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호]작지만 과감한 결단(07년 2월호)

허유경 ⎟ 민주노총 서울본부 조직활동가



며칠 전 민주노총에서 오랫동안 조직사업을 한 동지와 술자리에서 전략조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조직활동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와 ‘그동안 너는 뭘 했냐’라는 등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편으로 괜한 자존심이 발동하여 ‘그러는 동지는 전략조직화에 대해서 어떤 일을 하셨나요?’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내 지난 시간을 반추해 보게 되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아, 정말 어찌해야할까? 과연 어떻게 될까? 나는 미조직 비정규 전략조직화 사업을 제대로 이해는 하고 있는 걸까?’ 하는 조바심과 두려움 그리고 다단한 고민들이 무섭게 나를 휘감고 돌아갔다.
민주노총 전략조직화 사업을 실행할 조직활동가로 선정되고 민주노총 서울본부에서 일을 한지도 벌써 7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짧으면 짧고 길면 긴 시간동안 나는 과연 어떤 일을 했던 걸까? 그리고 지금 내가 느끼는 막막함은 어떤 것일까?

지금 시대에 노동운동에 몸담고 있는 사람치고 미조직 비정규 노동자 조직화와 이들의 권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없다. 위기라는 말이 만연한 지금,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노동운동의 미래를 위해 미조직 비정규 노동자 조직화를 이야기하고 있고 이를 위해 골머리를 싸매고 있다. 민주노총의 위기 노동운동의 위기를 떠나, 방식이 어떠하든 미조직·비정규 노동자 조직화를 이야기 하지 않는 자는 역적(?)으로 몰릴 정도니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당위를 떠나 신심을 다해서 우리는 과연 미조직 비정규 조직화를 실천하고 있을까? 물론 이를 위해 열심히 일하시는 사람들도 있지만(그/그녀들의 노고를 폄하하거나 비판 하는 것이 절대 아니니 오해가 절대 없기를) 대다수의 많은 이들이 그러한 실천을 하고 있을까? 나조차도 말이다.
조직 활동, 노동조합에서 미조직 비정규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일과 이를 위한 전략을 생산해내야 하는 일이 나의 임무이자 업무이다. 노동운동을 아니 사회운동을 하는 것이 처음이기에 경험도 지식도 전무한 모든 면에서 미천하기 짝이 없는 내가 미조직 비정규 조직화에 대해서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간 짧은 노동조합 활동과 향후 고민들을 두서없이 조금 내어보아야겠다.

일상 사업에서 미조직 비정규 사업의 배치와 재정책정이 필요

얼마 전 민주노총 서울본부 자체에서 진행하는 조직활동가 학교 프로그램 일부 중에 우리는 얼마큼 미조직 비정규(이하 미비) 조직활동을 위해 각 조직이 움직이고 있는가를 진단하는 시간이 있었다. 우선 자신의 다이어리를 열고 미비 조직활동에 얼마만큼 시간을 할애하는지 체크하고, 그것과 무관하게 주중에 비는 시간이 얼마인지 체크 해보는 것이었다.
이렇게 체크를 한 것은 활동가들이 모두 바쁘고, 일과에 치여 바쁜 일상의 활동을 하면서 조직할 시간이 없다고 하는데 이것이 진짜인지 점검해 보자는 것이었다. 예상 외로 비는 시간이 많았고, 미비사업 관련해서는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 것으로 점검되었다.
한편 자신이 속해있는 조직에서의 재정을 점검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결과는 시간할애와 거의 같았다. 미조직 비정규 조직화 사업을 우리는 실제 자신의 조직에서, 자신의 활동에서 얼마만큼 배치하고 있었던 걸까? 아마 입으로 주장하는 만큼 자신의 조직과 공간에서 사업을 배치하고, 미비사업을 중심에 놓고 있다면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재정과 관련해서도 말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미조직 비정규 사업이 절실하다고 생각한다면 현재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 혹은 공간에서 미비사업을 어떻게 잘해볼까를 우선에 두고 사업배치와 재정 등을 우선 배치해야 하는 게 아닐까? 적어도 미비사업이 정말로 필요하다고 생각된다면 작지만 과감한 생각의 전환과 활동에 변화를 주어야 할 것이다.

