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의 주간지 사회와노동

박근혜의 경제성장 모델은 성공할 것인가

박근혜 정부의 출범에 부쳐

헌정 이후 최초의 여성 대통령, 개헌 이후 최초의 과반 득표 대통령 등의 수식어 속에 이명박 정부를 계승하는 박근혜 정부가 출범했다.
세계적 경제위기, 사회저변의 통합력 해체, 동북아 정세 불안이라는 조건 속에서 출범한 새 정부는, ‘지속가능한 발전과 사회대통합’을 위해 국정운영 기조를 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정부는 ‘국민행복, 희망의 새 시대’라는 국정비전에 따라 일자리 중심의 창조경제, 맞춤형 고용·복지, 창의교육과 문화가 있는 삶, 안전과 통합의 사회, 행복한 통일시대의 기반구축 등의 국정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이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아무래도 ‘일자리 중심의 창조경제’론이다. 이는 박근혜 정부 출범의 일등공신이라 할 만한 ‘경제 민주화’ 공약 중 경제정책에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론

창조경제론은 ▲창조경제 생태계 조성 ▲일자리 창출을 위한 성장동력 강화 ▲중소기업의 창조경제 주역화 ▲창의와 혁신을 통한 과학기술 발전 ▲원칙이 바로선 시장경제 질서 확립 ▲성장을 뒷받침하는 경제 운영 등의 전략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수위는 한국경제가 ‘산업화의 결과 그 규모가 선진국 수준으로 커졌으나 개인의 삶의 질이 경시되어 국민의 행복수준은 낮은 상황’으로 분석한다. 따라서 경제성장 모델을 ‘국가 전체의 총량적 성장에서 국민 중심의 성장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좀 더 자세히 살피면 ▲선진국 추격형 성장 방식에서 세계시장 선도형 성장으로 ▲노동 자본 등 투입 중심의 양적 성장에서 생산성 중심의 질적 발전으로 ▲수출-내수산업, 제조업-서비스업, 대기업-중소기업의 불균형 성장에서 취약부문 생산성 제고를 통한 부문 간 균형 성장으로 ▲원칙이 무너진 자본주의에서 원칙이 바로 선 자본주의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일자리 중심의 창조경제론’은 기존의 수출-재벌 중심 성장전략의 일정한 조정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수출-재벌 중심의 세계화를 통해 성장한 한국경제가 종종 내수·수출 균형성장으로 표현되는 내수-중소기업 중심의 성장전략을 추구할 정책적 여지는 대단히 좁다.

제조업 중심의 성장 모델 전환?

사실 내수·수출 균형성장은 한국경제의 사활적 과제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한국경제는 높은 무역의존도와 취약한 내수로 말미암아 외부적 요인에 취약하다(2010년 102%, 2011년 110%에 달하는 한국의 무역의존도는 G20 중 1위인 반면 내수는 17위 수준이다). 단적으로, 최근 경제성장률 하락은 세계 경제위기로 수출이 부진에 빠진 상황에서 내수마저 버팀목이 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경제학자들의 중론이다.
그런데 내수·수출 균형성장은 흔히 오해하듯이 단순히 내수 비중의 확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수출의 고부가가치화를 통해 소득유발 효과를 높여 수출과 내수 간의 선순환 구조를 형성하자는 것이다. 즉 수출호조→소득확대→소비진작→투자확대의 선순환 말이다.
이는 제조업 중심 수출 구조를 탈피하여 서비스업을 선진화하자는 논리로 연결된다. 한국경제는 1990년대 이후 서비스업의 비중이 상승하는 가운데 소득불균형이 확대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제조업 성장에 따른 고용파급 효과가 과거에 비해 둔화하면서 서비스업에서 고용이 확대되고는 있지만, 서비스업이 제조업 대비 노동생산성이 낮고, 서비스업 내 업종간 현저한 노동생산성 및 임금 격차 등이 지속되고 있는 데 기인한 것이다. 따라서 향후 소득분배 개선을 위해서는 서비스시장 개방을 통한 자본투자 확대,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사업성 및 기술평가 위주의 금융활성화 등의 조치를 통한 노동생산성 향상이 필수적이라는 논리다.
이처럼 서비스산업 선진화는 외국인투자 유치를 근간으로 한다는 점에서 곧 FTA와 같은 금융·서비스개방 전략과 긴밀히 연관된다. 아울러 수익성 있는 네트워크산업이나 보건의료와 같은 사회서비스를 ‘신성장동력’으로 간주하며 민영화를 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서비스산업 내부의 위계화는 고용형태의 변화를 초래하여 파트타임, 기간제, 교대제, 임시직 등 불안전 고용의 증가를 초래할 것이다.

