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란티어가 새로 발표한 22개 항목의 선언문은 그 노골적인 이념적 얼굴을 드러내고, 동시에 불길한 미래 전략을 예고한다.
알렉산더 카프(Alex Karp)가 이끄는 팔란티어는 디지털 파시즘이 지배하는 미래를 구상하는 듯 보인다.
지난주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Palantir Technologies)가 발표한 선언문은 기술 문서도 아니고 경제 비전도 아니다. 그것은 디지털 자본주의 궤적의 새로운 단계를 선언하는 명시적인 정치 문서다. 이 단계에서 디지털 자본주의는 중립성을 주장하던 입장을 버리고 스스로를 드러내며, 그 이념적 얼굴을 노골적으로 공개했다. 팔란티어는 글로벌 기술 환경에서 유일한 사례가 아니다. 이 회사는 억압 체제와 인권 침해에 기술을 판매하는 여러 대형 기술 기업 가운데 하나이며, 강제 추방, 대규모 감시, 반체제 인사 탄압을 가능하게 한 역할로 국제앰네스티)와 휴먼라이츠워치 등 국제 인권 단체로부터 비판을 받아왔다.
가장 심각한 점은 보고서들이 이 회사가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서방 기술 기업들과 함께 이스라엘 군과 직접 협력 관계를 맺고, 가자지구 작전에 사용된 데이터와 타격 시스템을 제공했다는 사실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이는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전쟁범죄에 실질적으로 가담한 것과 다름없다. 이러한 점에서 이 회사는 다양한 형태와 공개 수준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유사한 행위를 수행하는 다른 주요 디지털 자본주의 기업들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이 선언문은 단순한 기업 입장이 아니라, 전통적인 물리적 폭력뿐 아니라 디지털 감시와 억압, 데이터 분석, 인공지능, 여론 조작,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강력한 효과를 지닌 방식으로 반대 의견을 억누르는 수단에 의존하는 디지털 파시스트 연합 프로젝트에 대한 계급적 선언이다. 이 연합의 범죄는 엘리트 집단과 기업 사무실 내부에 머무르지 않고 전장과 민간인의 신체로까지 확장된다. 이러한 양상은 오늘날 트럼프주의, 그 동맹 구조, 그 범죄와 공격적 전쟁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실리콘밸리에서 백악관까지: 유기적 동맹
팔란티어 선언문을 유일한 사례로 보지 않으려면, 최근 몇 년 사이 기술 엘리트의 일부와 극단적 민족주의 우파 프로젝트 사이에 형성된 동맹을 떠올려야 한다. 팔란티어 공동 창립자이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정치 경력의 가장 중요한 자금 후원자인 피터 틸(Peter Thiel)은 단순히 특정 정치 후보를 지지하는 기업인이 아니다.
그는 단순한 후원자가 아니라 이 프로젝트에 정치적 논리를 부여하는 이념적 설계자다. 그는 기존의 대의적 자유민주주의를 기술관료 엘리트 프로젝트의 장애물로 간주하며, 자본주의와 전통적 자유민주주의는 양립할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해왔다. 이 동맹은 우연도 아니고 일시적 교차도 아니다. 이는 하나의 목표를 공유하는 두 프로젝트의 객관적 수렴이다. 즉 자신들이 사회와 타자를 통치할 ‘자연적 권리’를 가진다고 믿는 금융·정치 올리가르히(소수의 부유한 권력자)에게 권력을 집중시키는 것이다.
이 동맹은 오늘날 이른바 기술 가속주의 운동(technological acceleration movement)에서 제도적 형태를 갖는다. 여기에는 일론 머스크, 제프 베이조스, 마크 저커버그 등이 포함되며, 이들은 트럼프 2기 행정부와 보조를 맞추기 시작했다. 이들을 하나로 묶는 것은 완전한 이념적 일치가 아니다. 그들을 결속시키는 것은 계급적 위치와 공동 이해관계다. 즉 축적과 지배, 통제 확대 능력을 제한하는 모든 규제적·민주적 제약을 제거하려는 이해관계다.
