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힘 기관지 격주간노동자의힘

군비증강의 길로 나아가는 동북아 정세

6자 회담 개최돼도, 전망은 밝지 않다.

최근 들어 북미관계가 호전되는 기미가 있다. 5월 13일 북한과 미국은 유엔 대표부 대화채널을 재개했다. 미 대통령 부시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미스터 김정일'로 호칭했으며 북핵 문제를 평화적이고 외교적으로 해결할 것이라는 점, 남북관계 진전이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 등을 6월 11일 한미간 정상회담에서 밝히기도 했다. 한편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은 6월 17일 남한의 정동영 통일부장관과 면담에서, '한반도 비핵화 선언은 유효하며 이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고 밝혔으며, '북한은 6자회담을 한번도 포기한 적이 없고 거부한 적도 없고, 미국이 우리를 업수이 보기 때문에 맞서 보려고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덧붙여 미국이 북한을 인정하고 존중하려는 뜻이 확고하다면 7월중에라도 6자회담에 나올 수 있다고 했다. 또한 김정일은 부시를 '각하'라고 칭하면서 그를 나쁘게 생각할 이유가 없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여기까지 본다면, 이른 시일 안에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4차 6자회담이 개최될 전망이 높아졌다. 또한 6.15 남북공동선언 5주년 기념행사를 통해서 남북관계의 전망도 대단히 밝아졌다. 그렇다면, 지난 수년 간 끌어오면서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켜 왔던 북미관계가 개선되고 동북아시아에 평화무드가 감돌 것인가. 상황은 봄날로 가는 듯하지만, 동북아를 둘러싼 열강들의 속내를 보자면 대답은 '아니올시다'이다.

그 까닭은 지난 6월 11일 한미정상회담에서 비록 부시가 '미스터 김정일' 발언을 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미국의 기존 입장만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미국의 기존 입장은 이른바 '리비아식 해법'이다. 즉,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되돌이킬 수 없도록 북한의 핵무기를 우선 폐기한 뒤에 다자간 안전보장과 경제지원, 국교정상화 등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북한입장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며, 북한은 양자 동시 선언과 행동에 의한 일괄타결을 요구하고 있다.

이번 회담에서 남한 정부는 북핵 문제 해법에 대해서 미국의 기존 입장을 용인했으며 외교적 노력이 소진했을 경우에 미국의 결정에 따른다는 압박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 정세에서 '외교적, 평화적' 노력을 다한다는 원칙을 확인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을 따름이다. 따라서 설사 북한이 6자회담에 참가하여 회담이 재개된다고 하더라도, 북한이 받아들일만한 카드를 미국이 제시하지 않는 이상 회담 결과는 그다지 밝은 전망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미국은 절대로 그와 같은 카드를 제시하지 않을 것이고, 중국을 압박하여 북한이 백기투항할 것을 끊임 없이 요구할 것이다. 지금의 유화 국면은 미국이 후속조치를 취할 명분을 쌓는 것에 불과하다.

한미군사동맹이 있는 한 평화란 요원하다

6.11회담에서 부시의 관심사는 당장의 북핵 해법이라기보다 주한미군을 지역 동맹군화하는 '전략적 유연성'과 '개념계획 5029'의 발전이었다. 부시는 그간 추진해온 '전략적 유연성'에 기초한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와 북한 체제 위기시에 미군이 개입하는 개념계획 5029를 구체적인 작전계획을 발전시키는 데 노무현의 확답을 받고자 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도되지는 않았지만, 노무현은 결국 북핵 해법에 대해서는 기존 미국 입장만을 듣고서 위 두 가지 사안을 승인하고 구체적인 진행을 실무협상팀에게 넘기고 돌아왔다고 볼 수밖에 없다. 노무현이 말한 '한두 가지 남은 문제'가 바로 이 두 가지이다. 그러나 미국의 입장에서 이것은 남은 문제가 아니라 해결된 문제라고 해석했다.

