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오름

[인권오름] [인권으로 읽는 세상] 그들의 부당거래로 뺏긴 것들

박근혜게이트는 재벌게이트, 재벌개혁이 시작돼야

오빠는 어렸을 적 공부를 잘했다. 우등생의 부모에게 그러듯 엄마를 한번 학교에 모셔오라는 선생님의 요청(?)을 오빠는 한 번도 지키지 않았다. 엉덩이에 매를 받는 것으로 대신했다. 아주 커서야 오빠는 그 사실을 가족들에게 말했다. 가난한 부모에게 짐을 지우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오빠의 학교는 건물 증축을 한다며 학부모들로부터 노골적으로 기부금을 받는 것으로 유명했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그러지 않았다. 고등학교 진학을 위한 상담에 일하던 옷차림 그대로 빈손으로 엄마가 와도 괜찮았다. 돈을 요구하던 담임 때문에 지옥 같았던 오빠의 학창시절과 담임의 무관심 덕에 자유롭게 살 수 있었던 나의 학창시절의 차이는 ‘부당거래의 유무’다. 조직적인 부당거래는 해당 집단에 속한 사람들의 삶을 망친다.

박근혜 씨는 대통령의 지위를 이용해 미르재단과 케이스포츠 재단에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과 청와대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비서관을 앞세워 기부금(출연금) 합계 774억 원을 받아냈다. 이건 탐욕스런 대통령에게 재벌 대기업이 삥 뜯긴 것인가. 부당거래인가.

박근혜게이트는 재벌게이트

많은 사람들은 삥 뜯긴 게 아니라고 본다. 왜냐면 대기업들이 원했던 일들을 박근혜 정부가 척척 처리해줬기 때문이다. 2015년 7월 24일, 박근혜 씨는 창조경제혁신센터장 지원기업 대표들과 오찬 간담회를 연 뒤, 차례로 대기업 총수들 독대했다. 대통령과 독대한 대기업 총수는 삼성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해 LG 구본무, 현대차 정몽구, SK 최태원, CJ 손경식, 한화 김승연, 한진 조양호, 그리고 롯데 신동빈 회장 등이다. 독대 후 삼성그룹은 204억 원, 현대차그룹은 128억 원 등 백억 대의 기부금을 회장들은 ‘현금’으로 지급했다. 2주 후인 8월 6일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를 통해 '노동 개혁'을 추진한다고 입장을 밝힌다.

또한 10월 27일 437억 원의 출연 받은 다음날 미르재단이 설립되고, 그날 대통령은 전경련 숙원사업인 "경제활성화법과 노동개혁법 등 경제 관련 법안 처리를 특별히 부탁한다”고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했다. 전경련이 만든 민생구하기 입법촉구 국민운동본부 발족일인 1월 18일 판교역 가두서명대에서 대통령은 직접 서명까지 하는 퍼포먼스도 연출했다.

재벌이 대통령에게 돈을 줘가면서까지 관철시키려고 했던 노동개혁은 무엇인가. 일반해고 요건 완화나 취업규칙 변경 요건 완화, 기간제 확대, 파견업종 확대 등은 노동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됐다. 일반해고요건 완화나 취업규칙 변경 요건 완화는 고용관계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최소한 보장했던 것을 고용주 마음대로 해고 취업규칙을 바꾸며 기업을 운용하도록 한 것으로 노동자의 권리와 직장 내 민주주의를 악화시킨다. 또한 기간제 확대나 파견업종 확대는 저임금 비정규직을 확대해서 노동자들의 삶을 불안하게 하는 대신 기업의 인건비는 줄인다. 경제를 살리자는 법안은 기업의 배를 불리고 노동자를 죽이자는 것이 핵심이다.

그뿐이 아니다. 가장 많은 돈을 출연한 삼성그룹과 현대차를 보면 매우 직접적으로 재벌의 뒤를 봐주고 있었다. 삼성은 2014년 이건희 회장의 의식불명 이후 불거진 승계문제를 청와대의 조력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국민연금을 이용한 경영권 승계가 대표적이다. 삼성물산-제일모직 간의 합병에서 삼성물산 최대 주주였던 국민연금이 손해를 보는데도 합병에 찬성을 했다. 그 외에도 의료민영화와 바이오산업 문제 등을 정부가 나서주면 엄청난 부를 챙길 수 있다. 2016년 9월 바이오·헬스 등 분야의 세액공제가 확대돼 삼성은 약 1조 3000억 원의 이익을 봤다. 그러니 삼성이 승마협회를 거쳐 최순실 일가에게 35억 원을 줄만도 하다.

