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성과 변혁 지향성 재건 없이 노동운동 재건 없다

호들갑을 떨면서 상황을 과장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호들갑을 떨면서 상황을 과장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여러 곳에서 들리는 '노동운동의 위기' 혹은 '민주노총의 위기'라는 소리가 예사롭게만은 들리지 않는 작금이다.

실제로 그간의 정황을 돌아보면, 노동자계급의 운동을 구조적으로, 나아가 이데올로기적으로도 철저히 무력화시키려는 국가와 독점자본, 언론의 공세와 책동이 그 어느 때보다도 독하게 가해지는 데에 비해서,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자계급운동 측의 그에 대한 대응은 지리멸렬하고 무기력했다고 하는 것은 비단 강성의 시각을 가진 소수만의 평가는 아닐 것이다.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의 대 노동자계급투쟁


노동운동에 대한 공세는 가히 전방위적으로 가해지고 있다. 직접적 착취자로서의 독점자본은 물론, 국가와 부르주아 정치인․정당들, 조․중․동 등의 파쇼언론을 비롯하여 소위 '민주적'․'개혁적'이라는 소부르주아 대중매체들, 그리고 '진보적 시민운동단체들' 등등이 모두 노동운동,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세에 대대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개별적 독점자본 자신에 의한 노동자 억압에 대해서는 새삼 얘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국가는 독점자본의 지배도구라는 자신의 계급적 역할에 충실해서, 비근하게 지난 해 말 국회를 통과한 비정규직 관련 법률이나 소위 노사관계 로드맵 관련 법률에서도 보듯이 신자유주의적, 반노동자적 입법, 조치를 줄줄이 취하고 있고, 민주화가 되었다는 세상에서 노동자들을 줄줄이 감옥으로 보내고 있다. 국가권력을 대표하는 대통령은, 때로 민주노총 등에 대한 노골적인 적대감을 감추지 않으면서도, 수년 째 신년사마다 '일자리 창출'을 얘기해왔지만, '기술혁신'이니, '경쟁력 강화'니, '노동생산성'이니 하는 것들을 내세운 구체적인 정책들은 언제나 독점자본의 경쟁력 강화, 노동자들의 일자리 축소를 겨냥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정책 노선에 기초하여 특히 공기업은 구조조정, 인원삭감, 외주화 등을 통한 비정규직화 등에 앞장서 오고 있다.

여야 부르주아 정치인들은 연일 서로 '수구냉전세력'이니 '친북좌파'니 하며 치고받고 있지만, 극우세력의 전통적 보루인 한나라당은 물론 민주화운동 출신자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는 열린우리당까지 여야 가릴 것 없이, 대(對) 노동자계급전선에서는 그저 하나의 반동적 지배계급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권력과 이권을 놓고는 온갖 극렬한 언사를 주고받으며 치열하게 싸우다가도, 비정규직이나 노사관계 로드맵 관련 법률과 같은, 그리고 한미 FTA나 미군기지 확장 이전, 이라크 파병 문제와 같이 독점자본과 그 해외 후견 세력인 미 제국주의의 이해가 걸린 문제에 이르면, 사실상 일사불란하게 대(對) 노동자계급전선을 치며 나서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노동자 대중은 저들 소위 '개혁적' 부르주아 정치세력의 정치적 포로로 되어 있는데, 이는 바로 저들 부르주아 정치세력 내부의 좌․우 세력이 벌이는 역할분담의 정치적 효과이다. 하나가 되어 대(對) 노동자계급전쟁을 벌이면서도 대중, 특히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눈을 가리고, 그들을 정치적으로 분열시키고, 그리하여 무력화시키려는 부르주아 정치세력 간의 역할분담은 사실 의회제 부르주아 민주주의, 특히 '보수' 대 '진보'의 대결․경쟁이라는 양당제가 발달한 자본주의 선진국가의 정치체제에서 전형적인데, 오늘날 한국 정치에서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으로의 여야 분립도 대(對) 노동자계급전선에서의 부르주아지 좌․우 정치부대의 바로 그러한 역할분담인 것이다.

