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는 2019년 반부패 공약으로 선출되었다. 출처: 젤렌스키 X
우크라이나는 올해 8월 24일 주요 동맹국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독립기념일을 맞았다. 그러나 동시에 또 하나의 대형 부패 스캔들이 터져나오고 있었다.
사태의 발단은 지난달 정부 개각으로 해임되기 전까지 우크라이나 국방장관을 지냈던 미하일로 페도로우(Mykhailo Fedorov)가 8월 19일 9분짜리 영상을 공개하면서 시작됐다. 사람들은 이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그가 제기한 도전 가운데 하나는 사실상 선거를 실시하라는 요구였다. 전시 중에 선거를 치러야 하는 상황인데도 이를 요구한 것이다. 젤렌스키와 우크라이나 국민 다수는 전시 선거에 거듭 반대해 왔다.
페도로우가 제기한 또 다른 문제는 우크라이나가 ‘구조적인 통치 위기’에 빠졌다는 진단이었다. 그의 진단이 틀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우크라이나의 부패 문제는 더 이상 이번 스캔들이나 저 장관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독립 이후 들어선 모든 우크라이나 정부에서도 사라지지 않은 엘리트층의 반복적인 행태다. 우크라이나 국민은 부패를 종식한다는 명분을 명시적으로 내걸고 2004년과 2014년에 혁명을 일으켰지만, 부패는 그 혁명에서도 살아남았다. 이제 부패는 국가의 생존이 걸린 전쟁마저 약화하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이 문제가 얼마나 뿌리 깊은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다. 2025년 11월 에너지 부문에서 약 1억 달러 규모의 뇌물 비리가 젤렌스키의 핵심 측근들에게까지 번지면서 법무장관과 에너지장관이 물러났다. 두 사람 모두 자신들의 비위 의혹을 부인했다. 이 스캔들의 여파로 젤렌스키의 오랜 비서실장 안드리 예르마크(Andriy Yermak)도 같은 달 사임했다. 예르마크의 법률대리인은 그가 불법 행위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부인했다.
2026년 7월 페도로우가 국방장관직에서 해임된 배경에는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 올렉산드르 시르스키(Oleksandr Syrskyi)와의 갈등이 있었다. 두 사람은 군사 전략을 놓고 충돌했으며, 페도로우가 강력하게 추진하려 했던 국방 조달 개혁을 둘러싸고도 갈등을 빚었다. 이 개혁은 기존 이해관계를 위협한 것으로 알려졌다. 1년 전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대규모 시민 시위가 이어졌다.
8월 5일에는 유럽·유로대서양 통합 담당 부총리와 법무장관, 주미 우크라이나 대사를 지낸 올하 스테파니시나(Olha Stefanishyna)가 불법 재산 증식과 허위 재산 신고 혐의로 정식 기소됐다. 스테파니시나는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스테파니시나가 우크라이나 자산회수관리청을 감독하던 시기에 관한 수사도 계속되고 있다. 당시 그의 전남편과 연계된 기업들이 계약을 따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하지만, 이 사건과 관련해서는 아직 정식 기소가 이뤄지지 않았다.
구조적인 부패에 관한 페도로우의 주장을 입증할 사례가 더 필요하기라도 한 듯, 젤렌스키 대통령실 부실장으로 사법개혁과 러시아의 침략을 다룰 특별재판소 업무를 담당했던 이리나 무드라(Iryna Mudra)도 8월 19일 대통령에 의해 해임됐다.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 반부패기관들이 자금세탁 의혹과 관련해 새로운 수사에 착수한 뒤 무드라를 해임했다.
이 다섯 가지 위기는 서로 무관한 개별 사건이 아니다. 페도로우가 정확히 지적한 문제, 즉 부패가 구조적인 통치 위기를 초래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징후다.
페도로우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사실도 있다. 이런 문제는 새롭지 않으며,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만 특수하게 나타난 현상도 아니다. 소련이 붕괴하면서 탄생한 신생 우크라이나에서는 산업과 언론, 그리고 시기에 따라 대통령직까지 장악한 소수 올리가르히가 경제의 상당 부분을 지배했다.
2004년 오렌지 혁명(Orange Revolution)과 10년 뒤 유로마이단 혁명(Euromaidan Revolution)은 공직사회의 부패가 만연하다는 대중의 인식과 그에 따른 광범위한 분노에서 명시적으로 촉발됐다. 젤렌스키 자신도 2019년 부패 척결을 핵심으로 내세운 공약을 바탕으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전쟁이 바꾼 것은 부패를 일으키는 근본적인 동기, 즉 단순한 인간의 탐욕이 아니라 탐욕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가 어디에 존재하느냐다. 1990년대의 민영화 경매와 2000년대의 가스 거래를 둘러싼 각종 이권 사업은 지난 30년 동안 우크라이나 정치를 지배해온 올리가르히 계층을 탄생시켰다. 2020년대에는 정부 조달 계약과 재건 기금이 이들 올리가르히 네트워크가 차지하려고 다투는 새로운 이권으로 등장했을 뿐이다.
