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의 주간지 사회와노동

철도파업의 국제적 의의

국제주의, 한국 노동자운동의 현실적 과제가 되다

세계 노동자가 한국 노동자에게 보낸 연대

1월 18일 민주노총 총파업 결의대회에서 1월에 세계 각 지역에서 진행된 국제연대 행동을 담은 동영상이 상영되었다. 동영상의 마지막 장면은 영국철도항만노조(RMT) 간부가 주 영국 한국대사관 앞 집회에서 전개한 삭발투쟁이었다. 이외에도 연대행동에 나선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우크라이나, 대만, 브라질, 방글라데시, 스위스, 아르헨티나와 호주 노동자의 모습도 화면에 나타났다.
한국의 투쟁을 지지하는 국제연대는 철도파업 돌입과 동시에 시작되었다. 철도노조 파업 둘째 날인 12월 10일에 20여 개국 철도 노동조합들이 국제운수노련(ITF)이 선언한 한국 철도노조 파업 지지 국제행동의 날에 참여하였고, 12월 22일 민주노총 사무실 침탈 직후, 겨울 휴가 기간임에도 수많은 나라에서 항의행동이 진행되었다.
지난 2달 동안 한국 노동자의 투쟁에 대해 표출된 세계적인 연대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벌써 해외 몇몇 나라에서 2월 25일 국민총파업에 맞추어 2차, 3차 연대행동이 조직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다. 이뿐 아니라 최근에 한국을 방문한 국제노총(ITUC)과 국제산별노조 대표들이 한국정부와 자본의 탄압에 맞서 장기적인 활동을 벌일 의사를 분명히 밝히고, 현재 구체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논의 중이다.
한국 투쟁에 대한 광범위한 세계적 관심과 연대가 계속되면서 민주노총과 가맹조직 지도부는 물론이고 일반 조합원까지 이에 주목하기 시작했고, 일부는 보다 적극적인 국제사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국 노동조합들의 시각은 한국 국경을 벗어나서 조금이나마 넓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철도노조 집회에 참석한 국제운수노련 대표단

세계적인 연대의 배경

철도노조 파업과 그 파업이 촉발시킨 민주노총 총파업 투쟁이 왜 이렇게 큰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지 고민할 만하다. 우선 철도파업이 시작되기 전부터 철도노조는 한국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철도 민영화 정책의 문제점과 예상되는 정부와 사측의 철도노조에 대한 탄압을 국제적으로 알려내기 위해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노력했다. 오랫동안 중지된 철도노조와 국제운수노련(ITF) 간의 관계가 지난 11월에 복원되면서 국제운수노련은 철도파업을 지원하기 위한 적극적인 활동을 결의하였고, 상당한 인적‧재정적 자원을 투여하였다. 공공운수노조는 ‘한국 철도노동자의 파업권 보장’ 캠페인 웹사이트와 페이스북 페이지를 운영하여 한국 투쟁 소식과 이미지를 수시로 전달하였다. 민주노총도 12월 22일 경찰의 침탈이 진행되는 동안 온라인 네트워크를 통해서 소식을 전하고, 침탈 이후에도 상황을 상급조직인 국제노총과 기존에 교류가 있던 해외 노총에 보냈다.
또한 두 차례의 국제운수노련 대표단 방한과 1월 18일 총파업결의대회에 참석한 OECD 노동조합자문위원회‧국제노총‧국제산별노조 대표단의 방한을 통해서 해외 노동조합 간부들이 한국노동자의 투쟁을 직접 경험하고 한국정부의 탄압을 직접 목격하였다. 이 사람들이 본국 노동운동에 한국 상황을 알려내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철도파업의 세계적 의미

