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강철”이기 위해서는 “과학적 사상”이어야 한다

―강철인가? 수수깡인가?




글의 순서


1. 과학적 이론에 대한 태도


2. 몇 가지 이론적 쟁점들

(1) 레닌 왜곡의 문제

1) 쟁점 1 ― 독점과 자유경쟁

① 독점의 형태

② 독점의 개념

③ 자유경쟁의 중단

④ 경쟁과 독점―1

⑤ 경쟁과 독점―2

2) 쟁점 2 ―제국주의

① 경제적 본질

② 레닌의 제국주의에 대한 정의―1

③ 레닌의 제국주의에 대한 정의―2

3) 소결


(2) 현실 이해의 문제

1) “장기호황”과 “장기불황”

2) 신자유주의

3) 현 상황에 대한 이해

4) 자본주의 미래의 전망과 관련하여


3. 전략ㆍ전술 문제와 관련하여


4. 맺으며




김은 자신의 글에 대한 나의 비판에 대해 장문의 반비판을 하였다.1) 기존 견해에 대한 일탈로 보이는 김의 주장을 비판한 나의 글은 사실 새로운 주장이 거의 없었다. 나는 기존의 견해와 김의 주장을 비교하면서 김을 비판하였다. 나는 이것을 명백히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나의 태도는 김에게 “교조조의”, “사이비 레닌주의”로 비난받았다. 그렇다면 김은 내 글을 정확하게 읽은 것이다. 새로운 주장을 하는 김에게는 기존의 주장들은 다 그렇게 보여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은 “과학적 사상은 살아있는 강철이어야 한다”고 목소리 높여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맑스-레닌주의는 교조가 아니라 행동의 지침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물을 자의적이거나 어떤 전제를 가지고 파악하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과학적 세계관을 표방하는 맑스-레닌주의는 사물을 존재하는 그대로 파악하기를 가르친다. 그런데 김은 기존의 이론들이 역사적 한계성을 지닌 『제국주의론』을 교조적으로 추종하여 현대 자본주의를 있는 그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고, 심지어 그것을 왜곡하여 현실분석에 사용하고 있어 노동자계급운동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을 넘어 반동적 투쟁에 노동자계급을 동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진정한 맑스-레닌주의자라고 생각하는 김이 기존 이론에 대한 적극적 혹은 소극적 옹호자들에게 대해 ‘교조주의자’ㆍ‘사이비 레닌주의자’라는 비난과 함께 쏟아붓는 분노는 충분히 이해할만 하다. 따라서 논쟁에서 보이는 김의 적대적 태도는 커다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김의 새로운 이론이 옳은가 아니면 기존 이론이 옳은가 하는 문제이다. 그것은 어느 이론이 과학적인가, 즉 현실을 올바로 분석하고 설명하는가의 문제인 것이다.

같은 조직 내에서 이견이 있는 경우 상호 간에 비판과 반비판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과정을 통해 차이를 분명히 하는 것은 이후 더 높은 수준의 통일을 가능하게 하는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이글은 김이 오해하거나 혼란스럽게 한 문제와 새롭게 제기한 문제를 검토하는 것을 통해 김과 나의 쟁점이 무엇인가를 명확히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1. 과학적 이론에 대한 태도


과학적이란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과학적 사회주의”를 강조하는 맑스-레닌주의에서 과학적이란 것은 무엇인가? 이 문제에 대한 청년 레닌의 의견을 살펴보는 것은 한편으로는 레닌의 『제국주의론』의 역사적 한계를 주장하는 김의 태도―내용이 아닌―에 대한 긍정과 나의 이론적 태도에 대한 김의 비판에 대한 답변이 될 것이다.2) 레닌은 “인민의 벗”들에 대한 비판을 전개하면서 맑스주의의 과학성의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경제적 사회구성체의 발전이 자연사적 과정이라는 맑스의 기본 사상이 사회학이라는 이름하에 주장되던 이런 유치한 도덕주의의 바로 그 뿌리를 잘라버렸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어떠한 방법으로 맑스는 이 기본 사상에 도달했는가? 그는 사회생활의 다양한 영역으로부터 경제적 영역을 추출함으로써, 모든 사회적 관계에서 생산관계를 가장 기본적이고 일차적인 것으로서 다른 모든 관계를 규정하는 요소로 추출함으로써 이 기본사상에 도달했다.

사회학에서 이 유물론 사상은 본질적으로 천재의 위대한 업적이었다. 당연히 한동안 이것은 하나의 가설에 불과했지만, 역사적ㆍ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엄밀하게 과학적인 접근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열어 놓은 것이었다. 지금까지는 생산관계와 같이 가장 단순하고 중요한 관계들에 대해 어떻게 연구해야 할지를 몰랐기 때문에, 이 사회학자들은 정치적ㆍ법적인 형태들에 대해 직접적으로 조사하고 연구했으며, 해당 시대에 사는 사람들의 관념에서 이러한 형태들이 나타난다고 대충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거기에서 멈추었다; 마치 인간이 의식적으로 사회적 관계를 수립하는 듯이 보였다.

유물론은 인간의 사회적 관념 그 자체의 기원에까지 그 분석을 심화시킴으로써 이 모순을 제거했다; 그리고 사고의 경로가 물질의 경로에 의존한다고 하는 유물론의 결론만이 과학적 심리학과 유일하게 양립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다른 측면에서 보면 이 가설은 사회학을 과학의 수준으로 끌어 올린 최초의 것이었다. 이제까지 사회학자들은 사회현상의 복잡한 그물망 속에서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데 곤란을 느꼈고(이것이 사회학에서 주관주의의 근원이다), 그러한 구분을 하기 위한 어떤 객관적인 기준을 찾아낼 수 없었다. 유물론은 ‘생산관계’를 사회구조로서 추출함으로써, 그리고 주관주의자들이 사회학에의 적용 가능성을 부정했던 반복성이라는 일반적이고 과학적인 기준을 이들 관계에 적용하는 것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완전히 객관적인 기준을 제공했다. 주관주의자들이 그들 자신을 이데올로기적 사회관계(즉 형성되기 전에 인간의 의식을 통과하는 것과 같은 것들)에 한정시킨 한, 그들은 여러 나라들에서의 사회현상에 나타나는 반복성과 규칙성을 파악할 수 없었으며, 그들의 과학이라는 것은 기껏해야 이러한 현상에 대한 서술(description), 원자료의 집적에 불과했다. 물질적 사회관계(즉 인간의 의식을 통과하지 않고 형성되는 것들: 생산물을 교환할 때, 인간은 여기에 생산의 사회적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식하지도 못한 채 생산관계 속으로 들어간다)에 대한 분석은 즉시 반복성과 규칙성을 포착할 수 있도록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나라들의 체제를 하나의 기본 개념: 사회구성체로 일반화 할 수 있게 해주었다.

셋째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가설이 최초로 과학적인 사회학을 가능하게 했던 또 다른 이유는, 사회적 관계들을 생산관계로 환원시키는 것만이, 그리고 후자를 생산력의 수준으로 환원시키는 것만이, 사회구성체의 발전이 자연사적 과정이라는 인식에 굳건한 토대를 제공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이 결여되어 있다면 사회과학이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예를 들면, 비록 주관주의자들이 역사적 현상들이 법칙에 따른다는 것을 인정했더라도, 정확히 인간의 사회적 관념과 목표 앞에 멈추어버렸기 때문에 그리고 이러한 역사적 현상들을 물질적인 사회관계로 환원시킬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이러한 역사적 현상들의 진화를 자연사적 과정으로 간주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1840년대에 이 가설을 제시했던 맑스는 그 뒤 사실적(nota bene: 단단히 주의하라―역자) 자료의 연구에 착수했다. 그는 하나의 경제적 사회구성체-상품생산체제-를 선정하고, 방대한 양의 자료(그는 이것을 25년 이상 연구했다)에 근거하여 이 사회구성체의 기능과 발전을 지배하는 법칙들을 지극히 상세하게 분석했다.

이것이 『자본론』의 골격이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다음에 있다. 즉 맑스는 이 골격에 만족하지 않았고, 그의 연구작업을 상식적인 의미에서의 ‘경제 이론’에 한정시키지도 않았으며, 주어진 사회구성체의 구조와 발전을 오직 생산관계만을 통하여 설명하는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곳에서 끊임없이 이들 생산관계에 조응하는 상부구조를 탐구하면서 이 골격에 살과 피를 덧붙였다는 사실이다. 『자본론』이 그렇게 굉장한 성공을 거둔 이유는, 한 ‘독일 경제학자’가 쓴 이 책이 독자들에게 자본주의적 사회구성체 전체를 하나의 살아있는 것으로 나타내주었다는 것에 있다. … 다윈과의 비교가 전적으로 정확하다는 것이 이제 명확해 질 것이다. … 다윈이 동식물의 종을 비연관적이고 우연적이며 ‘신에 의해 창조된’ 불변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관점에 종지부를 찍고 종의 가변성과 계승성을 밝힘으로써 생물학을 완전히 과학적인 기반 위에 올려놓은 최초의 인물이었듯이, 맑스는 사회를 권위자의 의지대로(좋게 표현하자면 사회나 정부의 의지대로) 모든 변경을 허용하며 우연적으로 등장하고 우연적으로 변화하는 개인들의 기계적인 집합체로 보는 관점에 종지부를 찍고, 주어진 생산관계의 총체로서 경제적 사회구성체라는 개념을 확립하고 그러한 사회구성체의 발전이 자연사적 과정임을 입증함으로써 사회학을 과학적인 기반 위에 올려놓은 최초의 인물이었다.

현재―『자본론』이 나온 이후―유물사관은 더 이상 가설이 아니며 과학적으로 증명된 명제이다. 그리고 어떤 사회구성체―사회구성체이지 어떤 나라, 사람, 계급 등등의 생활양식이 아니라는 것에 주의하라―의 기능과 발전에 대해 과학적인 설명을 하기 위하여 이와 다른 시도―유물론과 같이 ‘관련된 사실’에 질서를 부여할 수 있고, 일정한 사회구성체를 엄밀히 과학적으로 해명함과 동시에 그것을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묘사할 수 있는 다른 시도―를 하게 될 그때까지 유물사관은 사회과학과 동의어가 될 것이다. 유물론은 미하일로프스키씨가 생각하는 것처럼 대체적으로 과학적인 역사관이 아니라, 유일하게 과학적인 역사관이다.3)


레닌은 “유물론 사상”이 사회학을 과학의 기반 위에 올려놓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유물론을 “천재의 위대한 업적”이라고 높게 평가하지만 처음에 그것은 여러 사회주의 사상의 하나였으며 일종의 가설에 불과하였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후 전개된 맑스의 노력과 그 결과로 “유물사관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명제”라고 하며 “다른 시도”가 “될 그때까지” “유물론은 … 유일하게 과학적인 역사관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 레닌의 이러한 주장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우선 어떤 이론이 비록 과학적 이론일지라도 처음에는 하나의 가설로 출발하고 평가받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과학적 이론 역시 더 과학적인 이론에 의해 대체될 수 있다는 것이다. 후자의 문제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그것은 맑스에 의해 주장된 유물사관이 당시까지 비록 “유일하게 과학적인 역사관”일지라도 그것보다 더욱 과학적인 “다른 시도”에 의해 대체될 수도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론에 대한 맑스-레닌주의자의 기본적 태도이다. 맑스의 “유물사관”도 그러한데 “맑스주의자” 레닌의 이론 역시 이 문제에서 예외는 아닐 것이다. 김 역시 거의 인정하고 있을 이 긴 인용을 여기서 한 이유는 바로 이 점을 강조하는 것에 있다.4)

레닌은 같은 글에서 인민의 벗들에 의해 누명(?)을 쓰는―맑스가 인류의 과거 전체를 설명했다고 주장했다는 등등의―맑스를 변명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이론(『자본론』-인용자)은 단지 자본주의 사회조직을 설명할 것을 주장할 뿐이다. 그리고 다른 어떤 것도 아니다. 만약 하나의 사회구성체를 분석하고 설명하는데 유물론을 적용하여 그런 눈부신 결과가 나왔다면, 역사에서 유물론은 이미 단순한 가설이 아니며 과학적으로 증명된 이론이 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비록 어떤 종류의 동식물들이 거친 변이의 실제를 아직 정확하게 밝힐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상당히 많은 양의 사실들에 대해 증명된 변이설이 생물학의 모든 영역에 확장될 수 있는 것처럼 비록 이들에 대한 특별한 사실적 조사와 엄밀한 분석이 아직 행해지지 않았다손 치더라도 이러한 방법론이 다른 사회구성체들을 조사ㆍ분석하는 데까지 확장ㆍ적용될 수 있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리고 변이설이 종의 형성의 ‘모든’ 역사를 설명하려고 하는 것은 전혀 아니며 이러한 설명의 방법들을 과학적 토대 위에 올려놓으려 할 뿐인 것과 마찬가지로, 유물론도 역사에서 모든 것을 설명한다고 주장한 적은 없으며, 단지 맑스가(『자본론』에서) 한 표현을 빌리자면, 역사를 설명하는 ‘유일하게 과학적인’ 방법을 제시할 뿐이다.5)


우리가 맑스, 엥겔스, 레닌, 스탈린 혹은 트로츠키 또 그들 이외의 다른 수많은 사람들의 이론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들의 방법론을 받아들이는 것을 포함한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의 이론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들의 이론이 현실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맑스가, 엥겔스가, 레닌이, 스탈린이 혹은 트로츠키가 아니면 또 다른 누가 어떤 주장을 했던 맑스-레닌주의를 인정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들의 주장을 그저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더더구나 앞선 그들의 주장을 모두 그대로 현실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너무도 당연한 상식이다.6)



2. 몇 가지 이론적 쟁점들


김은 󰡔제국주의론󰡕의 역사적 한계성을 주장한다. 레닌이 “기업결합이라는 독점이 만연한 엄연한 현실을 분석함으로써, 자본주의 역사의 특수한 국면, 즉 자본이 세계시장을 공동시장으로 놓고 초국적으로 경쟁하는 시기로 이행해가는 과정에서 발생했던 특수한 위기국면을 체계화”7)한 것이 󰡔제국주의론󰡕이고, 󰡔제국주의론󰡕 혹은 “레닌의 오류는 자본의 독점을 자본주의 최고의 발전단계로 잘못 파악한 데 있으며, 경험적 현상을 곧바로 법칙화한 데 있다”8)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인식을 가진 그는 나를 비롯한 교조주의자들이 더 이상 타당하지 않은 󰡔제국주의론󰡕에 입각하여 현실을 파악하고자 하여 올바른 현실 파악에 실패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레닌의 이론마저 왜곡하는 반레닌주의자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김의 주장에 대한 비판은 김의 레닌에 대한 이해부족과 현실 파악 실패의 양 측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1) 레닌 왜곡의 문제


1) 쟁점 1 ― 독점과 자유경쟁


① 독점의 형태9)


나는 김이 중요시했던 “독점의 형태”문제를 다루었다. 왜냐하면 김은 “독점의 형태”문제를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이해가 잘못되어 있었기 때문인데 나는 이렇게 주장했다.


