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 노무현 대통령의 ‘연정(聯政)’제안에 대하여

위기 돌파와 권력 재창출을 위한 제안으로서 ‘연정’


노무현 정부로서 난국(亂局)은 난국인가 보다. ‘연정 발언’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노무현 정부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위기를 구성하는 담론은 독특하다. 현 상황은 대통령 한 개인이나 한 정권의 위기가 아니라 한국정치의 위기이고, 한국정치의 고질적인 병을 극복하는 것이야말로 이 위기를 돌파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본인의 연정 제안은 큰 결단이고, 한국의 정치 문제 해결의 구세주라는 것이다. 물론 연정이 개헌과 맞물려 있음을 은근히 내비치면서 말이다. 즉, 정치적 위기는 맞지만, 그 위기는 노무현 대통령 개인의 위기가 아니라 한국의 정치구조로부터 오는 위기이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 구세주로서 다시 노무현 자신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이미 익히 알고 있는 바의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스타일이다. 탄핵국면에서는 그러한 술수를 통해 한몫 크게 잡았지만, 이번에는 얼마나 약발이 먹힐지 모르겠다.

자신의 정권을 탄생시킨 민주당을 분열시키면서 열린우리당을 창당하였고, 탄핵이란 수세국면을 ‘국민적 돌파’라는 공세로 정치적으로 돌파하여 얻은 여대야소 국면이었지만, 그 후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에 대한 정치적 지지는 점점 감소하다가 최근에는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로부터 ‘역대 정권과는 다른 도덕적인 정부’라는 기대까지 받으면서 출범했지만, 노무현 정부 역시 일찍부터 ‘측근 비리’에 시달려 왔고, 여러 새로운 형태의 ‘권력형 비리’가 밝혀졌다. 여기에다 특히 경제, 외교, 사회, 노동 분야 등에서 정책 수행의 무능력까지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노무현 정부는 ‘정부’로서 ‘행정권력’을 구사할 능력을 상실해 가고 있다.

그런데 임기가 끝나는 2007년까지 노무현 정부에게는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갈수록 양극화되고 있는 사회적 불평등, 그것을 더욱 심화시키는 노무현 정권과 독점자본의 노동자계급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공세, 지배계급 내부의 갈등과 대립, 그리고 급격히 하락하고 있는 지지율 때문에 이렇게 가다가는 노무현 정부도, 열린우리당도 2007년까지 그 지속을 보장받을 수 있을지 모를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래서 승부수로서 던진 것이 바로 ‘연정(聯政)’이라는 카드다. 6월 24일 ‘당․정․청 수뇌부 인사 11인모임’에서 시작되어 7월 4일의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이나 청와대 홍보수석의 브리핑, 5일 대통령의 공식 발표, 7일 기자 간담회, 그리고 28일의 “한나라당 주도의 대연정" 제안과 29일의 기자간담회 등으로 이어지는 이 ‘연정’논란에는 분명 노무현 정권의 (그리고 열린우리당의) 그러한 위기의식이 반영되어 있고, 그리하여 ‘연정’제안은 그 위기를 또 한번의 반민중적 정치쇼로서 극복하려는 노림수다.

7월 초 ‘연정’ 문제가 명확한 형태로 제안되자 여러 언론 매체가 보여준  ‘우연’, ‘뜻밖’이라는 반응과는 달리 청와대나 노무현 대통령 당사자는 후보시절부터 고민해왔던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2003년 4월 임시국회 국정연설, 5월 민주당 국회의원 부부 초청 만찬, 12월 충북지역 언론인과의 만남, 2004년 9월 MBC 시사매거진 2580과의 인터뷰, 2005년 취임 2주년 국회 국정연설 등에서 문제를 언급해 왔다는 것이다.

비록 최근에 제기하고 있는 것과 같은 명확하고 노골적인 형태로는 아니었겠지만, 그러한 발언은 해왔다는 것이 물론 빈말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이는 지난 1년여에 걸친 정치 상황의 전개를 소위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의 위기’로 파악하는 대통령 자신이나 그의 정책 브레인들의 정세관과도 맞물려 있을 것이다. 즉, 그러한 정세관에 입각해서 그러한 ‘위기'를 돌파할 묘수를 골똘히 생각해 왔을 것이고, 그 결과 ‘헌법 개정’과 같은 차원의 정치적 수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것이고, 그를 위한 장기적 포석으로서 그러한 발언들을 해왔을 것이다.

