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의 주간지 사회와노동

올 겨울엔 죽지 말자

우체국노동자의 죽음, 우정사업본부가 책임져라

행복배달 전령사, 집배원이 아프다

우리에게 행복한 소식을 전해주는 집배원에게 지난 11월은 유독 잔인한 한 달이었다. 11월 18일 공주유구우체국의 故오00씨(상시집배원, 31세)가 배달 중 심근경색으로 사망했고, 24일 용인송전우체국의 故김00씨(집배원, 46세)는 배달 중 오토바이 사고로 세상을 등졌다. 이어서 27일에는 당진우체국에서 故이00씨(계리원, 54세)도 업무 중 갑자기 쓰러진 후 결국 사망했다. 불과 2주 만에 이 모든 일들이 벌어졌다.
하지만 이는 예견된 일이기도 했다. 11월은 김장철・수확시기 등이 겹쳐, 집배원들이 특별소통기에 준하는 장시간・고강도 노동을 감내해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특별소통기 집배원들의 노동시간은 하루 13~15시간에 달한다. 최근 유명을 달리한 두 명의 집배원 역시 과도한 시간외근로와 배달물량으로 인해 고통받아왔다. 故오00 집배원은 최근 업무량 증가로 인해 피로를 계속해서 호소했고, 故김00 집배원 역시 사고가 발생하기 전까지 밤 10시가 넘도록 일을 해왔다. 한편 故 이00 계리원은 고객을 응대하는 업무로 인한 감정노동으로 직무스트레스를 심각하게 받고 있었다.

“폭주기에 많은 집배원들이 7시 전에 출근해요. 일이 많아서 일찍 출근하는 것인데, 원래 출근시간 보다 일찍 나와서 발생한 안전사고는 본인책임이라고 우정사업본부는 나 몰라라 해요. 근데 일찍 나오지 않으면 밤까지 일해야 하니까 아침에라도 나오는거죠.”

“특별소통기간에는 주말근무도 해요. 토요일은 택배가 많거든요. 이때는 시간이 없어요. 다 끝낼 때까지 해야 하니까, 일요일에도 9-10시간 일해요. 근데 임금은 정해진 시간만큼만 나와요. 8시간만 주는데, 그 시간동안 내가 일을 다 못하니까 1-2시간 먼저 나와서, 공짜로 일하는 거죠. 토요일에도 8시간만 돈 주는데 그걸로 부족하니까 미리 나와서 더 일하는 거예요.”

‘죽음’의 상황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다른 집배원들도 쓰러지기 일보직전이다. 집배원은 주간 노동시간이 평균 64.6시간에 달하며, 배달 물량이 많은 폭주기(한 달 중 열흘 가량)에는 70시간, 설·추석 등 특별기에는 86시간까지 늘어나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간 평균 노동시간을 추정할 경우 3,000시간을 훨씬 넘는 장시간노동) 긴 노동시간과 높은 노동강도로 인해 뇌졸중, 심근경색 등 뇌심혈관계질환의 위협에 노출된 고위험군일 뿐 아니라 목, 어깨, 팔・팔꿈치, 손・손목・손가락, 허리, 다리・무릎 등 부위를 막론하고 심각한 근골격계질환을 앓고 있다.

