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정권교체를 보는 독일 언론의 시각



2006년 9월 17일 일요일, 유럽에서도 변방으로 분류되는 북유럽의 스웨덴에서 치러진 제국의회선거의 결과가 한반도에 미묘한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 10년간 녹색당 및 좌파당과 연합하여 안정적이고도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견인했던 사회민주노동자당(SAP)의 재집권 실패에 대하여 정작 이웃의 유럽언론들은 흡사 예견이라도 한 듯 대체로 담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반면, 머나먼 한국의 수구정당과 수구언론들은 스웨덴 우파연합의 승리가 마치 자신들의 승리이기라도 한 양 희색을 감추지 못하면서 사민당의 패배는 복지국가정책에 대한 심판이라고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며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하기야 그들도 스웨덴식 복지국가의 성립과 전개과정이 곧 스웨덴 사민당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는 사실쯤은 알고 있을 터이니, 평소 그들의 조건반사적 사고행태를 감안한다면 사민당의 패배에서 즉각 스웨덴 사회복지모델의 실패를 연상하는 것도 큰 무리는 아닐 성싶다. 그렇지만 적어도 스웨덴의 최대 교역상대국인 독일에서 이번 선거결과를 두고 사회복지국가모델에 근본적인 수정이나 전면적인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는 시각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유럽 사람들은 흔히 “스웨덴 국민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모두가 사민주의자다”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스웨덴 사람들 역시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물론, 자신들이 사민주의자라는 자부심을 스스럼없이 드러낸다. 이러한 반응은 지난 74년 중 65년간 사민당을 위시한 좌파세력에 정권을 위임했던 그들로서는 당연한 것이리라. 우파라고 해봤자 심각한 경기침체국면에 봉착했던 1976년과 1991년 고작 9년간 집권한 것이 전부니, 스웨덴 국민에게 두 차례에 걸친 우파세력의 집권이 일종의 해프닝 내지 에피소드로 비춰지는 것 역시 당연지사일 것이다. 양당제의 전통이 확립되고 정치세력들의 명확한 정체성과 유권자들의 성숙한 정치의식이 저변에 깔려있는 유럽의 정치풍토에서 특정한 정당이 그토록 오랫동안 정권을 유지했던 경우는 전무하다. 오죽하면 유럽 사람들은 그러한 스웨덴 국민을 가리켜 자신들과는 다른 뭔가 특별난 유전자를 가졌을 것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을까?

스웨덴인들의 보편적인 사회민주주의적 사고는 1928년 당시 사민당 당수였던 페르 알빈 한손이 제창한 유명한 ‘인민의 집(folkhemmet)’이라는 개념에서 비롯한다. “국가는 사회 내의 모든 사회적, 경제적 차별들을 제거하여 국민들에게 안전을 제공하여야 한다”는 말로 집약되는 그의 이른바 ‘인민의 집 이론’은 노동자의 권리가 자본가의 권리와 동등하게 보장되어야 한다는 원칙에서 출발한다. 한손은 국가를 가정에 비유하여 가족 개개인의 이해는 가정의 유지라는 상위의 프로그램에 종속되어야 하며, 가족구성원들 간의 갈등은 모두 한 자리에 모여 합의점을 찾음으로써 해결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생각은 그 후 14년에 걸친 그의 집권기간 동안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의 긴밀한 협력, 소득의 균등화 그리고 사회적 안정이라는 구체적인 형태로 실현되었고, 이것은 스웨덴식 사회복지국가체제의 초석을 다지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하였다. 스웨덴 국민들의 정치적 사고가 여타 유럽 사람들과 다르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들의 특별한 유전자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한손의 메시지를 가슴 깊이 새기며 사회의 안정을 위해서 계급간의 협력은 필수적이라고 하는 그들의 집단적 확신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독일 언론매체들이 가장 즐겨 사용하는 표현들을 꼽아보라고 한다면, 그 중 한 가지는 아마 ‘역사적’(historisch)이라는 말일 것이다. 매사를 꼼꼼하게 분석하며 그것에 일일이 의미를 부여하는 민족적 성향에 기인한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정당선거나 운동경기와 같이 승패의 명암이 뚜렷이 엇갈리는 사건은 말할 것도 없고, 거의 모든 행사나 화젯거리에 대한 평가와 해설에서 ‘역사적’이라는 수식어는 빠짐없이 등장한다. 물론 이번 스웨덴 선거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독일의 유력 일간지 <쥐트도이췌 짜이퉁>은 9월 19일자 정치면에서 ‘시민연합의 역사적 승리’라는 제목으로 스웨덴 제국의회 선거결과를 머리기사로 다루면서 이번 선거가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 이유로 집권 사민당이 처음으로 호황국면에서 패배했다는 점을 들었다.

