현재로서는 좌파의 열세를 극복할 수 없다.
전국 선거에서 더 이상 효과적으로 경쟁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한 옛 중도좌파는 현재 새로운 좌파 연합과 손잡았다. 나머지 정치 스펙트럼의 대부분은 분열된 채 선거에 진입했다. 파리시와 2009년 20% 득표를 재현하려는 포퓰리스트 마르코 엔리케스-오미나미를 제외하면, 세 명의 우파 후보가 1차 투표에서 우위를 점하려 했다. 카스트와 카이저 외에도, 2013년 미첼 바첼레트에게 참패했던 에블린 마테이는 중도우파 주변의 덜 극단적인 반진보 세력을 통합하려 했다. 파리시와 함께 우파는 신좌파 후보인 전 노동부 장관 히아네트 하라를 정조준했다.
거의 모든 여론조사는 공산당원 하라가 여유 있는 다수 득표로 1차 투표에 승리할 것이라 예상했다. 많은 이들이 그의 지지율이 보리치의 국정 지지율—대통령 임기 초부터 약 3분의 1 수준에서 고착된—과 비슷한 수준에 자리할 것으로 전망했다. 여론조사는 또한 우파가 2위와 4위를 오가는 모습을 보였고, 파리시는 5% 미만으로 떨어질 것이라 예상되었다. 예상대로 하라는 1차 투표에서 1위를 유지했지만, 파리시는 충격적인 19.7%를 기록했고,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옹호자이자 시장 근본주의자인 카이저는 마테이를 제치고 4위를 차지했다. 이는 진보와 민주 세력을 모두 놀라게 했다. 최근 12월 14일 결선을 위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카스트가 이제 유력한 선두주자로 여겨지고 있다.


이전 두 차례의 전국 선거와 비교하면, 유권자들이 반진보적으로 이동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충격적이게도, 하라는 1차 투표에서 간신히 카스트를 앞섰는데, 득표율은 27% 대 24%였다. 더 나쁜 점은, 전체 유권자의 절반이 세 명의 우파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는 것이다. 카이저와 마테이를 제칠 만큼 예상 밖의 19.7%를 얻은 파리시의 성과에도, 강경 우파는 승리를 주장할 수 있다. 2017년 돌풍을 일으킨 선거에서, 급진 좌파는 무소속으로 출마한 카스트보다 세 배나 많은 표를 얻었고, 중도 연합은 여전히 지배적인 위치를 유지했다. 이후의 선거는 칠레의 2019년 10월 대중 봉기, 즉 에스따이디오(estallido) 이후에 치러졌고, 정당성이 크게 추락한 기존의 대표적 정당 연합들은 재민주화 이후 최저 지지율을 기록했다. 새 좌파는 2021년에 지지층을 넓혔지만, 팬데믹과 경기 침체 속에서 과도하게 진보적인 제헌의회의 활동에 대한 불만이 커지면서 카스트가 1위를 차지하는 데 힘을 실었다. 이번 선거에서는, 카스트와 그의 전 동지였던 카이저로 대표되는 강경 우파가 논쟁의 여지 없는 승자였다. 중도좌파 전체가 득표율을 소폭 늘리는 데 그친 반면, 강경 우파의 득표는 전체 유권자의 4분의 1 조금 넘는 수준에서 3분의 1을 넘는 수준으로 증가했다.
