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금강화섬 노동자들의 폐업투쟁

경북 구미에 위치한 금강화섬(주)은 옷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되는 원사(실)를 제조하는 사업장으로 1995년에 설립되었으며 노동조합은 1999년 10월에 결성되었다. 섬유산업은 70-80년대 한국의 경제성장을 이끌어 온 중요한 산업이다. 90년대 초․중반에는 중국시장이 열리면서 신규업체 설립과 설비증설 등으로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 등의 섬유산업이 성장하면서 국내 섬유산업은 가격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했고, 공급과잉이라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금강화섬 민성기 사장도 공급과잉과 고원료가로 인해 매달 10억 원 정도의 적자가 발생하고 현금 유동성이 악화되자, 2004년 3월 공장 가동을 일방적으로 중단시켰다. 이것이 금강화섬 폐업투쟁의 시작이었다.

처음 공장이 멈추었을 때, 280명의 조합원들은 엄청난 고통의 시작이라는 것을 누구도 느끼지 못했다. 가동을 중단시킨 후 금강 자본은 350명 직원에게 정리해고 통보서를 발송하고, 임금과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는 비도덕적이며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여 금강노동자들에게 자본의 본질을 보여주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이것을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의 생존권이 달려있는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면서 투쟁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공장이 폐업되고 실업자로 전락하자 이제는 투쟁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이 확실시 되었다. 우리는 누가 공장을 인수한다 해도 반드시 공장재가동과 3승계(고용승계, 노조승계, 단협승계)를 쟁취해 낸다는 것을 목표로 삼고 본격적인 투쟁을 시작하였다.


투쟁하며 단련되는 금강노동자!


2004년 4월 정리해고 철회를 위한 서울본사 상경투쟁, 6월 전체 조합원의 17일간 서울상경투쟁, 7, 8월 구미지역 선전전과 지역투쟁 결합, 11월 전체 조합원의 제조공동화 저지를 위한 한 달간의 서울상경투쟁, 12월, 1월의 추운 겨울에 집행간부와 자발적 대오가 한 달간 벌인 서울상경투쟁, 2005년 3월 전체 조합원이 함께 한 두 차례의 창원원정투쟁. 이 모든 것이 지난 450여 일의 기간 동안 금강화섬 노동자들이 벌여온 투쟁의 이력이다. 초기에는 금강화섬 민성기 자본에 대항한 투쟁, 다음에는 폐업 노동자들의 생존권 해결을 요구하는 대정부투쟁, 그리고 4차 경매 이후에는 경한자본에 대항한 투쟁이었다. 이렇게 매 시기마다 투쟁의 조건과 투쟁대상, 구체적 요구는 달랐다. 그러나 금강화섬 노동자들은 매번 다른 조건에도 불구하고 연이어지는 투쟁 속에서 점차 변화되어갔다.


금강화섬 노동자들은 1년이 넘는 투쟁 기간 동안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새롭게 거듭 나면서 서서히 투쟁하는 노동자로 단련되어갔다. 투쟁의 과정은 금강화섬 노동자들로 하여금 지금껏 자신이 살아오면서 느껴보지 못한 많은 것들을 배우고 느끼게 했다. 특히, 자신이 하고 있는 투쟁보다 더욱 열악하고 외로운 동지들과의 연대투쟁은 금강화섬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삶과 투쟁을 비춰보는 거울의 역할을 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그중에서도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통해서, 장애인 동지들의 투쟁을 통해서,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을 통해서 이 땅의 노동자들과 사회적 약자의 비참한 삶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자본가들, 가진 자들에 의해서 너무나 소외당하고 노동자로서, 사람으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런 노동자들과 사회적 약자들이 벌이고 있는 투쟁이 너무나 정당하고 절실한 투쟁이기 때문에 우리가 연대해 투쟁의 힘을 모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금강화섬 노동자들은 투쟁 속에서 우리들을 실업자로 만든 근본적인 원인은 자본주의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제조공동화 현상이 일어나는 원인에 대해서, 폐업이 일어나는 원인에 대해서 수차례의 교육과 토론을 거치면서 공장 폐업의 문제가 단순히 한 자본가의 무능력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산업의 몰락과 폐업으로 인해 노동자들 수만 명이 일자리를 잃고 한순간에 실업자로 내몰리는 상황은 자본주의가 계속되는 이상 지속될 것이라는 점을 알게 된 것이다. 이런 인식을 통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장본인은 개별 자본을 넘어 자본주의 체제를 중심에서 운영하고 있는 총자본인 정부라는 것을 제기하게 되었다.

