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11년 5월- 특집] 김주현씨 장례투쟁을 돌아보다

김주현씨 장례투쟁을 돌아보다


반올림 상임활동가 이 종 란


김주현씨는 스물여섯 짧은 생을 자살로 마쳤다. 2010년 1월, 삼성전자 LCD사업부 천안사업장에 설비엔지니어로 입사할 때만 해도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에 밤잠을 설쳤다는 김주현씨는 1년도 안되어 심한 우울증에 걸렸고 2011년 1월 11일 기숙사 13층에서 투신자살함으로써 생을 마감했다. 유족은 김주현씨의 죽음이 막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며 분노했고, 사망 첫날 반올림으로 전화를 걸어왔다.
97일에 걸친 유족과 대책위의 싸움을 돌아보려 한다. 이 투쟁의 의의와 경과, 성과와 과제를 공유하면서 다시 올 투쟁을 준비하는데 밑거름으로 삼기 위함이다.


삼성전자는 노동자에게 어떤 회사인가

삼성전자는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대학생 설문조사 결과, 취업하고 싶은 기업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기본적인 노동권을 전혀 보장하고 있지 않은 대표적인 기업일 뿐이다. 김주현씨의 생전 증언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설비엔지니어는 부족한 인력 속에서 고강도의 노동에 시달렸고 하루 14시간~15시간에 이르는 장시간 근로와 휴일 근로를 해내야 했다. 여기에 야간노동을 수반하는 교대근로는 필수였다.


<고 김주현씨 사망 경위 및 장례 투쟁 경과>

1986년 2월 27일 출생
2010년 1월 4일 삼성전자 LCD사업부 천안공장 설비 엔지니어로 입사
2010년 2월 1일 FAB 칼라필터 공정 발령
화학물질로 인한 피부병과 장시간 교대근무 및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림
2010년 8월 자재관리 부서로 이동했으나 곧 현장 근무로 배치
2010년 11월 우울증으로 병가 시작
2011년 1월 최대 두 달의 병가 기간이 끝나 칼라필터 공정으로 복직 결정
1월 11일 병가 만기, 현장 복귀 당일 아침에 기숙사 13층에서 투신 사망
사망 직후 회사가 3일장을 종용. 빈소에 직원들을 상주시키며 유족의 진상 규명 요구 묵살
1월 17일(사망 7일차) LCD천안공장과 천안역에서 삼성의 사과와 책임을 요구하는 1인 시위 시작
1월 18일(사망 8일차) 아산경찰서 방문, 사망 당일 CCTV 기록과 자살시도 방치한 회사과실에 대한 철저한 조사 요구. 고용노동부 천안지청 방문, 지청장을 책임자로 하는 특별근로감독 요구
1월 21일(사망 11일차) 아산경찰서를 통해 고인의 사망 당일 CCTV 기록 확인, 사망 직전 4회의 투신 시도와 회사 측의 방치 사실을 확인
1월 27일(사망 17일차) 유족, 각 사회단체, 국회의원실 등이 공동으로 삼성LCD노동자 김주현씨 사망 진상규명과 책임촉구를 위한 기자회견 주최(국회 정론관)
2월 16일(사망 37일차) 고용노동부 천안지청 앞, 철저한 진상조사 촉구 및 초하류기업 삼성 규탄대회
2월 21일(사망 42일차) 매일 낮 서울 삼성전자 본사 앞 1인 시위 시작
2월 28일(사망 49일차) 천안역, 삼성 LCD 노동자 고 김주현 진상규명 촉구 및 49재 추모문화제
3월 3일(사망 52일차) 삼성 취업규칙을 영업기밀이라며 비공개 결정한 노동부 천안지청 규탄성명 발표
3월 6일(사망 55일차) 제3회 반도체․전자산업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문화제에 참석차 상경하신 김명복 아버님, 삼성전자 본사 경비들에게 폭행당한 뒤 심근경색으로 입원
4월 4일(사망 84일차) 고용노동부 천안지청에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에 대한 수사 지연 항의 방문, 이후에도 수차례 면담과 항의방문 진행
4월 11일(사망 91일차) 민주당 이미경 의원,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삼성 LCD 근로환경의 문제점과 고용노동부의 수사 지연 질타
4월 14일(사망 94일차) 고 김주현 추모, 삼성 규탄, 제1차 전국해외공동행동
4월 15일(사망 95일차) 삼성전자와 유족, 회사의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 마련에 합의
4월 16일(사망 96일차) 약속했던 삼성전자 LCD천안 공장장 사과의 의미를 담은 조문은 진행되지 않음
4월 17일(사망 97일차) 발인 후 인천 집에 유골 안치