절대 수치도 불길한 이야기를 똑같이 말해준다. 2022년 칠레가 의무투표제를 도입한 후, 모든 정당의 투표율 확대가 예상되었다. 실제로, 이번 선거의 몇 안 되는 긍정적 면 중 하나는 새 좌파가 2021년 대비 거의 두 배의 표를 얻어 340만 표(2017년 득표의 거의 세 배)를 모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강경 우파는 480만 표라는 압도적 득표로 좌파의 성장세를 손쉽게 넘어섰다. 이는 2021년 대비 거의 150% 증가, 그리고 2017년 대비 8배 증가였다. 새 규칙이 모든 칠레인의 투표를 강제한 이후, 절대 증가분의 압도적 비중이 극우로 갔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현재로서는 좌파의 열세는 극복할 수 없다. 가령 하라가 결선에서 파리시의 유권자 대다수를 설득한다고 해도, 승리는 수학적으로 불가능하다. 2021년 결선 패턴에 따르면, 파리시 지지자의 4분의 3이 결선에서 보리치를 지지했다. 승산을 얻으려면, 하라는 이번에도 그 모든 표를 그대로 가져와야 하는데, 이는 결선 여론조사와 오늘날 유권자의 전반적 반진보적 성향에 의해 이미 불가능해졌다. 칠레의 최근 선거의 산술을 넘어, 좌파의 임박한 패배를 설명하는 핵심은 평범한 칠레 유권자들 사이에서 보리치 연합에 대한 거부감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 있다.
칠레 경제는 평균적 노동자에게 참담한 상황이다
강경 우파가 급부상한 주요 요인은 보리치 대통령 하에서 새 좌파의 성과에 대한 평범한 칠레인들의 실망이다. 불만에 찬 노동자들은 2022년에 진보파가 새 헌법안을 제출했을 때 그것을 압도적으로 부결시키며 좌파를 처벌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투표장에 나와 좌파를 심판했다. 이번에는 그 거부가 더 깊고 더 광범위하며, 전국의 지자체로 퍼져나가 노동계급의 핵심 거점 깊숙이 침투했다.
보리치의 광범위전선(FA) 정부가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많은 노동계급 가구에 분명한 구제를 제공하는 입법을 통과시키는 데 성공했다. 노동부 장관이었던 하라는 그 주요 성취 — 최저임금 인상, 주 40시간제, 칠레 연금 제도의 개선 — 의 주역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들은 에스따이디오 이후 새 좌파가 내세웠던 공약에 비하면 그림자에 불과하다. FA의 공약은 민영화된 연금의 전면 국유화와 대폭 상향된 연금 하한, 누진적 조세 개혁, 산업 단위의 중앙집중적 단체교섭, 보편적 공공의료 체계, 국가 일자리 프로그램에 대한 공공투자, 학자금 부채 탕감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는 칠레 신자유주의를 완전히 뒤엎는 계획이었다.
1990년부터 2010년까지의 정통 자유화는 빈곤을 상당히 줄이고 1990년대 고성장을 이끌었지만, 칠레는 중도좌파 정부 시절에도 여전히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불평등한 사회 중 하나였다. 집권 4년이 지난 지금, 새 좌파의 성취는 이런 난제를 해결하기엔 매우 부족하다. 하라 팀이 현재 내세우는 조치들은 노동계급의 시급한 필요에 비해 미미하며, 많은 개혁은 수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평균 임금이 약간 상승했지만, 칠레 노동자의 고용 현실은 여전히 가혹한 불안정 그 자체다. 팬데믹 이후 실업률은 약 10%에 고착되어 있다. 그러나 일자리를 찾은 이들조차도 불안정 노동이 일상이다. 오늘날 전체 노동자의 약 3분의 1만이 완전한 노동 보호를 누린다. 또 26%는 비공식 경제에서 일하며, 43%는 안정적 계약 없이 일한다.
보리치 집권 이후 노동시장은 오히려 더 악화되었다. 2020년 이후 새롭게 창출된 일자리의 70% 이상이 보호받지 못하는 일자리다. 과거 사회지출이 불평등을 간신히 움직였던 나라에서, 새 좌파는 눈에 띄는 변화를 만드는 데 실패했다. 칠레의 과거 성장기 동안 1인당 GDP는 중소득국 수준까지 상승했지만, 중위월소득은 미화 611달러 수준에 머물고 있다(비공식 노동자의 절반은 340달러 미만). 현재 전체 임금노동자의 절반은 가족을 공식 빈곤선 이상으로 끌어올릴 능력이 없다.