또한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힘이 단결의 힘이요, 연대의 힘이라는 것 또한 몸소 실천하며 배우는 과정이었다. 수많은 열악한 동지들의 투쟁에 직접 연대하면서 배운 “노동자는 하나다”는 소중한 정신과 노동자를 탄압하는 것에는 똘똘 뭉치는 개별 자본들과 정부기관의 모습을 목격하면서 노동자들의 단결과 연대의 힘만이 이들의 ‘단결과 연대’를 뚫어낼 수 있음을 배우게 된 것이다.


공장사수 투쟁위원회로 전환!


2005년 3월 11일 4차 경매에서 금강화섬이 320억에 낙찰되었고 계약금으로 33억을 지불하였다. 낙찰자는 경한인더스트리라는 회사이다. 경한인더스트리는 금강화섬을 인수하기 위하여 2월1일 급조된 유령회사이다. 이 회사는 경남 창원에 있는 경한정밀, 부산에 있는 신일전기, 대구에 있는 영창테크라는 3개의 자본이 모여 만든 오천만원짜리 회사로 2월11일 경매를 통해 금강화섬을 낙찰 받았다.

낙찰 이후에 인수자본인 경한은 법원에 항고를 제기하는 황당한 일을 전개한다. 법원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라고 전한다. 첫 번째 항고제기 사유는 입찰 전에 금강화섬노동조합이 있는 것을 몰랐다. 두 번째, 금강화섬에 있는 기계들이 파손되었다는 소문이 있다. 세 번째, 법원의 경매 절차가 잘못되었다. 이렇게 세가지의 황당한 이유로 인수를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그러나 법원에서 항고제기 일주일 만에 기각 판정을 내리자 경한자본은 또다시 대법원에 재항고하였고 대법원에서도 한달만에 심리불속행 기각이라는 판정이 내려졌다.

이렇게 해서 경한자본은 5월30일, 약260억의 잔금을 치렀고 금강화섬에 대한 소유권을 넘겨받는 절차인 인도명령서를 요구하며 법적 절차를 밟았다.


중요한 사실은 경한자본의 인수목적이다.


우리들은 경한자본이 최대한 단시간에 공장을 소유하고 노동조합을 정리하기 위해 용역깡패 250명을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게 되었고, 더욱 철저한 공장사수를 위해 24시간 규찰과 바리케이트로 진지를 구축하며 마지막 한판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이처럼 화학섬유에 경험도 없는 자동차부품회사가 금강화섬을 급하게 인수하고 용역깡패까지 준비하고 있다는 것은 시세차익만을 노리며 분리매각을 진행하겠다는 의도로 밖에 볼 수 없다. 금강화섬노동조합은 450여 일을 지켜온 공장을 자본가들의 돈놀이에 이용되도록 가만히 있지는 않겠다는 것을 분명히 밝혀왔다. 이제는 2005년 5월13일 공장사수투쟁위원회로 조직체계를 전환하고 5월 28일부로 전체조합원이 철야농성을 진행하며 공장을 사수하면서 말뿐이 아님을 실천을 통해 증명하고 있다.

금강화섬을 인수한 경한자본은 450여 일을 지켜온 금강노동자들의 점유권을 인정하고 9년간 일한 금강노동자들의 가치를 존중하며 인정하는 자세를 취해야만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경한자본의 목적은 고사하고 거대한 금강노동자들과 연대동지들의 결사투쟁을 감당해야만 할 것이다.