사실 예란 페르손 총리가 집권했던 지난 10년간 스웨덴 경제는 이웃 국가들의 시샘을 자극할 정도로 견고하고 눈부신 성장을 거듭해왔다. 올해 역시 5%를 상회하는 국내총생산의 증가를 내다볼 만큼 국내경기는 지속적인 상승무드를 타고 있고, 국가재정 역시 현재 유럽 각국의 경제사정으로 보아 선뜻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안정된 흑자 기조를 유지하고 있으며, 실업률도 지난 해 5.8%에서 5.1%로 감소할 것으로 예측할 정도로 노동시장도 안정되어 있다. 물론 신온건당을 주축으로 한 우파연합은 선거전을 통해 그것은 단지 통계적 수치에 불과할 뿐 실질적인 실업률은 무려 20%에 이를 것이라며 여당을 향해 맹공을 퍼부었지만, 이번 선거에서 실업문제가 승패를 결정지었다고 보는 이는 거의 없다. 따라서 사민당 패배의 주요한 원인이 경제문제에 있지 않았던 것만큼은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이 점에 대해서는 또 다른 독일의 유력 일간지 <푸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짜이퉁>와 <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도 같은 시각이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들이 그것의 절반이라도 좇아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질 만큼의 경제적 안정과 이로 인한 복지 혜택을 만끽하고 있음에도 사민당에게 1921년 보통선거제도의 도입 이래 최악의 패배를 안겨준 스웨덴 국민의 속내는 과연 무엇일까?