여기서 김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독점의 형태를 잠시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김은 “1945년 이후에 레닌시대의 고유한 카르텔이나 트러스트 등이 사라졌으며”라거나 “좀 더 엄밀히 말하자면, 카르텔과 트러스트 등의 독점은 금지되거나 다시금 경쟁이 벌어진다.”라며 레닌의 [제국주의론]의 유효성은 1945년 이전까지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김의 주장은 일면 타당하다. 그것은 레닌이 [제국주의론]을 서술할 당시와 현재의 독점의 주요한 형태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은 더 큰 부분에서 잘못을 범하고 있다. 앞서 지적한 독점의 의미에 대한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김은 현실을 무시하고 있다.

개념적으로 카르텔은 한 산업부문 내의 상이한 자본들 사이에 결성되는 독점적 연합체이다. 이것은 가격, 생산량할당, 시장 분할, 특허사용, 공급조건 등등에 대한 협정을 체결하여 독점이윤을 획득하는 형태ㆍ방식으로 독점체의 형태 중 가장 느슨한 형태이다. 현재 이러한 카르텔은 많은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금지되어 있으며 그 위상도 예전과 같이 않지만 현재에도 특정한 거대기업에 의해 가격선도가 이루어지는 것이나 가격담합 관련 보도를 통해 그 현실성이 증명된다.

레닌 시대 다른 주요한 독점체의 형태는 트러스트였다. 트러스트는 동일산업부문의 기업들이 실질적인 독립성을 잃고 거대기업에 결합함으로써 형성된 독점체다. 개별기업들이 자신의 독립성을 잃는다는 것이 카르텔과 가장 중요한 차이이며 동일산업부문내의 기업들의 합병이라는 것이 콘체른과의 차이이다. 이런 방식의 통합ㆍ합병은 현재에도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레닌이 은행의 독점을 설명하면서 언급한 콘체른은 가장 강력한 독점체다. 이것에는 개별기업들은 물론 트러스트까지 참가하며 여러 산업부문에 걸쳐 복합적인 결합의 양상을 보여준다. 이른바 재벌은 가장 좋은 예의 하나이다. 그리고 이것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현재진형이고 현 시대 독점체의 가장 주요한 형태이다.10)


“독점의 형태”에 관한 나의 지적에 대해 김은 다음과 같이 반비판을 했다.


그런데 전성식연구위원은 자동차 업계 등 몇 개 산업부문의 소수거대기업을 거론하면서, 지금은 동일산업내의 기업들이 결합하는 트러스트 형태 및 다양한 사업부문의 기업들이 결합하는 콘체른(신디케이트) 형태가 지배적인 독점이며, 이는 레닌시대와 동일하다는 전형적인 기존 주장을 되풀이 한다. 기업들 간의 경쟁의 가속화로 인해 진행되고 있는 인수합병 등의 집중화과정과, 레닌 당시 경쟁을 제한하기 위해 기업들이 인위적인 결합을 통해 생산량과 가격 그리고 이윤까지 통제하던 것을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레닌의 독점이론을 왜곡하는 것이다. 논점의 핵심은 현대의 자본이 기업결합을 통해서 그리고 협정을 통해서, 시장을 자기네들끼리 분할하고 경쟁을 제한하고, 이윤을 분할하는 경쟁의 대립물로서의 독점인지 여부이다. 구체적으로 말해 동일한 하나의 자본이 사업다각화를 하는 재벌형태를, 다양한 사업부문의 자본이 경쟁을 포기하고 하나로 합치는 콘체른으로 보는 것은, 마치 일몰과 일출이라는 정반대의 것을 똑같은 것으로 바라보는 것 만큼이나 피상적인 것이며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또한 레닌은 앞서 인용한 것 처럼 당시 국제 트러스트에 대해서 말하면서 경쟁이 제거 혹은 종식되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현재 국제적 초국적 기업들 간에 경쟁을 종식시키는 협약이 일반적이란 말인가? 그러나 교조주의자들의 더 큰 잘못은 두 시대가 전혀 다른 논리와 다른 경제적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사실을 ‘독점’이라는 단어로 숨기려 한다는 것이다.(강조―원문)11)


콘체른과 신디케이트를 같은 것으로 보는 사소한 잘못은 넘어가자. 김은 “기업들 간의 경쟁의 가속화로 인해 진행되고 있는 인수합병 등의 집중화과정과 레닌 당시 경쟁을 제한하기 위해 기업들이 인위적인 결합을 통해 생산량과 가격 그리고 이윤까지 통제하던 것을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레닌의 독점이론을 왜곡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우선 김은 집적과 집중이 독점으로 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간과한다. 김이 그토록 강조하는 “경쟁”은 ‘잉여가치가 자본으로 전화되는 집적’과 “기존 자본의 분배를 변화시킴으로써 발생”하는 “다수의 소자본을 소수의 대자본으로 전환시키는” 집중을 강제한다. 이는 독점으로 가는 과정이다. 독점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이루어져 가는 것이다.

레닌은 이렇게 쓰고 있다.


전기산업은 최근 기술발전의 전형이자 19세기 부터 20세기 초에 이르는 자본주의의 가장 전형적인 산업이다. 이 산업은 신흥 자본주의 나라 가운데 가장 앞선 두 나라인 미국과 독일에서 특히 발전했다. 독일의 경우 전기산업의 집적을 특히 강력하게 추진시켰던 것은 1900년 공황이었다. 당시 이미 산업과 매우 밀접하게 유착되어 있었던 은행은 공황기 동안 비교적 규모가 작은 기업들의 몰락과 대기업에 의한 이들 기업의 흡수를 극도로 가속화하고 강화했다. 야이델스는 이렇게 쓰고 있다. “은행은 절박한 자본의 필요를 느끼고 있는 기업들에게는 오히려 도움을 주지 않았으며, 처음에 호경기를 조성하고는 그 다음에 은행과 밀접히 연결되지 않은 회사들을 절망적으로 파산시켰다.”

그 결과 1900년 이후 독일에서는 엄청나게 집적이 진전되었다. 1900년 이전에 전기산업에는 7~8개의 ‘그룹’이 있었다. 이들은 각기 몇 개의 회사로 구성되어 있었으며(총계 28개), 각기 2~11개 은행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1908년에서 1912년 사이에 이들 모든 그룹들은 합병하여 둘, 아니 하나가 되었다.12)


여기서 “레닌의 독점이론을 왜곡”한 사람은 도대체 누구이고 “사이비 레닌주의자”라고 비난받아야 하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인가?13)

또한 김은, 콘체른은 “다양한 사업부문의 자본이 경쟁을 포기하고 하나로 합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재벌의 확장은 “사업다각화”로 파악한다. 그리고 “일몰과 일출”의 비유를 들어 사람들이 깨달음에 이르는 것을 방해한다. 하지만 김은 “피상적”이고 “시대착오적”이라는 따끔한 비판을 잊지 않아 내가 진리에 접근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14) 그러면 김의 비판은 올바른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레닌은 앞의 글에 바로 이어 또 이렇게 쓰고 있다.


이같은 방식으로 성장한 유명한 AEG는 (‘지주’제도를 통해) 175~200개 회사를 통제하며, 총 자본은 약 15억 마르크에 달한다. 이 회사는 직접적인 국외지사만도 10개 이상의 나라에 34개를 가지고 있으며, 그 중 12개는 주식회사이다. 이미 1904년에 독일 전기산업이 외국에 투자한 자본은 2억 3,300만 마르크에 달했으며, 그 중 6,200만 마르크는 러시아에 투자되어 있었다. 말할 것도 없이 AGE는 케이블과 애지에서부터 자동차나 비행기까지 극히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는―제조회사만도 16개에 이르는―거대한 ‘기업합동’이다.15)


여기서 이른바 “지주제도”란 무엇인가? 그것과 콘체른은 어떤 상관관계를 갖는가? 일단 레닌에게 도움을 얻자.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미 앞에서 간략히 언급했던 ‘지주제도’이다. 이 제도에 대해 누구보다 먼저 주의를 기울였던 독일의 경제학자 하이만은 그 본질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콘체른 수뇌부는 주요회사[문자 그대로는 ‘모회사’]를 통제하고, 모회사는 또 종속회사[‘자회사’]를 지배하며, 그 자회사는 다시 다른 종속회사[‘손회사’]를 지배한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그다지 많지 않은 자본으로도 광범한 생산영역을 지배할 수 있다. 사실상 하나의 회사를 통제하는 데 50%의 자본만 있으면 항상 충분하다고 할 때, 콘체른의 수뇌부는 단지 1백만 마르크만 있으면 손회사의 8백만 마르크를 통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연쇄’가 좀 더 확대된다면, 1백만 마르크를 가지고 1,600만 마르크, 3,200만 마르크 등등의 자본을 통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험적으로 볼 때, 업무를 감독하기 위해서는 주식의 40%를 소유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왜냐하면 분산되어 있는 소주주들의 상당한 부분은 사실상 주주총회 등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른바 주식 소유를 ‘민주화’―부르주아 궤변가와 기회주의적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여기에서 ‘자본의 민주화’를 기대한다(혹은 기대한다고 말한다)―한다거나 소규모 생산의 역할과 의미를 강화한다는 따위는 사실 금융과두제의 권력을 증강시키는 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덧붙여 말하면, 보다 선진적인 혹은 보다 오랜 역사와 많은 ‘경험’을 가진 자본주의 나라에서 소액면가 주식의 발행을 법적으로 허용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

그런데 ‘지주제도’는 독점체의 권력을 엄청나게 증대시키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비난도 받지 않고 온갖 부끄럽고 더러운 술수로 사람들을 속일 수 있도록 해 주기도 한다. 왜냐하면 형식적으로 ‘모회사’의 간부들은 ‘독립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자회사’에 대해 법적인 책임을 지지 않으며, 따라서 자회사를 매개로 하여 모든 것을 ‘짜낼’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 잡지《은행》1914년 5월호에는 다음과 같은 실례가 나와 있다.

이 글의 필자는 이러한 제도를 가장 광범하게 사용하고 있는 거대독점회사의 예로 유명한 AGE(Allgemeine Elektrizitats Gesellschaft: 이 회사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언급하겠다)를 들고 있다. 1912년 이 회사는 175~200개의 다른 회사 주식을 소유하고, 이들 회사를 지배하였으며, 전체적으로 약 15억 마르크의 자본을 통제하고 있던 것으로 산정되었다.

선의의 교수나 관료들―즉 자본주의를 옹호하고 미화하려는 선의에 젖어 있는 이들―이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규제법규라든가 대차대조표 공개, 일정한 양식에 따른 대차대조표 작성, 공개적 회계감사 따위는 아무 소용도 없다. 왜냐하면 사유재산은 신성한 것이며, 어느 누구에게도 주식의 구매ㆍ판매ㆍ교환ㆍ저당이 금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16)


여기에서 “거대독점회사의 예로” 제시된 AGE가 ‘지주제도’를 이용했었던 것은 “사업다각화”인가 아니면 “독점화”인가?

레닌은 AGE를 “기업협동” 즉 트러스트로 부르고 있다. 그것은 레닌이 AGE를 파악할 때 그것이 “전기산업분야” 한 분야에서 주요하게 거대독점을 이루고 있다고 파악해서 일 것이다. 하지만 AGE가 지배하는 “175~200개 회사”가 모두 이 분야만은 아닐 것이고 실제로 “케이블과 애자에서부터 자동차나 비행기까지 극히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를 포함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김의 주장대로 한다면 “사업다각화”일 것이고 독점의 한 형태인 “기업협동”으로 규정하는 레닌은 틀린 것이다.17)

하지만 오류를 범한 것은 레닌이 아니라 오히려 김이다. 김은 “독점의 형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그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콘체른과 재벌에 대한 백과사전적 이해를 살펴보는 것으로 이 부분은 마치도록 하겠다.


콘체른 : 법률적으로 독립하고 있는 몇 개의 기업이 출자 등의 자본적 연휴를 기초로 하는 지배ㆍ종속 관계에 의해 형성되는 기업결합체.

기업결합이라고도 한다. 카르텔이 개개의 기업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트러스트가 동일산업 내의 기업합동인 점과는 대조적으로, 각종 산업에 걸쳐 다각적으로 독점력을 발휘하는 거대한 기업집단이다. 이에는 자본의 유효한 활용을 목적으로 하는 금융자본형 콘체른과, 생산ㆍ판매상의 필요에서 이루어진 산업자본형 콘체른이 있다. 결합방법으로는 주식의 상호소유(자본교환)ㆍ융자(자본참가)ㆍ임원파견, 경영자의 인적 결합, 인테레센 게마인샤프트(Interessen gemeinschaft:이익협동)ㆍ경영위탁(경영임대차) 등이 있다. 금융자본형 콘체른은 거의가 자본참가방법에 의해서 행하여지며, 산업자본형 콘체른의 경우에도 자본참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금융자본형 콘체른과 산업자본형 콘체른을 비교하면, 전자가 일반적으로 강력하다. 그 이유는 전자에는 중심이 되는 금융기관이 존재하기 때문이며, 그 최고의 형태가 지주회사(持株會社)를 정점으로 하는 콘체른이다. 미국의 모건ㆍ록펠러, 일본의 미쓰이[三井]ㆍ미쓰비시[三菱]가 이에 속한다. 산업자본형 콘체른은 중심이 되는 금융기관을 가지지 않고 산업자본이 거대화하여 타기업을 산하에 두게 된 것이므로, 콘체른으로서의 파워는 그만큼 약하다. 산업자본형 콘체른은 다시 수평적 콘체른과 수직적 콘체른으로 분류하기도 하는데, 수평적 콘체른은 생산분야의 전문화나 시장분할점유 등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므로 연휴성(連携性) 트러스트라고 한다. 한국의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은 제3장에서 기업결합의 제한 및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고 있으나, 공정거래위원회가 산업합리화나 국제경쟁력의 강화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한 때는 콘체른이 허용된다(7조)18)


재벌: 거대 자본을 가진 동족(同族)으로 이루어진 혈연적 기업체군. 일종의 콘체른이다. 자본주의경제의 발전단계에 따라 점차 독점기업형태가 나타나며, 그 독점기업형태에 의한 자본의 축적과 집중으로 출현한 것이 카르텔ㆍ트러스트ㆍ콘체른 등이다. 이들은 자본주의의 발전과 함께 전개되는 자유경쟁을 지양(止揚)하면서 가격지배(價格支配)를 협정하거나 생산제한(生産制限) 협정 등에 의하여 기업가 간의 연합행동을 한다.