현대차도 비슷하다. 정부가 추진하는 파견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대법원이 판결한 현대차의 불법파견 문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2014년 한국경제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려면 단기적으로 2500억 원에서 장기적으로 6100억 원가량의 비용이 드는데 법이 개정되면 손쉽게 돈을 챙기게 된다. 또 한전 부지 매입 및 추가 개발비용 등을 기업소득환류세제를 통해 투자로 인정받으면서 약 8000억 원의 세금감면을 받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현대차가 지난 수년간 자동차부품사 노조를 파괴하기 위해 컨설팅 회사를 통해서 불법을 저질렀지만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올 1월 현대차가 부품사인 유성기업 노조를 파괴하라고 현대차 이사가 직접 지시한 이메일이 발견돼 시민사회가 고발했지만 아직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그 외에도 SK최태원 회장은 특별사면을 받았고 롯데도 수사 면제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삥을 뜯긴 게 아니라 재벌을 위해 일하라고 수고비를 준 게다.


그들의 부당거래로 뺏긴 것들

정경유착, 부당거래는 정치인과 기업인 간의 거래이므로 우리와 상관없는 남 이야기처럼 들릴 때가 있다. 하지만 그들이 오고간 거래에는 ‘노동자 시민들의 삶을 쥐어짜는 일’이 포함되고 부당거래의 피해는 오롯이 노동자와 서민이 떠안았다. 삼성의 경영권승계를 위해 국민연금이 본 손실액이 700억에서 4900억이다. 그로 인해 시민들의 노후가 불안해지게 됐다. 삼성의 무노조 신화를 지키는 불법을 정부와 검찰이 눈감아준 덕에 삼성전자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이유도 모른채 죽거나 겨우 목숨만을 건져야 했다.삼성반도체에서 일하던 223명의 사람이 병을 얻었고 76명이 죽었다.

불법파견, 노조파괴 등 현대차의 불법을 눈감아준 대가로 노동자들의 삶은 팍팍해졌다. 현대차가 사주한 노조파괴로 유성기업에서 일하던 고 한광호가 목숨을 잃었다. 아직까지 현대차는 사과도 하지 않고 정부와 검찰은 수사도 하지 않아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있다. 또한 정규직으로 채용되면 받았을 수많은 노동자의 임금은 재벌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그 결과 가계부채가 1300조나 되었고 재벌그룹의 사내유보금은 늘어만 갔다.(삼성그룹 143조 5000억 원, 현대차그룹이 101조2000억 원, LG그룹이 44조 7000억 원) 한마디로 박근혜의 도움을 받아 우리에게 올 임금이나 복지재정을 재벌이 가로챈 셈이다.

재벌들이 골목슈퍼와 빵집, 음식점, 커피숍까지 진출하며 중소영세상인들의 생계까지 위협하는데도 수수방관한 정부정책 덕에 영세상인들은 월세도 못내다가 문을 닫아야 했다. 그뿐인가. 전경련이 뒷돈을 준 어버이연합이 우리사회 여론을 왜곡하고 정부정책을 비판하지 못하도록 했다. 어버이연합은 주요 정부정책을 옹호하는 시위를 하거나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처럼 정부를 비판하는 세력에 거침없는 폭력을 벌인 집단이다. 전경련이 이들에게 돈을 준 이유가 청와대와 무관하지 않음은 청부시위 내용을 봐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11월 20일 검찰은 최순실, 정호성, 안종범 수석의 범죄사실을 담은 공소장에 대통령도 공모관계에 있다고 밝힌데 반해 재벌 대기업은 피해자로만 서술됐다. 최순실, 안종범은 직권을 남용하여 전경련 53개 회원사를 상대로 미르 재단과 케이스포츠 재단 설립 출연금 774억 원을 강제출연하도록 강요했기에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강요, 강요미수죄에 해당된다고 했지만 기업의 대가성은 언급하지 않았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안종범 등의 요구에 불응할 경우, “각종 인·허가상 어려움과 세무조사의 위험성 등 기업활동 전반에 걸쳐 직·간접적으로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을 두려웠기” 때문이라며 재벌에게 면죄부를 줬다.

