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16년|6월|특집] 정부 너희는 대체 뭘 한거야?

안방의 세월호라 불리는 가습기 살균제는 1994년부터 2011년까지 지난 17년 간 20개 제품, 연간 60만개를 사용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중 피해를 입은 이들은 최소 29만 명에서 최대 227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지금까지 피해 사례를 제보한 이는 1%인 1,528명에 그치고 있다. 나머지 99%의 사람들은 현황조차 파악하지 못한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들은 2011년부터 정부에게 이번 사태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지만 철저히 외면했다. 최근 들어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다시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최대 피해자를 발생한 옥시레킷벤키저(이하 옥시) 회사에 대한 분노가 높아지면서 전국적인 불매 운동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사실 지난 경과를 돌아보면 옥시만 죄악시 할게 아니라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 할 수 있었던 한국 정부의 무능함과 안일함에도 주목해야 한다.

모두 유독 물질 아니다 판정한 정부

1994년 당시 유공 (현재 SK케미칼)은 세계 최초로 가습기 살균제 ‘가습기메이트’를 개발했다. 이 제품은 CMIT(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와 MIT(메틸이소티아졸리논)를 주성분으로 하는데 정부는 이 성분이 1991년 제정된 유해화학물 관리법 시행 이전에 제조 되었다는 이유로 이 성분에 대한 유해성 심사를 20년간 면제했다. 그러나 2014년 두 성분으로 인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다수 나타나자 유독물로 지정하였다.

국내 가습기 살균제 시장 점유율의 80%를 차지하고, 가장 많은 피해자를 양산한 옥시의 '옥시싹싹 New 가습기 당번'에 사용된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은 1996년 환경부가 유해성 심사에서 유독 물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정을 내렸다. 결국 국내에서 가습기 살균제가 판매되었던 2011년까지 이 성분은 가장 많이 사용되었고, 2012년이 되서야 유독물로 지정되었다.

버터플라이펙트가 만든 ‘세퓨’의 주성분인 PHG(염화에톡시에틸구아디닌) 역시 2003년 정부의 유해성 심사에서 유독 물질에 해당하지 않는 물질로 등록되었지만 이후 피해자들이 속출했다.

첫 단추부터 잘못 채워진 가습기 살균제 문제

유독성 심사만 허술한 게 아니었다. 애초에 가습기 살균제는 1994년 출시되었을 때부터 2011년 의약외품으로 지정되기 전까지 자율안전확인대상 공산품으로 분류되면서 인체독성실험 없이 시중에 판매 할 수 있었다. 물질에 대한 관리도 산업통상자원부가 관리하도록 했다. 안전 인증 대상 공산품을 관리하는 기관인 기술표준원은 세정제, 방향제, 탈취제 등만을 안전 인증 대상 공산품으로 정했을 뿐 가습기 살균제는 제외시켰다.

애초에 살균제는 바이러스와 세균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세포에게도 치명적일 수 있다. 더군다나 가습기 살균제는 물과 섞여서 수증기를 내기 때문에 사람이 흡입할 수 있고. 그에 따라 흡입 독성실험을 해야 했다. 또, 가습기 살균제는 세균을 죽이거나 번식을 억제하는 능력이 뛰어난 화학성분이지만, 사람의 피부, 호흡기, 구강 등을 통해 인체에 들어올 경우 그 농도에 따라 신체에 해를 끼칠 수 있고, 심하면 생명까지 앗아갈 수 있다는 게 학계에 정설이었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는 가습기 살균제의 위험성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지난 17년간 가습기 살균제 판매를 허용한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검찰은 피해자 가족들이 옥시 등 가습기 살균제 업체를 고발하고 수사를 요구하는 것에 대해 인과관계 확인이 어렵다며 기소를 중지하고 팔짱만 꼈다. 그러다 올해 1월 사태가 심각해지자 부랴부랴 특별수사팀을 구성, 수사를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옥시가 자사의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을 감추기 위해 서울대, 호서대 연구팀에 돈을 주고 자신들이 원하는 실험 결과를 발표하게 했다는 정황을 파악했다.

정부는 이제라도 헛발질을 멈춰야
환경부는 지난 3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추가 지원 대책을 발표하면서 산재보험의 폐 기능 장해 등급에 따라 지원하는 보험금을 기준으로 저소득층 가습기 살균제 피해 가족을 지원하겠다는 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극빈층만을 대상으로 해서 지원받을 가족이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정부가 이후 가습기 살균제 기업에게 구상권을 청구할 것을 염두에 둔 대책이기 때문에 국면 전환을 위한 생색내기에 불과하다.

지금 해야 할 것은 생색내기용 피해자 지원이 아니라 헌법에도 명시되어 있듯 국민들을 재해로부터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지금까지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 책임이 있는 곳으로 거론되는 정부부처들 -산업통상자원부(국가기술표준원), 환경부(국립환경과학원), 보건복지부(질병관리본부) 등은 모두 자유로울 수 없다. 지금까지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방조하고 방관해왔던 책임자에 대한 엄중하고 신속한 조사를 통해 죄가 있는 자들은 죗값을 치르게 해야 한다. 그것이 제2, 제3의 가습기 살균제 참사와 같은 끔찍한 비극을 막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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