저들의 그러한 역할분담은 물론 그들 행위당사자들, 특히 '진보'를 자임하고 '민주'와 '개혁'을 자임하는 세력의 주관적 의도와 상관없이 그러한 것이고, 음성적 혹은 노골적인 정치자금이나 고위 관료직, 대형 공기업의 임원직 등 그 숫자가 한정된 이권적 지위를 둘러싼 저들 정파 간의 더러운 투쟁이 아무리 치열하더라도 그러한 것이다.

저들 부르주아 정치부대의 그러한 역할분담은 실제로 음으로 양으로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눈을 가리고, 또 그들을 정치적으로 분열시키고 있는데, 그 정치적 효과는 이른바 '진보적 시민운동단체들'이 이에 가세하고, 조․중․동 등 부르주아 파쇼언론이 그 역할분담의 의의를 극우적 시각에서 교묘하게 이데올로기적으로 포장해냄으로써 효과가 극대화되고 있다.

우선 여러 '진보적 시민운동 단체들'은 노동자계급운동을 위시한 민중운동의 사회적 영향력을 약화 혹은 무력화시키고, 그 운동을 정치적․이데올로기적으로 부르주아지에게 종속시킬 것을 그 역할과 임무로 삼고 있고, 실제의 역할과 임무, 효과도 그렇다.

이렇게 얘기하면 어떤 사람들은 너무나 '편협한 시각' 혹은 '과도한 시각'이라며 불편함을 느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러한 불편함이야말로 저들의 대대적인 반노동자계급연합이 정치적․이데올로기적으로뿐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증거이며, 그 선의에도 불구하고 '진보적 시민운동단체들'이 벌이는 객관적인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역할에 대해서는 물론 그들 스스로가 자신들에게 설정한 '임무'에 대해서조차 눈을 감는 주관적 시각의 발로이다. 무엇보다도 지난 세기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에 부르주아 언론의 화려한 각광을 받으며 '진보적 시민운동' 단체들이 줄줄이 등장했을 때, 그들은 주관적으로도 객관적으로도 (노동운동을 위시한) 민중운동에 대항한 세력으로서 자신들의 존재이유를 정립했다는 사실을 망각한 데에서 오는 사고인 것이다.

실제로 저들 시민운동단체들은 "더 이상 (노동운동을 위시한) 민중운동으로는 안 된다"고 선언하며 출발했던 것 아니던가?! 그리고 노동자․민중운동에 대해서 "(부당한) 거대담론"이니, "계급환원론"이니 하는 갖은 시비를 일삼으면서 노동자․민중에 대한 그 영향력을 배제하고 무력화시키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이고 있지 않은가?!

아무튼 저들 '진보적 시민운동단체들'은 열린우리당으로 대표되는 부르주아지 내부의 '좌파' 정치세력과 더불어, 주지하는 것처럼, 우리 사회 '개혁 세력'의 아이콘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 '개혁'을 대대적으로 선전해왔을 뿐 아니라 실제로 대대적으로 추진해왔다.

문제는 그 '개혁'의 계급적 성격인데, 그것은 한편에서는 '진보적 시민운동단체들'이 추동하여 벌이는 '소액주주운동'이나 '재벌개혁운동' 등과 같이 독점자본을 보다 합리화․효율화하려는 개혁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비근하게 지난해 말에 국회를 통과한 비정규직 확대 법률이나 노사관계 로드맵 등등이 웅변하고 있는 것처럼 정부 및 독점자본 주도의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적인, 따라서 철저히 반노동자적․반민중적인 개혁이다. (부분적으로는 민주화, 그러니까 과거 군사파쇼적 정치관행을 청산하거나 완화하는 내용도 물론 없지 않았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르주아 민주주의적인 것으로서 직접적으로 노동자․민중의 이익을 증진시키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저들은 부르주아 좌파적 혹은 소부르주아적 교활함으로써 그러한 반노동자적․반민중적 개혁을 친민중적․친노동자적인 그것으로 치장․선전해왔다. 그리고 이러한 선전은 노동자․민중운동 내부에 광범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고, 사실  '좌파적' 활동가들조차 사실 아직까지도 거기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이다. 노동자․민중운동에 대한 저들의 그러한 이데올로기 조작이 얼마나 막강한 위력을 가졌던가는 민주노총이나 민주노동당은 물론 좌파를 자임하는 많은 활동가들조차 신자유주의 개혁 정권을 안정화시켜야 한다며 가히 열광했던 '대통령 탄핵 무효화' 소동이 웅변해주었다.