안일한 우정사업본부, 집배원 두 번 죽인다

  집배원노동자 공무상요양 현황

집배원들이 아플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열악한 노동조건에 있다. 집배원노동자의 재해자 규모는 매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재해율은 2.19로 전체 재해율의 3.7배에 달한다.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은 ‘물량은 쏟아지는데, 사람은 부족’한 데 있다. 이러한 고충을 알고 있다며 우정사업본부는 2012년 1,900명 인력충원을 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아직까지 전혀 이행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우정사업본부는 이번 사망 사고들에 대해 ‘과로사인지 모르는 상황’이라며 책임회피에만 골몰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 집배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이 사회적 이슈가 되자, ‘행복배달 빨간 자전거’ 사업을 대대적으로 시행하겠다며 물타기에 나섰다. ‘행복배달 빨간 자전거’ 사업은 집배원이 우편물을 배달하면서 독거노인 등의 생활상태, 주민불편·위험사항 등을 지자체에 제보하고 거동 불편인에게 민원서류를 배달하는 등 집배원을 활용한 농어촌 지역 민원·돌봄 서비스를 말한다. 이는 우정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집배원들의 근무환경을 안전하게 구축하기는 것과 전혀 관계가 없다. 원래 집배원들이 하던 일들을 복지사업으로 포장해 인건비하나 들이지 않고 정부와 우정사업본부가 생색내기를 하고 있는 대표적 사례에 불과하다.

집배원들에겐 ‘민주’노조가 필요하다!

이런 상황인데도 노동자들의 편이 되어주어야 할 전국우정노동조합(이하 우정노조)은 너무 조용하다. 잇따른 우체국노동자들의 죽음에 우정노조는 홈페이지에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소식과 성명서만 게시해놓았을 뿐, 아무런 행동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이미 우정노조는 2만8천여 명의 조합원들에게 노동조합으로서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5년 사이 우체국 순직자 84명, 1,650명의 중경사자가 발생하는 끔찍한 우체국 현장이 도저히 바뀌질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 우정노조가 노동조합으로서 신뢰를 되찾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안전교육 실시’, ‘안전구호 외치기’, ‘안전모 턱끈 조이기’ 등 면피성 대책만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하고 행동해야 한다. 우정노조는 우정사업본부와의 ‘1,000명 인력충원’, ‘비정규직 정규직화 약속’을 체결한 합의서만으로 노동조합이 할 일을 모두 이루어낸 양 선전하고 끝내는 것을 반복해왔던 지난 모습과는 이제 단절해야 한다. 우정노조가 노동조합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왔다면, 이런 예견된 사고들은 분명 막아낼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를 위해서는 우정노조를 민주적으로 바꿔내려는 현장의 목소리와 힘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올 겨울엔 죽지말자!

“작년 겨울에 빙판길에서 오토바이가 넘어져서 어깨가 심각하게 아팠어요. 내가 빠지면 여러 동료들이 힘들어지니까 편하게 치료를 받을 수가 없었죠. 그래서 다음날 부항만 뜨고, 엑스레이 찍으니 뼈에는 이상 없다고 해서 바로 일을 시작했어요.”

“구정 때 계단에서 넘어져서 갈비뼈에 금이 갔어요. 근데 특별소통기간이고, 그 때 겸배가 시작되어서 쉴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그냥 나왔죠.”

공포의 계절, 겨울이 다가온다. 추워지는 날씨에 몸이 굳어가는 것은 물론이고, 빙판길을 내달릴 때면 집배원들의 마음은 더욱 조급해진다. 설날 특별소통기가 다가오면 찾아올 살인적인 노동시간을 생각하면 숨이 막힌다. 아무런 대책 없이 올 겨울을 맞이한다면 또 다시 집배원의 안전과 생명은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우정사업본부와 우정노조는 집배원의 재해 예방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당장 다가오는 겨울부터 △즉각적인 인력충원, △일일 택배물량 개수 제한, △일몰 후 배달 금지, △영하 10도/폭설 등 기상악화 시 배달 중단 등 즉각적이고 실효성있는 대책이 시행되어야 한다. 더불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유가족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 △재발 방지를 위한 우정사업본부의 입장과 개선책 마련, △심혈관계질환 및 근골격계 질환의 강력한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 장시간·고강도 노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 마련 등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집배원 노동자들의 죽음은 종종 죽음을 무릅쓰고 업무를 수행한 ‘미담’(美談)으로 전해진다. 올 겨울, 단 한명의 사망자나 사고자가 발생하지 않는 것을 ‘미담’으로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떨까. 이를 위해서 우정사업본부와 우정노조를 움직일 수 있는 사회적인 힘과 연대가 필요하다. 이번에는 우리 사회가 집배원들에게 희망을 전달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