기업합동(企業合同)이나 기업연합(企業聯合)의 그룹으로 형성된 재벌은 기업전체의 단일자본(單一資本) 의지에 의하여 행동하는데, 카르텔이나 트러스트보다도 콘체른이 더욱 발달된 독점기업형태이다. 여기서는 지주회사(持株會社)에 의한 자본의 지배망이 참여기업군에 대하여 무제한 확대되는 것으로, '재벌'이란 말은 콘체른에 대한 속칭이다.19)

② 독점의 개념


김은 현재의 자본주의적 발전단계에서 독점자본의 존재를 단호하게 부정하고 있다.20) 그리고 김은 “1945년 이후는 세계적 자본축적의 시대이며 다시 말해 자본주의 국가 간에 초국적 자본의 축적시대”라고 주장한다.21) 나는 김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김은 자신의 글에서 독점에 대한 경제학적 정의를 소홀히 다루고 있다. 김은 그것의 경제학적 의미보다는 독점의 여러 형태를 중요시 한다. 그래서 김은 현재의 자본주의체제에서의 독점의 존재를 부인하는 주장에 이른다.22)


그리고 독점에 대한 다음과 같은 경제학적 개념을 인용한다.


현대자본주의의 첫 번째 특징은 자본과 생산이 거대하게 집적ㆍ집중되어 있고, 또 시장과 사회가 그렇게 거대화된 독점자본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개념적으로 자본의 집적이란 잉여가치가 자본으로 전화됨으로써, 즉 자본이 노동자를 착취하여 획득한 이윤의 커다란 부분이 다시 노동자들을 착취하기 위한 자본으로 전화됨으로써 그 자본이 거대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자본의 집중이란, 오늘날 유행하는 말로 표현하자면, 소위 기업의 인수ㆍ합병(M&A)을 통해서 자본이 거대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독점이란 그러한 과정, 즉 집적과 집중을 통해서 거대해진 자본이고, 그리하여 이제는 고만고만한 크기와 힘을 가진 수많은 자본이 경쟁을 통해서 평균적으로 획득하는 이윤 대신에 경쟁을 제한ㆍ배제하며 평균이윤율 이상으로 이윤을 획득하는, 즉 독점이윤을 취하는 자본입니다.23)


그리고 “이 정의를 인정하면 현재 세계자본주의를 지배하는 자본은 독점자본이”며 “김이 1945년 이후에 등장했다고 하는 이른바 [초국적자본]도 독점자본임에 분명하”고 “그것은 독점자본을 어떤 특정한 측면에서 바라본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24)

그러나 김은 이 문제에 대한 뚜렷한 자신의 의견을 제출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것은 ‘독점의 개념’에 대한 김의 편협한 이해에 기인한다. 김에게는 독점은 단지 “기업결합”이고 그 핵심은 “자유경쟁의 중단”이기 때문이다.25)



③ 자유경쟁의 중단


나는 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독점”은 레닌의 [제국주의, 자본주의 최고단계](이하 [제국주의론])에서 가장 핵심적인 개념이다. 따라서 이 문제로부터 시작한 김은 적절하다. 그런데 김은 “독점은 자유경쟁의 중단”이라 규정한다. 그러나 이것은 옳은 주장이 아니다. 독점이 발생하면 자유경쟁이 제한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 이것은 선구적으로 자본주의가 발전한 사회에서든 후발자본주의 사회에서든 역사적으로 나타난 사실이다. 그래서 레닌은 자유경쟁이 그 직접적 대립물인 독점으로 이행한다고 하고 “자본주의적 자유경쟁이 자본주의적 독점에 의해 대체”된다고 하며 “자유경쟁이 독점으로 전화해”간다고 하며 이것이 독점자본주의 시대의 특징이라 한다. 하지만 레닌은 “독점을 자유경쟁의 중단”으로 파악하지 않고 오히려 “자유경쟁으로부터 성장해 나온 독점체는 자유경쟁을 배제하지 않고 그 위에, 그와 나란히 존재”한다고 주장했다.26)


그리고 다음과 같이 김을 비판했다.


김은 “독점체는 자유경쟁을 배제하지 않고 그 위에, 그와 나란히 존재”한다고 하는 레닌의 주장을 가볍게 무시한다. 김은 레닌이 비록 그렇게 주장했다고 해도 “독점”은 “경쟁이 제한된 것”이고 당시는 “진정한 독점의 시대”였고 이것은 “현 상태의 무한경쟁의 자본주의와는 상이”하다고 한다. 김의 이러한 주장은 독점자본에 의한 경쟁의 제한ㆍ배제를 ‘경쟁의 중단’과 동일한 것으로 보는 것, 즉 독점자본주의 시대에는 경쟁이 없었던 것으로 주장하고 현재는 독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는 둘 다 옳지 않은 주장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자유경쟁은 독점으로 결과한다. 그리고 독점은 경제체제를 지배하게 된다. 그리고 독점은 경쟁을 제한하고 배제한다. 하지만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독점의 지배가 경쟁을 소멸시킨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경쟁이 새로운 단계에 도달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경쟁과 독점은 대립물로서 통일되어 있는 것이다.27)


이에 대해 김은 이렇게 반비판한다.


우선 레닌이 말한 자유경쟁의 대립물로서의 독점이란, 그리고 독점인 한에서 자유경쟁의 중단인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여타 교조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전성식연구위원은 필자의 ‘자유경쟁의 중단’이라는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면서, 레닌은 ‘자유경쟁이 배제되지 않는다’고 말했으므로 필자가 오류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예컨대 다수의 기업들이 기업결합을 통해서 하나의 트러스트 그리고 신디케이트 혹은 카르텔을 형성한다면, 그 기업들 간에는 자유경쟁이 배제된 것이고 중단된 것이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며, 그 경쟁중단이 바로 기업결합 독점의 목적이다. 그러나 교조주의자들은 레닌동지는 ‘자유경쟁이 배제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되풀이할 것이다. 단지 여기서는 레닌 스스로 언급한 자유경쟁의 배제와 중단 그리고 종식을 인용함으로써, 그들의 말꼬리조차 헛소리임을 지적하도록 하겠다.


“모든 면에 있어서의 반동화, 그리고 금융과두제의 압제 및 자유경쟁의 배제와 관련된 민족억압의 강화가 제국주의의 정치적 특성이기 때문에, 제국주의에 대한 소부르주아-민주주의적 반대세력이 거의 모든 제국주의 국가에서 20세기 초에 나타난다.”

“그리고 그 1907년에 미국 트러스트와 독일 트러스트 사이에 세계의 분배에 관한 협약이 체결되었다. 경쟁은 제거되었다.”

“물론 독점은 자본주의 시대에 전세계 시장에서 경쟁을 매우 오랜 기간에 걸쳐 완전히 제거할 수는 결코 없다(바로 여기에 초제국주의 이론이 터무니없다는 원인들 중의 하나가 존재한다). 결국 기술 개선의 도입을 통해 생산비용을 낮추고 이윤을 올릴 가능성은 변화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그러나 독점에 고유한 정체되고 타락하는 경향은 그것대로 계속 작용하며, 그것은 개별 생산분야들과 개별국가들에서 일정한 시간적 간격을 두고 절정에 이른다.”


물론 레닌이 ‘자유경쟁이 배제되지 않는다’는 말을 했지만, 그것은 교조주의자들이 몰개념적으로 암기하고 있는 그런 의미에서가 아니다. 레닌이 의미하는 것은 위에서 보는 것처럼 그런 경쟁의 제거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경쟁제거에 입각한 제국주의적 세계분할이 확정된 것이 아니라는 뜻에서이다. 그리하여 경쟁이 배제되지 않는다는 것은 당시 독점체들 간에 세계분할이 다시금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뜻에 불과하다.(강조-김의 글)28)


앞서 본 것처럼 레닌은 ‘독점은 자유경쟁을 제한ㆍ배제 한다’고 하면서 동시에 “독점체는 자유경쟁을 배제하지 않고 그 위에, 그와 나란히 존재”한다고도 한다. 내가 이것을 강조했던 것은 김이 주장하듯 ‘말꼬리 잡기’도 아니고 ‘헛소리’를 하고자 해서도 아니다. 그것은 “자유경쟁의 중단으로서의 독점”이라는 점만을 강조하는 김의 주장이 “독점자본주의 시대에는 경쟁이 없었던 것으로 주장하고 현재는 독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처럼” 들린다는 것을 지적했던 것이고 “경쟁과 독점은 대립물로서 통일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해야 함을 강조했던 것이다. 하지만 「강철」에서의 김의 반비판은 김이 오류에 상당히 깊게 빠져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김은 “예컨대 다수의 기업들이 기업결합을 통해서 하나의 트러스트 그리고 신디케이트 혹은 카르텔을 형성한다면, 그 기업들 간에는 자유경쟁이 배제된 것이고 중단된 것이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며, 그 경쟁중단이 바로 기업결합 독점의 목적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여기서도 콘체른의 다른 표현인 기업결합을 “몰개념적”으로 또 자기 마음대로 사용한 것은 아주 사소한 문제이니 그냥 넘어가자.

트러스트는 여러 개의 기업이 독립성을 잃고 이미 하나의 기업으로 흡수ㆍ합병된 것이므로 그것은 말 그대로 ‘하나의 기업’으로 “그 기업들 간에는 자유경쟁이 배제된 것이고 중단된 것이라는” 표현은 “앞뒤도 맞지 않는 주장”이다. 그리고 신디케이트는 기업조합이라고도 불리는 것으로 참가기업들이 생산면에서는 독립성을 유지하지만 공동판매회사를 통해서 독점적 판매조직의 독점적 시장지배력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카르텔과 트러스트의 중간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카르텔보다는 강한 결합력을 갖지만 판매에 관하여 갖는 구속력에 비하여, 생산단계에 대한 강제력은 상대적으로 작아서 그 면에서의 기업의 독자성은 유지되며 생산의 측면에서 경쟁은 지속된다. 카르텔의 경우에는 가맹기업 간의 협정, 즉 카르텔 협정에 의하여 성립되며, 가맹기업은 이 협정에 의하여 일부 활동을 제약받는다. 하지만 가격ㆍ수량협정 안에서 각 기업들은 경쟁을 하게 되며 조정이 실패하면 협정은 깨지게 되거나 내부에 있더라도 경쟁을 이겨내지 못하면 다른 기업에 흡수된다.29) 즉, 신디케이트나 카르텔의 경우에도 그들 내부에서 경쟁은 사라지지 않는다.

김은 “그 1907년에 미국 트러스트와 독일 트러스트 사이에 세계의 분배에 관한 협약이 체결되었다. 경쟁은 제거되었다.”, “물론 독점은 자본주의 시대에 전세계 시장에서 경쟁을 매우 오랜 기간에 걸쳐 완전히 제거할 수는 결코 없다(바로 여기에 초제국주의 이론이 터무니없다는 원인들 중의 하나가 존재한다)”는 레닌의 글을 “경쟁의 중단”이라는 논거를 위해 인용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 인용문의 전후를 살펴보면 그 문구보다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먼저 전자의 인용과 관련하여 레닌은 이렇게 썼다.


수십억의 자본을 주무르며 세계 구석구석에 지점ㆍ대리점ㆍ대표ㆍ연고 등등을 갖고 있는 사실상 단일한 이 세계적 트러스트와의 경쟁이 극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발전의 불균등성ㆍ전쟁ㆍ파산 등의 결과로 세력관계가 변화할 경우, 이 두 강력한 트러스트 사이의 세계분할은 재분할을 배제하지 않는다.

그러한 재분할을 위한 시도, 재분할을 위한 투쟁의 한 교훈적인 실례를 보여주는 것이 석유산업이다.

아이델스는 1905년 이렇게 썼다. “세계 석유시장은 오늘날에도 역시 두 개의 거대 금융그룹―미국 록펠러의 스탠더드 석유회사와, 러시아 바쿠 유전의 지배자인 로스차일드와 노벨―에게 분할되어 있다. 이 두 그룹은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지만, 그들의 독점은 몇 년 전부터 5가지 적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 그 5가지 적이란, ①미국 유전의 고갈, ②바쿠에서 경쟁사인 만타세프 상사, ③오스트리아 유전, ④루마니아 유전, ⑤해외 유전, 특히 네덜란드 식민지의 유전(매우 부유하며 또 영국자본과도 연결되어 있는 사뮤엘 상사와 셀 상사)이다. 뒤의 세 그룹은 거대한 도이치 은행을 필두로 하는 독일 대은행들과 연결되어 있다. 이들 은행은 ‘자신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하여, 루마니아 등지에서 석유산업을 독자적이고 체계적으로 발달시켰다. 1907년 루마니아의 석유산업에 투자된 외국자본은 총 1억 8,500만 프랑으로 추정되었는데, 그 가운데 7,400만 프랑이 독일 자본이었다.