이렇게 되는 것은 물론 '개혁'이라는 어휘 자체가 주는 정서적 영향도 있고, 또 저들의 이데올로기적 영향 하에 있는 노동자․민중의 낮은 정치․사회의식, 그리고 저들과 파쇼언론의 그러한 이데올로기 조작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보다도 저들의 그러한 이데올로기를 노동자계급에 내부화하는, 노동운동 내부의 국민주의적․애국주의적 인자들을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극우․파쇼세력의 대 노동자계급투쟁


그런데, 이러한 반노동자적․반민중적인 개혁은 다른 한편에서는 부르주아 정치세력 내부의 예의 역할분담과 파쇼언론 때문에 노동자․민중에게 더욱 친노동자적․친민중적인 것 같은 허위의식으로 다가왔다. 철저히 독점자본의 이해에 봉사하는 극우세력으로 호가 난 한나라당이나 조․중․동 등의 파쇼언론이 이들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을 향해서 '(친북) 좌파'라고 맹렬히 비난․매도하고 나섰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비난과 매도는 물론 철저히 계산된 것이다. 한편에서는 부르주아 정치세력 내부의 치열한 권력투쟁, 이권투쟁으로서,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노동자․민중에 대한 냉혹한 계급투쟁으로서.

저들 대표적인 부르주아 정치세력 간의 권력투쟁에 관해서 말하자면, 그것이 아무리 진흙탕의 개싸움으로 전개되더라도, 그것이 권력투쟁인 한에서 우리는 그에 오불관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극우․파쇼세력의 권력 장악은 곧바로 노동자․민중에 대한 극우․파쇼적 억압의 강화(시도)로 직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여느 선거 때처럼, 그리고 소위 진보적 시민운동단체들과 그 중심인물들인 일부 진보적 교수․지식인들이 바람을 잡고 있듯이, 노동자․민중이 '수구파쇼세력의 집권 저지', 즉 '(신자유주의) 개혁세력 지지'로 나서야 될 일은 결코 아닌데,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얘기하기로 하자.

그 투쟁이 저들 간의 이권투쟁이란 측면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것은 노동자․민중의 이해와는 어떤 직접적인 관계도 없고, 따라서 우리는 저들의 추악한 투쟁을 보고 즐기며, 그 추악상을 널리 알리면 되는 것이다. 일부 소부르주아적 '진보적 지식인들'이 마치 노동자․민중의 이해라도 걸린 것처럼 '재벌개혁' 운운하지만, 예컨대 삼성이 그 노동자들로부터 착취한 잉여가치를 이건희 일가가 독식을 하든 소위 '전문경영인들'과 나누어 갖든, 그것은 기본적으로 착취된 잉여가치의 착취계급 내부의 분배의 문제일 뿐 착취 그 자체를 전혀 완화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사실은 '재벌개혁'이란 착취의 효율화를 위한 개혁일 뿐인 것처럼,) 저들 내부의 이권투쟁은 기본적으로 저들 내부의 문제일 뿐이기 때문이다 (혹은, 저들의 지배 혹은 지배체제의 효율화와만 관련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노동자․민중의 처지에서 문제는 저들 부르주아 정치세력이 상호 간의 투쟁을 통해서 벌이는 대(對) 노동자․민중 계급투쟁이다.

