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적 눈속임: OECD 수출주도론의 허점

탈식민화 이후 새롭게 해방된 제3세계 국가들은 식민지 시대의 국제분업 구조에서 의식적으로 벗어나는 발전 경로를 추구했다. 이를 위해 수입대체 산업화 정책을 추진했다. 과거 식민 지배국들은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딱히 손쓸 방법이 없었다. 그러다 중심부 자본주의 국가에서 동아시아로 자본주의적 산업화가 어느 정도 확산하자 수입대체 산업화를 공격할 기회를 잡았다. 처음에는 베트남 전쟁의 여파로 동아시아의 수출이 늘면서 이런 변화가 나타났고, 이후에는 동아시아의 낮은 임금에 이끌린 중심부 기업들이 의도적으로 생산 활동을 이전하면서 산업화가 확산됐다. 이런 요인 덕분에 동아시아의 일부 국가는 높은 GDP 성장률을 달성했다. 이들 국가는 대부분 규모가 작았기 때문에 남아 있던 노동력의 상당 부분도 흡수할 수 있었다.

중심부 국가들은 동아시아의 성공을 제3세계 전체에서 재현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수입대체 산업화를 공격했다. 3세계 국가들이 수입대체를 핵심으로 삼은 내향적발전전략을 포기하고 수출 주도 성장으로 전환하며, 가격기구에 크게 개입하지 않고 국경을 넘는 상품과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허용하기만 하면 된다는 주장이었다. 이는 훗날 등장한 신자유주의 전략에 이론적 정당성을 제공했다. 이 주장은 사실상 부유한 국가들의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위해 작성해 1970년에 출간한 7권짜리 연구에서 처음 체계적으로 제시됐다. 그중 한 권에서는 I.M.D. 리틀(I.M.D. Little), 티보르 시토브스키(Tibor Scitovsky), M.Fg. 스콧(M.Fg.Scott)이 전체적인 결론을 제시했고, 나머지 여섯 권에서는 이러한 결론의 근거가 된 개별 국가 사례를 연구했다.

출처: Unsplash, Wolfgang Weiser

연구 대상 가운데 하나였던 인도에서는 중공업과 자본재 산업을 육성하려던 네루-마할라노비스(Nehru-Mahalanobis) 전략이 예상대로 공격의 표적이 됐다. 좌파도 네루-마할라노비스 전략을 비판했지만 그 이유는 전혀 달랐다. 좌파는 이 전략이 토지개혁을 실시하지 않아 농업 부문, 특히 식량곡물 부문의 성장률을 낮게 유지했고, 그 결과 제25개년계획 기간에 경제를 휩쓴 인플레이션을 심화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OECD의 비판은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OECD는 토지개혁을 요구하지 않았으며, 실제로 토지개혁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식민지 시대에서 물려받은 국제분업 구조에서 의식적으로 벗어나려는 시도 자체를 비판했다.

예상할 수 있듯이 좌파는 OECD의 주장이 제국주의적 요구에 부합한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좌파의 논리는 다음과 같았다. 3세계 대부분의 생산구조, 특히 수출구조에서는 1차 상품, 그중에서도 농산물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런데 세계시장에서 이런 상품에 대한 수요는 그다지 빠르게 증가하지 않았다. 따라서 경제성장률을 높이려면 국가가 보호무역 장벽 안에서 의식적으로 개입해 생산구조를 바꿔야 했다. 다만 각 부문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신중하고 현명하게 이를 추진해 인플레이션 압력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미 불안정한 노동대중의 생활 여건이 더욱 악화될 수 있었다. 이를 위해서는 농업생산을 늘릴 토지개혁이 반드시 필요했다.

OECD 주장의 핵심은 제3세계의 수출이 수요 측면에서 제약을 받는다는 주장을 반박하는 데 있었다. OECD는 오히려 어느 시기든 제3세계의 어떤 국가라도 원하기만 하면 세계시장에서 원하는 만큼 상품을 팔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산업화를 연구한 OECD 보고서의 저자들은 프로젝트를 선택하는 기준도 함께 제시했다. 예를 들어 정부가 두 개의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가? 이들이 제시한 기준은 투입되는 물적 요소와 산출물을 세계 가격으로 평가했을 때 더 높은 수익률을 내는 프로젝트를 선택하라는 것이었다. 물론 이 원칙에도 몇 가지 조정 규정을 두었지만, 이는 예외적인 경우에만 적용했다. 투입과 산출을 세계 가격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일반 원칙은 세계시장에서 수출에 대한 수요 제약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가정을 전제로 삼고 있었다.