경제문헌에서 ‘세계의 분할’을 위한 투쟁이라 부르는 투쟁이 시작된 것이다. 한편에서, 모든 것을 장악하고자 하는 록펠러의 ‘석유트러스트’는 자신의 주요 적인 앵글로-더치 셀 트러스트에 타격을 가하기 위해 바로 네덜란드 국내에 ‘자회사’를 설립했으며, 네덜란드령 동인도 제도의 유전을 매입했다. 다른 한편에서, 도이치 은행을 비롯한 독일 은행들은 루마니아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고’, 록펠러에 대항하여 루마니아와 러시아를 연합시키려 노력했다. 그러나 록펠러 측이 훨씬 많은 자본과 뛰어난 석유 수송ㆍ분배체계를 갖추고 있었으므로, 이 투쟁은 도이치 은행의 패배로 끝날 수밖에 없었으며 실제로 1907년에 그렇게 끝났다. 이에 따라 도이치 은행은 자신의 ‘석유 이권’을 포기하고 수백만금을 잃든가 아니면 항복하든가 하는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도이치 은행은 결국 항복을 선택했으며, 미국의 ‘석유트러스트’와 매우 불리한 협정체결을 감수해야 했다. 그것은 곧 “미국의 이익을 해칠 수 있는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는다”는 협정이었다. 그렇지만 이 협정에는 독일에서 석유 국가독점(전매)이 확립될 경우 그 효력을 잃는다는 규정이 삽입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석유의 희극’이 시작되었다. … 석유 국가독점을 위한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독일 최대 은행의 방대한 기구와 모든 광범한 ‘연관’들이 동원되었으며 … 마침내 제국의회는 … 거의 만장일치로 석유 독점의 확립을 정부에 촉구하는 결의를 채택했다. 정부는 이 ‘인기있는’ 안건을 받아들였다. 이리하여 미국측 협상자를 기만하면서 국가독점을 통해 자기 사업을 회복시키려 했던 도이치 은행의 도박은 멋지게 승리하는 것처럼 보였다. … 그러나 … 이리하여 석유독점체 설립안은 연기되었다. 그리고 록펠러 ‘석유트러스트’는 당분간 투쟁의 승리자가 되었다.30)


이것이 김이 말한 트러스트 사이에서 벌어지는 “경쟁의 중단”의 실제 모습이다. 협정은 현실적 힘의 반영으로 불평등하기도 하며, 필요하다면 “협상자를 기만하면서” 파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역시 힘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이 과정 역시 경쟁의 한 모습임에 분명하다. 이렇듯 명확한 레닌의 주장은 김으로 하여금 “물론 레닌이 ‘자유경쟁이 배제되지 않는다’는 말을 했지만, 그것은 교조주의자들이 몰개념적으로 암기하고 있는 그런 의미에서가 아니다. 레닌이 의미하는 것은 위에서 보는 것처럼 그런 경쟁의 제거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경쟁제거에 입각한 제국주의적 세계분할이 확정된 것이 아니라는 뜻에서이다. 그리하여 경쟁이 배제되지 않는다는 것은 당시 독점체들 간에 세계분할이 다시금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뜻에 불과하다”는 말을 어쩔 수 없이 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러한 김의 주장은 레닌의 독점이론이 “기업결합을 통한 경쟁 중단”에 관한 이론이라는 주장과 비교하면 진일보(?) 한 것이지만 이 역시 “레닌주의를 왜곡”하는 것이다. 다음에는 이 문제에 대해 살펴보자.


④ 경쟁과 독점―1


김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레닌은 자유경쟁의 결과 일정한 집적의 단계에 이르면 독점, 즉 그가 말한 기업결합을 통한 독점에 이른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맑스는 레닌과 정반대로 결코 그런 기업결합의 독점은 자본주의 법칙에 위배되어 붕괴되어 버릴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원료가 등귀하는 시기에는 산업자본가들은 생산을 조절하기 위하여 서로 모여 연합체를 결성하려고 한다. … 원료생산을 공동으로 포괄적으로 장기적으로 통제한다는 사상―이러한 통제는 사실상 전적으로 자본주의적 생산의 법칙과 모순되는 것이며, 따라서 언제나 헛된 희망에 그치고 말든지 또는 기껏해야 직접적인 큰 위험과 궁지에 빠졌을 순간에 예외적으로 취하는 공동조치에 한정되고 있다―은 수요와 공급이 서로 조절할 것이라는 신념에 자리를 양보한다.”


더욱이 레닌이 독점시대의 출발시기로 잡는 1870년대를 지나 1890년 초반까지 살았던 엥겔스는 맑스와 마찬가지로 그리고 레닌과 정반대로 카르텔과 트러스트 등의 독점은 자본주의 법칙에 맞을 수 없으며 단명하리라고 주장했다.


“첫째로 일반적 보호관세에 대한 새로운 열광인데, 이것은 수출능력있는 상품을 가장 많이 보호한다는 점에서 옛날의 보호주의와는 다르다. 둘째로는 생산ㆍ가격ㆍ이윤을 조절하기 위하여 산업분야 전체의 공장주들이 결성한 카르텔(트러스트)에서이다. 이 실험들은 상대적으로 유리한 경제 환경에서만 실행될 수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 폭풍이 한 번 불어오면, 이 실험들은 모두 날아가 버릴 것이며, 생산이 조절을 요구한다고 할지라도 그 과업을 담당할 수 있는 계급은 확실히 자본가계급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될 것이다. 그 때까지 카르텔들의 유일한 목적은 대자본가가 소자본가를 종래보다도 더욱 급속하게 삼키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이처럼 기업결합에 의한 독점에 대해서 맑스와 엥겔스의 관점과 레닌의 관점이 상이하다는 것은 명백하다. 따라서 맑스의 견해에 따르면 당연히 레닌의 자유경쟁단계와 독점단계의 구분은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며, 그리고 실제 독점과 경쟁의 전체의 역사를 보더라도 레닌의 구분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레닌은 자유경쟁이 일정한 단계에 도달하면 독점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자유경쟁이 먼저이고, 독점이 나중이며, 독점과 자유경쟁은 상이한 것으로 구분되어 있는 오류를 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자유경쟁이 지난 모든 단계는 이제 독점으로 간주하는 직선적인 인식이 당연하다는 잘못된 견해를 준다. 그러나 경쟁과 독점의 역사는 그렇게 단선적이지 않았다.31)


이것은 명백히 레닌에 대한 왜곡이다. 김의 이러한 주장은 앞서 살펴 본 것처럼, 독점=기업결합=경쟁중단으로 보는 잘못된 이해에 기초한다. 김은 자신만의 편협한 이해를 레닌의 것으로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32) 이것은 앞서 “자유경쟁의 배제와 중단 그리고 종식”이라는 표현을 얻기 위해 김이 인용한 레닌의 글의 앞부분과 뒷부분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레닌은 이렇게 주장한다.


이제 우리는 제국주의의 또 다른 중요한 측면, 특히 그간의 논의들 대부분이 별반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고 있는 측면을 검토해야 한다. 맑스주의자 힐퍼딩의 결점 가운데 하나도 바로 여기에서 비맑스주의자 홉슨에 비하여 한 걸음 물러섰다는 데 있다. 그 측면이란 곧 제국주의의 특성인 기생성이다.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제국주의의 가장 뿌리 깊은 경제적 토대는 독점, 곧 자본주의적 독점이다. 즉 그것은 자본주의로부터 성장했으며, 상품생산과 경쟁이라는 자본주의의 일반적 환경 속에 있고, 그 환경과는 영원히 해결될 수 없는 모순관계에 있는 독점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모든 독점과 마찬가지로 불가피하게 정체와 부패의 경향을 낳는다. 일시적이라 할지라도 독점가격이 설정되는 한, 기술진보의 동인, 따라서 다른 모든 진보의 동인은 어느 정도 사라지고, 나아가 기술진보를 일부러 늦출 수도 있는 경제적 가능성까지 생겨난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 오웬스라는 사람이 병 제조법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기계를 발명했다. 그런데 오웬스의 특허권을 사들인 독일의 병 제조업 카르텔은 그것을 묵혀두고 그 이용을 방해했던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하에서 독점은 결코 완전히, 또 오랜 기간 동안 마냥 세계시장에서의 경쟁을 제거할 수 없다(덧붙이자면, 초제국주의 이론이 터무니없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점에 있다) 즉 기술적 개선을 도입함으로써 생산비를 절감하고 이윤을 증대시킬 수 있기 때문에, 변화를 추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독점에 고유한 정체와 부패의 경향은 계속 작용하며, 몇몇 산업분야에서, 몇몇 나라에서 일정기간 동안 우위를 점한다.(강조-원문)33)

제국주의의 기생성의 문제를 다루면서 레닌은 제국주의의 경제적 토대를 “자본주의적 독점”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정체와 부패의 경향”이 “계속 작용하며”, “일정기간 우위를 점”할 수도 있다는 것을 강하게 주장하지만 그는 독점은 “자본주의로부터 성장했으며, 상품생산과 경쟁이라는 자본주의의 일반적 환경 속에 있고, 그 환경과는 영원히 해결될 수 없는 모순관계에 있는 독점이”라고 명확하게 말하고 있으며 “완전히 오랜 기간 동안 마냥 세계시장에서 경쟁을 제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레닌의 주장은 김이 인용한 맑스와 엥겔스의 그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34)


⑤ 경쟁과 독점―2


나는 김이 “독점자본에 의한 경쟁의 제한ㆍ배제를 ‘경쟁의 중단’과 동일한 것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고 “자유경쟁은 독점으로 결과한다. 그리고 독점은 경제체제를 지배하게 된다. 그리고 독점은 경쟁을 제한하고 배제한다. 하지만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독점의 지배가 경쟁을 소멸시킨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경쟁이 새로운 단계에 도달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경쟁과 독점은 대립물로서 통일되어 있는 것이다”라고 주장하며 맑스의 『철학의 빈곤』을 인용하였다.


모두가 알다시피 근대의 독점은 경쟁 그 자체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 그러므로 원래적 의미로는 경쟁이 독점의 대립물이었던 것이지 독점이 경쟁의 대립물이 아니었다. 그런 이유로 해서 근대적 독점은 단순한 대립이 아니라 그와는 반대로 진정한 종합인 것이다


현실의 생활 속에서, 우리는 경쟁, 독점, 이 양자 간의 대립뿐 아니라, 양자의 종합을 또한 발견하는데, 이 종합은 운동이지 결코 정식이 아니다. 독점은 경쟁을 낳고, 경쟁은 독점을 낳는다. 독점자는 경쟁으로부터 만들어지고 경쟁자들은 독점자가 된다. 만약 독점자들이 부분적 결합의 수단을 이용하여 그들의 상호 경쟁을 제한한다면, 노동자 간의 경쟁이 증가한다. 한 국가의 독점자들에 대항하는 프롤레타리아 대중이 성장하면 할수록 상이한 국가들의 독점가들 사이의 경쟁은 더욱 필사적으로 된다. 종합은 그러한 성격을 지니고 있어서 독점은 경쟁의 투쟁 속으로 계속적으로 들어감으로써 스스로를 유지시킬 수 있다.35)


그런데 김은 위의 인용을 이용하여 “경쟁과 독점에 관한 재정립”36)을 시도하고자 한다. 처음에 김은 “봉건적 독점”을 묘사하면서 “그런 독점은 다시금 생산력 증대를 저해하고 시장의 확대를 저해하였다”라며 올바른 주장을 한다. 그러나 “이런 경쟁을 제한하는 독점은 자본주의와 결코 융합될 수 없는 것이”라는 등의 몇 마디 혼란스런 설명을 덧붙인 후 “요컨대 한편으로 자본주의 경쟁 그 자체는 독점의 대립물로서의 경쟁인 것이며, 다른 한편 그 독점을 내포한 종합으로서의 경쟁이다. 자본의 최후의 일각까지 독점화하려는 집중의 경향, 즉 경쟁이 영원한 것이며 독점은 일시적인 성격으로만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앞서 본 것처럼 바로 이 경쟁은 자본축적의 강제법칙인 것이다. 요컨대 근대적 자유경쟁은 그 자체가 독점을 내포하며, 독점이라는 극한을 향해가는 끊임없는 경쟁이다”라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주장을 한다.37)

하지만 김의 이러한 주장은 개념을 마구 흔들어 섞어 결국 맑스의 이론과는 완전히 반대의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맑스는 “정립: 경쟁 이전의 봉건적 독점”, “대립 : 경쟁”, “종합 :근대적 독점, 그것은 경쟁 체계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봉건적 독점의 부정이며, 독점이라는 점에서 경쟁의 부정이다”라고 한 후 “그러므로 근대의 독점, 즉 부르주아적 독점은 종합적 독점이며, 부정의 부정이고, 대립물의 통일체이다. 그것은 순수한, 정상적인, 합리적인 상태의 독점이다”라고 하기 때문이다.38) 이는 김의 “요컨대 근대적 자유경쟁은 그 자체가 독점을 내포하며, 독점이라는 극한을 향해가는 끊임없는 경쟁이다”라는 결론과는 정반대인 것이다.39)

또 김은 아무런 논리적 연관성도 없이 이렇게 주장한다. “따라서 자본주의 근대적 경쟁을 자유경쟁단계와 독점단계로 구분하는 것 자체가 형식논리학적인 오류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자유경쟁도 독점이요, 독점도 경쟁이라는 절충적 견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와는 달리 예컨대 생명체는 끊임없는 죽음을 내포하면서, 죽음으로 향해갈지라도 살아있는 생명이라는 것이다”라고.40) 그런데 자유경쟁단계와 독점단계로 구분하는 것이 어떻게 하여 형식논리학적 오류인가? 김의 논리에 입각해서 이것을 살펴보자. 사람은 태어나서 생명이 끝날 때까지 끊임없이 살아가면서 죽어간다. 그는 신생아기, 유아기, 소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를 거치며 살아(=죽어)간다. 이렇게 신체적․정신적․생리학적 특징에 따라 단계를 나누는 것은 나누어지는 형식논리학적 오류인가? 또 이러저러한 과정을 거친다고 하는 것은 “신진대사라는 운동으로서의 삶”을 부정하는 것인가? 한 가지 더. “자유경쟁단계와 독점단계를 구분하는 것 자체가 형식논리학적인 오류”라면 애벌레의 단계와 나비의 단계를 구분하는 것도 형식논리학의 오류인가? 만일 그렇다면 그 오류는 레닌만의 오류가 아니다. 그리고 오류에 관한한 그것을 범하는 것보다 그것을 깨닫지 못한고 반복하는 것이 더 큰 잘못이다.


2) 쟁점 2 ―제국주의


① 경제적 본질


나는 이 문제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썼다.


김은 레닌의 주장에 입각해 “자본주의 체제는 1873년부터 그리고 그의 사후 20여년 후인 1945년까지 제국주의 시대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김은 “1945년 이후의 역사의 흐름은 레닌의 주장이 현실적 타당성을 잃었음을 보여주었다. 식민지가 사라진 현재를 제국주의 시대라고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한다.