대다수의 독일 언론들은 이번 선거전이 특이하게도 정책이 아닌, 인물에 초점이 맞춰져 진행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선거를 사흘 앞 둔 9월 14일에 발행된 독일의 진보적 시사주간지 <디 짜이트>는 스웨덴 국민의 주된 관심이 ‘지도자(Spitze)의 교체’에 있음을 정확히 간파하였다. 사실 그곳에는 65년에 걸쳐 사민당의 주도로 확립된 자국식 복지국가모델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해서는 새로운 활력을 지닌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이미 널리 형성되어 있었다. 이는 차기 총리감을 묻는 여론조사에서 예란 페르손 총리가 최근 2년간 신온건당 당수인 프레드릭 라인펠트에게 번번이 뒤쳐졌다는 사실에서도 뒷받침된다. 한 마디로 이번 선거에서 스웨덴 국민이 원하는 것은 어떤 새로운 정책이 아니라, 새로운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2003년 페르손 총리의 후계자로 낙점되었던 안나 린드 외무장관이 피살되지 않았었더라면, 사민당의 집권은 계속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컸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녀가 없는 현 상황에서, 토니 블레어와 그의 신노동당 정책노선을 철저하게 '벤치마킹'하며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으로 아바(ABBA)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대중 속으로 파고드는 라인펠트의 젊음과 패기는 확실히 유권자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갔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독일 언론들은 페르손이 유권자들로부터 기피인물이 된 가장 중요한 이유로 그의 지나친 자만심과 오만함을 들고 있다. 예를 들어 “나의 의견은 당신과 다르다”라고 말하기 보다는 항상 “당신의 의견은 틀렸다”라는 식으로 자신의 주장만을 관철시키려는 그의 독선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은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의 통치 스타일과 곧잘 비견되면서 스웨덴 국민의 염증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이 중론이다. 또한 신온건당이 2년 전부터 일찌감치 중앙당, 국민당, 기민당과 함께 ‘스웨덴을 위한 연합’(Allians för Sverige)을 결성하고 우익정당들 간의 긴밀한 공조를 통해 치밀한 전략을 세워 선거를 준비한 것과 달리, 페르손과 사민당은 불과 선거를 2주 앞두고서야 비로소 부랴부랴 선거전에 돌입했다는 사실은 오랜 기간 권력을 행사하며 안일함과 타성에 찌든 집권세력의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내 준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짜이퉁>은 2004년 12월 쓰나미가 동남아시아를 강타했을 당시 정부의 늑장대처로 인해 유럽에서 가장 많은 543명의 스웨덴 국민이 희생되었다는 아픈 기억은 페르손과 사민당에 대한 혐오를 더욱 부추겼을 것이라고 진단하였다. 그런가 하면 독일국영라디오 <도이칠란트풍크>는 선거를 사흘 앞둔 시점에서 사민당의 패배를 예측하면서, 쓰나미 사태의 와중에서도 신속한 대책을 강구하기는커녕 오히려 거액을 쏟아 부은 자신의 별장 건설에 더 큰 관심을 쏟았다는 측근의 말을 인용하여 보도하였는데, 이는 장기집권의 과정에서 권력욕에 물든 페르손의 한 단면을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선거를 통해 스웨덴 국민들이 심판한 것은 사회복지국가(Sozialstaat)라는 시스템이 아니라, 페르손 총리였다는 것이 대다수 독일 언론들의 공통적인 견해다. 그렇다면 과연 페르손 개인에 대한 혐오와 사민당의 장기집권에 대한 염증으로 인한 반사이익만으로 우파연합의 승리를 설명할 수 있을까?

보수당에 뿌리를 두고 있는 온건당은 지난 2002년 보 룬드그렌이 이끈 선거에서 세금감면과 복지정책의 철폐를 공약으로 내세웠다가 15%의 득표율이라는 최악의 참패를 경험해야만 했다. 높은 조세부담을 기반으로 하는 스웨덴식 복지국가체제에서 대폭적인 세금감면이라는 온건당의 공약은 국민에게 곧 복지국가정책의 후퇴나 포기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완벽한 사회복지 서비스가 높은 세금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자국의 사회복지시스템에 대한 자부심과 신뢰를 갖고 있는 스웨덴 국민에게 대대적인 감세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운 것은 그야말로 폭탄을 안고 불에 뛰어드는 식의 무모한 생각이었다는 것을 온건당은 뒤늦게나마 실토할 수밖에 없었다. 사회복지국가를 전면적으로 부인하려는 입장을 취하는 이상, 도저히 집권은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온건당 지도부는 뼈저리게 인식한 것이다.