실제로 대통령제 하에서 명색이 대통령의 공약 사항인 ‘신행정수도 이전’ 문제가 국회에서 반전되고, 헌법재판소에서조차 위헌 판결이 나는 마당에, 게다가 이른바 ‘탄핵정국’에서의 정치적 선동에 힘입어 확보했던 의회 과반수 의석조차 선거법 위반 등의 판결로 무너진 마당에, 권력 담당자들이 상황을 ‘민주주의의 위기’로 파악하는 것은 있음직한 일이다. 즉, “국민들의 선택과 책임정치”라는 틀이 사라지고, 그 대신에 장기간에 걸쳐 구조화된 힘―사법기관과 강력한 보수층이 장악하고 있는 입법기관―의 논리로 귀결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지역구도 해소’ 등의 이른바 개혁적 명분을 내세워 어떻게든 이러한 정치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들은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노 정권은 이번의 ‘연정’제안을 그저 일시적으로 한번 던져보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향후 정국에서 계속적으로 이를 제기하고, 이를 통해 자신들의 숨겨진 정치적 목표를 관철시키려 할 것으로 보인다. 단기적으로는 당연히, ‘연정’, ‘권력의 공유’ 혹은 그 ‘분점’이라는 미끼로 한나라당을 흔들어대면서 ‘여소야대’의 부담을 경감시키려고 하는 의도가 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연정’소동은 보다 장기적으로는 ‘개헌’이라는 문제, 그를 통한 정권의 재창출이라는 문제와 맞물려 있고, 그 때문에 사태의 양상과 결과는 이전에 제기되어 온 정치적 담론들과는 사뭇 다르게 진전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실제로, 7월 4일 청와대 홍보수석의 브리핑은 노대통령의 연정 발언을 ‘개헌’논의와 무리하게 연결시키지 말 것을 당부하였지만, 사실 이야말로 그 ‘연정’발언이 결국은 ‘개헌’을 위한 것임을 자인하는 것일 것이다. 실제로, 노무현 대통령은 언론과의 여러 간담회에서 “한국정치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한다면 내각제 수준으로 대통령의 권한을 이양할 용의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연정’발언에 대해 언론이나 정치권 인사들이 “연정 자체가 목적이자 끝이 아니다”며, 그것을 ‘연정 → 선거법 개정 → 개헌’으로 이어지는 연속 시나리오를 가진 치밀한 ‘정치공학’이라고 보고 있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또 노무현 대통령은 29일 자신이 “원하는 것은 대연정보다는 선거제도 개혁”이라고 말함으로써 사실상 그러한 관점을 시인하기도 했다.



‘연정' 제안과 각 당, 특히 민주노동당의 반응


일단 노무현 대통령은 지금의 ‘여소야대’ 속에서는 국정 운영이 한계에 부딪히기 때문에, 거국적 국정운영을 위해서 ‘연정’을 하겠다는 것이다. 7월 28일 노무현 대통령의 “당원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그의 ‘연정’제안이 구체적으로 ‘한나라당 주도의 대연정’임이 명확해졌지만, 처음 대통령의 ‘연정’발언은 한나라당뿐 아니라 민주당과 민주노동당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 민주노동당은 사실상 의미심장한 반응을 보여주었다.

민주노동당은 공식적으로는 물론 노무현 정권과의 연정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규정하였으나, 주요 인사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노회찬 의원은 “장관 자리 나누기와 같은 권력 분배식 연정이라면 받아들일 수 없지만, 민주노동당의 중요한 정책이 받아들여진다면 협상도 가능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또한 “국가보안법, 비정규직 관련법, 비례대표 전면 확대 등에 대한 조정이 가능하다면 협상도 가능하다”면서 “우선적으로 교섭단체 요건 완화 문제를 풀어야 할 것”이라고도 말했다고 한다. 이영순 의원은 “우리가 연정 대상으로 가까운 면은 있을 것”이고 “개혁적 의제에 있어 여당이 민노당과 비슷한 입장이 된다면 연정은 가능할 것이고 그건 좋을 일”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더 적극적인 반응으로는, 오는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연정을 이루는 것이 민주노동당이 목표라는 현직 고위 간부의 발언도 있었다고 한다. 다만, 논란이 불거지자 민주노동당은 7일 연정 불가방침을 재확인했다. 김혜경 대표는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포기하지 않는 한, 연정은 가능하지 않다”며, “당은 민생정책 중심으로 사안별 공조를 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연정’제안의 주요 대상이 한나라당임이 명확해지자 심상정 의원 등은 “열린우리당은 차라리 한나라당과 합당하라”는 야유를 보내기도 했다.