레닌은 󰡔제국주의론󰡕의 서문에서 “나는 독자들이 근본적인 경제문제, 즉 제국주의의 경제적 본질에 관한 문제를 이해하는 데 이 소책자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썼다. 그리고 레닌은 “제국주의를 가능한 한 간결하게 정의한다면, 자본주의의 독점단계라고 해야 할 것이다”라고 했다. 현재의 자본주의 세계체제에서 독점은 엄연히 존재하고 그들은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따라서 간결한 정의에 입각하면 현재 역시 제국주의 시대임에 분명하다.41)


그런데 앞서 본 것처럼 김은 독점이라는 개념에 대해 남다른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서는 대꾸조차 하지 않는다. 김은 그것 대신 레닌의 제국주의에 대한 정의에 관련한 문제에 온 힘을 쏟는다.


② 레닌의 제국주의에 대한 정의―1


레닌은 제국주의를 정의하면서 이렇게 썼다.


제국주의를 가능한 한 간결하게 정의한다면, 자본주의의 독점단계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정의는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한편으로 금융자본이란 독점적 산업가단체의 자본과 융합하고 있는 소수 독점적 거대은행의 은행자본이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 세계의 분할이란 어떤 자본주의 열강에 의해서도 장악되지 않은 영토까지 아무 장애 없이 확장될 수 있었던 식민지정책으로부터 모든 분할이 완료된 영토를 독점적으로 점유하려는 식민지정책으로의 이행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무 간결한 정의는 주요한 것을 요약하고 있다는 점에서 편리하기는 하나, 정의해야 할 현상의 극히 중요한 특질을 거기에서 연역해 내야 하기 때문에 충분하지는 못하다. 그러므로 한 현상이 충분히 발전된 상태에서 그것의 모든 연쇄를 완전히 포괄할 수 없다는, 모든 정의가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조건적이고 상대적인 측면을 잊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5개의 기본적 특질을 포함하는 제국주의의 정의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1)생산과 자본의 집적이 고도의 단계에 달해, 경제생활에서 결정적 역할을 수행하는 독점체를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2)은행자본이 산업자본과 융합하여 ‘금융자본’을 이루고, 이를 기초로 하여 금융과두제가 형성된다. (3)상품수출과는 구별되는 자본수출이 특별한 중요성을 갖는다. (4)국제적 독점자본가단체가 형성되어 세계를 분할한다. (5)자본주의 거대열강에 의한 전세계의 영토적 분할이 완료된다. 요컨대 제국주의란, 독점체와 금융자본의 세계적 지배가 확립되어 있고, 자본수출이 현저한 중요성을 가지고 있으며, 국제트러스트들 간의 영토분할이 완료된 발전단계에 있는 자본주의이다.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만일 기본적이고 순수히 경제적인 의미―위에서 내린 정의는 여기에 한정되었지만―뿐만 아니라, 이 단계의 자본주의가 자본주의 일반에 대하여 갖는 역사적 위치나, 노동계급운동 내의 두 가지 주요 경향과 제국주의 간의 관계까지 염두에 둔다면, 제국주의는 또 다른 방식으로 정의될 수 있으며 또 정의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위와 같이 해석된 제국주의는 의심할 바 없이 자본주의 발전의 특수한 단계를 나타낸다는 사실이다.42)


나는 레닌의 “5개의 기본적 특질을 포함하는 제국주의의 정의를”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식민지가 사라진 현재를 제국주의 시대라고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김의 주장을 검토해야 한다.

먼저 우리는 정의를 내리기에 앞서 레닌이 언급한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는 “한 현상이 충분히 발전된 상태에서 그것의 모든 연쇄를 완전히 포괄할 수는 없다는, 모든 정의가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조건적이고 상대적인 측면을 잊지 않”을 것을 요구한다. 이것은 다섯 가지 기본적 특질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조건적이고 상대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5)번째 특질이 상대적으로 약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전쟁에 의해 미국의 독점자본이 서유럽과 일본의 독점자본에 비해 절대적이고 압도적인 우위를 갖게 된 것에 기인하며 민족해방투쟁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체제 역시 이에 기여했다. 물론 이것은 (5)의 특질이 상대적으로 줄어든 것을 의미할 뿐 사라졌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서유럽과 일본이 전쟁에서 복구되며 전후 재분할의 상징인 IMF체제의 붕괴와 현실 사회주의체제의 붕괴 이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재분할의 조짐이다.43)


김 역시 레닌의 같은 부분을 인용하며 나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제국주의 시대란 바로 독점에 입각한 전세계의 영토적 분할이 완료된 상태를 의미한다. 즉, 영토적 분할 혹은 점령이 없는 제국주의란 레닌은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레닌주의자라는 작자들이 레닌주의를 그대로 지킨다는 미명하에 레닌주의를 왜곡했던 것이다. 그런데 전성식연구위원은 여타 교조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레닌의 이런 세계분할에 대한 규정이 약화(?)되어도 타당하다는 식으로 말한다.

레닌은 당시의 현실적인 분석의 결과를 통해서 다섯가지 지표가 제국주의의 기본적인 특징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위에서 보는 것처럼 다섯가지 지표를 얘기하기에 앞서 가장 근본적인 정의를 세계분할과 연결시켜서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근본적인 정의에 내포되고 있는 특징을 단지 조건적이고 상대적인 것이라고 해석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교조주의자의 자기기만일 뿐이다. 불균등발전이론과 맞물려 영토적 분할과 재분할을 둘러싼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 쟁탈전에 대한 내용은 레닌의 제국주의론을 구성하는 핵심 중에 하나이며, 열강 간의 세계분할이라는 제국주의론의 한 장을 할애하면서 설명하고 있음에도 가볍게 ‘약화되었다’며 무시한다. (강조-원문)44)


김의 비판 중 먼저 지적할 것은 “위에서 보는 것처럼 다섯 가지 지표를 얘기하기에 앞서 가장 근본적인 정의를 세계분할과 연결시켜서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근본적인 정의에 내포되고 있는 특징을 단지 조건적이고 상대적인 것이라고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교조주의자의 자기기만일 뿐이다”라는 김의 주장 부분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김은 두 개의 번역된 『제국주의론』을 사용한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김은 박상철의 번역을 인용한다. 그곳에서는 “what is most important”를 “가장 근본적인 것”으로 번역하고 있고(남상일은 “매우 중요하다”로 번역한다.) 김은 이것을 근거로 나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근본적”과 “중요한”은 뉘앙스의 차이가 매우 큰 것으로 김의 이러한 비판은 ‘important’라는 단어의 뜻을 고려했을 때 그 근거는 미약하고 일단은 ‘기각(棄却)’되어야 마땅하다.

또 “불균등발전이론과 맞물려 영토적 분할과 재분할을 둘러싼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 쟁탈전에 대한 내용은 레닌의 제국주의론을 구성하는 핵심 중에 하나이며, 열강 간의 세계분할이라는 제국주의론의 한 장을 할애하면서 설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약화되었다’며 무시한다”는 김의 주장은 부당하다. 왜냐하면 나는 “다섯 가지 기본적 특질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조건적이고 상대적이라는 … 관점에서” 보았을 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5)번째 특질이 상대적으로 약화되”었다고 했을 뿐 “독점자본 및 열강에 의한 세계의 분할”을 절대로 “가볍게” “무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는 『노동자교양경제학』(전면개정판)에 근거하여 “그러나 이것은 전쟁에 의해 미국의 독점자본이 서유럽과 일본의 독점자본에 비해 절대적이고 압도적인 우위를 갖게 된 것에 기인하며 민족해방투쟁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체제 역시 이에 기여했다. 물론 이것은 (5)의 특질이 상대적으로 줄어든 것을 의미할 뿐 사라졌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서유럽과 일본이 전쟁에서 복구되며 전후 재분할의 상징인 IMF체제의 붕괴와 현실 사회주의체제의 붕괴 이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재분할의 조짐이다”라고 주장하며 이것의 현재성을 주장했다.45) 하지만 이러한 나의 주장은 김에게는 “앞뒤도 맞지 않는 주장”이고, “레닌주의의 희화화의 백미”이며, “아집이 낳은 망상”일 뿐이다.

여기서 한 가지 마지막으로 지적할 것은 내가 “다시금 식민지 점령이 발생할 것이라는”, “놀라운 파격적인 주장을” 하였다는 김의 주장이다.46) 아마도 “재분할의 조짐”에 대한 언급에서 김은 그러한 주장을 창조해내는데 그것은 내가 주장한 것이 아니라 앞서 본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김 특유의 창조적 글 읽기에서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다.47)


③ 레닌의 제국주의에 대한 정의―2


“제국주의에 대한 레닌의 다섯 가지 기본적 특질”의 다섯 번째는 “(5)자본주의 거대열강에 의한 전세계의 영토적 분할이 완료된다”이다. 그리고 레닌은 “요컨대 제국주의란, 독점체와 금융자본의 세계적 지배가 확립되어 있고, 자본수출이 현저한 중요성을 가지고 있으며, 국제트러스트들 간의 영토분할이 완료된 발전단계에 있는 자본주의이다”라고 하며 “영토분할의 완료”에 대해 명확히 언급한다. 김은 이것을 근거로 현 시대 역시 제국주의 시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제국주의 시대란 바로 독점에 입각한 전세계의 영토적 분할이 완료된 상태를 의미한다. 즉, 영토적 분할 혹은 점령이 없는 제국주의란 레닌이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레닌주의자라는 작자들이 레닌주의를 그대로 지킨다는 미명하에 레닌주의를 왜곡했던 것이다”라고 비판한다. 왜냐하면 현재 세계자본주의체제를 “영토적 분할이 완료된” 상태로 볼 수 없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48)

이 지점에서 우리는 레닌의 “영토적 분할”이라는 의미에 대해 검토해야 한다.49) 즉, 그는『제국주의론』의 제5장에서 ‘자본가단체들 간의 세계분할’에 대해서 다루고, 제6장에서는 ‘열강 간의 세계분할’에 대해서 다룬다. 제5장에서 레닌은 이렇게 썼다.


자본가들이 세계를 분할하는 것은 어떤 특별한 악의 때문이 아니라, 지금까지 도달한 집적의 수준에서 이윤을 획득하려면 이러한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자본가들은 상품생산과 자본주의하에서는 다른 분할방법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자본에 비례하여’, ‘힘에 비례하여’ 세계를 분할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힘은 경제적ㆍ정치적 발전 정도에 따라 다르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힘의 변화에 따라 결정되는 것은 어떠한 문제인가를 알아야 한다. 이들 변화가 ‘순전히’ 경제적인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경제외적(이를테면 군사적)인 것인가 하는 문제는 부차적인 문제일 뿐, 자본주의 최근 시대에 대한 근본적인 견해에 조금도 영향을 줄 수 없다. 자본가단체들 간의 투쟁과 협정의 본질문제를 투쟁과 협정의 형태문제(오늘은 평화, 내일은 전쟁, 모레는 다시 전쟁 하는 식으로)로 대체하는 것은 곧 궤변가의 역할로 빠져드는 것이다.

자본주의 최근 단계의 시대는 곧, 자본가단체들 간에 세계의 경제적 분할을 토대로 하여 일정한 관계가 성장했다는 사실, 그리고 이와 아울러, 또 이와 관련하여 정치적 동맹체 사이, 국가들 사이에서도 세계의 영토적 분할, 식민지 획득을 위한 투쟁, 즉 ‘세력권을 확장하기 위한 투쟁’을 토대로 하여 일정한 관계가 성장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50)


이상에서 살펴보면 자본가들의 세계분할은 피할 수 없는 일이며, 레닌은 “경제적 분할”과 “세계의 영토적 분할, 식민지 획득을 위한 투쟁”을 구분한다. 하지만 이러한 “투쟁과 협정의 본질문제”를 “투쟁과 협정의 형태문제”로 대체하는 것, 역시 비판하고 있다. 따라서 이것은 당시의 “세력권을 확장하기 위한 투쟁”이 시대의 주요한 특징임을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식민지ㆍ반식민지 혹은 여러 형태의 종속국에 대한 제국주의국가의 지배방식의 차이와 그 본질적 공통성에 대해 언급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레닌은 제6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한편 ‘반식민지’ 국가들은 자연과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발견되는 과도적 형태의 한 예를 보여준다. 금융자본은 모든 경제관계와 국제관계에 있어 대단히 강력한, 결정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세력으로서, 완전한 정치적 독립을 향유하고 있는 국가조차도 자신에게 종속시킬 수 있으며, 또 실제로 종속시키고 있다. 이에 대한 예는 조금 후에 살펴보겠다. 더구나 금융자본은 당연히 종속된 나라와 민족에게서 정치적 독립까지 박탈하는 종속형태를 가장 ‘유리한’ 것으로 여기며, 그것으로부터 가장 많은 이윤을 뽑아낸다. 이러한 점에서, 반식민지국은 ‘중간단계’의 전형적인 예인 것이다. 따라서 나머지 지역들이 이미 모두 분할되어 버린 금융자본의 시대에 이들 반종속국을 둘러싼 투쟁이 특히 격화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강조-원문)51)


“가장 많은 이윤을 뽑아”낼 수 있으므로 “정치적 독립까지 박탈하는 종속형태”, 즉 식민지형태를 금융자본이 가장 선호하리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따라서 그들이 “과도적 형태”의 종속형태인 “반식민지국”을 완전한 자신의 식민지로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상황과 조건에서 금융자본은 다른 방편을 찾을 것 또한 당연하다. 그들은 “완전한 정치적 독립을 향유하고 있는 국가” 역시 “자신에게 종속시킬 수 있”기 때문이며, 그렇게 해왔다. 또한 필요한 경우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본격화 된 정치적 독립도 하나의 방편으로 삼았다.


제국주의 열강이, 정치적으로 독립한 국가의 설립이란 허울 아래 경제ㆍ금융ㆍ군사 면에서 자기 나라에 완전히 종속된 국가를 세우는 방식으로 피억압 국가들의 특권 계급의 도움을 얻어 체계적으로 행하고 있는 기만을, 모든 나라와 민족 특히 뒤떨어진 국가와 민족의 가장 광범위한 근로 대중 사이에서 꾸준히 설명하고 폭로하는 것이 필요하다.52)

1920년 코민테른 제2회 대회에서 레닌이 제출한 이상의 테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제국주의는 필요에 의해 또 상황에 따라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여 종속국을 지배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간접적 지배방식은 당시에 “전형”의 하나였기는 하지만 주요한 형태는 아니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중과 대전 이후에 고양된 민족해방운동은 이른바 고전적 식민지체제를 붕괴시켰고, 많은 식민지들은 국가적으로 정치적으로 독립을 획득하였다. 그러나 제국주의는 비록 정치적 독립은 허용했지만 다른 많은 수단을 동원하여 새로운 독립 국가들을 경제적ㆍ금융적ㆍ군사적으로 종속시켜 지배를 연장해갔다.