22개 항목 선언문: 그 계급적 내용 읽기
팔란티어는 자사 최고경영자 알렉산더 카프(Alexander Karp)의 책 ⟪기술 공화국⟫(The Technological Republic)을 요약한 것이라고 설명하는 22개 항목 선언문을 발표했다. 이 선언문은 전 세계적 관심과 정치적 분노를 불러일으키며 수일 만에 수백만 조회를 기록했다. 그러나 분노는 감정적 반응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이 선언문은 본질적으로 하나의 계급적 로드맵이며, 단순한 분개를 넘어선 정밀한 좌파적 독해가 필요하다.
이 선언문은 무작위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설계된 22개의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부 항목은 표면적으로 온건하고 인간적인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정치인의 사생활에 대한 관용을 요구하거나 상대의 패배를 기뻐하지 말라는 주장 등이 그렇다.
그러나 이러한 항목들은 결코 무해하거나 우연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주저하는 독자를 설득하고 선언문에 ‘균형 잡힌’ 이미지를 부여하기 위해 계산된 외피다. 이후 본색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다. 이는 이데올로기 연구에서 말하는 ‘동의의 제조(manufactured consent)’ 구조다. 그럴듯한 언어를 먼저 제시해 독자가 그와 함께 들어오는 독성 메시지를 삼키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따라서 선언문에서 논리적으로 보이는 요소는 균형의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교묘함의 또 다른 증거다.
이 모든 항목은 군사화, 지배, 문명적 위계를 중심으로 한 포괄적 이념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한 가림막으로 활용된다. 따라서 여기서는 이 프로젝트의 계급적·이념적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는 핵심 항목들에 집중하고, 나머지 개념들은 그 맥락 속에서 함께 다룬다.
첫 번째 항목은 “실리콘밸리의 공학 엘리트는 국가 방어에 참여할 도덕적 의무를 지닌다”고 주장한다. 이 ‘도덕적’ 틀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군사 및 안보 계약을 ‘도덕적 의무’로 제시하는 순간, 사회적 압력은 엔지니어와 프로그래머를 전쟁과 억압의 기계에 동원하는 수단으로 작동한다. 그리고 기술 기업 내부의 모든 반대 목소리는 ‘애국심’이라는 이름으로 침묵당한다. 이는 개인의 양심을 군사·안보 국가와 그 억압·감시 기구를 위해 봉사하는 상품으로 전환하는 과정이다.
두 번째 항목은 “앱의 폭정에 맞선 반란”을 요구한다. 이는 소비자 기술을 거부하고 보다 심층적인 안보·군사 시스템으로 전환하자는 뜻이다. 겉보기에는 소비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기술 역량을 오락 시장이 아니라 전쟁과 감시 기계로 재배치하라는 요구다.
다섯 번째 항목은 “AI 무기가 만들어질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그것을 만들 것인가의 문제”라고 선언한다. 이 폐쇄적이고 결정론적인 논리는 기술 군사화를 근본적으로 거부하는 논의를 애초에 차단하려는 것이다. 선택을 “우리냐 적이냐”로 설정하는 순간, “무기 자체를 거부하자”는 가능성은 제거된다. 이는 냉전 시기 정부가 평화 운동을 억압하고 좌파 조직을 제한할 때 사용했던 논리와 동일하며, 여기서는 디지털 형태로 되살아난다.
여섯 번째 항목은 “국가 복무를 보편적 의무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자발적 군대 대신 의무 징병제를 재검토할 것을 요구한다. 이는 이 선언문의 고전적인 파시즘적 성격을 드러낸다. 국가가 전쟁 참여에 대한 자발적 동의를 확보하지 못할 때, 제도적 강제를 동원하면서 그것을 ‘공동의 책임’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젊은이들에게 ‘서구’를 위해 목숨을 바치라고 요구하는 이 기업이, 동시에 그 젊은이들이 죽어가는 전쟁 계약에서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인다는 사실이다. 모두에게 의무를, 소수에게 이윤을.