하지만 전쟁은 이들이 초래하는 피해를 더욱 키운다고 볼 수 있다. 2023년에는 약 4,000만 달러 상당의 박격포탄을 납품하지 않은 허위 계약 때문에 이미 빠듯한 국방예산에 심각한 공백이 생겼고, 최전선의 전투 수행 능력에도 부담을 줬다. 2025년에는 우크라이나의 에너지망을 보호하기 위한 자금 가운데 1억 달러를 빼돌린 비리로 경제가 피해를 입었을 뿐 아니라 겨울철을 견뎌야 하는 평범한 우크라이나 국민의 삶도 더욱 고통스러워졌다.
"우크라이나인들이 2025년 7월 반부패 기관을 정부 통제 하에 두려는 시도에 항의하고 있다."
The protests against the controversial bill targeting the independence of anti-corruption bodies continue in Kyiv after dusk.
— Status-6 (War & Military News) (@Archer83Able) July 22, 2025
Ukrainian demonstrators are chanting: "вето на закон!" - "veto on [this] law!" https://t.co/z2hKsuyibg pic.twitter.com/2BMcBTVHcE
이제 위기는 우크라이나 의회 깊숙한 곳까지 번졌다. 무드라가 기소된 날, 우크라이나 의회의 법집행위원회는 부패 척결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법안 5건을 가로막았다. 유럽연합(EU)은 연말까지 우크라이나에 20억 유로(17억 1,000만 파운드)가 넘는 원조를 지급하기 위한 양보할 수 없는 조건으로 이 법안들의 통과를 요구하고 있다. 이 법안들은 우크라이나의 EU 가입 협상에서 키이우(Kyiv)가 이행해야 할 핵심 과제이기도 하다.
부패한 체제는 ‘스스로를 보호한다’
페도로우의 영상에는 개인적으로 깊이 쌓인 불만과 함께 이제는 고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을지도 모르는 체제에 대한 진단이 담겨 있다. 페도로우는 연간 수십억 달러 규모의 국방부 조달 체계를 자신이 개혁하려 했기 때문에 장관직에서 쫓겨났다고 주장했다.
그는 젤렌스키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지 않은 채 “구체제는 너무 자주 자기만의 규칙에 따라 움직인다. 스스로를 보호한다. 변화를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그가 지적하는 불균형은 극명하다. 개혁을 추진하는 사람들은 해임되는 반면, 2025년 11월 스캔들에 연루된 것과 같은 인맥을 가진 내부 인사들은 기소를 피할 수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젤렌스키가 2019년 대통령에 당선됐을 당시만 해도 나라를 좀먹는 부패를 근절하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정치적 의지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젤렌스키에게 그런 의지가 있었다고 해도 그의 주변 인사 상당수에게는 분명 그런 의지가 없었다. 전면전이 시작된 지 4년 반이 넘은 지금, 부패는 무기 조달과 방공 계약, 에너지망 보호처럼 실패할 경우 병사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평범한 우크라이나 국민의 고통을 더 가중하는 분야에까지 깊숙이 뿌리내렸다.
우크라이나가 독립국가로 살아남으려면 언제나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하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페도로우의 표현대로 여전히 ‘변화를 두려워하는’ 체제를 상대로 훨씬 오래전부터 벌여온 조용한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선거를 시행하자는 페도로우의 해법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은 낮으며, 서방의 압박에도 분명한 한계가 있다.
그러나 해법을 찾지 못한다면 문제는 계속 곪아가면서 우크라이나의 국가와 사회 사이를 더욱 멀어지게 할 것이다. 우크라이나 엘리트층의 문화가 바뀌지 않는다면 실현할 수 있는 해법을 찾아 시행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결국 이 문제는 젤렌스키가 얼마나 훌륭한 전시 지도자로 평가받을지를 결정할 것이며, 그의 파트너들이 젤렌스키 개인뿐 아니라 민주주의 국가 우크라이나의 생존을 지원하는 데 얼마나 진정성을 가졌는지도 판가름할 것이다.
[출처] Volodymyr Zelensky’s other war: Ukraine’s endless struggle with corruption
[버역] 하주영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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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판 볼프(Stefan Wolff)는 버밍엄대학교(University of Birmingham) 국제안보학 교수다. 테티아나 말랴렌코(Tetyana Malyarenko)는 오데사 국립법학아카데미(National University Odesa Law Academy) 국제안보학 교수, 장 모네 유럽안보 분야 교수(Jean Monnet Professor)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