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경제 모델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

출처: Unsplash. Louis Hansel

지난 몇십 년 동안 세계는 경제 활동의 분포에서 큰 변화를 겪었고국가 간 정치 권력의 분포에서도 그보다는 덜하지만 분명한 변화가 일어났다아시아특히 중국의 부상은 세계 경제 성장의 중심을 동아시아와 남아시아로 이동시켰다세계은행의 세계개발지표(2025년 10월판)에 따르면 구매력 기준 달러로 계산한 중국의 GDP는 2015년에 미국을 추월했다지금 중국은 세계 상품·서비스 생산의 약 20%미국은 15%를 차지한다. (이는 IMF와 세계은행이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한 1950년대 초 이후 두 경제 대국의 비중이 가장 높게 나타난 시점이다.) 같은 데이터베이스로 계산하면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비슷한 변화를 보인다. 1980년대 중반영국과 인도는 세계 생산의 약 3%를 각각 차지했다오늘날 인도의 비중은 8%로 늘었고 영국은 2%로 줄었다인도네시아와 네덜란드의 생산 비중은 1980년경 모두 1.2%로 같았지만지금은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보다 세 배 이상 커졌다.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아시아 세 나라(인도중국인도네시아)의 인구를 합치면 약 31억 명으로전 세계 인구의 거의 40%를 차지한다이들 세 나라의 세계 생산 비중은 30%이며총수출 규모는 46천억 달러(시장 환율 기준)로 전 세계 25조 달러 수출의 19퍼센트를 차지한다(세계개발지표). 그러나 이들이 IMF에서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 비중은 10퍼센트에도 못 미치며, IMF 의결권이 마지막으로 조정된 것도 2008년이다파키스탄방글라데시베트남 같은 아시아의 대형 경제권까지 포함하면 아시아의 경제적 중요성과 국제 경제기구에서의 대표성 사이의 격차는 훨씬 더 벌어진다이는 새로운 문제 제기가 아니며아주 제한적인 진전만 있었을 뿐 수년간 논쟁해 온 사안이다.

어떤 의미에서 IMF와 세계은행의 의결권 비중은 절대적인 의미를 갖지 않을 수도 있다더 중요한 것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15%의 지분을 확보하는 것인데이는 현재 미국만이 달성한 수준이다. IMF 의결권을 실제 경제력에 맞춰 다시 배분하면 미국의 거부권이 사라질 수도 있으며더 중요한 점은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 연합해 공동으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더 깊은 문제는 기존 국제 경제기구를 근본적으로 개혁할 것인지아니면 현재의 경제력과 성공적인 경제 정책을 더 잘 반영할 새로운 국제 경제기구를 창설할 것인지이다이는 단순히 의결권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경제 사상을 둘러싼 소프트 파워의 문제이기도 하다.

중국과 브릭스(BRICS) 국가들은 새로운 기관 설립을 향해 첫 단계를 밟았으며대표적인 기관이 브릭스 국가들이 공동으로 설립한 신개발은행(New Development Bank)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다하지만 두 기관 모두 아직 세계적인 영향력에서는 매우 초기 단계다중국과 글로벌 사우스는 이런 기관을 설계하고 운영한 경험이 부족하다마크 마조워(Mark Mazower)의 책 ⟪세계를 통치하기⟫(Governing the World)가 보여주듯, 19세기 후반의 우편연합에서 1차대전 이후의 국제노동기구(ILO), 그리고 1944년 설립된 세계은행과 IMF에 이르기까지 모든 국제기구는 서방 강대국에 의해 만들어졌다.

1944년 브레턴우즈 회의에서도 명목상 여러 나라가 참가했지만(예를 들어 사실상 또는 형식적으로 영국의 통제를 받던 이집트이라크인도그리고 국토 일부만 통제하던 중국 정부 등이 그랬다), 실제 의사결정 권력은 온전히 미국과 영국 손에 있었다오늘날 BRICS 국가들이 맞닥뜨린 과제는 새로운 경제·정치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80년 전과는 역할이 달라진 서방 국가들그리고 소규모 국가들에게 적절한 발언권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국제기구를 설계하는 기술을 어떻게 습득할 것인가이다특히 앞으로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빠르게 증가할 지역인 아프리카 국가들을 더 잘 포용하고 더 큰 발언권을 부여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또 하나 중국과 특히 관련이 깊은 과제가 있다세계 경제 권력의 재편이 의미하는 바는 지난 반세기 동안 가장 큰 경제적 성공을 거둔 지역이 아시아였다는 점이다그렇다면 중국보다 훨씬 가난하고 1인당 소득 면에서 크게 뒤처진 국가들에게 중국의 경제 발전 경험과 성공 요인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가 문제다중국이 상위 중소득 국가로 도약하는 과정은 중국 고유의 국내적 조건과 밀접하게 얽혀 있다예컨대 정책 실험을 가능하게 만든 의사결정 분권화특정 부문에서 국가가 수행한 핵심 역할강력한 행정 체계가 중요 결정을 신속히 집행할 수 있었던 점전면적 반부패 운동 등이 있다이런 요소들은 다른 국가에서 쉽게 재현하기 어렵다따라서 중국의 경제 정책 중 어떤 요소가 다른 나라에서도 적용 가능하며 경제 성장 면에서 유사한 효과를 낳을 수 있을지 선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작업은 간단하지 않다중국 성장의 핵심 동인을 파악하는 것뿐 아니라그중 더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 요소를 골라내야 하기 때문이다워싱턴 컨센서스에 대해 단순화된 주장이나 과장된 해석이 많았지만그 원칙 자체는 명확했고 매우 일반적(그리고 추상적)이어서말리 같은 저소득 국가에도 한국 같은 고소득 국가에도 모두 적용할 수 있었다일부 원칙—예를 들어 외부효과나 독점성이 큰 분야까지 포함한 과도한 민영화자본 규제 철폐—이 지나치게 강조된 점은 단점이었지만그 보편성은 장점이었다따라서 중국과 중국 경험을 연구하는 경제학자들은 1980년대 남미의 지급 위기에 대응해 만들어졌던 워싱턴 컨센서스보다, 21세기 현실을 훨씬 더 잘 반영한 새로운 경제 정책 원칙 목록을 제시해야 한다.

추신이 글은 2025년 12월 10일자 <차이나 데일리>에 소폭 편집된 형태로 게재되었다.

[출처How to frame an economic blueprint for the 21st century

[번역이꽃맘 

덧붙이는 말

브랑코 밀라노비치(Branko Milanovic)는 경제학자로 불평등과 경제정의 문제를 연구한다. 룩셈부르크 소득연구센터(LIS)의 선임 학자이며 뉴욕시립대학교(CUNY) 대학원의 객원석좌교수다. 세계은행(World Bank) 연구소 수석 경제학자로 활동한 바 있으며, 메릴랜드대학과 존스홉킨스대학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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