열일곱 번째 항목은 “실리콘밸리가 폭력 범죄 대응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겉으로는 실용적인 제안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민간 보안 기업의 권한을 확대하여 국가의 역할을 우회하고, 법과 사법 체계, 민주적 책임이 아니라 이윤 논리에 따라 작동하는 독립적인 사회 통제 권력으로 변모시키려는 시도다.
스무 번째 항목은 “종교적 신념에 대한 만연한 불관용에 저항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이 주장은 신념의 자유를 진정으로 옹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전쟁 프로젝트에 동원되기 쉬운 보수적·종교적 흐름과 이념적 동맹을 구축하기 위해 종교 담론을 기회주의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모든 파시즘 프로젝트는 폭력에 신성성을 부여하기 위해 종교 기관과의 동맹을 필요로 했으며, 이 항목은 바로 그 목적을 ‘신앙의 자유’라는 외피 아래에서 추구한다.
스물한 번째 항목은 “어떤 문화는 중요한 진보를 이루었지만, 다른 문화는 여전히 기능적으로 실패하고 퇴보적이다”라고 주장하며 이 선언문의 이념적 핵심을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이 문장은 단순한 문화적 의견이 아니다. 그것은 ‘문명 관리’라는 이름 아래 지배, 점령, 학살을 정당화하는 문명적 식민주의 인종주의의 이론적 토대다.
이 논리는 과거 식민주의를 정당화했던 ‘백인의 의무’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으며, 오늘날에는 알고리즘과 빅데이터의 언어로 재생산되고 있다. 그리고 이 점이 이전보다 더 위험하다. 이제는 눈에 보이는 식민 지배 세력조차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데이터베이스와 타격 알고리즘만으로도 충분하다.
트럼프주의를 개인이 아니라 체제로 보기
흔한 오류는 트럼프주의를 도널드 트럼프 개인으로 환원하는 것이다. 트럼프주의는 국가적 금융 자본, 배외적 민족주의, 이민자와 소수자에 대한 적대를 결합한 포괄적 계급 프로젝트다. 그 핵심에는 자본주의가 더 이상 대중에게 자유주의적 환상을 재생산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나타나는 위기가 있다. 이때 체제는 실제 계급 모순에서 시선을 돌리기 위해 공격적 민족주의 담론에 의존한다. 팔란티어 선언문은 디지털 독점 자본을 이 프로젝트에 결합시키고, 그것을 단순한 선거 담론이 아니라 실제 통제 체제로 전환할 기술적 수단을 제공한다.
이민자를 추적하고 추방하는 과정에서 팔란티어가 이민 당국 및 보안 기관과 협력해 온 사실은 이 동맹의 실질적 모델을 보여준다. 여기서 기술은 어떤 중립적 의미의 ‘안보’를 위해 사용되지 않는다. 그것은 억압적이고 인종차별적인 정책을 높은 효율로 실행하는 수단이다. 디지털 도구는 억압을 더 빠르고, 더 정밀하게 만들며, 공적 정당화의 필요성마저 줄인다.
디지털 봉건주의와 그 파시즘 단계
앞서 디지털 자본주의를 분석하면서 주장했듯이, 우리는 현재 디지털 봉건주의의 고도화된 단계에 살고 있다. 이 단계에서는 대기업이 디지털 인프라를 독점하고, 과거 봉건 영주가 토지를 독점해 농민을 지배했던 것처럼 이용자들에게 조건을 강요한다. 팔란티어 선언문은 이 디지털 봉건주의가 이제 파시즘 단계로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자본이 더 이상 조용한 경제적 착취에 머무르지 않고, 체제를 보호하기 위해 노골적인 정치적·이념적 동원과 통제로 나아가는 단계다.
디지털 자본주의 아래에서는 전통적인 육체 노동자와 지식 노동자만이 착취의 대상이 아니다. 모든 이용자는 매일 데이터를 생산하며, 이 데이터는 아무런 보상 없이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원료로 전환된다.
