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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치'를 바라보는 계급적 관점

최경희 | 노동자의 힘 교육팀장

민주화 이행 이후 '제도화된 정치'가 사회구성의 주요한 메카니즘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실정에서, 앞으로 한국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법정치'가 핵심이 될 것이라고 정치학계는 말하고 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 내에서 '법정치'가 논란이 된 배경에는 국내·외적으로 몇 가지 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국제 - 미국, 민주주의가 아닌 공화주의

국제적으로는 2000년 2004년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를 둘러싼 논의에서 비롯된다. 두 번의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포착되는 것은 미국 유권자의 다수 득표자가 대통령이 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점이다. 이는 미국의 독특한 선거법인 '선거인단' 제도 때문이다. 이것은 더 이상 미국이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는 공공연한 주장을 가능하게 해주고 있다. 그렇지만 시끄러운 '선거인단' 제도는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제도를 '미국의 헌법정신'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독립국가가 되면서 만들어진 미국헌법은 근 250여 년 동안 기본 골자는 거의 바뀌지 않았다. 물론 미국헌법 내에는 수정헌법 조항들이 있다. 하지만 수정헌법은 미국헌법의 기본정신을 훼손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이다. 대표성을 강조하는 공화주의 원리와 인민의 이해를 직접 실현한다는 민주주의 원리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미국헌법은 '민주주의 원리'에 기초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미국헌법의 구성주체와 구성원리에서 나타난다. 즉 미국헌법은 '민주주의 원리'가 아니라 '대표성의 원리 즉, 공화주의 원리'에 기초하고 있다. 미국헌법은 제정 당시 13개 주의 대표성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이후 주의 대표성을 강조하는 원리로 확대- 13개 주를 대표하는 헌법 제정자들은 당시 신흥 산업 및 상업부르주아, 지주, 귀족 등등의 이해를 대변하는 계급적 특징을 갖고 있었다. 2004년 부시가 재선되는 과정에서 미국의 진보적 유권자들은 참담함을 느꼈을 것이고, 선거법의 정치적 효과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만, 학자들은 대체로 미국헌법은 혁명적 상황이 도래하지 않는 한 거의 바뀔 가능성이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국내 - 헌법재판소의 정치적 위력 상승 중

국내적으로는 2004년에 등장한 헌법재판소의 정치적 위력이다. 헌법재판소의 법적 판단은 이제 상당한 정치적 효과를 갖게 되었다. 2004년 대통령 탄핵과 수도 이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을 내렸고, 최근에는 사법부가 여중생 사망 추모 집회에 대해서도 위헌판결을 내렸다. (앞으로 국회 앞 시위도 위헌판결을 내릴지 모른다. 국회의 고유 권한을 침해하는 불법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이러한 상황에 대한 인식은 두 가지로 나타난다. 첫째, 드디어 한국 민주주의가 삼권분립을 현실화하였다는 주장이다. 대체로 법학계의 주장일 것이다. 형식적인 사법부, 입법부, 행정부 간의 견제와 균형이 실질적인 견제와 균형의 관계로 되면서 법적 판단이 의미를 갖게 되었다는 견해이다. 대체로 '법'을 강조하는 보수적인 법학자, 정치학자, 정치가 등이 환호할 것이이며, 앞으로 이 입장은 더 강화될 것이다. 국회를 구성하는 다수의 자본가 대변인으로서 국회의원들은 특별한 상황이 있지 않는 한 '법'을 강조하는 논리를 반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갖는 사회적 효과는 엄청날 것이다. '집시법', '노사관계법'이 개악되고 많은 법들이 강자 및 자본의 이해를 위해 제정 및 개정되는 과정에서 '법 논리'의 강조는 사회구성원들이 더 이상 딴 생각, 딴 행동을 할 수 없도록 만드는 지대한 효과를 갖게 될 것이다.

둘째, 법적 판단이 갖는 정치적 효과가 '민주주의를 훼손한다'는 주장이다. 어떤 정치학자들은 기본적으로 법 자체보다는 '법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해 즉, 국회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그것은 국회의원이 인민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것을 전제로, 이해를 대변하는 유일한 조직 정당과 정당들 간의 '정당정치' 및 법안을 제정 및 개정하는 투쟁을 벌이는 '의회정치'가 근대 민주주의 체제 내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직접적으로는 법적 판단의 정치적 효과는 민주주의의 원리를 훼손한다는 주장에 민주적 대표성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다. 대통령제 권력구조 하에서 대통령은 국민의 직접선거를 통해서 뽑은 사람이기 때문에 가장 인민의 대표성을 획득한 주체인데, 행정부와 입법부의 갈등- 더 정확히 말하면 행정부와 야당의 갈등-을 법적 판단으로 해소하는 것이 '정치'를 훼손할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훼손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근대 민주주의 체제의 구성원리로서 민주적 대표성을 반영하지 않는 사법부보다는 입법부, 또는 대통령제 하에서 대통령이 오히려 대표성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정당정치 및 의회정치를 더 강조하는 것이다.