아무튼 이렇게 되면,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나름으로 “한나라당 주도의 대연정”을 제안함으로써 민주당이나 민주노동당은 안중에 없음을 명확히 한 셈이 되고, 민주당이나 민주노동당은 또 그에 대해서 나름의 ‘적의’를 드러낸 셈이 되어, 민주당이나 민주노동당과의 이른바 ‘소연정’의 가능성은 사라진 것으로 된다.

그러나 상황은 그렇게 간단히 진행될 것 같지 않다.

우선, ‘한나라당 주도의 대연정’이라는 뜻하지 않은 제안을 받은 한나라당이, 내부적으로는 당연히 ‘연정 참여의 득실’을 열심히 계산하고 있겠지만, 그리하여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는 현 시점에서 단언하기 어렵지만, 일단은 ‘연정 참여’에 의한 권력의 공유 혹은 분점이라는 ‘소탐’이 자칫 차기 정권 상실이라는 ‘대실’을 초래할까봐 연정 참여를 강력하게 거부하고 있다. 실제로 노무현 정권에 대한 대중의 지지도가 갈수록 절망적으로 떨어져가고 있는 상황에서, 한나라당은 당연히 “현 상태라면, 열린우리당의 차기 정권 재창출 불가”라는 판단을 내리고 있을 것이고, 그러한 한에서는 “한나라당 주도의 대연정”이라는, 아무리 달콤한 제안이라도 필시 그것을 삼켜 현상을 바꾸고 싶지 않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나 열린우리당 역시 이 또한 염두에 안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서 계산했을 것이다. 손해 볼 것 없다고. ― “한나라당은 정파적인 이익에만 관심이 있고, ‘지역주의 해소’라는 정치개혁에는 관심이 없다”고 몰아치고, 거기서 오는 정치적 반사이익을 누리는 것으로도 득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때마침(?) 터져 나온 정치자금 관련의 도청 테이프인 이른바 ‘안기부 X파일’도 누구에게보다도 특히 한나라당에 커다란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비열한 도청이 이루어질 때에 정권을 담당하고 그것을 지시․지휘했다는 순정치적 부담뿐 아니라, 삼성(이건희․이학수)-중앙일보(홍석현)-한나라당(이회창)으로 이어진 거액의 정치자금, 즉 정치적 뇌물 문제가 드러나면서 이른바 ‘차떼기 정당’이라는 악령이 다시 꿈틀대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노무현 대통령이나 열린우리당으로서는 ‘“한나라당 주도의 대연정”이라는 제안이 한나라당과의 관계에서 그 자체로서 아무런 손해를 볼 것이 없다고 해서, 한나라당이 그것을 받지 않을 경우 그저 한나라당만 몰아치면서 손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처지에 있다. 이른바 ‘여소야대’인 구도인데, “한나라당 주도의 대연정”이라는 제안이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을 단단히 화나게 만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분당과 ‘탄핵정국’유도를 통한 몰락이라는 감정적 앙금이 있는 민주당은 몰라도, 지금까지 여러 문제에서 친열린우리당적인 투표를 해준 민주노동당을 다시 달래고, 그와 더불어서 무언가를 도모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가 되는 것이다.

‘연정’ 논란이 시작되었던 초기와 달리 민주노동당은 물론 당연히 단호하게 ‘NO!’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명시적으로 ‘개헌’ 논의와 맞물리게 되면, 민주노동당도 ‘NO’라고 말할 이유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 2012년 집권을 얘기하고 있지만, 그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다는 사실은 누구보다도 민주노동당 자신이 잘 알고 있을 것이고, 논리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내각책임제’ 하에서 ‘민주노동당’의 집권가능성이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물론 단독정부가 아닌 연합정부로서 말이다. 따라서 ‘연정’ 논의가 대통령중심제에서 내각책임제로의 ‘개헌’ 논의로 진전된다고 한다면, 민주노동당이 끝까지 ‘NO’라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더더군다나 사회적 합의주의 세력이 민주노동당의 지도부를 장악하고 있다면, 이러한 권력분점을 통한 타협체제는 민주노동당으로서 마다할 길이 아닐지도 모른다.