디지털 농노는 자신이 소유하지 않은 시스템 안에서 일하고, 자신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규칙에 종속된다. 이 선언문이 여기에 더하는 것은 군사화다. 동일한 착취 시스템이 이제 인간의 사고를 규정하고, 전쟁을 수행하며, 반대 의견을 억압하고, 강제 추방을 실행하며, 보안 통제 체계를 관리하는 데 동원된다.
죽음의 알고리즘
이 선언문은 오늘날의 전쟁 현실과 분리해서 읽을 수 없다. 보고서들은 팔란티어가 군대와 보안 기관과 전략적 협력을 맺고 실제 군사 작전에 사용되는 표적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이론적 가능성이 아니라, 이미 일상화된 현실이다. 인간의 생명을 데이터로 환원하고, 그 데이터를 다시 군사적 표적으로 전환하는 알고리즘이 작동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언론과 조사 보고서를 통해, 인공지능 시스템이 표적 목록을 생성하는 데 사용되었고, 그 결과 가자지구 민간인에 대한 학살이 발생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베네수엘라, 이란 등 워싱턴이 ‘위협’으로 규정하는 국가들에서는 감시와 데이터 시스템이 군사주의, 공격, 국제법을 위반하는 전쟁을 지원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
회사가 ‘지능형 타격 시스템’이라고 부르는 것은 실제로는 산업적 효율로 살인을 관리하는 기계다. 이제 살인은 책임 있는 인간의 결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알고리즘, 충분한 데이터, 그리고 민주적 통제에 책임을 지지 않는 체계의 승인만 있으면 된다. 이것이 선언문이 말하는 ‘실시간 의사결정 능력’의 실제 적용이다. 즉 폐쇄된 기술 시스템 안에서 즉각적으로 살상 결정이 내려지는 구조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시스템의 사용이 특정 공동체 전체를 후진적이거나 위협적인 존재로 규정하는 담론과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범죄는 폭탄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분류에서 시작된다. 특정 공동체 전체가 위협으로 규정되는 순간, 민간인을 겨냥한 공격은 범죄가 아니라 ‘안보 관리’로 전환된다.
기술적 중립성의 환상, 자기 감시, 디지털 억압
팔란티어가 구축하고 있는 모델의 위험은 군사적 적용에만 있지 않다. 더 위험한 것은 ‘감시 사회’다. 통제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작동하는 상태다. 개인이 항상 감시당하고 있으며 모든 디지털 행위가 기록되고 분석된다고 느끼게 되면, 스스로를 감시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발언을 수정하고, 민감한 주제를 회피하며, 급진적이고 비판적인 사상과 거리를 둔다. 이러한 자발적 자기 검열은 체포나 직접적 억압 없이도 좌파·진보 운동과 노동 조직을 내부에서 약화시킨다.
선언문이 요구하는 ‘인간 행동에 대한 깊은 이해’는 실제로는 집단적 정치 행동이 발생하기 전에 이를 차단하기 위한 포괄적 시스템 구축 요구다. 시위 행동을 예측하고 그것이 조직적 운동으로 발전하기 전에 해체하는 것은 오랫동안 보안 기관이 추구해 온 목표였으며, 팔란티어의 기술은 이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 선언문의 핵심 이데올로기적 장치 가운데 하나는 폐쇄적 결정론이다. “기술적 중립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AI 무기가 만들어질 것인가가 아니라 누가 만들 것인가의 문제다”, “민주주의는 도덕적 담론만으로는 유지될 수 없다”와 같은 주장들이다. 이러한 접근은 정치적 선택을 피할 수 없는 자연 법칙처럼 바꾸고, 기존 체제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를 정당한 논의 영역에서 배제하려 한다. 이는 1990년대 신자유주의가 “자본주의는 역사의 종말이다”라고 선언했을 때 사용했던 방식과 동일하다. 이제 그 논리는 안보의 언어로 돌아왔다. 선택지는 없으며, 디지털 군사화는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결정론은 현실을 중립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정치를 비워내기 위한 전략이다. 대안이 없다고 믿게 되면, 사람들은 더 이상 대안을 찾지 않게 된다. 이것이 이 언어가 지향하는 핵심 목표다.