삼성전자는 ‘무노조 경영’이라는 반헌법적 경영이념을 바탕으로 노동자들로 하여금 이윤을 위한 무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4인 이상 모이지 못하게 하는 비인간적 조직 문화, 초 장시간 노동, 클린룸에서 일하면서 화학물질 노출로 인한 심한 피부질환. 김주현씨는 결국 입사한지 몇 달이 되지 않아 고된 노동과 차별과 멸시 속에서 “내가 생각했던 삼성이 아니다”라고 토로할 수 밖에 없었다.
삼성전자는 감시와 회유의 기업이다. 김주현씨가 탕정기숙사에서 투신자살을 하기 일주일 전에도 똑같은 탕정 기숙사에서 투신자살이 있었다. 노동자들의 연 이은 자살은 이미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중국 폭스콘처럼 사회적 문제, 즉 기업의 책임이라고 볼 수 있으나 삼성은 이러한 연이은 자살 사건의 진실이 드러나지 못하도록 유족들을 집요하게 감시하고 회유하였다.

싸움의 발단

1월 12일 유족과 첫 만남에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아들의 투신자살 소식을 듣고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하고 황급히 천안에 내려온 당일, 이미 삼성 측에서는 장례식장을 잡아놓고 모든 것을 준비해 놓았다고 했다. 사망 당일 오후에 아산경찰서에서 사망과정이 담긴 기숙사 CCTV를 보았는데 석연치 않게 편집되어 있었다고 했다. 동시에 삼성 측은 고인의 사망 다음날 김주현씨 아버지를 모텔로 데려가 “퇴직금, 1년 치 연봉 등 해서 금전적으로 보상을 할 테니 더 이상 문제 삼지 말고 마무리하자. 지금 돈을 받지 않으면 어려워진다.”며 회유했고, 또 빈소에는 삼성의 감시로 고인의 직장 동료들이 유족과 대화조차 나누지 못했다고 하였다. 이러한 삼성의 태도는 유족들을 더욱 분노하게 만들었다.
김주현씨의 죽음은 업무상 심한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이 원인이었다. 이는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산업재해이며, 이 죽음에서 삼성은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더욱이 마지막 자살시도에서 삼성이 최소한의, 상식적 수준의 조치를 했더라면 막을 수 있는 죽음이었다.
유족은 3일장을 종용하던 회사의 요구를 거부하고 반올림, 충남대책위와 함께 사망 4일째였던 1월 14일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삼성의 최고 책임자는 고인의 죽음에 대해 공개 사과하라”고 하는 요구를 내걸고 이후 95일 동안 장례를 미루고 다방면으로 진상규명과 책임촉구 노력을 전개하였다.

경찰조사

사망 직후부터 유족은 매일 아산경찰서를 오고가며 CCTV 확보를 위해 안간힘을 썼고 사망 10일이 지난 뒤에서야 CCTV 원본을 열람할 수 있었다. 최종 확인된 CCTV에는 총 4차례의 투신과정이 드러났고 2번째 투신시도에서 삼성 측의 방제요원(안전요원)이 출동하였으나 자살하려던 고인을 방으로 데려다놓고 1분 만에 철수하는 모습도 확인되었다. 전문 안전요원들이 자살시도하려는 자에 대하여 어떠한 보호조치도 취하지 않은 점은 명백히 보호의무를 위반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사망발생 두 달여 만인 3월 초 내사종결(혐의사실 없음)되었다.