즉, 임금이 소폭 올랐음에도, 칠레 노동자들이 고용주로부터 양보를 얻어낼 능력은 여전히 제자리다. 새 정부가 산업 단위의 중앙 단체교섭 도입을 포기한 이후, 기존의 노동조직은 여전히 약하다. 통과된 단 한 가지 기본적 보호 — 노동시간 단축 — 는 2028년이 돼서야 완전히 시행된다. 더욱이 이 법은 노동 유연성을 확대할 수 있는 뒷문을 열어놓았다. 무엇보다 심각한 결함은, 칠레 노동자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비정규 노동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부의 새 연금 제도 역시 실망스럽다. 저축이 거의 없거나 없는 고령 은퇴자에게 지급되는 ‘보장된 연대’ 연금은 10% 증가해 총 25달러 정도 늘어나며, 이 미미한 인상조차도 2027년이 되어야 65세 은퇴자에게 지급된다.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은 20년 이상 납입했을 경우 약 100달러 인상을 받게 된다. 개혁의 복잡한 구조 때문에 노년층은 배신감을 느낀다 — 고용주 기여율이 7%로 올라가지만, 노동자들은 여전히 임금의 10%를 저축해야 하며, 고용주 기여금이 완전히 시행되는 시점은 2033년이다. 이는 새 좌파가 약속했던 완전한 사회화와 보편성과 전혀 닮지 않았다. 이 제도는 가장 가난한 사람에게는 선별적 복지를 고착시키고, 칠레 GDP의 60%에 해당하는 자산을 보유한 민간 금융 연금을 다시 강화하는 누더기식 제도다.
의무투표 시행 이후, 절대 증가분의 압도적 비중이 극우에게 갔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실제로 정부는 2023년 조세개혁이 무너진 이후 가장 야심찬 계획을 포기했다. 이 개혁은 광물 수출과 고소득층에 대한 세율을 올려 수년간 GDP의 4.5%만큼 공공재정을 확대하려 했고, 부유세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입법은 하원 본회의 표결에조차 올라가지 못했다. 기업 로비의 압력은 예상대로 거셌지만, 결국 FA-CP 연합 바깥의 진보 성향 의원 세 명이 기권하면서 법안은 사라졌다.
이 핵심 법안의 탈선은 개혁 전략의 주요 결함을 보여준다. 한편으로는 연합의 불안정한 의회 다수를 반영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지층을 동원하여 주저하는 의원들에게 압박을 가하려는 의지가 부족했음을 보여준다. 새 좌파가 두 회의에서 직면한 열세는, 대중적 압력이 있었다면 엘리트 영향력에 맞설 수도 있었던 소수 의원들에게 달려 있었다. 설령 이런 전략이 실패했다 해도, 이는 최소한 노동자들의 이익을 위해 강하게 싸우려는 의지를 보여주었을 것이며, 동시에 불가피한 충돌에 대비해 현장 조직력을 강화했을 것이다.
상황을 더 악화시킨 것은, 좌파가 일종의 자기만족 상태에 빠져 자신들의 진보적 정체성을 강조하며 실망한 유권자를 설득하려 했다는 점이다. 반면 지지층을 동원하여 기업 저항을 상쇄할 수 있는 전략을 고민하지 않았다. FA의 정책은 안락사 권리, 새로운 성 정체성 법안, 성교육 모델 도입 등을 강조했다. 그 자체로 평범한 칠레인들이 등을 돌리게 한 것은 아니었다 — 이런 이슈들에 강한 신념을 가진 사람들은 애초에 좌파 개혁을 지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에스따이디오가 전면에 올린 계급 전체의 핵심 개혁을 이행할 능력이 정부에 없음을 인지한 많은 이들은, 정부가 노동자의 기초적 물질적 복지를 희생해 좁은 정체성 이슈를 추진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분노했다. 실제로 정부는 집권 초기인 2022년 헌법 국민투표에 정치적 운명을 걸었다. 이 제안된 헌장이 특정주의적 도덕적 요구의 집합처럼 보이면서, 새 좌파의 기반이 될 성과가 아니라 발목을 잡는 짐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칠레인의 5분의 3 이상이 이 새 헌법을 부결시켰는데, 이는 그들의 핵심 관심과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이지, 피노체트의 권위주의 헌법을 선호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이때부터 FA–CP 연합은 노동자의 경제적 안보를 우선시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인식으로 계속 처벌을 받아왔다.