좌파적 대안: 소유와 집단적 통제의 문제
팔란티어 선언문은 단순히 한 기술 기업의 입장을 밝힌 문서가 아니다. 그것은 진보 세력이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경고음이다. 기술의 미래를 둘러싼 투쟁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 곳에 머물러 있지 않다. 그것은 이미 전면에 등장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이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 우리는 21세기 가장 결정적인 투쟁의 장에 늦게 참여하게 된다.
근본적인 질문은 기술이 어떻게 사용되는가가 아니다. 누가 그것을 소유하고, 누가 그 목적을 결정하는가다. 기술은 디지털 독점 기업과 우파, 전쟁, 억압 프로젝트의 결합 속에 있는 한 해방의 도구가 될 수 없다. 모든 진지한 논의는 디지털 인프라의 사회적 공동 소유 필요성에서 출발해야 하며,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을 독점 엘리트가 아니라 노동 대중의 이해를 반영하는 진정한 민주적 통제 아래 두는 문제로 이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좌파, 진보 세력, 인권 운동이 기술 영역을 계급 투쟁의 중요한 전장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지적 비판은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디지털 국제주의적 협력과 공동 작업을 통해 실제적인 기술적 대안을 구축해야 한다. 독점과 검열,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운 사회 플랫폼, 모든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존중하는 검색 도구, 민주적이고 투명하게 운영되는 인공지능 시스템, 그리고 다양한 디지털 응용이 필요하다. 이러한 과제는 미래를 위한 여유 있는 실험이 아니라, 해방을 지향하는 모든 프로젝트에 있어 긴급한 전략적 필수 조건이다.
필수적 보완: 기술적 군축의 필요성
대안을 구축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동시에 이 독점 기업들의 기술적 무기를 해체하려는 조직적 운동이 병행되어야 한다.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점은 팔란티어가 예외적이거나 특이한 사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많은 기업들이 더 은밀하고 부드러운 언어로 수행하고 있는 것을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낸 사례일 뿐이다. 차이는 본질이 아니라 노골성의 정도다.
과거 노동운동이 공장과 농장에서 자본의 무장을 해제하려 했던 것처럼, 오늘날에는 치명적 알고리즘, 표적 시스템, 대규모 감시를 이러한 기업들로부터 집단적으로 빼앗아야 하는 투쟁이 필요하다.
이 투쟁은 여러 형태를 취한다. 그들의 서비스에 대한 보이콧, 정부와의 비밀 계약 폭로, 전쟁범죄 공모 혐의로 국제 법정에 경영진을 세우는 것, 그리고 공공기관이 이들 기업과의 관계를 단절하도록 압박하는 것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시스템과 맺는 모든 정부 계약은 살상과 추방 기계에 대한 직접적 자금 지원이다. 이 자금 흐름을 차단하는 것이 첫 번째 전선이다.
이 경로는 국내 입법과 국제적 차원에서 동시에 진행되지 않으면 완성될 수 없다. 국내적으로는 보안 기술 기업이 정부와의 계약을 전면적으로 공개하도록 의무화하고, 독립적인 사법적 감독 없이 인공지능을 군사적 표적 선정에 사용하는 것을 범죄화하며, 이들 기업이 공공기관과 동일한 수준의 책임을 지도록 강제하는 강력한 법률 제정이 필요하다.