노동부 조사

1월 18일, 고용노동부 천안지청장 면담과 동시에 특별근로감독을 요청하는 진정서를 접수했다. 자살을 부른 우울증의 원인이 노동환경에 있었다는 것을 밝히고 다시는 이러한 죽음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동조건과 작업환경 개선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천안지청은 특별근로감독 대신 진정사건으로 처리하며 삼성 수사에 몸 사리기로 일관했는데 심지어 노동부에 신고 되어있는 ‘취업규칙’에 대해 유족이 정보공개 청구를 하였더니 ‘삼성의 영업기밀이라 공개할 수 없다’고 통보해왔다.
노동부 조사의 핵심내용은 주 12시간을 초과한 연장근로가 있었는지 여부, 우울증을 포함 질병이 다 낫지 않은 노동자를 무리하게 복귀시켰는지 여부(산안법상 질병자 근로제한 규정 위반)등 이었다. 여러 증거를 제출하고, 세 달 동안 다섯 차례나 조사를 받았지만 끝내 삼성 측을 처벌하지는 못했다. 마지막 검찰 송치를 앞두고 삼성은 노동부 진정사건 취하를 조건으로 유족과 합의했다.

빈소지킴이 투쟁과 삼성공장 앞 1인 시위, 충남 노동자들의 연대투쟁
반올림과 충남대책위는 매일 릴레이로 빈소를 지키며 투쟁을 전개하였다. 고인이 근무하였던 삼성전자 천안공장 앞에서 매일 아침 출근 1인 시위를 벌였고 천안역, 터미널 등 지역사회 주요 거점에서도 1인 시위와 선전전을 벌였다. 2월 28일 49재 추모제 이후로는 충남지역 동지들이 매주 1회 촛불문화제를 지속하면서 투쟁을 확대하였다.

각계각층으로 확대된 투쟁, 결국 삼성의 사과를 받아내다
40일이 지나고 유족(고인의 어머니와 누나)과 연대 단위들은 삼성본관 1인 시위를 시작하였다. 정태인, 하종강, 홍세화 등 진보적 사회인사들은 김주현씨의 죽음과 유족의 투쟁에 대해 언론사에 기고하면서 관심이 끊이지 않도록 했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미경 국회의원은 유족과 함께 특별근로감독을 요청하고 대정부질의에서 ‘삼성LCD 노동자들의 장시간 근로와 열악한 노동환경’의 개선을 촉구했다.
금속노조, 민주노총 삼성대책회의는 「삼성전자 연쇄투신사망 사건을 통해 본 전자산업 노동실태와 개선을 위한 토론회」를 열고 사회인사들의 광화문 앞 일인시위를 조직했다. 또 4월 14일에는 ‘공동행동’을 통해 전국 동시다발 일인시위와 온라인 행동을 벌였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동지들이 토론회, 1인 시위, 선전전 등으로 힘을 보탰다.
각계각층의 노력으로 이 투쟁의 정당성과 삼성의 책임과 사과를 촉구하는 여론은 확대되어 갔고 결국 사망 95일째 삼성전자 최지성 대표이사는 유족에게 합의서 상의 사과와 재발방지약속을 하였다. 이로써 사망 97일 만에 김주현씨의 장례를 치르게 되었다.

평가와 과제

유족이 삼성과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투쟁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가보지 않은 길이었지만 비교적 슬기롭게 잘 싸웠고 유족들과 끈질긴 연대로 삼성전자 최지성 대표이사의 사과와 재발방지약속을 합의서를 통해 이끌어냈다. 이러한 일은 과거 물 밑에서 합의하던 방식과는 다른 진전된 성과이다. 그러나 합의서 내용에 고인의 죽음에 대한 대표이사의 사과와 재발방지약속이 있었지만 합의서 자체는 공개되지 않았다. 또 근로조건 위반에 대해 삼성의 처벌을 배제시키는 방식 즉, 노동부 진정취하를 조건으로 한 합의였다. 이러한 여러 아쉬움과 한계점은 있었지만 과거 투쟁보다는 분명하게 진전된 측면이 있었다. 이는 반올림과 충남대책위, 삼성일반노조 등의 단위와 각계각층의 많은 이들이 함께했기 때문이다.
김주현씨의 장례투쟁은 이렇게 마무리가 되었지만 우리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삼성이 재발방지 약속을 이행토록 하는 것, 수많은 직업병 피해노동자들의 진상규명과 산재인정을 위한 싸움, 노동 3권을 보장받고 열악한 작업환경과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싸움, 경쟁만 강요하는 사회에 노동자의 권리를 위한 투쟁은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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