그러나 국내 투쟁 소식을 신속하고 체계적으로 전달했다는 점만으로는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지속적이고 광범위한 국제연대를 설명할 수 없다. 세계의 많은 노동자들이 깊이 공감하고 영감을 받지 않았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철도노조 파업은 세계 노동운동에서 최근에 불거지고 있는 두 가지 ‘악’에 대한 저항으로 상징화되었기 때문에 많은 노동자의 심금을 울리고 연대를 불러온 것이다.
첫 번째 악은 민영화 정책이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여파로 많은 나라에서 공공서비스의 민영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박근혜 정부는 영국이나 독일과 같은 유럽 철도산업을 모델로 철도민영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고, 동시에 유럽연합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는 유럽연합 통합을 빌미로 한국의 ‘철도산업 발전방안’과 성격이 같은 ‘4차 철도종합정책’을 통해서 유럽 각국 철도의 상하 분리의 완성, 고속철도의 개방 및 경쟁 도입을 도모하고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 유럽 노동조합들은 적극적인 투쟁을 전개하고 있으며, 지난 10월 9일에 1차 유럽 행동의 날을 벌였다. 최근 프랑스를 비롯해 몇몇 나라에서 하루 파업을 벌였지만, 대부분의 유럽노동조합들은 유럽 4차 철도종합정책과 같은 민영화 정책을 저지하기 위한 무기한 파업을 상상하기 힘든 상황이기에 한국 철도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하고 23일 동안 유지한 것에 많은 영감을 받았다. 공공기관 민영화에 맞서 싸우고 있는 호주, 태국, 필리핀 등 수많은 나라의 노동자들도 한국 철도노동자의 투쟁에 쉽게 공감할 수 있었고 한국 국민들이 철도조조에 보여준 지지에서도 많은 힘을 얻었다.
두 번째 악은 파업권 박탈을 비롯해 세계적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노동기본권에 대한 공격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유럽사법재판소(ECJ)와 국제노동기구(ILO)에서 파업권의 국제법상 위치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사용자대표들은 변호사와 전문가를 동원하여 파업권은 노동기본권에서 제외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오랫동안 파업권을 인정한 ILO 감시감독 메커니즘(결사의 자유위원회 등)의 권위까지 공격하고 있다. ECJ와 ILO에서의 싸움이 진행되고 있는 동시에 미국과 유럽을 비롯해 수많은 나라에서 정부가 경제위기를 내세워 공공부문 노동조합의 노동3권을 제약하고 노동자의 투쟁을 탄압하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거 파업의 여파로 대량 해고, 징계, 손해배상 청구와 같은 탄압을 감내해야했던 한국 철도노조가 시작 전부터 정부에 의해 불법으로 몰린 파업의 정당성을 끈질기게 주장하고 계획대로 파업에 돌입한 것은 비단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의 정부와 사용자의 공세에 대한 도전으로 보였다. 이것은 주요 법원에서 노동기본권 제약에 대응하고 있는 많은 서양의 노동조합과 노동탄압으로 조직발전이 막혀 있는 많은 동유럽, 아시아와 아프리카 노조에 고무적인 일이었다.

“우리가 바로 민주노총 조합원이다"

12월 24일 연대집회에 참가한 터키노총(DISK) 위원장은 “박근혜 정부가 한국 노동자들에게 싸움을 걸었다면 이제 전 세계 노동자들이 그 싸움에 응할 것이다. 경찰이 민주노총을 침탈한 오늘 DISK 깃발이 걸린 모든 사무실, 작업장은 민주노총의 사무실, 작업장이다”라고 연설하였다. 터키노동자들은 ‘우리가 바로 민주노총 조합원이다’라는 구호를 여러 번 외쳤다. 이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해외 수많은 노동자들은 한국 노동자의 투쟁을 지켜보고 있었고 경찰의 민주노총 사무실 침탈을 자신들을 모욕한 것으로 느꼈다. 이것이 한국노동자와 투쟁을 함께 할 것을 결의하기 된 계기이고, 이 결의에 따라 철도노조 파업이 끝난 후에도 연대를 계속해서 보내주고 있는 것이다.

