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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군대에 흡수되다

군대 문제는 사회의 가부장성 문제와 연관돼

사실 여성 징병의 문제는 서구(주로 유럽나라들)에 비해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까지 그리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거나 깊이 논의되고 있는 문제는 아니다. 지금까지 여성 징병 주장에 대한 논리는 주로 군가산점제 등의 논쟁에서 ‘나라에 충성한 후 평등을 외쳐라!’ 류의 저급하고 감정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2003년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의 특집기사, 최근 국회안보포럼의 토론회 ‘안보! 남성만의 영역인가?’ 등을 통해 (아직 공론화라고 하기까지는 뭐하지만) 이성적인 문제제기들이 여기저기서 주장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나 스스로도 아직 이렇다할 입장이 없는 상황에서 어떤 입장을 밝히기는 뭐하지만, 병역거부 운동을 하는 활동가의 입장에서 세계적인 병역거부 운동의 역사를 볼 때 (한국도 꼭 그런 전철을 밟으라는 법은 없지만) 여성과 군대의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논의돼 오는 해결하기 어려운 숙제의 하나임에는 틀림없다고 보여 진다.

사실상 징병제를 유지하는 국가가 많이 없어진 이후 서구의 군대는 신병모집의 어려움에 직면했다. <화씨 9·11>이라는 다큐멘터리에도 등장하는 장면처럼 국가는 사회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소수 인종 남성들이나 혹은 여성들에게 신병모집을 집중하면서 그 난관을 해쳐나갈 수 있었다. 시민권이 절실했던 소수인종, 직업을 찾고 있는 실업자들, 여성에게 제한적인 군대에 불만 있는 여성들은 군 입영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게 되었다. 이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은 문제인데 고용평등이나 ‘완전한’ 시민권 획득, 특히 여성에게는 전투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까지를 포함한 평등의 개념이 이 지점에서 평화, 비폭력주의와 충돌하였다. 현대판 군사적 노예제도라고 할 수 있는 징병제를 철폐하고 전시 협조를 거부하는 거대한 반전의 물결을 형성했던 반군사주의 운동의 결과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최신식 대량살상무기로 무장한 현대식 직업군대로 발현되거나 소수인종이나 여성, 동성애자에게 그 문호가 개방된 보다 유연한 군대로 귀결되었던 것이다. 평화수호를 위한 활동에 군대를 배치하는 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 군대의 여성화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평화, 반군사주의 운동 내에서 아직 진행 중이다.

여성도 징집이 되는 이스라엘의 사례를 살펴보는 것은 (내가 보기에 현재적 상황에서는 현실 가능성이 많지는 않은 주장이라 생각되지만) 여성 징병의 미래가 어떻게 귀결될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이스라엘은 여성과 남성이 모두 징집되는 (내가 알고 있는 바로는) 유일한 국가이다. 그런데 정확하게는 그냥 여성과 남성이 아니라 ‘유대인’ 남성과 여성만 징집이 된다. 아랍남성과 여성들은 징집되지 않는다. 하지만 아랍남성들 중에서 드루즈(Druze)인 남성들은 징집이 된다. 군복무가 바로 시민의 정체성과 연결되는 이스라엘 사회에서 정권의 필요에 따라 차별화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남녀 모두가 징집되는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차별은 존재한다. 이스라엘은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있지 않은 국가이지만 여성들의 병역거부는 가능하다. 공식적으로 제도화되어 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이렇게 여성 병역거부를 인정해주는 것은 이스라엘 사회의 시스템이 최소한 여성들의 인권이라도 보장해주려고 한다기 보다는 군대의 남성 중심적 시스템과 그 내부에서 여성의 주변적 역할로 해석될 수 있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여성들의 병역거부를 은근슬쩍 인정해주는 이유는 한 마디로 군에서 여성의 역할은 있으나 마나한 보조적 역할에 머물기 때문이다. 징집된 여성들은 비서나 커피서비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 등으로 그 업무가 국한되며 절대로 전투병은 될 수 없다(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여성 군인의 전투분야 복무는 허용되지 않는다. 이러한 전투병 복무에 대한 평등권을 쟁취하기 위한 페미니스트들의 운동도 꾸준히 있어왔다). 결국은 군대의 문제가 한 사회의 가부장성의 문제와 밀접한 연관을 갖는 것이다.

물론 이스라엘의 군대와 한국의 군대를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전투를 목표로 존재하는 군대의 성격상 조직 내부의 성별분업과 이에 따른 차별은 사회 일반보다 훨씬 공고하다.

남성다움의 마지막 보루를 타파하고 말겠다는 페미니스트들의 의지는 현재 평등권을 실현했다는 차원에서 평가되기보다는 적어도 내게는 군대(군사주의)로의 여성(여성주의)의 흡수로 보인다. 물론 여성병력의 확대가 보다 일정정도 유연한 군대를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사회 전반적인 탈군사화에 디딤돌이 될지 혹은 걸림돌이 될지는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 오히려 남북한 합쳐 200만(이는 비슷한 영토를 가진 나라들의 병력과 비교하면 거의 10배에 가까운 수치이다)에 가까운 현역군인들이 이 조그만 땅덩어리에서 대치하고 있는 현실에서 군복무 기간을 확 줄여 병력수를 줄이는 것이 현재로선 보다 유연한 군대를 만들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 아닐까…


오리, 평화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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