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의 주간지 사회와노동

새정치도 없고, 민주도 없다

새정치민주연합 창당에 부쳐

3월 26일 새정치민주연합이 출범했다. 지난 2일 제3지대 신당 창당에 합의한 김한길-안철수 합당선언 이후 24일 만이다. 이들은 창당대회에서 정의로운 사회, 통합된 사회, 번영하는 나라, 평화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결의했다.
하지만 이들이 정의, 통합, 번영, 평화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그 어떤 좋은 말을 가져다 붙여도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공학적 이합집산이라는 혐의를 벗지 못하고 있다.
[출처: 오마이뉴스]

안보·통일 정책의 ‘우클릭’

정치공학적 이합집산이라는 점 자체도 문제지만 정강정책의 내용이 더 큰 문제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정강정책은 사실상 새누리당의 그것과 별다른 차별성이 없다. 2012년 총·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이 민주당의 핵심정책인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수용하며 ‘좌클릭’을 했듯,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이 새누리당의 핵심정책을 수용하며 ‘우클릭’을 천명한 셈이다.
우클릭이 가장 도드라지는 부분은 안보·통일정책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정강정책에 “굳건한 한미동맹”, “어떠한 형태의 위협에도 단호하게 대응”, “북한주민의 실효적 인권 개선”, “전달체계가 투명한 대북 인도적 지원” 등이 명시되었다. 한미동맹의 전략적 우위를 명확히 하고 더 이상 퍼주기 식으로 대북 지원을 해서는 안된다는 새누리당의 입장을 명시적으로 승인한 것이다. 그 모순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적대적 대북정책을 문제시 해오던 민주당의 문제의식이 폐기되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다.
이러한 변화는 한편으로는 안철수 신당과의 통합에 따른 대가다. 합당 과정에서부터 이런 변화가 어느 정도 예상되었다. 안철수 신당 측에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계승한다는 문구가 삭제된 정강정책 초안을 제시해 민주당의 큰 반발을 산 바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사라졌다

하지만 이는 다른 한편으로 민주당 스스로의 필요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 연초 김한길 대표가 햇볕정책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안보정책에 대한 지지층이 폭넓게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새누리당에 대한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우클릭을 감내해야 한다는 논리가 힘을 얻는 조건이었다.
사실 한미동맹의 전략적 강화를 전제로 남북 간 정경분리를 통해 평화를 이룬다는 햇볕정책은 그 자체로 모순이 있었다. 한미동맹의 전략적 강화라는 전제 때문에 대중·대북 포위전선을 구축하려는 주한미군의 작전범위 확대, 미국신속기동군의 거점 역할을 위한 용산 미군기지의 평택 이전, 한국군의 최첨단 무기 도입 등이 이뤄졌고, 이에 대응하여 중국과 북한도 군사력을 증강했다. 햇볕정책에도 불구하고 군비축소는 이뤄지지 않고 평화는 더욱 요원해졌던 것이다.
이를 빌미로 새누리당을 비롯한 보수세력은 햇볕정책 무용론, 퍼주기 논란 등 틈만 나면 민주당에 대한 정치공세를 퍼부어왔다. 물론 이들 보수세력의 입장은 한미동맹의 호전성을 한층 더 강화하는 것일 뿐이었다. 이번에 민주당이 합의한 새정치민주연합의 정강정책은 이러한 보수세력의 논리를 대부분 수용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최근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강조된 바 있는 미국의 한미일 삼각동맹 강화 구상에 향후 적극적으로 동참하기 위한 포석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알맹이를 잘못 채운 새정치

정강정책의 우경화도 문제지만, 양 세력의 합당 근거가 상당히 취약하다는 점도 문제다. 김한길 대표와 안철수 대표는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론을 근거로 통합에 합의했다. 창당대회에서도 김한길, 안철수 공동대표가 다시금 무공천 방침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를 통해 새정치 내지는 정치개혁을 실현한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발상이다. 정치인들의 부패, 지역주의, 지방자치의 질식 등 한국 정당정치의 문제점들이 정당공천제와 연계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당공천이 그 원인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인이 기득권 세력으로 존재하고 한국 정당정치의 취약성과 비민주성이 개선되지 않는 한 정당공천제가 폐지되더라도 이러한 문제는 변형된 형태로 반복될 뿐이다. 벌써부터 내천 논란이 이는 것은 그 단적인 예다.
게다가 정당공천 폐지론은 정치를 행정적 성격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는 2011년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안철수가 “국회의원은 혼자서 바꿀 수 없는게 많지만 대통령이나 서울시장 같은 행정가는 자신 혼자서 바꿀 수 있는게 많다”고 말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정치는 특정 이념, 정책, 이해관계를 둘러싼 세력 간 갈등이기 때문에 유능한 행정으로 대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이는 지방자치도 예외가 아니다. 게다가 ‘정치가 아닌 행정’이라는 발상은 궁극적으로 유능한 전문가에 의한 기술관료적 정치에 대한 지지를 함의한다는 점에서도 위험하다.

오른쪽으로 이동한 정치지형

그 실내용을 알 수 없던 새정치는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라는 내용 없는 알맹이로 채워졌고, 햇볕정책으로 대표되던 민주당의 정체성도 희미해졌다. 새정치도 없고 민주도 없고 오로지 연합만 남은 것이 새정치민주연합이다.
신선함이 달아난 안철수 의원 지지율은 하락세에 접어들었고, 새정치민주연합은 합당으로 인한 시너지 효과를 그다지 누리지 못하고 있다. 이에 반해 여전히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과 새누리당 지지율은 탄탄하다. 그 이유는 아마도 야권이 안보 정책에서 우클릭을 시도하더라도 여전히 안보분야에서는 새누리당이 우위에 있다는 대중적 인식 때문일 것이다. 기왕 정책이 비슷해졌다면 더 잘하는 놈을 믿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합당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박근혜 정부가 대외적으로는 비타협적인 대북정책을 펴고 대내적으로는 종북몰이에 나선 결과, 국내 정당정치 지형을 오른쪽으로 옮겨놓는 가시적인 결과를 얻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