저들 극우․파쇼세력은 지금 자신들의 정치 파트너, 즉 정치적 동반자인 '개혁적 부르주아' 정치세력을 짐짓 '좌파적'이라고 극언하고 몰아붙임으로써 사실은 일체의 노동자․민중적 가치․노선이 설 자리를 철저히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명박이나 박근혜 등에 대한 높은 정치적 지지도에서 보는 것처럼, 저들의 그러한 비난과 매도가 지금 커다란 대중적 성공을 거두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사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이나 열린우리당, '진보적 시민운동단체들'의 개혁은, 그것이 신자유주의적, 즉 반노동자적․반민중적인 한,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 즉 노동자․민중의 광범한 환멸과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고 하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그리고 바로 지금 그러한 환멸과 저항이 대대적으로 일고 있다.

그런데 바로 지금, 저들 극우․파쇼세력은 그들 자신이 그러한 반노동자적․반민중적 개혁의 직접적인 집행자, 정치적 담당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이용하여 조․중․동 등의 파쇼언론을 동원, 저들 신자유주의적 개혁세력을 '좌파' 즉 노동자․민중적인 세력이라고 밀어붙이고, 저들의 실패가 독점자본의 신자유주의의 실패가 아니라 노동자․민중적 노선의 실패라는 식으로 몰아붙이면서 대중을 극우․파쇼로 획득해내고 있는, 극히 위험한 정치적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민중운동이 오늘날 이렇게 저들 신자유주의적 개혁세력의 실패에 대해서까지 대중적으로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도록 몰리고 있는 것은, 물론 이렇게 저들의 교활한 대중조작 탓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다른 한편에서는 탄핵 무효 투쟁에서 대표적으로 드러났던 것처럼, 저들 신자유주의적 개혁세력과 노동자․민중운동의 이해를 동일시해온 노동자․민중운동 지도자들의 노선 때문이기도 하다. 이 점을 눈 감고 부인해서는 안 될 것이다.



소부르주아 민주언론의 대 노동자 공세


한편 소부르주아 민주언론 역시 대(對) 노동자계급 공세에 나서고 있는 점에서는 조․중․동 등의 파쇼언론과 많이 다르지 않다. 이데올로기적으로 미치는 해악은, '진보적 시민운동단체들'의 그것이 그렇듯이, 어쩌면 더 심각할 수도 있다.

한 예를 들어, 당장 오늘, 그러니까 2007년 1월 8일자 ��한겨레��를 보자.

제1면 전체 기사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다시 3면으로 이어지는 기사의 제목은 "뉴스 분석: 도요타와 비교 진단한 '속병', 불신의 현대차 '역주행' 위기"이고, 중간 제목은 "세계 경쟁 위해선 노동․생산 유연화 중요, 유연화 이루려면 노사 신뢰가 필수, 갈등은 공멸의 길"이다. (참고로, 기사의 필자는 '곽정수 대기업 전문기자'다.)

"세계 경쟁 위해선 노동․생산 유연화 중요"! ― 구태여 장문의 기사를 다 읽지 않아도 ��한겨레��가 무엇을 설파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조․중․동 등의 파쇼언론처럼 일방적으로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몰아붙이고 매도하는 대신에 값싼 양비론을 펴면서, 노동자들에게 황금신(Mammon)의 재물, 즉 경쟁의 재물이 되라는 독점자본의 계명을 너무나도 노골적으로 설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한국의 대표적인 '민주언론'이 노동자계급에게 설파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그것은 양비론이라는 당의(糖衣)를 입힌 만큼 노동자들이 더욱 삼키기 좋은 것이고, 그만큼 위험하고 해악스러운 그런 설교이다.