‘연정'․‘개헌' 논의의 반노동자․반민중성


이론상으로는 헌법이 바뀐다는 것은 정치권력의 주체, 정치권력의 구성방식 등 정치구조가 바뀐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하지만, (부르주아 민주공화제라는 것이 갖는 계급적이고 본질적인 한계는 차치하더라도) 언제, 누구의 힘으로, 왜, 어떻게 바뀌는지에 따라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주지하는 것처럼, 한국은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9번의 개헌이 있었다. 그러나 그 개헌들은 거의 다 권력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한 개헌이었을 뿐, 다소라도 민중적 의지가 반영된 개헌은 1960년 4월 혁명 후의 개헌과 1987년의 개헌 외에는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과거에도 그랬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순 없다. 하지만, 이번에 ‘연정’제안을 계기로 서서히 일고 있는 ‘개헌’논의에 대해서 말하자면, 은근히 그 개헌 논의를 일구고 있는 대통령이나 이해찬 총리, 열린우리당 등의 의도와 동기는 당연히 ‘정권의 재창출’, 그러니까 권력의 유지에 있다.

그를 위해서 노무현 대통령 등은 ‘지역주의’라는 ‘한국정치의 구조적 문제’를 들고 나오고 있는데, 주지하는 것처럼, 그에 대한 노무현 정부의 진단과 처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즉, 지역주의 정당정치의 온존강화로,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고, 특히 ‘국회 해산권’이 없는 대통령제 하에서의 ‘여소야대’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이 더욱 불거지기 때문에 국정운영의 곤란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가능한 권력구조로의 개헌을 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 권력구조로서 내각책임제 또는 소위 이원집정부제, 분권형 대통령제 등등을 언급하고 있다. 더 나아가, ‘여소야대’는, 정당적 통제가 없는 미국과 같은 나라를 제외하고는, 연정 등의 방식을 통해 '여대(與大)'로 가는 것이 정치구조에 관한 보편적 법칙이며, 따라서 연정은 세계적, 보편적으로 승인된 합법적이고 정당한 정치행위인데, 오히려 우리나라에서는 부당하고 부도덕한 것으로 부당하게 매도되고 있다는 것이, ‘연정’발언에 비판적인 여론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항변이다.

이러한 언급은 한편에서는, 그리하여 ‘연정’에 동의하지 않으면 자기주장이 강한 분열주의자요, 정치의 보편적인 법칙을 모르는 자라는 것이며, 다른 한편에서는 그러니까 ‘연정’이 부당하게 매도당하지 않아도 되고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제도화되는 내각책임제 등으로 개헌을 하자는 것이 된다.

그럴 듯하게 들린다. 특히 한국정치의 구조적 문제가 ‘지역주의’라는 지적은 정말 그럴 듯하게 보인다. 실제로 수많은 정치가, 수많은 언론, 수많은 지식인, 수많은 정치학자들이 그렇게 지적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한국정치의 구조적 문제가 ‘지역주의’라는 주장이나, 따라서 ‘연정’이나 내각책임제 등 ‘대화와 타협의 정치’제도를 통해서 그것을 극복하자는 주장은 한국정치의 진짜 ‘구조적 문제’를 은폐하는 것이고, 기껏해야 사고(思考)와 상상력의 부족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은 그 ‘지역주의’를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주의에 기반한 권력분점을 제도화하자는 것이다.

아직 제도권 정당으로서의 그 힘이 미약하기 짝이 없는 민주노동당을 제외한 주요 제도권 정당들은 실제로 특정 지역들을 자신들의 정치적 지반으로 삼고 있는, 그야말로 지역주의 정당들이고, 따라서 한국정치의 구조적 문제는 지역주의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수많은, 기라성 같은 정치인들이 ‘지역주의 타파’를 외쳤고, 정치인 노무현 씨야말로 국회의원 선거에서의 거듭된 낙선, 낙선을 자초한, 그러한 ‘지역주의를 거스르는’(?) 정치적 행보가 최대의 정치적 자산이 되어 대통령까지 되었는데, 지역주의는 왜 완강하게 버티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행정 수도’의 지방 이전이나 ‘연정’, 선거법 개정이나 내각책임제 등으로의 개헌으로 극복될 수 있는 것인가? 아니, 사실은 정치인 노무현 씨나 그와 동행하고 있는 정치인들의 정치적 행보와 ‘반(反)지역주의적’주장․정책은 정말 반지역주의인가, 아니면 지역주의 그것을 가장 교묘하게 이용하고, 그에 간교하게 편승하는 것인가?