 금강화섬 폐업투쟁의 의미


첫 번째, 금강화섬노동자들의 폐업투쟁은 전체 노동자들의 요구가 담겨있다는 의미가 있다. 금강화섬의 투쟁은 앞으로 수없이 이어질 폐업노동자들의 선봉투쟁이다. 앞으로 수많은 사업장이 자본 간의 경쟁에서 폐업 당할 것이고 이로 인한 모든 책임은 자연스럽게 수년간 공장에서 일한 현장 노동자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될 것이다. 이것으로 인해 노동자들의 삶과 행복한 가정은 하루아침에 무너져버릴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우리들이 주장하며 요구하는 3승계인 고용, 노조, 단협을 인정하라는 것은 폐업의 책임이 자본과 정부에게 있다는 것을 알리고 폐업으로 인한 실업노동자를 사회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정당한 요구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가들의 소유권에 정면으로 맞서는 금강화섬의 폐업투쟁은 자본가들의 착취에 맞서는 투쟁과 생존권을 스스로 쟁취하겠다는 노동자의 정당한 투쟁의 요구를 담고 있다.

두 번째, 금강화섬노동자들은 공장재가동, 3승계 쟁취투쟁만이 아니라 비정규직 철폐투쟁을 함께 구호로 걸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적극적으로 연대하며 함께하는 투쟁을 해왔다. 폐업을 당했다는 것은 비정규직으로서의 삶을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업노동자로 전락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을 직접 경험하고 그들의 투쟁에 함께하면서 우리의 요구가 비정규직 철폐투쟁과 결코 떨어져 있는 문제가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깨달음은 자연스럽게 ‘비정규직철폐’를 우리의 요구로 제기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세 번째, 상경투쟁으로 창원투쟁으로 지역투쟁으로 새롭게 잊혀져가는 연대의 정신을 살려서 모범을 보여주는 투쟁을 해왔다는 것이다. 물론, 금강화섬노동자들이 일상활동을 연대투쟁으로 만들어 나가기까지는 결코 쉽지 않았다. 장애인이동권연대, 이주노동자, 철도매점, 한원CC, 경찰청고용직공무원, 정오교통, 새마을여승무원, 하이텍코리아, 방지거병원 등등의 힘든 투쟁을 꿋꿋하게 전개하는 동지들과 함께하면서 내사업장만의 요구, 내사업장만의 투쟁에서 서서히 벗어나게 되었고 거대한 자본의 탄압과 착취에 맞서기 위해서는 진정한 노동자의 연대가 절실함을 보고 배운 것이다. 이러한 교훈을 통해 흔히 말하는 ‘품앗이 연대’가 아니라 아무런 대가도 필요 없는 전정한 노동자의 연대를 작지만 실천하게 된 것이다.

요즘 민주노조 운동이 무너져가고 있는 상황에서 중소사업장인 금강화섬노동자들의 이러한 투쟁은 운동의 새로운 기운을 조성하는 것이며 총자본의 공세에 하나의 힘으로 대응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공장은 노동자의 것이다.


금강화섬 공장에는 “공장의 주인은 노동자”, “공장은 우리의 것이다”라는 구호들이 있다.

이 구호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450여 일동안 공장을 점거하고 투쟁해온 결과이다.

자본주의하에서 노동자가 결코 생산수단을 소유할 수는 없지만 생산수단인 공장을 점거하고 우리의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공장을 결코 내어줄 수 없다는 각오로 투쟁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금강화섬노동자들의 투쟁은 단위노조의 한계와 역량을 넘고 조합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투쟁을 하고 있는 것이며 전체 노동자의 생존권을 사수하는 투쟁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선봉투쟁의 영예를 자랑스럽게 받아들일 것이며 전체노동자의 엄호와 연대, 우리들의 단호한 결의로 당당하게 생존권을 쟁취할 것이다. ≪노사과연≫

덧붙이는 말

"생각하며 투쟁하는 노동자의" [정세와 노동] 2005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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