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치를 놓은 12일, 그때부터 우리는 하나다

노가다


노가다.

아침 4시 반이면 일어난다. 몸은 천근만근이다. 대충 씻고 서둘러 나선다. 현장에 도착하면 6시. 함바에 들러 대충 때우고 나면 일을 시작한다. 슬라브를 뛰어 다니면서 종일 망치질을 한다. 점심 먹고 잠깐 자는 순간이 꿀맛이다. 그리고 망치질은 해 질때까지 계속된다. 하루 평균 10-12시간씩.

그렇게 해도 평균 임금은 170여만 원. 큰 애 대학등록금 낼 날짜가 다가오고, 둘째는 학원비를 내야 한다. 턱없이 부족하다. 쥐꼬리 만한 돈도 제때 나오지 않는다. ‘쓰메끼리’라는 이상한 악습이 있어 첫 월급은 일을 하고 2달 후에나 받는다.

그래도 먹고 살려면 일년에 반은 타향으로 돌면서 이렇게 살아야 한다. 우리는 노가다니까.


안산지역에서 건설노동자들이 파업을 하자고, 일당을 올리고 노동시간을 줄이는 싸움을 하자고 한 이유는 한 가지이다. 이대로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먹고 살기 힘들게 있느니 싸움이라도 해서 살길을 찾는 절박한 심정이었다.

우리의 요구는 최소한이다. 평균연령 52세의 가장에게 맞는 적정임금을 받자, 뼈골빠지는 노동시간을 1시간만 줄이자, 타향살이 그만하고 내집 근처에서 일 하자, 만악의 근원인 다단계하도급을 철폐하자, 상습체불인 ‘쓰메끼리’ 없애자, 불법용역 근절하자! 요구사항이 너무 일반적인 것 뿐이다.

이런 요구를 가지고 안산에 있는 형틀목수들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놀라웠다. 별다른 요구도 아닌 것에 목수들의 호응은 엄청났다. 안산지역에서 빠르게 목수들이 조직됐다. 조합원들도 조직되는 속도에 서로가 놀랐다.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게 되었다.

한 기업노조의 파업도 아니고, 지역파업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았다. 지역파업을 벌이기 위해서는 단계별 준비를 했다. 싸움의 첫 걸음으로 안산지역에 있는 현장을 파악했다. 안산지역에 건설현장이 얼마나 되는지 직접 찾아다녔다. 두 번째는 현장마다 조합원 고용투쟁을 했다. 때로는 은밀하게 조합원을 투입하기도 하고 때로는 직접적인 투쟁으로 조합원 고용을 쟁취했다. 그후에 10개 현장의 건설업체와 본격적인 교섭을 진행했다.

처음 단체협약 교섭을 하자고 공문을 보내자 건설업체는 멍하니 쳐다보며 말했다. “단체교섭이 뭡니까?” 건설현장에 노조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회사가 태반이었고, 단체교섭이니 임금협상이니 하는 것도 몰랐다. 노조에서 교섭방식이나 임금협상 내용을 설명하면서 교섭을 진행하였다. 몇 배로 곤욕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몇 번의 교섭으로 건설회사가 우리 요구를 들어줄리 만무했다. 노동부에 쟁의조정 신청을 했고, 업체는 노동부의 조정안조차 받지 않았다.

6월 19일.

작년 대구에 이어 두 번째로, 수도권에서 최초로 건설노동자 지역파업에 돌입했다. 지역파업은 현장봉쇄투쟁으로 시작했다. 파업을 하자 업체들은 대체인력을 투입했고 노조는 필사적으로 막았다. 장마시기와 겹쳐 현장봉쇄투쟁 때마다 비가 내렸다. 건설현장이라 비가 오면 그대로 진흙탕이다. 경찰과 얽혀 몸싸움을 하다 넘어지면 진흙투성이가 될 수밖에 없다. 넘어지면 일어나서 달려들고 넘어지면 옆 동지의 손을 잡고 일어나서 달려들었다. 파업기간 12일 동안 매일 아침 6시면 벌어지는 풍경이다.