2003년 10월 참담한 패배의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건당은 젊고 혈기왕성한 라인펠트를 전면에 내세워 본격적인 당 체질개선 작업에 착수하였다. 자신들의 보수적인 당론을 이해시켜 국민의 지지를 끌어내려는 기존의 방식에서 과감히 탈피하여, ‘신온건당’이라는 새로운 당명을 내걸고 당 노선을 한 걸음 더 좌측으로 이동시킴으로써 유권자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서려는 전략을 채택하였다. 그들은 우선 “스웨덴식 복지국가체제는 좋은 것이고, 스웨덴의 문제가 높은 세금에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인정함으로써 국민을 안심시키고, 복지국가의 반대자에서 비판적 지지자로 변신을 시도하였다. 자신들에게 각인된 보수적 이미지를 떨쳐내기 위해 당 지도부는 스웨덴식 복지모델의 틀을 건드리지 않는 한도 내에서, 사민당이 소홀히 해왔던 청소년 실업, 육아, 주택, 의료 등 국민 개개인의 피부에 보다 와 닿는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 방안과 대안을 제시하며 적극적으로 지지층의 저변을 확대시켜 나아갔다. 물론 그들의 단골메뉴였던 감세와 민영화사업과 같은 시장주의적 정책은 지난날의 실패를 교훈삼아 ‘생산성 향상’과 ‘국가기업 활성화’라는 그럴싸한 말로 포장되었다. 이 같은 유화 전략이 적중하여 유권자들은 서서히 보수당이 더 이상 복지국가의 위험요소가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마침내 그들은 넌덜머리 난 사민당의 대안으로 신온건당을 선택한 것이다. 이는 사민당의 전통적 지지표가 대거 신온건당 진영으로 옮겨갔다는 투표 분석 결과에서도 나타나듯, 기존의 경직된 우파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중도적 대중정당의 면모를 각인시키려는 신온건당의 유연한 선거 전략이 제대로 맞아 떨어졌음을 입증하고 있다. 보수당이 1928년 이후 최저 득표율이라는 굴욕적인 성적표를 받아들은 지 불과 4년 만에 26.2%라는 최고의 선거결과를 거둘 수 있었던 이면에는 라인펠트를 정점으로 한 신온건당의 체질 개선의 노력이 있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는 이번 선거를 “스웨덴 국민의 보수화가 아닌, 보수주의자들이 스웨덴화”를 보여준 사건으로 평가하였다. 즉 우파세력의 승리는 보수당→온건당→신온건당으로 바뀐 당명이 드러내주듯, 보수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이념적 스펙트럼을 두 차례에 걸쳐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국민과의 간극을 좁히고 이들의 요구에 순응함으로써 얻어낸 결과라는 것이 독일 언론매체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특히 라인펠트는 당권장악 직후 자신의 당을 ‘신노동자당’으로 부르며 일거리 창출을 최대 과제로 설정하였는데, 이는 정당간의 입장차이가 좁혀짐에 따라 좌-우파의 경계도 점차 희미해져가는 현 유럽의 정치지형의 변화를 잘 보여준다. 적어도 유럽에서만큼은 이제 ‘모든 이에게 일자리를’과 같은 슬로건은 더 이상 좌파진영의 전유물이 아닌 듯하다. 물론 보수주의자들이 자신들의 노선을 수정하여 정권획득에 성공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안데르스 포그 라스무센 덴마크 총리는 신자유주의자에서 사회복지국가의 지지자로 변신하여 자유당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연임에 성공하였고, 2003년 핀란드 의회선거에서 중앙당을 이끌고 승리를 거두었던 마티 반하넨 총리의 경우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에 대해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짜이퉁>은 이제 “북유럽에서 체제를 둘러싼 투쟁은 중도를 선점하기 위한 투쟁으로 바뀌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한편, <디 짜이트>는 철저한 사민주의자임을 자임하면서도 우파세력을 지지하는 것은 스웨덴 국민의 전체적인 보수화 경향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즉 안팎으로 드세지는 세계화의 요구가 그간 복지정책으로 인해 느끼지 못했던 스웨덴 국민의 불안감을 조장시켰다는 것이다. 자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이 하나 둘씩 외국인들의 손으로 넘어가면서 불어 닥친 구조조정으로 인해 일자리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되고, 외국인들의 이주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발생하는 인종 갈등의 문제는 유권자들의 성향을 보수로 기울게 했다는 지적이다.