  주이스탄불 대한민국총영사관앞에서 항의집회를 하고 있는 터키 민주노총(DISK)

철도파업에 대한 국제연대의 교훈: 국제연대에 대한 새로운 시각

우리는 이러한 국제연대 경험에서 어떤 교훈을 도출해야 하나? 최근에 ‘우리가 국제연대를 받은 만큼 이제 우리도 연대해야 한다’라는 이야기가 곳곳에서 들리고 있다. 1월 2~3일에 발생한 캄보디아 의류노동자 최저임금 인상 파업에 대한 유혈 진압이 한국 노동운동에 던진 메시지도 컸다. (사회화와 노동 제652호 참조).
한국의 노동조합들이 해외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노동 현안에 대해 보다 많은 관심을 갖고, 다른 나라 노동자들의 요구에 대해 보다 깊이 이해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연대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것이 이번에 경험한 국제연대에서 배워야 할 핵심 교훈은 아니다.
진정한 국제연대는 동정심에서 나오는 자선이나 품앗이가 아니다. 진정한 국제연대는 상대방이 우리와 같은 적에 맞서 싸우고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우리의 투쟁의 일환으로 함께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진정한 연대행동에 나서면 상대방에게 힘을 줄뿐만 아니라, 힘을 주는 만큼 우리의 투쟁도 강화될 수 있다.
우리 투쟁이 다른 노동자들로 하여큼 연대투쟁에 나서게 하였다면 이제 우리는 그 노동자들에게 연대를 보내는 것뿐 아니라 그들과 투쟁의 발전을 논의하고 계획해야 한다. 일국의 투쟁에 대한 지지를 넘어서 세계 노동자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민영화 저지와 노동기본권 쟁취 투쟁을 만들어야 한다.
물론 이와 같은 세계적인 투쟁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공통의 대상과 요구를 발굴하고 현실적인 투쟁계획을 세우기 위해, 보다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소통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선 지난 두 달 간의 투쟁과정에서 부각된 두 가지 의제를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노동기본권 쟁취와 민영화 저지를 위한 국제행동을

첫 번째 의제는 해외 진출 한국기업의 노동기본권 침해 문제이다. 한국대사관이 의류노동자 투쟁에 대한 신속한 진압을 요구하고 한국기업들이 캄보디아 노동조합에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는 캄보디아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정부와 자본이 해외에서 보이는 행태는 국내에서와 다름없다. 따라서 우리의 노동기본권 쟁취 투쟁은 국내적인 투쟁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민주노총이 국민총파업으로 노동탄압 중단을 요구할 때 이 요구는 국경으로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해외에서 한국자본과 정부가 연루된 노동탄압을 포함해야 한다. ILO나 OECD에서 한국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을 제기할 때 한국기업이 진출한 국가의 노동자에 대한 탄압을 같이 제기해야 한다. 한국정부와 기업들이 다른 나라에서 행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 현황, 그 나라 정부와 자본과의 관계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가 필요하다.
두 번째 의제는 세계적으로 가속화되고 있는 철도를 비롯한 공공서비스 민영화다. 최근 유럽 노동자들이 4차 철도종합정책에 맞선 2차 국제행동의 날을 선언하였는데, 우연하게도 그 날짜가 2월 25일이다. 유럽 노동조합을 비롯해 우리에게 연대를 보내 준 각국 노동자와 소통해서 2월 25일을 국민총파업에 대한 연대행동이 아니라 아시아와 유럽 노동자의 철도 민영화 저지의 날, 또는 세계노동자의 민영화 저지의 날로 제안하는 것을 고민하자.

국제연대에서 현실적인 국제주의로

이번 국제연대 경험은 ‘국제연대’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우리가 탄압을 많이 받고 있어서 연대해 달라’거나 ‘우리가 연대를 많이 받아서 갚아줘야 한다’, 또는 ‘우리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있어서 지원해줘야 한다’는 식의 사고를 넘어설 때이다. 우리 투쟁과 세계 다른 나라 노동자들의 투쟁들이 연결되는 지점을 찾는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상호간의 배려에 입각한 국제연대에서 각 현황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 구체적인 공통의 목표와 투쟁대상을 기반으로 하는 현실적 국제주의로 발전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