수출 중심의 성장 모델 전환?

궁극적으로 ‘소득확대-소비증가-고용창출-인적자본축적-지속성장-소득확대’의 선순환으로 이어지는 내수·수출 균형성장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가계소득의 증대가 필수 요건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990년 이후 한국의 가계소득은 국민총소득(GNI)에 비해 상대적으로 증가세가 뚜렷하게 둔화된 반면 기업소득은 GNI보다 높은 증가세를 나타내고 있다. 즉, 임금 증가율이 기업영업이익 증가율보다 낮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1997-98년 위기 이후 한국경제의 성장을 주도한 수출·제조업의 고용흡수력이 낮은 데 주로 기인한 것이다. 또한 도소매, 음식숙박 등 소규모 자영업의 구조적 침체로 이들의 영업이익이 낮은 증가에 그치는 데다 가계부채의 증가로 지급이자가 늘어나 순이자소득(수취이자-지급이자)이 감소한 것도 주요한 요인이다. 따라서 가계소득 증가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양질의 고용과 임금분배율의 개선이 필요하다.
그런데 한국경제는 평가절하(고환율)와 함께 저임금을 수출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주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삼성전자·현대기아차와 같은 재벌을 정점으로 수직적으로 위계화된 하청계열구조 속에서 저임금·장시간·고강도 노동이 구조화되어 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정부는 정리해고·비정규직과 같은 노동유연화 법·제도와 손배가압류·타임오프·복수노조창구단일화와 같은 노조탄압 법·제도를 강력히 밀어붙였다.
더욱이 한국경제는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를 거치며 ‘FTA 글로벌 네트워크’를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FTA 전략은 박근혜 정부에서도 계속 추진될 것이다. 무역과 투자의 자유화를 근간으로 하는 FTA는 각국 노동자들의 ‘바닥을 향한 저임금 경쟁’을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경제위기 시기 선진국의 완화적 통화정책에 따라 환율이 하락하여 수출경쟁력이 악화하고 선진국 경제위기로 중기적으로도 수출 전망이 불투명해진 상황에서 수출-재벌이 가격경쟁력과 직결되는 임금비용 상승을 순순히 용인할리는 만무하다.
특히 경제가 계속 악화하는 상황에서 정부는 국내총생산(GDP)의 1/4 이상을 담당하는 삼성전자·현대차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창조경제론의 주요 항목으로 제기된 ‘중소기업의 창조경제 주역화’나 ‘원칙이 바로선 시장경제 질서 확립’ 정책의 경우 극히 일부 상징적 조치에 국한될 것이 분명하다.
무엇보다 눈여겨봐야 할 점은 박근혜 정부가 ‘고용률 제고를 위한 유연안전성’과 ‘민주노총 배제’를 기조로 하는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박근혜 정부는 대자본의 지원을 등에 업고 강력한 군검경을 앞세워 ‘불법 투쟁 엄단’을 주문처럼 읊조리면서 민주노조 운동을 공격할 것이다.

노동자 단결 없이 변화도 없다

박근혜 정부는 작년 경제위기와 민생위기라는 조건에서 정권 재창출을 위해 재벌개혁과 복지강화와 같은 ‘경제 민주화’를 공약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박근혜 정부의 ‘경제 민주화’는 한낱 공문구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세계 경제위기의 장기 심화라는 조건 속에서 수출-재벌 중심의 세계화에 종속된 박근혜 정부의 위기관리 전략은 이내 모순을 드러낼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정책의 모순이 자동적으로 정치적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위기관리 전략은 기본적으로 조직-노동에 대한 배제를 전제로 하는 것인데, 현재 민주노조 운동의 실력과 기세가 땅바닥에 떨어져 있어 제대로 된 저항과 투쟁을 펼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시,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경제위기 하에서 더욱 견고해지는 수출-재벌 체제, 즉 원하청체계 하 저임금·장시간·고강도 노동의 악순환을 바꿔내기 위해서, 민주노조 운동은 연대임금·연대고용 등 노동자 단결과 미조직·비정규직 조직화를 위해 온 힘을 쏟아야 한다. 이것이 이내 모순을 드러낼 박근혜 정부에 맞서 싸우기 위한 노동자 운동의 기본 과제이다.


(이 기사는 정세보고서, 「박근혜 정부 전망과 사회운동의 과제」(2013.2.25.) 일부를 요약, 재구성한 것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보고서를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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