물론 저들의 이러한 설교는 그 계급적 본능에 따른 것이고, 따라서 그것을 거부할 책임은 노동자계급 자신에게 있다. 나아가, 여기에서는 조금은 '애꿎게도'(?) ��한겨레��만을 예로 들었지만, ��한겨레��만의 문제가 아님은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저들의 공세가 아니라 공세에 취약한 운동 자체가 문제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노동자계급운동이, 그리고 민주노총이 '위기'에 처해 있다면, 그 원인은 결코 저들의 저런 공세 때문이 아니다. 저런 공세는 노동운동이 기본적으로 언제나 처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며, 노동운동은 그러한 공세와의 투쟁 속에서 발생하여 성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원인은 노동자계급 주체성과 변혁 지향성을 상실한 노동운동의 지도와 기풍 속에 있다.

주지하는 것처럼, 한국의 현 노동운동은 1970년대 이래의 급격한 자본주의화와 파쇼적 억압 속에서 성장하기 시작하여 1987년 '민주화 공간' 속에서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고, 이후 90년대를 거치면서 성숙․변화돼왔다. 애초 성장기의 정치노선에 관해서 말하자면, 물론 오랜 파쇼적 사상 탄압의 여파로 정치(精緻)한 과학적 사상․이론적 주체성을 확보할 수는 없었지만, 넘치는 변혁 지향성은 그 정치함의 부족을 메우고도 남을 정도였다. 오늘날 여러 사람들이 얘기하는 '전노협 정신'은 기본적으로 그러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노동운동은 정치한 사상․이론적인 주체성의 부족뿐만 아니라, 애초부터 많은 한계를 가진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그 운동이 짧은 기간에 급성장했고, 그 지도부의 주요 부분이 '학출', 즉 소부르주아적  인텔리였다는 사실은 이후의 급격한 정세변화와 더불어 운동의 주요 약점으로 작용했다.

더구나 한국의 노동운동이 폭발적으로 터져나오기 시작한 시기는 공교롭게도 쏘련에서 고르바쵸프 정권의 소위 뻬레스트로이카가 역사의 대반동을 준비하고 열던 시기와 일치했다. 그리하여 1987년 대항쟁이 본격화하기도 전에 일부에서는 이미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 운운하는 기회주의적 노선을 받아들이고 있었고, '민주화의 공간'이 열리자마자 합법정당 운운하면서 기회주의적 길을 달리기 시작하였다. 게다가 1990년대가 되면서 세계적 규모의 대반동이 본격화되었고, 이에 저들의 기회주의는 질주하였다. 그 선구자들이 오늘날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의 주요 부분은 물론, 심지어 극우․파쇼세력의 핵심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은 결코 개인적인 '전향'만으로는 설명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물론 그러한 흐름의 상당 부분은 아직도 노동자계급운동 내부에, 그 활동가, 지도역량으로서 남아 있다. 그러나 그들의 대체적인 경향은 더 이상 변혁 지향적이지 않고, 합법주의적이자 체제 내적이다. 그리고 그러한 노선이 취할 수 있는 최대치라야 기껏 경제주의․조합주의로서, 그야말로 오늘날 노동운동의 위기의 주요 원인의 하나이다.

다른 하나는, 노동자계급운동의 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지만, 그 성격상 노동자계급운동이라기보다는 애국주의․국가주의 운동이고, 기껏해야 민족주의 운동이다. 이들은 반미․반제 투쟁에는 상대적으로 선명하지만, 노동자계급운동으로서의 반제투쟁이라기보다는 민족주의적, 심지어 애국주의적․국가주의적 반제․반미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 때문에 그들의 정치노선은 한편에서는 반제․반미투쟁을 벌이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한․미․일 삼각동맹의 한 축과 긴밀하게 협조하고 그것을 떠받치는 모순적인 것일 뿐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이익을 국가주의적 이해에 철저히 종속시키고 있다.