많은 좌파 지지 유권자들이 좌절하고 흔들리는 반면, 수년 동안 정치에서 소외되어 온 신규 유권자들이 현재의 우향 이동을 이끄는 핵심 세력이다. 투표 규칙 변화로 갑자기 유권자층이 확대되었을 때, 새 좌파에게는 이 소외된 노동자들의 공감을 얻을 절호의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제헌 과정에서 시작된 흐름은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최근의 선거는 단절되고 불만에 찬 유권자들이 좌파의 정책과 성취에 거의 믿음을 두지 않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들은 여전히 학교, 의료, 인프라, 치안 등 국가기관이 자신들을 실패시키고 있다고 인식한다.
정체된 경제와 여전히 가혹한 노동시장 속에서, 대부분은 취약한 공공 프로그램과 치솟는 범죄 우려 속에서 자신과 가족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다. 기본적 필요에 대한 보편적 해결책이 부재한 가운데, 대부분의 노동계급 칠레인들은 더 뒤처지지 않기 위한 어떤 방안이라도 찾는 중이다. 노동자들을 옥죄는 불안정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새 좌파의 프로그램을 거부하고 경쟁적·개인주의적 — 심지어 사회적으로 퇴행적인 — 방식으로 물질적 필요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확산된 것은 논리적이며 애초에 예상됐어야 할 결과였다.
칠레의 변화하는 정치 지형
2022년 대규모 국민투표와 2023년 조세개혁 실패 이후, 새 좌파는 방향을 잃었다. 그 시점에서 대중의 기대를 다시 불러일으키고 전략적으로 조율된 동원을 추진하기보다는, 오히려 물러섰다. 실망한 칠레인들에게 자신의 의제가 여전히 성과를 낼 수 있음을 설득하기 위해 소규모 조치를 선택하면서, 2021년 선거에서 전술적으로 맺었던 중도좌파와의 연합을 정식 집권 연정으로 전환하였다.
취임 1년 만의 내각 개편에서, 보리치는 옛 콘세르타시온의 좌파 핵심 인사들을 통합해 그들의 절차적 노련함과 엘리트 네트워크가 축소된 개혁을 추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했다. 2010년대, 칠레의 새 급진좌파(FA)를 탄생시키고 전통 좌파(CP)를 재활성화한 사회운동은 콘세르타시온의 신자유주의적 틀에 대한 원칙적 비판을 바탕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2022년 이후, 새 좌파는 신자유주의적 연속성의 틀 안에서 작은 승리를 얻겠다는 절박함 속에서 이 퇴물 정치 계급을 부활시켰다. 그러나 이 선택은 새 좌파를 상하게 했을 뿐이며, 제도적으로 몰락했던 중도파들에게는 되살아날 기회를 제공했다.

의회 선거 결과는 이를 입증한다. 새 좌파 블록은 거의 20%에서 12.5%로 3분의 1 이상 감소했지만, 옛 중도좌파는 표를 잃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소폭 증가를 누렸다. 특히 FA가 큰 타격을 받았다. CP는 7.4%에서 5%로 떨어졌고, 보리치의 정당은 의회 최대 정당에서 6위로 추락했다. 한편, 소멸 직전이던 중도 정당들은 안정되었다.