부시는 한미동맹이 아주 굳건하고 전략적이고 강하다고 했다. 그것은 한국 정부가 미군의 동아시아 전략을 승인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노무현은 부시를 만나기 전에는 '동북아 균형자' 역할을 하게 해 달라고 했지만, 이제는 미국이야말로 진정한 동북아 균형자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승인하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노무현의 '동북아 균형자론'을 두고서 자주적 외교노선의 천명이니, 한미동맹 관계의 훼손이니 논란이 많았지만, 이제 그것은 지나간 해프닝에 불과하게 되었다. 애초부터 미국은 '균형자론'이 한미동맹에 근거한 것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노무현 정권으로 하여금 '전략적 유연성'과 '5029', 그리고 '외교적 노력의 소진 이후의 방안' 등에 대해 원하는 답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짙은 혐의를 두고 있는 것처럼 대했다. 노무현의 균형자론은 자주적 외교노선도 아니고 한미동맹을 훼손하는 것도 아니다. 쉽게 말해서, 한국이 중국과 일본의 대립 갈등 사이에서 균형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미국이 도와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입장에서 볼 때, 미일 동맹의 강화를 통한 일본의 군국주의화와 주한미군의 지역동맹군화를 통해서 대만해협 양안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한국이 균형자 역할을 하기는커녕 지역 분쟁의 중심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쉽게 용인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한미동맹이 굳건한 만큼 한국의 처지도 인정해달라는 것이다. 미국의 계획한 대로 주한미군을 재편하되 제발 주한미군만큼은 양안문제에 개입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것, 그리고 북한에 대한 선제 공격만큼은 하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노무현은 그 대가로 미군이 요구하는 한국군의 전력 증강 작업을 약속했다. '협력적 자주국방'의 실내용이 미군으로부터 10개의 작전권을 순차적으로 돌려 받으면서 그것에 필요한 무기를 사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은 미국으로부터 확답을 받지 못하고 돌아왔다. 한두 가지 찝찝한 구석을 남기고 실무협상팀에 기대를 거는 수밖에는 달리 방도가 없어 보인다. 그 사이에 미군의 동북아 재배치는 차곡차곡 진행되고 있다. 괌으로 미군의 전쟁물자가 속속 도착하고 있고, 패트리어트와 스텔스기는 광주와 군산에 이미 배치되었다. 남은 문제는 평택이다. 평택으로 주한 미군사령부와 주력부대의 재배치가 완료된다면, 미국은 태평양사령부-주일미군-주한미군으로 이어지는 동북아 주둔 미군의 지역 동맹군화가 거의 완성되는 셈이다. 이렇게 된다면, 노무현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주한미군의 대만해협 출격준비는 이미 완료되고 만다.

상황이 이렇다면, 북핵 문제가 당장 해법을 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설사 해법이 있어서 북미간에 어느 정도 협상이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동북아시아의 긴장을 결코 완화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현재 미국을 중심으로 한 미일, 한미 동맹의 재편과 미국의 동북아 패권 전략이 어디까지나 군사적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고, 미국의 입장에서는 오직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악의 근본 축 미제국주의와 동북아 3국의 중화주의, 군국주의, 민족주의

냉전체제가 와해되고 본격적인 자본독주의 시대인 신자유주의 지구화 시대에서 제국주의간의 갈등과 경쟁의 양상은 심화된다. 지구화는 세계 각 지역의 블록화를 낳고 블록 내부의 주도권과 블록간 대립을 낳는다. 여기서 미제국주의는 유럽의 독불 제국주의를 겨냥하여 미영 동맹을 구축하였고 대테러 전쟁을 명분으로 아프간-이라크를 침공함으로써 독불 제국주의를 견제해왔다.

한편, 동아시아에서는 최대 경쟁국이 될 중국을 봉쇄하기 위한 전략을 미일 동맹을 통해 전개하고 있다. 북핵문제는 미국의 군사적 세계재편전략의 필요에 의해서 제기된 것이다. 미국은 북핵을 빌미로 북한을 봉쇄하고 압박함으로써 미일 동맹에 기초한 군사적 동맹을 굳건히 하고 중국을 견제하고자 한다. 또한 실제로 북한정권을 무너뜨리면서 북한을 자신의 지배하에 둠으로써 중국을 턱밑에까지 압박하고자 하는 노림수 또한 가지고 있다. 따라서 동북아시아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패권을 관철시키려는 미제국주의가 현 정세의 악의 축이며 전쟁위기의 주범이다.

유럽과 마찬가지로 동북아시아에서도 경제공동체 건설을 위한 구상과 주도권 다툼이 진행되고 있다. 대표적인 두 나라는 중국과 일본이다. 두 국가는 역사적으로 오랜 기간 동안 동아시아 패권을 두고서 충돌해왔다. 최근에는 일본의 과거사 왜곡, 신사참배, 영토분쟁으로 갈등을 빚고 있다. 중국은 자신의 주도하에 아세안을 재편하고자 하며 북한을 시장 사회주의로 전환시켜 한반도에 영향력을 유지하고자 한다. 미국을 등에 업은 일본은 북한을 신자유주의 진영으로 유도 또는 흡수하여 한일 해저-남북 종단-시베리아 횡단-유럽에 이르는 철도를 통해서 섬나라의 한계를 극복함과 동시에 동북아 패권을 확보하고자 한다.