우선, ‘연정’이나 선거법 개정, 내각책임제 등으로의 개헌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것들은, ‘지역주의를 거스르는’행보를 통한 정치적 자산 쌓기나 행정수도 이전 공약,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역주의 타파’공약 자체가 그러한 것처럼, 결코 ‘지역주의’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가장 간교하게 이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지역주의 기반한 권력 분점을 제도화하는 것일 뿐이다. ‘지역주의의 극복’이라면 이는 바로 그러한 의미에서의 극복일 뿐이다. 즉, 지역주의가 조장하는 장애를 그것을 그렇게 간교하게 이용하고, 나눠먹기함으로써 극복한다는 의미에서의 극복일 뿐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런 점에서 솔직하다(?). 이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거국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경우 권력을 대개 분점한다. 자리를 주거니 받거니 하고, 심지어 국영기업체 사장, 부사장을 어느 쪽이 하고, 이런 것을 다 나눠 연정한 경우도 있다. 역사에서 성공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한편, 한국정치의 구조적 문제를 지역주의로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천박한 견해이며, 문제의 본질을 은폐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민주당, 자민련 등의 정강․정책이, 그 계급적 차이는 그만두고라도, 어지간한 계층적 차이만 나더라도 대중의 투표 행태가 지금처럼 ‘지역주의’로서 나타나겠는가? 분명 아닐 것이다. 그것은 분명 계급적 투표, 계층적 투표로서 나타날 것이다.

한국정치의 ‘지역주의’는 결국 독점 부르주아지에 의한 (그 동안의) 정치독점의 표현이고, 그러한 정치독점과, 그것을 은폐하는, 언론 매체 등 제반 이데올로기 장치에 의한 대중의 우민화(愚民化)의 결과일 뿐이다. 즉 한국정치의 구조적 문제는 독점 부르주아지의 지배 그 자체이지, 그것의 한 표현형태에 불과한 지역주의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대통령의 ‘연정’, 선거법 개정 등의 제안이나 그로 인해 촉발된 개헌 논의는 한국정치의 이러한 독점부르주아지 지배라는 사실을 침묵으로 은폐하고 있고, 또 한번 ‘선거법 개정’, ‘개헌’을 통한 지역주의 타파, 정치개혁이라는 정치쇼의 불씨를 지피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또한 김영삼 정권 이래의 한국정치의 한 특징이 되어 있는, 그리고 지난해 이른바 ‘탄핵정국’에서도 그 반동적 역할을 톡톡히 해낸 이른바 ‘시민운동단체’․‘진보적 지식인들’의 천둥벌거숭이 놀음도 벌써부터 시작되고 있다. 예컨대, “개헌 논의는 사회개혁의 큰 줄기”라며, “법학․정치학․사회학․경제학 등 각계 학자 20여명과 정치인, 변호사, 시민단체 관계자 등 모두 200여명이 참가해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열띤 토론을 벌였다”는 7월 16일의 ‘시민헌법 대토론회’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독점부르주아지 각 분파 간의 권력구조 개편이 마치 시민적․민중적 필요인 듯이 합리화하고 선전하여 대중을 동원하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다.

지금 ‘연정’을 얘기하고, ‘선거법 개정’을 얘기하고, ‘개헌’을 얘기하면서 노동자․민중의 관심을 그쪽으로 유도하려는 움직임은, 그들이 아무리 “시민주의적 헌법을 쟁취하자”, “민중적 헌법을 쟁취하자”고 떠들어대도 분명 모두 반동적이다. 그것은 모두 바로 이 시기의 ‘연정’, ‘선거법 개정’, ‘개헌’ 담론이 깊이 숨기고 있는 독점 부르주아지 분파 간의 ‘대화와 타협의 정치’라는 목표, 그것을 향한 정치일정에 부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그러나 뼈저리게, 우리는 최근의 ‘연정’논란을 바라보면서 지난해 ‘탄핵정국’에서의 ‘탄핵 반대’․‘탄핵 무효’ 운동 소동을 반성해야 할 것이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과 같은 수구세력과는 전적으로 다르다는 전제 위에서 그 ‘탄핵 반대’․‘탄핵 무효’운동을 통해서 지키고자 했던 대통령 노무현 자신이 자신의 정치적 노선은 한나라당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고 공언하고 있지 않은가!

위선과 기만이 정치적 자산인 일부의 ‘좌파 지식인’, ‘좌파 활동가들’에게야 쇠귀에 경이겠지만 .... ≪노사과연≫




노무현 대통령의 ‘연정(聯政)’제안에 대하여



최경희 | 회원 |



덧붙이는 말

"생각하며 투쟁하는 노동자의" [정세와 노동] 4호 (2005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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