국제적으로는 이러한 기업들을 국제 인권 규범 아래 두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공격을 금지하는 제네바 협약,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유엔 규범, 기업과 인권에 관한 유엔 이행 원칙이 여기에 포함된다. 전쟁 지역에서 표적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기업이 이 법적 틀 밖에서 활동하도록 허용되어서는 안 되며, 그렇게 할 경우 그 기업과 계약한 정부 역시 공동의 형사적 책임을 져야 한다. 이것은 사치스러운 개혁 요구가 아니라, 알고리즘의 비인간성에 맞서 법의 인간성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두 번째 보완: 선언문 핵심에 자리한 노동의 침묵
팔란티어 선언문에서 특히 두드러지고, 동시에 깊이 의심스러운 점은 노동자, 노동조합, 조직할 권리, 파업권에 대해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공학 엘리트’, ‘도덕적 의무’, ‘후진적 문화’를 말하는 문서 속에서, 이 알고리즘을 만들고 운영하며 동일한 감시 체제 아래 살아가는 육체 노동자와 지식 노동자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이 침묵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파시스트적 기술 프로젝트가 노동자 문제를 정면으로 다룰 수 없다는 암묵적 인정이다. 노동자들만이 조직화될 경우, 죽음의 생산 라인을 완전히 멈출 수 있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에서의 총파업, 혹은 팔란티어 내부에서조차 벌어질 수 있는 파업은 이 프로젝트가 가장 두려워하는 시나리오다. 따라서 기술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을 지지하고, 그들의 투쟁을 세계적 투쟁과 연결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형태의 저항이다.
이 기술적 투쟁은 현장에서의 대중 투쟁과 분리될 수 없다. 기술은 투쟁을 보조하는 수단이지, 그것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 권력은 여전히 정치 조직, 노동 조직, 사회운동, 그리고 전쟁터, 국경, 알고리즘 감시 아래 놓인 노동자 거주지 등에서 서로 연대하는 노동자 민중의 집단적 힘에 있다.
결론: 디지털 파시즘이라는 이름
팔란티어 선언문은 우리가 새로운 형태의 파시즘에 직면해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는 단순히 역사적 의미에서의 파시즘이 아니라, 그 본질적 의미에서의 파시즘이다. 즉 독점 자본과 공격적인 국가 권력이 결합하고, 폭력과 억압, 문명적 위계를 동원해 대중의 위협으로부터 이 결합을 보호하는 체제다. 차이가 있다면 오늘날 그 수단이 알고리즘, 빅데이터, 인공지능이라는 점이며, 이것이 과거보다 더 폐쇄적이고 저항하기 어려운 형태를 만든다.
알렉산더 카프가 자신의 세련된 사무실에서 철학적 선언문을 집필하는 동안에도, 그의 회사가 만든 알고리즘은 표적을 식별하고, 국경에서 이주민을 추적하며, 전 세계 반체제 인사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군사주의와 억압의 기계를 지원하는 작업을 계속한다. 철학과 범죄는 하나의 동전의 양면이다.
오늘날 사회 정의와 해방을 위한 투쟁은 필연적으로 기술을 이 공격적인 계급 동맹으로부터 해방시키는 투쟁을 포함한다. 이것은 기술적 문제나 추상적 윤리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철저히 정치적 문제이며, 미래와 인간 의식을 누가 통제할 것인가를 둘러싼 역사적 투쟁의 일부다. 살상과 억압 프로젝트와 결합한 독점적 소수가 통제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삶과 운명을 형성하는 도구에 대해 권력을 행사해야 하는 노동 대중이 통제할 것인가의 문제다.
<출처 및 참고자료>
첫째: 1차 자료 — 팔란티어 선언문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 — ⟪기술 공화국(The Technological Republic)⟫ 요약(공식 X 게시물, 2026년 4월)
카프(Alexander C. Karp) · 자미스카(Nicholas W. Zamiska) — ⟪기술 공화국: 하드 파워, 소프트 신념, 그리고 서구의 미래⟫ (The Technological Republic: Hard Power, Soft Belief, and the Future of the West), 크라운 커런시, 뉴욕, 2025
둘째: 선언문 관련 보도 및 분석
알자지라 영어판(Al Jazeera English) — “테크노파시즘인가? 팔란티어의 친서방 ‘선언문’이 비판을 불러일으킨 이유”, 2026년 4월 21일
[출처] Palantir Just Unmasked Itself to the World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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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즈가르 아크라위(Rezgar Akrawi)는 기술과 좌파 문제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좌파 연구자이며, 시스템 개발과 전자정부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