중국은 서남, 서북, 동북공정을 통해 소수민족을 안정적으로 포섭하면서 다민족 통일국가를 완성하는 것과 하나의 중국 노선을 철저히 견지하여 대만과의 통일 수년 내에 달성하는 것을 주요한 목표로 삼고 있다. 중국은 이 과정에서 혹시라도 겪게 될 대만과의 무력충돌과 미국의 개입에 대비하여 꾸준히 군비를 증강하고 있다. 또한 일본과의 각종 분쟁에서 중국은 직접 정부가 나서지 않고 아래로부터 대중 시위를 묵인·방조하는 방식으로 대일본 감정을 통한 중화주의를 강화하고 있다. 거꾸로 신자유주의 개혁·개방으로 인한 자국내 반정부 시위는 철저하게 탄압하고 있다.

한편 일본은 동아시아 구상에 미국을 포함시킬 것을 주장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미국은 일본을 통해 동아시아 패권을 관철시키기 위해 갖가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본은 이번 기회에 경제력에 버금가는 정치군사적 권한을 온전히 행사하는 정상국가로 나서길 강력히 원한다. 일본이 미국의 반테러 전쟁을 지원하는 '미일동맹의 세계화'를 약속한 대신 미국은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과 동북아지역 중심국가로 도약할 것을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 일본은 자국의 군국주의 부활을 주창하는 제 세력이 정국의 주도권을 잡아야 하는 것이며, 그것의 가장 유력한 방법은 중국과 한국의 대일본 감정을 자극함으로써 역으로 일본 내부를 무장하는 것이다. 일본은 올 11월 평화헌법을 개정하여 자위대가 정상(?) 군대로서 기능을 하게 될 것이며, 이로써 동북아의 급속한 군비 증강이 예상된다.

최근 한국은 독도문제와 일본의 과거사 왜곡문제로 전국이 민족적 공분에 휩싸였다. 그것은 외교전쟁까지 불사한다는 노무현의 발언으로 극에 달했으며, 이어서 대일본 독트린으로 노무현 정권의 지지도는 급속하게 올라갔다. 이런 현상은 한국에서 민족주의를 부추기는 양상으로 나아가고 있다. 젊은 힙합그룹이 신독립군가를 부르면서 옛 독립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독도는 우리 땅'에 이어 '대마도도 우리 땅'이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이러한 행보에는 그간 좌우가 없다시피 할 정도로 격화되기도 했으며, 특히 대일본 관계에서 우익세력의 준동이 부쩍 늘고 있다. 이로써 노무현 정권은 한미군사동맹에 기초한 '강력한 군대'를 보유할 민족주의적 명분을 획득한 셈이다.

반제·반전 투쟁, 평택에서 시작하자!

현재까지의 양상은 적어도 미국이 의도한 대로 흘러가고 있다. 북핵문제가 평화적이고 외교적으로 풀리더라도 마찬가지다. 중화주의를 내세운 중국의 군비증강, 일본의 군국주의를 통한 군비증강, 협력적 자주국방과 민족주의를 내세운 한국의 군비증강 따위가 엎쳐져서 동북아는 북핵 문제의 양상과 상관없이 군비증강과 긴장 격화의 길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군국주의, 중국의 중화주의, 한국의 민족주의의 부활 또는 기승으로 인해 3국은 급속하게 우경화되거나 될 공산이 높아졌다. 각 국의 지배계급은 자국의 계급투쟁에서 상당히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게 되었다. 중국의 경우 자본주의 개혁 개방 정책에서 드러난 부작용에 저항하는 크고 작은 시위를 큰 무리 없이 진압할 명분을 갖추게 되었다. 한국에서도 '국민통합' 이데올로기에 민족주의 이데올로기까지 덧붙여 신자유주의 공세를 강화하고 저항을 무력화하기 유리한 조건을 창출하고 있다. 이로써 한중일 3국의 긴장격화는 자국 내부의 계급투쟁을 무력화하고 사회를 전반적으로 우경화하는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다.

현재 동북아 정세의 격화는 신자유주의 블록화 과정에서 지역 패권을 둘러싼 미일 제국주의 동맹과 중화 제국주의 간의 갈등의 표출이다. 여기서 군사적 긴장을 끊임없이 조장하는 미제국주의의 군사적 재배치 계획을 저지하는 것이 노동자·민중운동 진영의 주요한 투쟁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 또한 입으로는 평화 운운하면서 실제로는 한미군사동맹에 기대어 한반도의 군비증강에 나서고 있는 노무현 정권에 대한 반대를 분명히 해야 한다. 민족주의와 시민운동의 코드에 갇혀 노무현 정권에 환상을 갖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따라서 계급적 좌파 진영은 반제·반전의 기치를 걸고 현재 벌어지고 있는 투쟁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 특히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 투쟁은 이제 동아시아 긴장완화냐 격화냐를 가늠하는 가장 주요한 시금석이다.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송석현 | 노동자의 힘 회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