조직활동가(혹은 미조직 비정규 담당자)에게 쏟는 관심이 아닌 조직화 조직이 필요하다.

조직활동가로 일을 하면서부터 초반에 받았던 가장 큰 스트레스 중 하나가 ‘조직활동가는 뭘 하는 거야? 조직활동가 오늘은 조직 몇 명이나 했어? 많이 했어?’라는 질문이었다. 한편으로는 스트레스를 받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만큼 중요한 임무를 맡았구나 하는 책임감 그리고 많은 이들이 이만큼 관심과 애정을 쏟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관심과 애정만으로 갓난아이를 키울 수 없듯이 조직활동 역시나 관심과 애정만으로는 안 되는 부분이 있었다.
맹모삼천지교라고 했던가 아이를 키우는데 아이가 자라기 적합한 주변 환경과 필요한 조건을 만들어 주듯이 조직활동을 위해서도 이러한 조직적 움직임(조직활동가의 노동조건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이 필요하다. 조직활동가 개인, 조직 내에서의 미비담당자들에게만 넘겨지는 사업이 아니라, 조직화를 실천할 수 있는 미비사업을 할 수 있는 전담조직과 시스템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사실 서울에는 서울전략 사업단이 구성되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노동조합, 주체적인 조직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조직화 사업 계획을 잡아도 이를 실천할 대중조직이 없으면 죽은 계획이기에 이러한 조직화를 위한 조직과 조직(단위노동조합 등)에서의 실천적 활동과 계획이 필요하다.

톱니바퀴처럼 굴러가는 민주노총 차원의 계획과 각 연맹과 단위노동조합

흔히 잘 굴러가는 조직을 일컬어 톱니바퀴 같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톱니바퀴처럼 굴러가고 있는 것일까? 대대적으로 포스터도 만들고 50억도 모아보자고 하고, 매 중앙운영위 안건에서 미비사업이 얘기되고 있지만 그만큼 효율성 있게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스럽다. 나 역시 그러한 기금으로 인해 활동할 수 있는 은혜(?)를 입게 되었지만 활동가로 뽑히고 나서 총연맹에서 활동가학교 수료 외에는 딱히 무엇을 해 본 것이 없다.
물론 총연맹의 조직활동가 운영관련해서 방침이 조직활동가가 소속된 각 연맹과 지역본부의 소관으로 되어있기는 하지만 전체사업을 관장하고 아우를 수 있는 체계와 계획이 부재하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또한 각 연맹과의 긴밀한 소통과 공동의 계획이 부재한 것 역시나 미조직 비정규 조직화 사업을 함에 있어서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톱니바퀴 굴러가듯 총연맹, 각 연맹, 각 지역본부 그리고 단위 노동조합이 서로의 계획을 제출하고 유기적이고 긴말한 관계 속에서 미조직 비정규 조직화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실력을 키우는 일 그리고 조급하지 않게

참으로 개인적인 이야기이지만 미천한 실력과 경험으로 인해 아직은 일을 배우는 것에도 어리버리하고 바쁘다. 그러면서 마음 한구석에서는 어여 배워야 할텐데, 어여 뭔가 성과를 내야 할텐데 하는 조바심과 조급증이 나를 괴롭힌다.
무엇이 모자라고 채워야 하는지 조차 가늠하고 있지 못하는 내 실력에 좌절도 하지만 차분한 마음으로 배워야 할 많은 것들을 주의 깊게, 그리고 집중력 있게 듣고, 보고, 배우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미조직 비정규 조직화 사업이, 지금 우리의 상황이 수확물을 거둬들여 추수하는 시간이 아니라면 씨앗을 뿌리고 물도 주고 비료도 주고 작물이 잘 자라게끔 하는 농부의 마음처럼 다시 씨앗을 뿌리는 노동을 차근히 진행해야겠다.

마지막으로 이미 시작된 미조직 비정규 조직화라는 레이스에서 나부터, 그리고 조직에서 미조직 비정규 조직화 사업을 중심에 놓고 사업을 추진해가는 작지만 과감한 결단과 실천을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모두 다 행복해지는 운동과 삶을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