건설업의 특징상 투쟁의 시기는 새벽이다. 새벽마다 파업대오가 현장을 봉쇄하니 경찰병력이 날로 늘어났다. 우리 대오만으로 현장봉쇄를 할 수 없어서 지역과 건설노조에 연대를 요청했다. 새벽 5시면 안산으로 달려온 연대 동지들. 많은 동지 중에도 대구경북건설지부 동지들은 현장봉쇄투쟁에 동참하게 위해 새벽 1시에 대구에서 출발했다. 그 동지들을 보자 눈시울이 뜨거웠다. 우리의 연대가 파업을 승리하게 하겠구나. 노동자의 연대가 이 싸움을 승리로 이끌겠구나. 우리에게 있는 무기는 단결과 연대구나!

파업투쟁 10여 일이 흐르자 업체측에서 먼저 교섭을 하자고 연락했다. 교섭을 받아들이면서 우리는 승리를 확신했다. 그래 우리가 이겼다. 노가다가 거대한 건설회사를 꺼꾸러뜨렸다. 우리는 임금인상, 노동시간단축, 지역주민 우선고용, 쓰메끼리근절, 다단계하도급 철폐, 불법용역근절 6가지 요구사안을 모두 쟁취했다.

이는 한 노조에서 파업투쟁에서 승리한 것을 뛰어넘는다. 파업기간동안 목수들이 파업을 하니까 꼭 승리하라고 했던 현장의 철근공들, 우리도 함께 싸움을 하겠다고 달려온 일반공들, 그리고 이 싸움을 지켜보았을 안산의 건설노동자들의 희망이 이 투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또한 이번 안산투쟁은 작년의 대구투쟁이 있어서 가능했듯이 수도권지역에서 건설노동자 투쟁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 건설노동자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이 값진 승리였다. 노가다의 비참한 삶을 살았지만 우리도 뭉쳐서 싸우면 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투쟁하면 언제든지 단체협약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노동자가 뭉치면 할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한 것이 값진 자산이다

그리고 또 하나 값진 것을 얻었다. 파업이 승리로 마무리 되고 승리보고대회를 할 때였다. 목수분회장이 대회에서 승리경과보고 발언을 하기로 했다. 전날 조합의 한 동지가 새벽 3시까지 발언문을 작성해서 주었다. 그런데 분회장의 발언은 발언문과 전혀 상관없는 아니 경과보고는 전혀 들어있지 않았다. 목수 분회장의 발언 중 이런 부분이 있었다.

“제가요 원래 성격이 그래요. 이번 파업투쟁하면서 제가 상처줬던 분들 이 자리를 빌어서 사과하겠습니다. 이후로 저에 대한 감정을 모두 잊어주십시오.” 눈시울이 뜨거웠다. 번지르르한 발언보다 우리의 가슴을 파고드는 말이었다. 사람이 하는 파업이니 관계문제가 없을 수 없다. 사람이 하는 것이니 이말 저말 없을 수가 없다. 그런데 파업기간동안의 문제를 개인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이렇게 노조차원에서 해결하려 했다. 처음에 수틀리면 현장에서처럼 보따리 싸 들고 나가면 그만이었는데 이 싸움을 하면서 어떻게든 노조로 뭉치려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우리에게 노동자 계급성이 노동자의 연대의식이 생긴 것이 그 무엇보다 값진 교훈이다.

이제 조합원들은 5시면 퇴근한다. 매일 6시 7시까지 일하던 조합원들이 5시에 퇴근하면서 말한다. 딴 세상을 사는 기분이라고. 그리고 아직 현장복귀투쟁이 끝나지 않아서 매일 6시면 주공현장에 모여 투쟁을 하고 있다. 투본회의도 매일 개최된다. 오늘 투본회의의 안건은 내일 있을 뉴코아 연대투쟁이다. 한 동지가 말한다. “당연히 가야지. 우리 할 때도 다른 데서 많이 왔잖아” 내일은 모두 일빼고 뉴코아 투쟁에 결합하기로 했다. 그래, 우리 노동자는 하나다. <노사과연>


망치를 놓은 12일, 그때부터 우리는 하나다



이세훈 | 경부서부건설노조 현장조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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