대다수의 독일 언론들은 우파연합의 앞날이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일단 지난 두 차례의 정권교체 때와는 달리 이번의 우파연합은 호경기국면에서 정권을 넘겨받았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들은 우선 사민당이 이루어놓은 평균 4%대의 경제성장 기조를 유지시켜야 할 결코 만만치 않은 의무를 지고 있다. 만약 이것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면, 우파세력의 승리를 도운 좌파성향의 유권자들이 그들로부터 등을 돌리는 것은 그야말로 시간문제로 보인다. 또한 선거 전략의 일환으로 전면에 부각시키지 않았던 라인펠트 내각의 민영화사업 계획은 노조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우파진영이 구상하고 있는 2천억 크로나(약 26조원) 규모에 달하는 국가지분의 매각계획에는 스칸디나비아 항공(SAS), 통신업체 텔리아(Telia), 노르데아(Nordea) 은행과 같은 굵직한 기업들이 포함되어 있다. 가뜩이나 선거기간 내내 실업수당의 대폭적인 감축을 공언했던 터라 노조에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우파세력이 과연 선거 직후 곧바로 투쟁에 돌입한 노조의 거센 저항 없이 순조롭게 민영화사업을 추진해나가기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소득세와 기업세의 감면 그리고 재산세 철폐와 같은 세제개혁도 기존의 복지체제의 근간을 해치지 않고 라인펠트의 구상대로 기업에 활력을 불어넣고 투자를 유발시켜 더 많은 일거리를 창출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이와 아울러 독일 언론들은 비단 이 같은 경제적 문제들뿐만 아니라, 신온건당 내부에 잔존하는 신구 세력들 간의 마찰과 4당 연정구도로 인한 정당들 간의 이해대립과 같은 정치적 문제들도 앞으로 어떤 식으로든지 표면으로 떠오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따라서 <쥐트도이췌 짜이퉁>은 이번 스웨덴의 정권교체가 정말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는 2010년의 선거결과를 봐서야 비로소 판단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사정들을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애써 외면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이번 선거의 결과를 두고 섣불리 ‘스웨덴식 복지모델의 종말’, ‘사민당 복지정책의 실패’등을 운운하는 것은 그야말로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기 식의 편견일 뿐이다. 정부와 여당의 무능으로 인한 반사이익으로 연명하고 있는 한나라당과 이에 동조하는 수구언론들은 스웨덴 우파진영에 자신들을 투영시키면서 이번 선거결과가 내년으로 다가 온 대선에서 정권교체의 꿈을 실현해줄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하기야 그간 참여정부 스스로 자신들의 복지와 분배정책이 스웨덴식 복지모델을 따르고 있노라고 심심찮게 밝혀왔기에, 수구세력들의 단세포적인 사고능력으로서는 스웨덴 사민당과 열린우리당을 단순 등치시키고, 또 사민당의 패배에 현 정권의 몰락을 오버랩시키는 것도 당연하다. 그렇다면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오히려 그들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다. 그들의 무지로 인해 졸지에 스웨덴을 오늘날의 풍요로운 사회복지국가로 우뚝 서게 한 100여년 전통의 사민당과 같은 반열에 올려졌으니 말이다.

현재 유럽의 정치지형이 제아무리 좌-우파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추세에 있다고 할지라도, 그곳에 한국의 보수여당이나 수구야당을 단순하게 대입시키는 것은 얼토당토않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과 스웨덴을 비교한다는 자체가 한심하고 불가능한 것”이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은 전적으로 옳은 지적이다. 그러나 비교가 불가능한 것은 계량화된 경제수치들의 차이가 아니라, 역사적 배경과 사회적 조건의 상이성과 이로 인한 국민 의식과 정서의 차이 때문이다. 경제력 수준이 비슷하다고 해서 단지 ‘우파’라는 명목상의 이유만으로 일본의 우파와 스웨덴의 우파를 비교할 수 없는 것은 서로 다른 역사를 갖고 있다는 점에 있으며, 좌파가 대기업과 제휴하고 우파는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우리에겐 다소 낮선 스웨덴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단순한 경제적 지식이 아니라, 스웨덴 사회 전체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다.

그럼에도 굳이 한국과 스웨덴의 정치세력들을 비교해보자면, 정당의 이념적, 정치적 성향의 스펙트럼에서 스웨덴의 우익정당들은 한국에서 진보세력임을 자처하는 열린우리당보다도 훨씬 좌측에 위치한다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은? 이념적 뿌리로 보나 지금까지 보여준 정치적 행태를 보나, 그들은 독일의 민족민주당(NDP)이나 프랑스의 국민전선(FN)과 같이 골치 아픈 극우정당들과 한통속이라고 해도 아마 큰 무리는 없을 듯하다. <노사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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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희 | 회원, 독일거주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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