이러한 새로운 역사적 현실을 해명하기 위하여 “신식민지 이론”이 출현하였으며 이는 앞서 살펴본 레닌의 이론에 많은 부분 기초하여 발전되었다. 따라서 나는 “여타 교조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독점과 제국주의」에서 레닌을 인용하며53) “신식민지 이론”이 “이러한 변화된 사실을 설명하고자 했던 노력의 하나”라고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양한 형태의 종속국들도 이 시대의 전형이”라는 레닌의 주장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식민지가 사라지고 독립을 이루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많은 국가들이 완전한 독립이라기보다는 “다양한 형태의 종속국”으로 존재했었던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이것은 사회주의 체제의 성립과 식민지ㆍ반식민지의 민족해방투쟁의 고양, 그리고 자본주의 국가 내의 계급투쟁의 첨예화에 의해 독점자본에게 강제된 것이었다. 한마디로 대외정책의 변화에 의한 주요한 집단의 구성이 변한 것이지 시대자체가 변한 것은 아니다.54)


그런데 이에 대한 김의 비판은 다음과 같았다.


전성식 연구위원은 다른 교조주의자들처럼 레닌이 완전히 영토를 점령한 식민지 말고 반식민지도 존재한다는 말을 언급하면서, 자신들이 마치 레닌이 단초로 남겨두었던 제국주의이론을 발전시킨 것처럼 말한다. 레닌주의의 희화화의 백미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식민지라는 개념이 존재해야 반식민지라는 개념이 성립하는 것이다. 아니 식민지라는 개념에 맞는 현실이 존재하지 않는데 반식민지는 무슨 놈의 반식민지인가. 레닌은 영토적 점령과 분할을 전제로 한 과도적 형태로 반식민지를 말했던 것이지, 결코 영토적 점령이 전혀 없는 반식민지 혹은 신식민지체제를 얘기한 적이 없다. 아집이 낳은 망상이라고 하겠다.55)


물론 레닌은 “식민지 소유국과 식민지국이라는 두 개의 주요 집단”을 강조했고‘반식민지’ 국가들은 자연과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발견되는 과도적 형태”임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그는 “형식적으로는 정치적 독립을 유지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금융적ㆍ외교적 종속의 그물에 갇혀있는 다양한 형태의 종속국들도 이 시대의 전형”이라고 주장했던 것 역시 앞서 본 것처럼 명확한 사실이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 중과 이후의 세계는 사회주의 체제의 성립과 자본주의 국가 내의 계급투쟁의 첨예화와 더불어 식민지ㆍ반식민지에서 민족해방투쟁이 고양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러한 상황 전개의 결과 많은 식민지국들은 레닌이 “과도적 형태”라고 언급한 간접적으로 지배받는 종속국들로 전화하였고 이것은 종속국의 주요한 형태로 되었다. 그리고 반복하지만 이러한 현실은 신식민지주의라는 새로운 개념을 발생시켰으며,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이것은 “제국주의 열강이, 정치적으로 독립한 국가의 설립이란 허울 아래 경제ㆍ금융ㆍ군사 면에서 자기 나라에 완전히 종속된 국가를 세우는 방식”을 주요한 내용으로 포함한다.56)


3) 소결


김의 글이 읽는 이들을 자꾸 혼란 속에 몰아넣는 것은 김이 자신의 글에서 레닌의 『제국주의론』의 한계와 오류를 증명하고자 하면서 동시에 한계와 오류를 가진 『제국주의론』조차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교조조의자들”(?)을 비판하려 하는데 있다.

김은 레닌의 독점이론이 맑스와 다르고 특수한 상황을 일반화한 오류라고 주장한다. 또한 레닌이 ‘독점은 자유경쟁의 중단’이라고 주장하는데 “교조주의자”들은 이것을 왜곡했다고 한다. 그리고 ‘제국주의’ 문제와 관련해서 그 경제적 기초인 독점, 그 결과인 세계의 영토 분할 등의 문제에서도 “교조주의자”들은 레닌을 왜곡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맑스의 이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은 레닌이 아니라 김이다. 또한 자신이 레닌의『제국주의론』을 잘못 이해하고 오해한 것을 ‘레닌의 이론’이라 왜곡하여 규정하고 레닌이 오류를 범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그 왜곡에 기초하여 다른 사람들이 레닌을 왜곡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레닌을 왜곡한 사람은 김에게 “교조주의자”라 비난 받는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김 자신이다.








(2) 현실 이해의 문제


1) “장기호황”과 “장기불황”57)


김은 이렇게 주장한다.


자본주의가 성숙했던 1825년부터 1873년까지 서유럽의 자본주의는 일국적 축적의 한계에 봉착하면서 급격한 위기로 치달았는데, 각국의 자본은 위기 해소를 위해 독점과 제국주의라는 퇴행적 정책을 사용하면서 오히려 전반적 위기로 빠져들었다. 독점과 제국주의는 자본주의발달의 최고의 단계이거나 새로운 사회로의 이행의 형태가 결코 아니라 자본발달의 퇴행기이며 불가피하게 중단되지 않을 수 없는 과도기였으며, 일국적 축적을 넘어서 세계적 자본축적으로 나아가기 위한 과도기였을 뿐이다. 그리하여 식민지 정책 혹은 식민지 전쟁은 양차대전을 거치면서 세계적 축적과 집적을 지향하는 자본의 논리로 대체된다. 이 세계적 축적은 일국적 축적을 강화한다. 좀 더 엄밀히 말하자면, 카르텔과 트러스트 등의 독점은 금지되고 다시금 경쟁이 벌어진다. 그리고 각국 간의 이전의 제국주의로 인한 시장 단절이 해소되고, 이제 본격적인 자본의 세계적 집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위에서 보는 것처럼 제국주의시기에 자본수출은 해당 식민지로의 자본이동이 많았으며, 제국주의 간의 배타성은 세계적 축적을 오히려 저해하고 있었다. 반면에 제국주의의 철회와 독점의 철회는 다시금 자본의 새로운 축적공간을 마련함으로써 자본의 활로를 찾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자본주의의 급격한 팽창은 자본주의 황금기 동안 노동자계급 대중을 포섭하는 한편 노동운동진영 내에 기회주의가 만연토록 하였다.58)


이에 대해 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60년대 말까지 세계 자본주의가 경험한, 말 그대로 예외적인 호황, 즉 “황금기”의 원인을 “보호무역 및 독점의 중단과 제국주의의 중단” 혹은 “제국주의의 철회와 독점의 철회”라고 주장하는 김의 견해를 다음과 같은 기존(?) 견해를 인용ㆍ비교하며 독자들의 판단을 물었다.59)


전후의 ‘장기호황’은 물론 여러 요인들이 복잡하게 얽혀 상호 상승작용을 미친 결과이지만, 그것을 가장 근본적으로 규정한 것은 다름 아닌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즉, 기존의 물적 생산력을 대대적으로 파괴해버린 제2차 대전이야말로 전후 장기호황의 규정적 배경이었다. 그것은 대대적인 파괴ㆍ살육을 통해서 1930년대의 만성적이고 거대했던 과잉생산을 일소해버렸을 뿐 아니라 새로운 거대 수요의 조건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전후 장기호황의 배경으로서는 이와 같은 전쟁에 의한 대파괴, 복구 수요, 냉전 등과 더불어, 그것들과 관련을 가지면서 상대적으로 독자성을 갖는 바의 대중 수요의 폭발이 있다. 이는 무엇보다도 노동자계급을 중심으로 한 대중의 투쟁력이 강화된 결과 그들의 소득이 무엇보다도 증대한 것(이는 자본주의 주요 열강의 노동자계급이 이른바 사회민주주의에 안주하게 되는 물질적 기초이기도 하다)의 표현이었다. 그리고 상품 구성에서는, 대체로 전쟁을 계기로 크게 발전하고 개발된 전기ㆍ전자 기술과 연관된 민간의 제반 내구재 시장의 확대ㆍ심화가 주요한 추동력을 이루고 있었다.60)


두 인용문 모두 “장기호황” 혹은 “황금기”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것이 노동자계급을 개량화시키는 토대로 작용하였다는 점도 인정한다. 하지만 “장기호황”의 가장 중요한 원인에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 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인가? 아니면 “제국주의의 철회와 독점의 철회”인가? 그런데 이러한 시각의 차이는 이후 자본주의 전개과정에 대해서도 다른 주장으로 이어지게 된다. 즉, 전자는 예외적이었지만 “장기호황”은 1960년대 말 혹은 1970년대 초부터 “장기불황”으로 빠져들게 되고 이것은 현재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김은 “장기호황(황금기)”이라는 개념을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장기불황”에 대해서는 눈을 돌리고 별다른 언급 없이 바로 신자유주의 문제로 넘어간다.


2) 신자유주의


이 문제에 관해 김은 이렇게 주장한다.


그리고 이런 자본주의의 급격한 팽창은 자본주의 황금기 동안 노동자계급 대중을 포섭하는 한편 노동운동진영 내에 기회주의가 만연토록 하였다. 이 두 가지 조건을 바탕으로 세계적 자본주의는 1970년대 후반 노동자계급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퍼붓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신자유주의이다. 사실 신자유주의 체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과잉 팽창되고 과잉축적된 자본주의 모순의 표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은 세계적 자본주의의 과잉축적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지 최종적 한계는 아니었다. 오히려 세계적 자본주의의 생산력의 증대는 현실사회주의를 압도하고 1990년대 초 현실사회주의를 붕괴시켰다. 이를 통해 세계자본주의는 12억 인구의 중국을 포함해서 동구 및 러시아라는 새로운 광대한 사회적 축적공간을 확보하게 되었다. 그리고 최근 초국적 자본은 10억 인구의 인도를 포함해서 전지구적 생산의 확대ㆍ자본축적의 확대를 소위 아웃소싱이라는 정책을 통해서 추진하고 있다.61)


나는 이것이 기존의 이해와 다르다고 하며 다음과 같이 썼다.


즉 이른바 ‘황금기’를 마친 자본주의는 ‘장기불황’을 겪게 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자본주의를 위기에서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자본주의체제를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신자유주의이다. 즉 “신자유주의는 1970년대 이후 필연적으로 재격화된 자본주의체제의 전반적 위기에 대한 독점자본의 대응이며, 자본주의체제의 전반적 위기가 재격화된 시기의 (국가독점)자본주의”, “국가독점자본주의의 후기형태”, “반동적 군사 케인즈주의”라는 것이 우리의 기존의 이해이다.62)


“황금기”동안 노동자계급은 자본가계급에게서 많은 양보를 얻어낸다. 김이 말한 것처럼 “황금기”의 눈부신 성장은 주요 열강들의 자본가들이 “노동자계급 대중을 포섭”하는 것에 성공하도록 하는 또한 “노동운동진영 내에 기회주의가” 성장하도록 하는 물질적 조건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황금기”는 “장기불황”으로 바뀌게 되고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자본가계급은 노동자계급을 전방위적으로 공격한다. 이것의 이념적ㆍ실천적 표현이 신자유주의이며, 개량의 달콤함에 빠져있던 노동자계급은 자본가계급에게 패배하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발생한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는 자본가계급이 신자유주의 공세를 더욱 강화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하게 된다.

김은 “세계적 자본주의는 1970년대 후반 노동자계급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퍼붓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신자유주의”라고 하며 이러한 현상을 설명한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체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과잉 팽창되고 과잉축적된 자본주의 모순의 표현이”라고 말하지만, 이는 앞서 말한 것처럼 신자유주의가 전면화 되는 배경인 “장기불황”의 문제를 외면하는 것이다. 또한 “오히려 세계적 자본주의의 생산력의 증대는 현실사회주의를 압도하고 1990년대 초 현실사회주의를 붕괴시켰다”라는 주장은 매우 파격적인 것으로 많은 증명을 요하는 것이다.63)

3) 현 상황에 대한 이해


김은 현실사회주의의 붕괴와 중국의 개방을 세계 자본주의의 “새로운 광대한 사회적 축적공간”이라 부르며 “모순을 해소할 공간”으로 파악한다. 물론 이것이 “세계적 차원에서 자본축적이 완성되어감을 뜻하며, 이는 다시금 세계적 과잉축적을 향해가고 있음은 분명하”고 “이런 세계적 자본축적은 바로 세계혁명의 물적 토대를 만들고 있”다라는 단서를 달고 있지만 김에게 주요한 측면은 전자의 측면이다.64)

이와는 달리 기존의 견해는 “새롭게 이른바 '사회주의적 시장경제'를 추진하고 나선 후, 중국의 누적적인 국제수지 흑자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중국은 이미 여러 주요 부분에서 세계시장의 과잉생산을 흡수하는 시장으로서보다는 그 과잉생산을 더욱 심화시키는 공급자로서 기능하고 있다는 현실도 염두에 두면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65)


4) 자본주의 미래의 전망과 관련하여


세계 자본주의체제의 미래에 대해 기존의 견해는 이렇다.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노동자계급에게 고통과 빈곤, 실업을 강요하고 있는 신자유주의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귀결될 것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지금 비약적으로 전개되는 과학기술혁명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귀결될 것인가를 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신자유주의를 불가피하게 하는 전반적 위기의 재격화의 기초에 바로 과학기술혁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본의 축적에 따른 경쟁의 격화와 과학기술의 혁명적 발전, 과잉생산은 서로가 서로의 원인과 결과가 되는, 즉 서로가 서로를 규정하는 관계에 있습니다. 자본의 축적은 과잉생산과 그에 따른 경쟁의 격화를 낳고, 경쟁의 격화는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낳고,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새로운 생산기술은 과잉생산을 격화시켜 다시 경쟁을 격화시키는 식입니다.

신자유주의 시대란, 바로 이러한 악순환 과정이 극에 달해 있는 시대입니다.