기업을 위한 정치는 기업의 뒷배에서 나온 돈으로 정치인의 주머니를 채울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따라서 박근혜를 청산하려면 재벌과 대통령의 유착을 밝히고 그들을 처벌하는 내용이 포함돼야 마땅하다. 박근혜 씨가 돈의 대가로 추진했거나 추진하고 있는 반노동정책은 폐기돼야 한다. 또한 전경련 해체와 재벌개혁이 함께 진행돼야 한다. 재벌의 경영이 투명했다면, 그들이 그 많은 돈을 그것도 현금으로 뇌물을 바치기 어려웠을 것이다.

검찰이 재벌의 피해자 코스프레에 일조하자, 야당도 이를 비판하며 재벌개혁을 외치는 형국이 됐다. 더불어민주당은 올해 정기국회에서 재벌개혁을 최우선 과제로 정하고 재벌과 초고소득자를 겨냥해 법인세와 소득세 과세율을 높이는 소득세법·법인세법 개정안을 예산부수법안으로 지정해 처리하겠다고 했다. 경제민주화를 위한 상법 개정안에는 기업 총수 견제기능 강화, 소액주주의 경영 감시 활성화, 사외이사제 개편 등이 담겨 있다. 노동당도 재벌체제를 해체를 위해‘박근혜 게이트에 연루된 재벌 총수들 구속 수사와 경영권 박탈, 적은 지분으로 방대한 기업집단을 지배하는 재벌 지배구조 혁파와 경영권 통제’를 제안하고 있다.

12월 5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의 첫 청문회가 열린다. 삼성그룹 이재용 회장을 비롯한 8대 대기업 총수들이 증인으로 나온다. 이때 재벌에 왜 그 돈을 줬는지, 대가성을 밝힐 수 있도록 사회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그들의 피해자 코스프레를 벗기는 실천이 필요하다. 피해자는 노동자서민이며 재벌은 수많은 이익과 특혜를 받은 것을 대중적으로 알려야 한다. 지금도 기업총수들이 똑같은 사안으로 검찰, 국회 청문회, 특검 등으로 줄줄이 불려 다니게 되면 '기업 이미지도 나빠지고 기업활동이 위축된다'는 조사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만들고 있다. 그들은 기업이미지라는 핑계로 자신들이 한 착취와 비리를 가리려고 한다. 이걸 열심히 알리고 드러내야만 특위에서 검찰의 공소장을 벗어나는 결과를 낼 수 있다.

경제성장-기업성장 프레임에 벗어나야

11월 20일 검찰 수사결과는 박근혜게이트의 포커스를 대통령에게만 맞춰 있다. 박근헤 씨는 이게 분했는지 수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던 대통령담화를 비웃듯 수사를 거부했다. 중립적인 특검에 임하겠으며, 나를 탄핵하라면 탄핵하라고 했다. 대통령의 수사거부는 시간끌기이자, 자신감의 표출이다. 탄핵을 심판할 헌법재판소의 재판관 수도 적고, 여소야대라 할지라도 국회의원의 2/3를 얻기 쉽지 않을 거라는 계산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재벌들의 잘못보다 박근혜의 오만방자한 태도에 더 신경이 쓰이기도 한다. 하지만 손뼉은 혼자 칠 수 없는 법, 부당거래를 만들어낸 사회질서를 바꾸지 않는 한 또 다른 정치권력자에 의한 기업과 정치인의 뒷거래는 이어질 수밖에 없다. 더 정신 차리고 박근혜와 그 일당들이 저지른 잘못을 가려내고 그들이 놀았던 정치경제구조도 바꿔야 한다.

우리들의 투쟁이 보수정치세력 내의 권력교체로 그치지 않게 하려면, 지금부터 재벌의 힘을 어떻게 해체하고 노동자민중의 힘을 강화시킬 것인지, 정치와 경제제도를 포함한 국가시스템의 구체적 변화방향에 대해서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 그리고 박정희 개발독재가 만든 경제성장의 신화와 주술에서도 벗어나야한다. 박정희의 유산은 단지 독재정치에 한정되지 않는다. 독재정치가 만든 재벌(경제권력)을 깨야 한다. 더 이상 ‘경제성장-기업성장’ 프레임에 갇혀 그들의 불법과 부정의와 비리를 눈감아선 안 된다. 그들이 만든 신화를 깨고 ‘노동자가 살만하지 않은 기업은 필요 없다’는 민중의 요구를 분명히 해야 한다. 11월 30일 민주노총의 총파업이 그 시작이 됐으면 한다.



덧붙이는 말

명숙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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