물론 이는 터무니없는 가정이었다. 그런데도 이 가정 자체는 충분한 비판을 받지 않았다. 동아시아 국가들에서도 국가가 산업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고, 모든 것을 단순히 시장에 맡긴 것이 아니었다는 점에서는 OECD의 주장을 정당하게 비판해 왔다. 또한 동아시아의 성공에는 국내시장을 보호하고, 그 보호된 시장에서 큰 이윤을 확보한 뒤 세계시장에서는 상품을 낮은 가격에 판매하는 전략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도 지적됐다. 그러나 OECD가 수요 측면을 아예 무시했다는 사실은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

OECD는 이처럼 수요를 무시하는 태도를 이른바 소국 가정(small country assumption)’으로 정당화했다. 즉 제3세계의 각 국가는 규모가 너무 작기 때문에 세계시장에서 사실상 원하는 만큼 상품을 판매할 수 있다고 가정해도 무방하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소국 가정에는 문제가 있다. 한 국가에 대해서는 그런 가정을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많은 국가가 동시에 그렇다고 가정할 수는 없다. 모든 국가를 각각 소국이라고 간주하면서 수많은 국가에 똑같이 적용되는 일반적인 처방을 내리면 논리적 모순이 생긴다.

이 문제는 절약의 역설(paradox of thrift)’과 비슷하다. 사람들은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면 더 부유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한 사람이 그렇게 하면 그 사람은 더 부유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동시에 소비를 줄이면 다른 조건이 같을 때 총수요가 감소한다. 그러면 경기침체가 발생해 모두의 소득과 고용이 줄어들고, 사회 전체의 총부 수준은 그대로 남는다. 따라서 한 개인에게는 성립할 수 있는 행동이 역설적으로 모든 사람이 함께 실천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 마찬가지로 OECD의 주장처럼 ​한 국가에 성립할 수 있는 일이 그 자체로 모든 국가에도 성립한다고 믿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다.

3세계 국가들이 원하는 만큼 수출할 수 있다는 가정을 뒷받침하기 위해 OECD는 또 하나의 부당한 논거를 제시했다. 인도처럼 이른바 내향적 발전전략을 추진한 나라들의 경우 과거 세계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특정 수출품의 세계무역 점유율이 하락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근거로 삼았다. 그리고 여기에서 이들 국가의 수출을 제약한 요인은 수요가 아니라 공급이었다는 결론을 끌어냈다.

그러나 이 주장 역시 오류가 있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그 이유를 분명히 알 수 있다. 어떤 국가가 수요 측면의 제약 때문에 수출이 연간 1%밖에 증가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하자. 그래서 이 국가는 내향적전략, 즉 수입대체 전략을 선택한다. 그 결과 수출은 국가적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수출량은 전혀 늘지 않으며, 결국 세계시장 점유율도 떨어진다. 하지만 이런 사실만으로 애초에 수출 증가율이 연간 1%를 넘기 어렵다고 판단했던 가정이 틀렸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다시 말해 어떤 가정을 토대로 특정 정책을 추진했을 때 나타난 결과가 겉보기에는 그 가정을 부정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그 가정 자체가 잘못됐다고 추론하는 것은 완전한 논리적 비약이다. 관찰된 사실만으로는 그런 결론을 이끌어 낼 아무런 근거가 없다.

결국 OECD의 주장은 이론적 눈속임에 불과했다. 동아시아의 경험을 해석하면서 보호정책과 국가의 전반적인 역할을 무시했다는 점에서도 잘못됐지만, 무엇보다 한 국가의 수출품에 대해 세계시장이 무한한 수요를 제공한다는 전혀 성립할 수 없는 가정에 의존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논리 역시 결국 이 초기 OECD 논리를 토대로 세워졌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성립하기 어려웠다.

물론 신자유주의 논리를 옹호하는 쪽에서는 모든 제3세계 국가가 이 전략을 추진하면 중심부 경제를 희생시키는 대신 자신들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중심부에 있던 생산 활동이 임금이 더 낮은 제3세계로 이전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중심부 국가들이 자기 경제가 퇴보하는 모습을 그저 가만히 지켜볼 것이라고 전제한다. 실제로 중심부 국가들은 그런 퇴보를 초래하는 생산 활동의 이전을 막기 위해 당연히 조치를 취할 것이다. 미국의 역대 행정부가 한동안 해온 일이 바로 이것이며, 특히 도널드 트럼프는 이 측면을 강하게 강조해 왔다.

[출처] A Theoretical Sleight-of-Hand

[번역] 이꽃맘

덧붙이는 말

프라바트 파트나익(Prabhat Patnaik)은 인도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이자 정치 평론가다. 그는 1974년부터 2010년 은퇴할 때까지 뉴델리의 자와할랄 네루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 연구 및 계획 센터에 몸담았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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