실제로 20세기의 마지막 4반세기에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전개된 것은 자본의 거대한 과잉축적과 그에 따른 과잉생산, 경쟁의 격화, 과학기술의 혁명적 발전입니다. 더구나 이 과학기술혁명은 문제의 악순환이 반복될수록 더욱 비약적인 속도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1970년대 이후 재차 격화되고 있는 전반적 위기와, 그것을 더욱 격화시키고 있는 과학기술혁명과 신자유주의는 사실은 우리가 이미 대(大)사회혁명의 시대에 들어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66)


이에 비해 김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그런데 이는 또한 세계적 차원에서 자본축적이 완성되어감을 뜻하며, 이는 다시금 세계적 자본주의의 과잉축적을 향해가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에 따른 세계적 자본축적의 위기는 자본주의가 지구상에서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최종적인 모순과 위기에 직면하게 됨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제 이런 세계적 자본축적은 바로 세계혁명의 물적토대를 만들고 있으며, 국제적 노동자계급의 연대의 물질적 토대를 만들고 있다. 그리고 향후 혁명의 세계적 성격에 대한 현실성을 제공하지만, 일국적 혁명의 가능성도 여전히 열어 놓는다. 또한 향후의 혁명은 진정 노동자계급이 자본으로부터 해방되는 진정한 사회주의 혁명이 될 것이다. 20세기초 러시아 혁명의 과제는 현재 우리들의 과제로 다가 오고 있다.67)


두 견해 모두 자본주의의 역사적 한계를 주장하고 있으며, 그 근거를 자본의 과잉축적ㆍ과잉생산으로 본다. 또한 혁명의 불가피성을 주장하며 이는 두 견해 모두 다르지 않다.

다만 이 문제에 대해 한마디 덧붙이고자 하는 것은 김이 앞서 “교조주의자들”이 “레닌의 제국주의론에 집착하는 것은,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의 최종적 단계이며 사회혁명의 전야라는 레닌의 혁명적 주장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라며 “과학을 신념의 영역으로 바꾸는 교조주의자들”을 비난하고 있는 부분에 대한 것이다.68) 그런데 우리가 현재의 세계자본주의가 한계에 도달한 것은 지금 살펴본 이유에서이다. 김이 비판을 하기 위해서는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추었어야 한다. 그런데 김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이 문제에 있어서 잘못된 상식을 바탕으로 하여 과학을 신학적 비유로 바꾸는 김이 비난받아야 한다. 즉, 김은 “다시 비유하자면, 생기 푸른 애벌레가 무럭무럭 자라다가 일정한 단계에 이르면 죽은 듯 썩어가며 생명을 유지하는 변태의 과정을 거쳐 다시금 생명 가득한 화려한 세계적 자본주의 나비로 핀 시기가 현재다. 이 나비는 애벌레와 마찬가지로 생명과 죽음의 변증법적 통일이면서도 생명을 화려하게 발하는 것이다. 물론 이 나비는 최종적인 급격한 죽음을 향해서 마지막 생명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한다.69)

그런데 “이 나비는 최종적인 급격한 죽음을 향해서 마지막 생명을 발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더 많은 알을 낳아 자신의 생명을 연장ㆍ확산해갈 것인가? 이 지점에서 나비의 죽음을 바라는 김은 아마도 간절히 구원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 간절한 심정은 이해는 가지만 그런 의미에서 그는 신념을 넘어 신앙적이다. 그리고 마지막 한마디, 과학적 신념은 꼭 필요한 것이다. (“4. 전략ㆍ전술 문제와 관련하여”, “5. 맺으며”는 다음호에 이어집니다.) <노사과연>



“살아 있는 강철”이기 위해서는

“과학적 사상”이어야 한다

―강철인가? 수수깡인가?




전성식 | 연구위원


1) 김두한, 「과학적 사상은 살아있는 강철이어야 한다―제국주의적 관점을 비판하며」(이하 「강철」),『정세와 노동』(통권 제20호), 2007.11, pp. 63-94.


2) 김은 이렇게 비판한다. “그들은 여전히 레닌의 제국주의론에 연연해, 맑스와 레닌의 과학적 사상을 발전시키기를 거부하고 있다. 그들은 맑스-레닌주의를 자본주의 발달을 반영하는 과학적 이론으로 발전시켜내지 못하고, 레닌이래 맑스주의의 성장을 질식시키는 교조주의자들에 다름 아니다. 그들이 레닌의 제국주의론에 집착하는 것은,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의 최종적 단계이며 사회혁명의 전야라는 레닌의 혁명적 주장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김두한, 같은 글, p. 65.) 이러한 김의 추측은 당연히 사실이 아니다.


3) 레닌, 『인민의 벗이란 무엇인가』, 벼리, pp. 19-22.


4) 나는 김이 기존의 견해들을 비판하며 제출한 새로운 ‘가설’이 이러한 운명을 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일단은 부정하지 않는다.


5) 레닌, 앞의 책, p. 25.


6) “우리는 맑스의 이론을 완성된 불가침의 어떤 것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주의자들이 생활과 보조를 맞추기를 바란다면, 모든 방향으로 발전시켜야 하는 과학의 초석을 맑스의 이론이 마련했을 뿐이라고 확신한다. 우리는 맑스의 이론을 독립적으로 정교화하는 것이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에게 특별히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이론은 단지 일반적인 지도 원리를 제공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 지도 원리는 특수화 되어, 영국에서는 프랑스와 다르게, 프랑스에서는 독일과 다르게, 독일에서는 러시아와 다르게 적용된다.”(레닌, 「우리의 강령」, 『레닌저작집 1』, 전진, p. 78.) “맑스의 이론” 뿐만이 아닐 것이며, “특수화” 역시 국가별 뿐이 아니라 시간적 차이도 포함할 것이다.


7) 김두한, 앞의 글, p. 74.


8) 김두한, 「20세기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과 현재 」(이하 「현재」), 『정세와 노동』(통권 제15호), p. 73.


9) 내용의 중요성이나 논리전개의 맥락으로 따져 보았을 때 당연히 ‘독점의 개념’을 먼저 다루어야 하지만 간단한 문제부터 해결하고자 순서를 바꾼 것, 독자들의 양해를 구한다. 이것은 개념을 변경하여 사용한 김에게도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다.


10) 전성식, 앞의 글, pp. 55-6.


11) 김두한, 「강철」, pp. 77-8.


12) 레닌, 『제국주의론』(남상일 역), 백산서당, pp. 99-100. 축적ㆍ집적ㆍ집중에 관한 개념적 이해와 김의 잘못된 이해에 관해서는 이미 지적하였다. 전성식, 앞의 글, pp. 62-5. 전성식, 「국가문제에 대하여」, 『정세와 노동』(통권 제18호) pp. 63-4.를 참조하라.


13) 김이 인용한 부하린의 글도 이러한 현상을 묘사하고 있다. “문제는 카르텔화가 현실적으로 한계를 가지는 가에 관해서 제기된다. 문제는 카르텔화에 대한 절대적 한계가 없다는 식으로 대답되어야 한다. 오히려 카르텔화의 범위를 계속적으로 확대하려는 경향이 관찰되고 있다. 독립기업은 점점 더 카르텔화 된 기업에 의존적으로 되어가고 마침내는 합병된다. 이러한 과정의 결과로서 하나의 보편적 카르텔이 출현한다.”(김정로 편,『제국주의론』, 지양사, p. 132. 김두한, 「강철」, p. 76.에서 재인용.) 여기서는 독점의 형태에 대한 약간의 개념적 혼란이 보인다. 카르텔은 기업의 독립이 유지되는 독점형태로 ‘기업연합’이라고 한다. 이에 반해 기업이 독립성을 잃고 합병하는 것을 트러스트, ‘기업합동’ 혹은 ‘기업합병’이라 한다.


14) 예수는 비유를 아주 잘 사용했다. 그는 제자들에게는 자상하게 비유를 해설해 주었지만 자신을 좇는 대중들에게 설교를 비유로 하였다. 제자들이 그 까닭을 묻자 그는 “너희에게는 하늘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을 허락해 주셨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해주지 않으셨다. 가진 사람은 더 받아서 차고 남을 것이며, 가지지 못한 사람은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이유는,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이 백성의 마음이 무디어지고 귀가 먹고 눈이 감기어 있다. 이는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지 못하게 하고 귀로 듣지 못하게 하고 마음으로 깨닫지 못하게 하고 돌아서지 못하게 하여, 내가 그들을 고쳐 주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너희의 눈은 지금 보고 있으니 복이 있으며, 너희의 귀는 지금 듣고 있으니 복이 있다. 그러므로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의인이 너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을 보고 싶어 하였으나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지금 듣고 있는 것을 듣고 싶어 하였으나 듣지 못하였다.”(마태복음, 13장) 김은 무엇 때문에 비유로 설명하는 것인가?


15) 레닌, 앞의 책, p. 100.


16) 레닌, 같은 책, pp. 78-81. 이것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익숙한 광경이다. 인용에서 생략된 부분을 읽어보면 더욱 친밀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의 주제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인용의 중간과 마지막 부분에 언급되는 “부르주아 궤변가”, “기회주의적 ‘사회민주주의자’들” 그리고 “선의의 교수나 관료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논쟁은 [채만수, 『교양경제학』(전면개정판)의 제6강의 「3. 은폐된 임금형태」(pp. 254-268.)과 제6강에 대한 보론-1인 「월급쟁이에서 주인으로?-신판 노예제로서의 우리사주제에 대해서」(pp. 269-279.)]를 반드시 읽기를 간곡히 바란다.


17) 레닌의 주장이 옳은지 김의 주장이 옳은지 차치하고 보더라도 레닌을 왜곡한 것은 도대체 누구인가? 김인가? 아니면 나를 포함한 “교조주의자들”인가? 또 김이 “일출과 일몰”의 비유를 들어 말했으므로 나도 비유를 들어 설명하겠다. 김이 본 것은 일출이 아니라 일몰이었다. 김은 자신의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를 보고 또 자신이 보낸 12시간만을 생각하고 창밖에 보이는 것을 일출이라고 착각을 한 것이다. 김이 잊고 있는 것은 자신이 현재 이동해 온 곳은 12시간의 시차(時差)가 있는 곳으로, 지금 창밖에서 보이는 광경 역시 그가 12시간 전에 보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일몰이다. 김은 현재 시차적응 문제로 혼란에 빠져 고생하고 있는 중인 것이다.


18) 두산세계대백과 엔사이버

18) 두산세계대백과 엔사이버

http://www.encyber.com/search_w/ctdetail.php?gs=ws&gd=&cd=&d=&k=&inqr=&indme=&p=1&q=콘체른&masterno=152081&contentno=152081


19)두산세계대백과 엔사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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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encyber.com/search_w/ctdetail.php?gs=ws&gd=&cd=&d=&k=&inqr=&indme=&p=1&q=콘체른&masterno=133581&contentno=133581


20) “현대 자본주의에서는 레닌이 말하는 독점이 아니라 맑스가 말한 자본의 독점적 경향에 따른 자유경쟁이 존재할 뿐이다.”(김두한, 앞의 글, p. 72.) 이것이 가장 큰 쟁점이란 것은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으로 안다.


21) 김두한, 「강철」, pp. 97-100. 이 부분에 인용된 챈들러의 글에 특히 관심을 갖길 바란다. 김은 이것을 「현재」에서도 다시 인용하였다. 초국적 자본에 대한 개념적․현실적 이해는 다음의 글을 참조하라. 장시복, 「제5강의 초국적 자본의 운동」, 「제6강의 세계화에 대한 불만」, 『20세기 자본주의의 전개: 현대 자본주의의 이해』, 한노정연,


22) 전성식, 「독점과 제국주의」, 『정세와 노동』(통권 제17호), p. 54.


23) [채만수, 『노동자 교양경제학』(전면개정판), p. 481.] (전성식, 앞의 글, p. 55.에서 재인용) 이것을 재인용하는 것은 이 독점자본에 대한 개념을 다시 한 번 더 강조하기 위해서다.


24) 전성식, 앞의 글,p. 55.


25) 김의 이러한 생각은 다음과 같은 글에서 확인 가능하다. “논점의 핵심은 현대의 자본이 기업결합을 통해서 그리고 협정을 통해서, 시장을 자기네들끼리 분할하고 경쟁을 제한하고, 이윤을 분할하는 경쟁의 대립물로서의 독점인지 여부이다.”(김두한, 「강철」, p. 78.), “요컨대 제국주의 시대의 독점과 같은 경쟁을 제한하는 기업결합은 사라졌으며”(김두한, 같은 글, p. 78.) “레닌시대의 경쟁제한으로써의 독점과…”(김두한, 같은 글, p. 85.) 등등. 김은 자의적으로 “레닌의 이론은 … 자본주의는 자유경쟁이 지속하던 단계와 독점의 단계, 즉 경쟁중단이 일반화 된 단계로 이루어진다고 보며”(김두한, 같은 글, p. 85.)라고 주장하는데 여기서도 무의식적으로 독점의 단계 = 경쟁중단으로 파악하고 있다.


26) 전성식, 앞의 글 p. 51.


27) 전성식, 앞의 글, pp. 52-3.


28) 김두한, 「강철」, pp. 75-6.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김은 자신의 글에서 『제국주의론』의 번역본을 두 가지를 병용하였다. 하나는 남상일의 번역이고 다른 하나는 박상철의 번역이다. 나는 남상일의 번역본을 사용하였으며 김의 글을 인용할 때는 김이 사용한 그대로 인용하였다. 여기서 인용된 레닌의 글에 대한 강조는 김이 한 것이다.


29) “국제 철도카르텔의 성립과정 또한 대단히 교훈적이다. 영국․벨기에․독일의 철도 제조업자들이 이러한 카르텔을 형성하고자 최초로 시도했던 것은 일찍이 1884년의 심각한 산업불황기였다. 제조업자들은 협정에 참가한 나라의 국내시장에서는 서로 경쟁하지 않기로 합의하고, 외국시장을 영국 66%, 독일 27%, 벨기에 7%의 비율로 분할했다. … 이들은 카르텔에 참여하지 않은 어느 영국회사에 대해 공동으로 선전포고했으며, 이 전쟁에 드는 비용은 판매되는 모든 제품에 일정 비율로 매겨져서 조달되었다. 그러나 이 카르텔은 1886년에 영국의 두 회사가 탈퇴함으로써 붕괴되었다. 여기서 특징적인 것은, 그 후에 이어진 호황기에는 협정이 맺어질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레닌, 앞의 책, p. 105.)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일 것은 독점과 제국주의를 일국적인 것으로 한정하고 현재는 그렇지 않은 것으로 파악하는 김의 시각은 옳지 않다는 점이다.


30) 레닌, 앞의 책, pp. 102-3.