노․사(자)․정 3자 간의 소위 '사회적 합의주의'라는 것은 바로 그러한 애국주의․국가주의의 발로이다. 그리고 민주노총의 지도부가 그러한 애국주의적․국가주의적 노선을 추구하는 마당에 노동운동의 계급적 주체성, 그 변혁 지향성이 있을 수 없다. 더구나 이들은 오늘날 민주노총 내의 노골적인 어용세력들과 사실상 동맹을 형성하고 있고, 선거 때가 되면 가히 파렴치하다 할 만큼 노골적으로 그들의 지지․지원을 받아 지도부를 장악하기도 한다.

한편, 독점자본주의의 성숙과 그에 기초한 독점자본의 노동자계급 상층 매수도 노동운동을 타락시키고, 기껏 조합주의․경제주의에 매달리게 하는 주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혹은 조합주의․경제주의적 기풍이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을 독점자본의 매수의 재물로 바치고 있기도 하다. 그리하여 이러한 매수에 걸려 과거 노동운동의 핵심적 지도자였던 사람들 중에는 오늘날 '뉴라이트'의 깃발을 내걸고 노골적으로 자주적인 노동(조합)운동에 적대하고 나서고 있는가 하면, 과거 전설적으로 전투적이었고 민주노총을 대표하던 노조들이 조․중․동 등의 파쇼언론의 극찬을 받으며 드러내놓고 어용행각을 벌이는 경우도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이런 여러 정황을 고려하면, 운동이 그나마 오늘날의 상태나마 유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은 운동 내부에 이러한 경향에 대한 강력한 저항, 투쟁의 흐름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주체성과 변혁 지향성 재건 없이 노동운동 재건 없다


금년 1월엔 민주노총의 새 지도부 선거가 있다. '노동운동의 위기', '민주노총의 위기'라는 말들이 예사롭지 않게 들리는 지금과 같은 지리멸렬, 무기력을 극복하기 위해서 어떤 성격의 지도부를 선출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굳이 얘기하지 않더라도, 뜻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다 알 것이다.

사족이겠지만, 한 가지만 굳이 얘기하자면, 지도부나 전체 기풍의 혁신은 문제의식이 있고 시도한다고 해서 곧바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진지하고 꾸준한 노력이 요구되는 것이고, 그러한 노력이 축적되어 어느 날인가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일 것이다. 객관적인 정세 변화와 맞물리면서.

한편, 금년에는 대통령 선거가 있다. 그만큼 부르주아 정치세력 내부의 권력투쟁, 이권투쟁이 격렬해지겠지만, 또 그만큼 독점자본가계급과 그 정치적 대표자들의 대(對) 노동자계급투쟁도 직접적․간접적으로 격화될 것임에 틀림없다.

한나라당이나 조․중․동 등의 파쇼언론은 자신들의 동반자적 경쟁자인 저들 '개혁 부르주아지' 세력의 실패를 '좌파의 실패', '진보적', 노동자․민중적 정책과 노선, 아젠다(agenda)의 실패로 매도하면서 더욱 더 대중을 파쇼 쪽으로 포섭해내려 할 것이다.

소위 '개혁세력'과 '진보적 시민운동단체들'. '진보적 지식인들'은 또 다시 '수구․냉전세력'이라는 악령(bogy)을 불러내면서 대중에게 호소할 것이다. 수구․냉전세력의 집권만은 막아 달라고. 막아야 한다고. 즉, 자신들을 지지해달라고.

게다가 민주노동당은 또 호소할 것이다.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의 꽁무니를 따라갈 것이 아니라 노동자계급 자신을 정치세력화해야 한다고.

그 정치의식이 너무나 후진적이어서 극우․파쇼세력을 지지할 사람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많은 노동자들이, 많은 활동가들이 고민하고 갈등할 것이다. 지금이야 열린우리당적, 신자유주의적 개혁세력에 눈길도 주고 싶지 않고,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당연한 것처럼 얘기하는 노동자, 활동가들 중 상당수가, 막상 극우․파쇼세력의 집권이 임박해 있다는 현실 앞에서 소위 '사표'(死票)의 문제로 고민하고 갈등할 것이다.