정치 스펙트럼의 반대쪽 끝에서는 정반대의 역동성이 작동했다. 좌파의 후퇴는 우파가 스스로를 강화할 기회를 열어주었고, 그 과정에서 중도우파를 흡수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새롭게 부상하는 반동적 블록은 이제 한때 지배적이었던 중도 연합이 옹호했던 에스따이디오 이전 신자유주의 질서를 복원하는 수준을 넘어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들은 공공지출을 급격히 삭감하고, 사회적 보호를 제거하고, 시장을 갑작스럽게 규제 완화하는 등 독재 시대의 체제로 되돌아가려 한다. 예컨대 카스트는 210억 달러 규모의 지출 삭감을 자랑스럽게 공약했다. 뒤처질 수 없다는 듯 카이저는 기업 과세를 25% 이상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둘 다 수십만 명의 이민자를 강제 추방하고, 북부 국경을 군사화하며, 고도로 무장한 경찰을 거리로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이들의 정당이 권력의 문턱에 선 지금, 극우는 1990년대 이후 가장 억압적이고 자유시장적인 체제를 즉각 설치할 준비가 되어 있다.
많은 칠레 유권자들은 기초적 물질적 복지보다 좁은 정체성 이슈를 우선하는 듯한 모습에 불만을 품었다.
반동 세력의 자신감은 성과를 냈다. 이들의 동맹은 의회 투표에서 가장 높은 득표율을 획득하며 기존의 10%에서 정상을 차지하는 수준으로 급상승했다. 옛 중도우파 중 가장 덜 온건한 정당인 에블린 마테이의 독립민주연합(UDI)은 분명 극우와 함께 표결할 것이며, 이는 추가로 8.5%를 보탤 것이다. 다른 중도우파 정당들까지 합류한다면, 우파 블록은 하원 과반에 몇 표 부족한 수준이 되어, 야당과 협상할 필요가 거의 사라진다. 35년 된 중도우파 연합의 최종 붕괴는 사실상 확정적이다. 반대로 카스트의 공화당(PR)은 의석을 17석이나 추가하며 가장 극적으로 성장했다. 첫 선거로부터 4년 만에 이제 이들은 입법 의제를 주도하게 되었다. 이렇게 빠르게 성장한 또 다른 정당은 파리시의 PDG로, 13석을 추가하며 의회 2위 정당이 되었다.
좌파가 배워야 할 것 — 그리고 빨리 배워야 할 것
칠레의 새 좌파가 모든 것을 잃은 건 아니다. 거의 파국적 재편이 진행 중이지만, 완전히 붕괴한 것은 아니다. 몇 가지 중요한 노선 수정만 이뤄진다면, 새 좌파는 회복하여 다시금 노동계급의 절실한 개혁을 실행할 수 있는 정치 세력으로 권력을 되찾을 수도 있다.
우선, 새 급진파와 옛 중도파를 모두 포함한 광범위한 좌파는 여전히 의회 최대 블록이다. 8석을 잃었음에도 61석을 유지했으며, 이는 극우 연합이 보유한 의석의 거의 두 배다. 공산당과의 연합에 늘 불안감을 가져온 기독민주당 의원 6명은 이탈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좌파는 적어도 3명의 진보 성향 무소속 의원들의 지지를 계속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영향력과 효능을 되찾기 위해서는, 새 좌파가 반동 세력이 중도우파를 굴복시키듯 자신만의 길을 구축하며 중도좌파를 종속시켜야 한다. 이번의 손실 이후에도 FA–CP 파트너십은 17석을 보유한다. 축소되었음에도, 이들의 의회 존재감은 1990~2000년대처럼 급진 세력이 정치적 사막으로 내몰렸던 시절과 비교하면 훨씬 강력하다. 따라서 이들의 대표단은 보편적 사회·경제 개혁 프로그램을 재구성하고, 그것을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 대다수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며, 조직된 지지층의 동원과 정책 형성을 조율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종류의 훈련된 전략 — 즉, 첫째로 서민들을 압박하는 불안정, 둘째로 그들의 집단적 행동을 중심에 놓는 전략 — 을 고수하는 것은 새 좌파를 다시 매력적 중심축으로 복귀시킬 수 있다. 이를 통해 새 좌파는 과거 지지자들을 되찾고, 확장된 유권자층 가운데 소외된 노동자들과 함께 할 수 있다. 이런 접근법은 중도좌파 실무자들이 신자유주의 연속성을 방어하는 거래를 중개해도 보상을 받기는커녕 처벌받도록 만들 것이다.