31) 김두한, 「강철」, p. 86-7. 여기서도 보이는 개념의 자의적 사용 혹은 오류는 아주 사소한 문제이니 그냥 넘어가자.


32) 연합체 결성과 “공동조치”와 관련한 맑스의 언급만을 놓고 보더라도 레닌은 맑스의 주장을 주의 깊게 고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주)29의 인용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레닌은 이렇게 말했다. “영국․벨기에․독일의 철도 제조업자들이 이러한 카르텔을 형성하고자 최초로 시도했던 것은 일찍이 1884년의 심각한 산업불황기였다. … 그러나 이 카르텔은 1886년에 영국의 두 회사가 탈퇴함으로써 붕괴되었다. 여기서 특징적인 것은, 그 후에 이어진 호황기에는 협정이 맺어질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33) 레닌, 앞의 책, pp. 133-4.


34) 김이 아무리 “맑스는 레닌과 정반대로” 또 “엥겔스는 맑스와 마찬가지로 그리고 레닌과 정반대로”라고 강변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김은 “맑스는 레닌과 정반대로 결코 그런 기업결합의 독점은 자본주의 법칙에 위배되어 붕괴되어 버릴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며 맑스를 인용하고 “엥겔스는 맑스와 마찬가지로 그리고 레닌과 정반대로 카르텔과 트러스트 등의 독점은 자본주의 법칙에 맞을 수 없으며 단명하리라고 주장했다”며 엥겔스를 인용하는데 인용문에서 두 사람은 아무도 그런 말을 하고 있지 않다.

34) 김이 아무리 “맑스는 레닌과 정반대로” 또 “엥겔스는 맑스와 마찬가지로 그리고 레닌과 정반대로”라고 강변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김은 “맑스는 레닌과 정반대로 결코 그런 기업결합의 독점은 자본주의 법칙에 위배되어 붕괴되어 버릴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며 맑스를 인용하고 “엥겔스는 맑스와 마찬가지로 그리고 레닌과 정반대로 카르텔과 트러스트 등의 독점은 자본주의 법칙에 맞을 수 없으며 단명하리라고 주장했다”며 엥겔스를 인용하는데 인용문에서 두 사람은 아무도 그런 말을 하고 있지 않다.

나는 레닌에 근거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했었다. “경쟁은 상품생산의 기본적인 특질이며, 자본주의적 생산은 상품생산이다. 따라서 경쟁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본질적 특성이다. 비록 경쟁의 결과로 독점이 발생하고 이렇게 발생한 독점이 경쟁을 제한ㆍ배제하더라도 독점자본주의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본질적 특성인 경쟁을 소멸시킬 수 없다. 말 그대로 제한ㆍ배제할 뿐이다.”(전성식 , 앞의 글, pp. 53-4.)


35) 맑스, 『철학의 빈곤』, 전성식, 앞의 글, p. 53. 재인용.


36) 김은 “자유경쟁이 먼저이고 독점이 나중이며, 독점과 자유경쟁은 상이한 것으로 구분되어 있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직선적 인식이 당연하다는 잘못된 견해를 준” 레닌을 비판하기 위해서 즉, “경쟁과 독점의 역사는 그렇게 단선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맑스의 해당부분을 재인용한다. (김두한, 「강철」, pp. 87.) 김은 나의 잘못된(?) 인용태도를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전성식 연구위원은 레닌과 맑스가 기업결합(독점)에 대해서 상이한 견해를 가졌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고 맑스를 동원해서 레닌의 경쟁과 독점의 구분을 옹호하려는 데만 골몰한다.”(김두한, 같은 곳.) 재밌지만 이것은 나에 대한 “왜곡”이다.


37) 김두한, 「강철」, p. 89.


38) 맑스, 『철학의 빈곤』, p. 152.


39) 김과 달리 레닌은 “자본주의적 독점”을 ‘다른 독점’―여기에는 ‘봉건적 독점’, ‘자연독점’ 등이 들어간다―들과 구분한다. 그래서 그는 앞서 본 것처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제국주의의 가장 뿌리 깊은 경제적 토대는 독점, 곧 자본주의적 독점이다. 즉 그것은 자본주의로부터 성장했으며, 상품생산과 경쟁이라는 자본주의의 일반적 환경 속에 있고, 그 환경과는 영원히 해결될 수 없는 모순관계에 있는 독점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모든 독점과 마찬가지로 불가피하게 정체와 부패의 경향을 낳는다.”(강조-인용자) “자본주의적 독점” 그리고 이와 비교되는 “모든 독점”은 레닌이 이 개념들을 엄격히 사용하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누가 맑스의 입장에 충실한가? 김인가? 아니면 레닌인가?


40) 김두한, 「강철」, p. 89.


41) 전성식, 앞의 글, p. 65. 레닌은 또 이렇게 썼다. “이미 살펴 본 바와 같이, 제국주의의 가장 뿌리 깊은 경제적 토대는 독점, 곧 자본주의적 독점이다.”(레닌, 『제국주의론』, p. 133.) “지금까지 보았던 것처럼 제국주의의 경제적 본질은 독점자본주의이다.”(레닌, 같은 책, p. 161.) 이러한 레닌의 낡고 잘못된 규정을 강조하고 얽매인(?) 나와 같은 사람들이 김에게는 “교조주의자”들이다.


42) 레닌, 앞의 책, pp. 122-3.


43) 전성식, 앞의 글, p. 66.


44) 김두한, 「강철」, pp. 70-1.


45) 전성식, 앞의 글, p. 66. 나의 이러한 주장은 다음에 근거하였다. 채만수, 앞의 책, pp. 502-8.


46) 김은 “이건 앞뒤도 맞지 않는 주장인데, 이미 세계가 식민지로 제국주의 열강들에 의해 분할되어 있는 경우에만 재분할될 수 있다는 말이 성립하는 것이다. 그런데 세계가 제국주의 열강들에 의해서 분할되어 있지도 않는데, 어떻게 재분할될 수 있는가? 또한 그는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앞으로 일어날 ‘재분할 조짐’을 가지고, 거꾸로 현재의 세계의 영토적 분할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약화된 것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내고 있기도 하다.”(김두한. 「강철」, p. 72.)며 나를 비논리적이고 더 나아가 관념적이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나와 김은 분할과 재분할에 대해 더 나아가 독점과 제국주의에 대해서도 다른 관점과 내용을 갖고 있다. 내가 보기에는 오히려 김이 분할과 재분할에 대해 협소한 이해를 하고 있다. 따라서 잘못될 수도 있는 자신의 관점을 옳은 것으로 전제하고 그것을 근거로 상대방을 비판하는 것은 올바른 비판이 아니다. 물론 나는 식민지가 다시 발생할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는다.


47) 이 지점에서 나는 김에게 “과학적 문제를 다루려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가 이용하려는 저서를 저자가 쓴대로 읽는 법과 더욱이 저서에 없는 것을 읽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맑스, 『자본론Ⅲ 상』<제1개역판>, 서문, 비봉출판사, p. 26.)는 엥겔스의 충고를 기억하라고 하고 싶다.


48) 김두한, 「강철」, p. 70. 김은 또 이렇게도 말한다. “그런데 약화되었다고? 도대체 레닌이 제국주의는 배타적 영토적 점령을 수반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전성식 연구위원은 1980년대 교조주의의 자기적응적 산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어쨌든 교조주의자들은 레닌이 지극히 당연시하고 근본적인 것으로 간주했던 식민지 영토점령이라는 제국주의의 기본특징을 무시하고서 제국주의론을 전개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레닌의 현실분석과 원칙적 주장을 무시하는 교조주의자들이란 다름 아닌 반레닌주의자인 셈이다.”(김두한, 같은 글, p. 72.)


49) 여기서 김이 이 문제를 가장 중요한 것이라 생각한 것은 오해이다. 왜냐하면 김의 논리에 입각하면 김은 ‘다섯 가지 특질’ 중에서 최소한 네 가지를 부정하고 있다. (1)“독점”, (2)“금융자본”, (4)“국제적 독점자본가 단체”, (5)“영토 분할”이 그것이다.


50) 레닌, 앞의 책, p. 107.


51) 레닌, 앞의 책, pp. 114-5.


52) 레닌, 「민족ㆍ식민지 문제에 대한 테제(1920년 7월 28일)」,『코민테른 자료선집 3』, 동녘, p. 230.


53) “자본주의적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지 정책을 논하는 데 있어서는 금융자본과 그 대외정책―이는 곧 세계의 경제적ㆍ정치적 분할을 위한 열강의 투쟁이라 할 수 있다―이 국가종속의 수많은 과도적 형태를 만들어 낸다는 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식민지 소유국과 식민지국이라는 두 개의 주요 집단뿐만 아니라, 형식적으로는 정치적 독립을 유지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금융적ㆍ외교적 종속의 그물에 갇혀있는 다양한 형태의 종속국들도 이 시대의 전형이다.”(레닌, 앞의 책, p. 118.)


54) 전성식, 앞의 글, p. 67.


55) 김두한, 「강철」, p. 72.


56) 이러한 의미에서 김의 다음과 같은 비판은 참으로 황당스러운 주장이다. “20세기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제국주의가 중국을 반식민지로 삼아 자본을 수탈하던 때와, 현재 수많은 초국적 자본이 중국을 세계의 공장으로 만들어가고 있으며, 그 결과 세계 경제 4위로 도약하고 있는 상황이 동일하다는 말인가? 일제가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었던 상황이 현재 ‘미제가 한국을 신식민지(?)’로 만들어 세계 10대 부가가치 생산을 하게 된 것이 동일하다는 말인가?”(김두한, 「강철」, p. 81.) 언제 누가 “때”와 “상황”이 “동일하다는” 주장을 했는가? 그런데 “20세기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제국주의가 중국”에서 얻으려고 했던 것이나 이른바 “수많은 초국적 자본이 중국을 세계의 공장으로 만들어” 얻으려고 했던 것이 다른 것인가? “일제가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었던”것은 그것이 가장 “유리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며, “미제가 한국을 신식민지(?)로 만들”어 경제적ㆍ금융적ㆍ군사적 종속을 유지했었던 것도 그렇게 하도록 강제했던 상황 때문 아닌가? 그리고 양자(일본 제국주의와 미국 제국주의)가 얻으려 한 것도 결국 같은 것 아닌가? 현재 한국이 “세계 10대 부가가치 생산을 하게 된 것”은 김도 인정하는 “자본주의의 불균등 발전”의 결과로 보아야 하는것 아닌가? 그리고 바로 이것은 제국주의가 종속국의 ‘정치적 독립’을 박탈하고자 하는 이유의 하나로 보아야 하는 것 아닌가? “식민지 점유야말로 경쟁자와의 투쟁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우발적 사건―상대방이 국가독점체를 설립하는 법률을 제정하여 자신을 보호하려는 경우를 포함하여―에 대항할 수 있는 보장이 되어준다.”(레닌, 앞의 책, p. 115-6.)


57) 이와 관련해서 다음의 글들을 참조하라. 김명록, 「제3강의 세계대전 이후의 장기호황과 장기불황」, 「제4강의 장기불황에 대한 자본의 대응들」, 『20세계 자본주의의 전개: 현대자본주의의 이해』, 한노정연


58) 김두한, 「강철」, pp. 97-100.


59) 전성식, 앞의 글, pp. 70-1.


60) 채만수, 「자본주의 경제위기의 올바른 이해」, [20세기 자본주의의 이해], 한노정연, pp. 149-150.


61) 김두한, 「현재」, p. 100.


62) 전성식, 앞의 글, p.71.


63) 나는 김의 ‘가설’을 무시하지 않는다. 다만 김에게 하고 싶은 말은 자신의 가설을 ‘이론’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애벌레-나비’의 비유와는 다른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는 김이 이 노력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 또 현실사회주의 붕괴의 문제와 관련해서 나는 「독점과 제국주의」에서도 말한 것처럼 우리 연구소에서 발간한 『영웅적 투쟁, 쓰라린 패배』(증보판, 바만 아자드 저, 채만수 역, 노사과연, 2007.)를 읽어보시길 독자들에게 권한다.


64) 김두한, 「현재」, pp. 100-1.


65) 채만수, 「엥겔스의 '공황의 만성화'와 산업순환 」, 『정세와 노동』(통권 10호), pp. 65-66.


66) 채만수, 앞의 책, p. 630. “전반적 위기”에 관해서는 같은 책, pp. 516-7.을 참조하라. 김은 ‘전반적 위기론’을 스탈린과 연결하여 부정하고 있다.


67) 김두한, 「현재」, pp.100-1.


68) 김두한, 「강철」, pp.65.


69) 김두한, 「강철」, pp. 90-1. 이러한 김의 주장에 따르더라도 이른바 ‘레닌의 제국주의시대’ 역시 진보적이다. 왜냐하면 번데기 시절은 썩어가는 시절이 아니라 “죽은 듯” 보였어도 “화려한” “나비”라는 “최후의” 또 “최고의” 단계로 발전해가는 필연적 과정이기 때문이다. “레닌이 제국주의를 자본주의 최고의 단계 혹은 최후의 단계라고 주장한 것은 자유경쟁이 독점으로 대체되면서 생산의 사회화가 보다 급속하게 진전되는 반면 소유는 여전히 사적으로 남아 있어 더 많고 큰 대립과 마찰, 갈등이 발생하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그는 자본주의적 기본모순이 더욱 심화되는 것, 즉 자본관계가 유지되는 것이 사회발전을 방해하고 대립하는 자본주의의 최고이자 최후의 단계, 사멸하는 단계라는 의미로 제국주의라는 개념을 사용한 것으로 논리적이고 과학적으로 사용한 것이다.”(전성식 , 앞의 글, p. 68.) 그런데 김은 현재의 자본주의를 자신만의 독창적인 무언가 새로운 것으로 규정하고 싶어 자가당착적인 주장을 한다. “각국의 자본은 위기 해소를 위해 독점과 제국주의라는 퇴행적 정책을 사용하면서 오히려 전반적 위기로 빠져 들었다. … 독점과 제국주의는 자본주의 발달의 최고의 단계이거나 새로운 사회로의 이행의 형태가 결코 아니라 자본발달의 퇴행기이며 불가피하게 중단되지 않은 수 없는 과도기였으며, 일국적 축적을 넘어서 세계적 자본축적으로 나아가기 위한 과도기였을 뿐이다.”(김두한, 「현재」, p. 97.) 이러한 김의 주장은 카우츠키를 생각나게 한다.(전성식, pp. 68-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