그것이 지금까지의 경험이고, 나는 또한 그러한 고민과 갈등을 폄하하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저들 개혁세력에 표를 주어야 한다는 얘기는 더더구나 아니다.

그러면, 많은 고민과 갈등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을 지지해야 한다는 뜻인가?

글쎄? ― 많은 비난이 뒤따르겠지만, 나는 결코 그렇게도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라는 그럴 듯한 깃발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적 경향, 합법주의적 선거정당 지향의 경향과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의 경향은 현 시기 한국 정치라는 구체적 조건 속에서 크게 다른 것이 아니라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민주노동당은 지금처럼 한국 '노동운동의 위기'니 '민주노총의 위기'니 하는 것들이 운위될 수밖에 없게 되는 데에 주요한 역할을 해온 국민주의적․애국주의적 경향의 주요 당사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민주노동당 혹은 그 내부의 '변혁 지향적' 흐름은, 파쇼적․소부르주아적 대중매체가 조성하는 '여론'을 의식해서이겠지만, 자신들의 정치적 체질을 개선하고 한국의 노동운동을 변혁 지향적으로 이끌어가려는 어떤 공개적이고도 진지한 노력도 보여주지 않고 있다. 결국 때로 '변혁 지향적'인 듯한 수사를 구사하지만, 실제로는 선거정당적 흐름에서 자신들의 미래를 망상하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 세기 80년대 말, 90년대 초에 '합법정당' 운운할 때 이미 정치노선상의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지금 저들의 지배적 담론은 그때보다도 훨씬 더 후퇴해 있고, 훨씬 더 거세되어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사민주의적 선거정당 그것으로 전락해 있고, 당의 좌파적 논객이라는 사람들이 부끄러움도 없이 공개적으로 브라질의 노동자당을 선망하고, 서유럽적 '진보-보수'의 정치구도를 지향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민주노총은 그러한 '노동자 정당'의 '대중조직'으로 되어 있다. 말의 액면 그대로 다 받아들일 수는 없겠지만, 지난 12월 28일에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열린 '위기의 민주노총 혁신을 위한 활동가토론회'에서 이갑용 전 위원장은, "과거에는 무엇보다도 투쟁을 가장 잘 하는 활동가가 노동조합의 위원장이 되었으나, 지방자치제의 실시로 1천 수백 개의 자리가 열려 있는 오늘날에는 정치적 야심가들이 조합의 간부로 나서고 있다"는 요지의 발언을 한 바 있다. 말할 나위 없이 민주노동당과의 관련 속에서의 일일 것이다. ― 오늘날 '노동운동의 위기'니, '민주노총의 위기'니 하는 얘기들이 들리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이렇게 변혁 지향성을 상실하고 사민주의적으로 되어서는, 사회적 합의주의의 동기인 국민주의적․애국주의적으로 되어서는, 노동자계급운동 그것이 제대로 설 리 없다.

금년의 대선과 관련해서 얘기하자면, 극우․파쇼세력의 재집권이라는 문제가 현실적인 위협으로 다가와 있지만, 노동자계급운동이 그 계급운동으로서의 독자성, 주체성, 그리고 변혁 지향성을 재건하고, 그것을 재건․발전시킬 정치적 주체를 건설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노동자계급운동은, 그리고 따라서 노동자․민중운동은 저들 극우․파쇼세력의 집권과 그 권력행사에 대하여 어떤 유효한 대항수단도 갖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운동이 그 계급적 주체성, 그 변혁 지향성을 재건한다면, 설령 저들의 집권 자체를 저지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노동자계급은 저들 파쇼 권력과 효과적으로 투쟁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지도부를 건설해갈 것이며, 머지않은 시기에 저들을 파탄시킬 것이다. 그 계급적 주체성, 그 변혁 지향성을 재건한다면, 그리고 오직 그러한 한에서만, 노동자계급은 위력적으로 단결할 것이기 때문이다. <노사과연>


주체성과 변혁 지향성 재건 없이

노동운동 재건 없다



채만수 |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