제도권 내에 '법정치'라고 하는 것은 '의회정당 정치가 법 구성에 어떠한 역할과 효과를 가질 것인가', '법적 판단이 정치세력 간 구도와 변형에 어떠한 역할과 효과를 끼칠 것인가' 하는 것으로, '법정치'는 앞으로 현실에 실질적인 영향을 끼치면서 진행될 것이다. 그러나 첫 번째 주장이든 두 번째 주장이든 부르주아 민주주의 내에서 법이 갖는 의미와 한계를 논적 대상으로 설정하고 있지 않다는 기본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 당연히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착취관계를 1인 1표라는 형식적 평등의 정치적 구성원리로 은폐하여 유지하는 근대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가 본질이지만, 이러한 관계를 대체하는 화법이 있다. 이 화법 또는 논리는 경제적 소유관계를 넘어서 전개되고 있다. 즉,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어디에 기인하는 것인가? 법이다. 법은 어디에 기인하는가? 민주주의이다."라는 아무 의미 없는 말들을 동어 반복으로 주장하면서 '민주주의와 법'을 동일시하고, 강력한 지배이데올로기 중의 하나로 작용한다.

법 관계의 핵심은 계급적 관계다

이것은 금융 및 화폐시장을 생산과 세계시장과의 관계 속에서 파악하지 못하고, 독립된 하나의 현상으로 파악하는 전도된 인식과도 맞물려 있다. 과학적 인식은 화폐 거래가 상품 거래에서 분리되자, 화폐 거래는 독자적인 발전을 하게 되고, 그 자신의 본성에 의해 결정되는 특수한 법칙들과 독특한 국면들을 갖게 된다. 결국 화폐 거래는 전체로서의 자신을 지배하는 생산의 일부에 대한 직접적 지배권을 획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화폐거래가 생산거래로부터 자립화되면서, 전체로서 자신을 지배하는 생산의 일부에 대한 직접적 효과도 갖게 된다. 법률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직업적 법률가들-요즈음은 국회의원들이 아니겠는가-이 자립적 영역을 차지하게 되면서, 법률의 영역이 사회적 생산활동-산업, 상업-에 크게 의존함에도 불구하고 자립화된 법률영역은 생산활동에 특수한 반작용을 한다. 현대국가에서 법은 일반적인 경제적 상태에 조응해야 하고 그것의 표현이어야 할 뿐만 아니라 내적 모순으로 말미암아 자기 자신과 충동하는 일이 없는 자기 완결적인 표현이어야 한다. 그래서 이를 달성하려다 보면 경제적 관계들의 충실한 반영을 더욱더 파괴하게 되면서 나타난다.

'법 발전'의 핵심은 처음에는 경제적 관계를 법률적 원칙으로 직접 번역하는 데서 나타나는 모순들을 제거하고 조화로운 법체계를 세우려고 시도하다가 이후의 경제적 발전과 영향과 강제력 때문에, 이 체계가 끊임없이 다시 파괴되고 새로운 모순으로 끌려 들어간다. 따라서 법 관계의 핵심은 경제적 관계이고, 계급적 관계인 것이지, 대표성 또는 민주주의만의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도 법을 둘러싼 투쟁은 전개될 것이다. 이에 따라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단계에서 법을 둘러싼 계급투쟁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앞에서도 지적한 것처럼 현대국가의 법은 일반적인 경제적 상태에 조응해야 하고, 그 경제적 관계의 내적 모순으로 말미암아 자기 자신과 충동하는 일이 없는 자기 완결적인 표현이어야 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하지만 현 단계 자본주의 발전 단계에서 법은 자본주의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그 모순을 자기 완결적 상태로 표현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지적 재산권'을 강조하는 법 논리가 현실의 사회적 발전과 얼마나 위배되는가를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고도의 자본주의적 생산력의 발달 그 자체는 많은 상품들을 무료 또는 적은 비용으로 쓸 수 있게 구조적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에, 독점자본의 이해를 위한 법적 논리는 현재의 사회발전과 모순적이기 때문이다. 실업, 빈곤, 노동유연화 문제도 마찬가지다. 자본주의적 생산력의 발달과 생산관계의 모순이 증폭되는 현상들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으며, 더 이상 자본주의적 정치, 자본주의적 법, 자본주의적 상부구조로 이 모순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 징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법'을 둘러싼 문제들이 그러한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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