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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하지 말자, 제발

강정구 교수 파문과 구국의 강철대오

강정구 교수의 칼럼을 둘러싼 논란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법무부 장관의 불구속 수사 지휘에 대해 검찰총장은 사퇴로 대응하고 9,000명 원로의 시국선언에다 박근혜 대표와 청와대의 팽팽한 말싸움까지. 한 마디로 당황스런 시츄에이션이 아닐 수 없다. 국가보안법 철폐 문제, 검찰의 수사권 독립 문제에다 재보선 선거를 앞둔 정치권의 힘겨루기까지 더해져 앞뒤를 재기가 힘들 정도의 판이 만들어져 버린 것이다. 하지만 아마 가장 당황스러운 사람들은 동국대 학생들이 아닐까 싶다. 강정구 교수의 칼럼을 읽지 않은 학생이 대부분일 테고 강정구 교수의 수업을 듣기는커녕 강정구 교수가 자기 학교의 교수인지도 모르는 학생들도 있었을 것인데, 느닷없이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취업을 제한하겠다고 까지 나서니 황당하지 않겠는가. 더군다나 청년실업 60만 시대인 지금인데...

이제야 칼럼을 읽다

평소 낮은 역사의식을 자랑하며 <한겨레21>의 박노자 칼럼에 감탄사만 연발하던 나에게도 강정구 교수의 칼럼에 대한 정치권과 사회 지도층(?)의 한국사에 대한 과격할 정도의 적극적인 관심은 당황스러운 상황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부득불 ‘이제야’ 강정구 교수의 칼럼을 찾아 읽어보았다. 문제의 칼럼의 제목은 '맥아더는 38선 분단집행의 집달리였다!'(데일리 서프라이즈, 2005-07-27)로, 칼럼을 쓴 배경은 맥아더 동상 허물기와 관련한 논란에 대해 그것이 “너무나 당연한 민족사적 요구이고 합리적 행보”임을 피력하기 위해서 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문제가 되었던 통일전쟁 관련 부분은 미국와 맥아더에 대한 ‘보은론’을 비판하는 단락에서 언급되고 있다.

이제 보은론을 본질적으로 따져보자. 만약 미국과 맥아더가 자기들 멋대로 한반도를 38도선으로 두 동강 내지 않았다면 우리가 민족분단과 전쟁이라는 비극과 형극을 겪었을까? 만약 6.25라는 통일내전에 외국군인 미국이 사흘 만에 개입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많은 전쟁피해가 일어났으며 지금까지 분단되는 비극이 지속될까? 6.25전쟁은 통일전쟁이면서 동시에 내전이었다(물론 외세가 기원한 내전). 곧 당시 외국군이 한반도에 없었기에 집안싸움이었다. 곧 후삼국시대 견훤과 궁예, 왕건 등이 모두 대의를 위해 서로 전쟁을 했듯이 북한의 지도부가 시도한 통일전쟁이었다.

- '맥아더는 38선 분단집행의 집달리였다!'중

한국사에 대한 내공 부족으로 당시의 국내외 정세에 대한 평가는 불가능하겠지만, 적어도 강정구 교수의 칼럼이 ‘구국의 세력’들에게 위기의식을 불러오기에는 충분했다(?)는 판단이다. “한반도의 분단을 주도하고 강제한 장본인이 미국이라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바로 이 두 분단 국내비호세력인 정치-관료 친일세력의 대부가 이승만이었다”, “더구나 맥아더를 생명의 은인이라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한 일이다” 등. 이미 만경대 방명록 사건으로 당국의 주목을 받고 있던 상황에서 ‘알아서 처신하지 못한’ 강정구 교수의 이러한 글은 경찰과 검찰을 자극했으리라.

하지만 현재의 논란은 이미 ‘한국전쟁에 대한 역사인식의 문제’를 넘어서 버린 것이 사실이다. 더 이상 칼럼 내용의 진위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닌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국가보안법 존폐 논란을 거쳐 체제 수호의 문제로까지 번진 지금의 상황은, 박근혜 대표와 한나라당, 9,000명의 원로 등 이른바 ‘구국의 세력’의 정치적 결집과 정치권력 획득을 위한 교두보로 활용되고 있다.

통일전쟁, 그래서?

강정구 교수의 칼럼은 간단한 검색으로 ‘아직도’ 인터넷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아는 한 강정구 교수의 칼럼을 읽음으로써 국가의 혼란과 위기를 가져올 가능성이 가장 큰 사람은 박근혜 대표와 9,000명의 원로뿐이다. 아직까지 강정구 교수의 칼럼을 읽고 좌경화되었다거나 좌경세력이 결집했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없고, 또한 강정구 교수 칼럼의 내용은 그 동안 진보적인 사학자들, 혹은 운동세력 내에서 일관되게 언급했던 내용이라고도 볼 수 있다.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이 강정구 교수와 관련한 논란을 활용하여 세력을 결집하고 분열과 위기를 조장하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한 번 생각해 보자.

다시 칼럼을 보자. 도대체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모를 이 논쟁의 출발점인 그 칼럼으로. 칼럼의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이에 대한 비판을 하는 것이 먼저이지, 구속하고 구국의 결단 운운하는 게 먼저일 수 있겠는가. 사회 분열과 체제 위기를 조장하는 자들의 눈에는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모든 것들이 분열과 위기로 보일 뿐이다. 분단 이후 50년이 넘게 강요해 온 미국과 이승만에 대한 보은론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가진다는 사실만으로 신체를 구속하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겠다는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한국전쟁이 북한의 통일전쟁이라고 말하면 어떻나. 아니라고 북한의 침략전쟁이라고 같이 말하면 그만이지. 광화문 사거리를 인공기 들고 뛰어다니면 또 어떻나. 무단횡단으로 벌금때리면 그만이지. 오바하지 말자, 제발.


최준영, 문화연대 문화개혁센터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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