결선에서 두 후보가 모두 필사적으로 유혹하려 하는 파리시 유권자들은 이 전략이 어떻게 작동할 수 있는지를 엿볼 수 있게 한다. PDG 지지층의 대다수는 사실 좌파에서 이탈한 유권자들이다. 그들 대부분은 40세 이하이며, 4분의 3은 매우 낮은 소득을 벌고 있다. 노동계급 중에서도 가장 불안정한 층을 대표하며, 이전에는 정치에 무관심했던 비투표자 출신도 많다.
PDG 유권자의 절대다수는 명확한 정치적 정체성을 거부하며, 70%는 자신을 좌·우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본다. 그러나 2019년 봉기가 의미 있는 개혁의 실질적 경로를 제공한다고 보였던 시기에는 적극적으로 에스따이디오 시위에 참여한 이들도 많았다. 주목할 점은, 이 유권자들이 극우에 표를 던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강한 반이민·치안 강화 성향을 가지면서도, 전통적 권위주의 프로그램에는 일반적으로 거부적이다. 또한 평균적 칠레인보다 재생산권·퀴어 권리를 지지하고, 국영 산업을 옹호할 가능성이 높다. 궁극적으로 그들은 모순적이지만 막연히 평등주의적 가치를 품고 있다.
초기 증거는 파리시 지지층의 핵심 일부가 2022년 제안된 헌법을 지지한 뒤 좌파를 버렸다는 점을 시사한다. PDG는 좌파가 전국 평균보다 많은 득표를 했으나 이번에는 하라가 새 헌장 지지 대비 크게 득표를 잃은 지역들에서 두드러진 성장을 보였다. 진보 개혁이 실패했다고 결론 내린 수십만 명이, 경쟁을 공정하게 만들겠다는 파리시의 실용적 공약에 설득되어 그의 진영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변화는 칠레 전역의 주요 노동계급 지역에서 가장 두드러졌다. 그는 방치된 북부·남부 지역에서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지만, 노동계급이 밀집한 산티아고 외곽 지자체에서도 PDG는 성장을 보였다. 과거 급진주의가 크게 호응받던 발파라이소나 산안토니오 같은 주요 항구도시에서도 파리시는 지지를 확대했다. 특히 최근 부두노동자 투쟁의 중심지였던 산안토니오에서는, 진보 진영이 약 16포인트를 잃은 반면 PDG는 23%까지 지지를 확대했다. 이들은 새 좌파가 반드시 되찾아야 할 노동자와 지역사회다.
진보파는 PDG의 실망한 유권자를 설득해야 한다는 전망을 불편해할 수 있다. 결국 파리시는 카스트·카이저와 마찬가지로 시장 규제 완화와 베네수엘라 이민자 추방을 공약했다. 공기업을 옹호할 때조차, 그의 유권자들은 국가 개입에 대한 모순적으로 강한 반감을 포함해 점점 더 가혹한 정책 성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새 좌파는 이러한 노동계급이 효과적인 공공기관과 프로그램이 거의 부재한 조건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빨리 이해해야 한다.
북부 광산 마을의 해체된 경제와 산티아고 빈민지역의 극심한 빈곤 속에서, 이들은 혼란과 폭력을 낳는 불안정한 하청 노동과 비공식 거래의 무인지대에서 살아간다. 그들이 파리시에 끌리는 이유는, 오랫동안 스스로 버텨야 했고, 그에게서 최소한 공공 안전과 공정 경쟁을 약속받기 때문이다. 새 좌파가 회복되기를 원한다면, 다가올 어려운 시기에 칠레 노동자들에게 사회주의 개혁이 더 나은 안전과 평등을 제공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다.
[출처] The Rise of Chile’s Hard Right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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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네 로하스(René Rojas)는 뉴욕주립대학교 빙엄턴 인간발달학과의 조교수다. 그는 <캐털리스트> 편집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