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나누기

우측보행, 너무 과하지 아니한가

 

문화연대 소식지 "상상나누기" 2009년 10월1호 밥보다 문화

 

우측보행, 너무 과하지 아니한가

 

 

김성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요즘 지하철역에는 우측보행 캠페인이 한창이다. 역사 곳곳에 우측통행을 고하는 포스터가 도배되다시피 했고, 다니는 길마다 우측보행 화살표가 덕지덕지하다. 좌측보행을 규율하던 시절이 떠올라 씁쓸한 미소가 흘러나온다.

 

돌이켜보면 초등학교 시절의 쉬는 시간은 쉬는 시간이 절대 아니었다. 차라리 쉬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를 배운 셈이었는데, 복도를 뛰어다니면 안 됐고 큰 소리를 내도 안 됐으며 ‘우측보행’을 해도 안 됐다. 심지어 좌측통행을 하면서 맞은편 친구들과 하이파이브를 해서도 안 됐다. 이런 규율사항을 어길 때면 어김없이 어디선가 교사가 나타나 체벌을 하곤 했다.

 

왜 왼쪽으로 걸어다녀야 하는 걸까. 사실 그 시절엔 근거 따윈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윗사람의 말이라면 무조건 복종하는 것이 관습이었고 그게 거의 유일한 ‘과학적’ 근거였으니 말이다. 그렇다. 좌측이냐 우측이냐 하는 건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쉬는 시간에 내가 배웠던 것은 좌측보행이 아니라 윗사람한테 복종하는 방법이었다. 윗사람이 나를 어떻게 다스리는지 그 언어를 습득하고 그런 식의 명령을 거부하면 얼마나 끔찍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지를 학습하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측보행에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근거가 있다고들 한다. 차량이 우측통행을 하는데 사람이 좌측통행을 하면 교통사고율이 약 20% 정도 높아진다고 한다. 차량과 보행자의 진행 방향이 엇갈리게 되면 운행 중이던 차량이 인도 쪽으로 이탈할 때 앞에 가던 보행자가 등을 돌리고 있기 때문에 피할 수 없어서 사고율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몇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우측보행을 왜 일반도로에서 실시하지 않고 지하철역에서 하고들 있는 것일까. 지하철역에 자동차가 다니는 것도 아닌데 교통사고율 운운하면서 우측통행을 실시하다니. 우리 시대의 과학적 설명이란 바로 이런 것이란 말인가.

 

모두가 질서를 지켜야 나라가 발전한다는 논리와 좌측보행 사이에 별 상관이 없는 것처럼(사실 질서와 발전도 별 상관이 없기는 매한가지다), 우측보행을 해야 교통사고율이 줄어든다는 논리와 지하철역 우측보행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관계가 없다. 보행자 교통사고와 지하철역 우측보행 사이의 함수 관계는 모호한 미스터리로 남는다. 결국 이 캠페인의 주창자한테는 과학적 사실의 진위가 아니라 과학의 권위만이 필요했던 것이다.

 

미스터리만 있는 게 아니다. 왜 이렇게 오버할까 싶을 정도로 기만적인 담론까지 동원된다.

 

먼저, 좌측보행은 일제 시절의 잔재라는 설명이다. 그렇다. 실제로 조선 총독부는 차량이 좌측통행을 하니 식민지 조선의 보행문화도 좌측으로 규율해야 했다. 그런데 그게 어디 일제 탓이기만 할까. 미군정은 어차피 남한 전체를 구(舊)식민적으로 통치할 수 없으니 차량만 우측통행으로 바꿨고 보행자의 동선은 통제할 필요가 없었다. 이때부터 차량과 보행자 사이의 진행 방향 불일치가 발생한 것이다. 게다가 군사 독재 시절의 국가권력은 그냥 규율 자체만 필요했을 테니 좌측-우측의 방향 따위가 중요키나 했겠는가. 20% 가량 더 발생한다는 (차량-보행자 간의) 교통사고는 그렇게 해서 발생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왜 애먼 일제 시절에 죄다 뒤집어씌운단 말인가.

 

다음, 우측보행은 세계인의 문화라는 주장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측보행을 하기 때문에 세계인과 만나고 소통하려면 우리도 우측보행을 해야 한다고 한다. 포스터에는 코쟁이 백인 외국인만 보인다. 왜 흑인은 없는 걸까. 어떤 유색인도 없다. 그래 놓고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르자고 제안한다. 그게 아니라 ‘앵글로 색슨 스탠더드’일 텐데 말이다. 영국(권)은 좌측통행 하니깐 정확하게는 ‘아메리칸 스탠더드’일 것이다.

 

이건 재현의 문제이니 그렇다 치자. 내 일천한 경험에 의하자면, (내가 가본 나라들 중) 이처럼 우측보행을 강권하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게다가 우측보행과 소통 사이에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외국인들이 정말로 우측통행만 한다면 오히려 우리가 좌측통행하는 게 소통하는 데 더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서로 마주치면서 쳐다보고 웃어주고 말도 섞고 말이다.

 

이쯤 되니 정말로 궁금해지지 않는가. 왜 하필 지금 이 시점에 우측보행을 하느냔 말이다. 진실은 말하지 않은 곳에 있다고 했던가. 사정이 이럴 바엔 내가 착해져서 그들조차 이야기하지 않는 논리를 대신 말해주거나, 아니면 이 모든 게 이데올로기이며 음모라고 선언하는 길만 남은 듯하다.

 

물론 우리가 음모론에 빠질 필요는 없다. 두 가지 방식의 음모론에 유의해야 한다. 하나는 어떤 부재하는 원인에 이끌려 서울 시민 모두가 우측보행을 한다고 단언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상극에서) ‘우’파의 음모에 의해 이번 캠페인이 추진됐다고 상상하는 것이다. 실제로 몇몇 사람들이 지하철역 우측보행에 대해 아무리 합리적으로 이해해보려 해도 쉽지가 않으니 음모론에 빠지곤 한다(아니면 이해하기조차 싫어서). 그렇지만 음모론을 정설로 삼기에는 근거 미약과 논리 비약이라는 점에서 온당치지 못하다(물론 언제나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그러면 우리가 그들을 대신해서 그럴 듯한 논리를 구성해보자. 지하철역에서 우측보행을 하면 효율성이 높아진다. 어차피 시민들은 제 갈 길을 가는 사람들이다. 주지하다시피 사회적 생활은 신속하고 효율적인 리듬을 요구한다. 통근길에 환승할 때면 최단 코스를 찾아가려 하고, 조금이라도 자신의 노동력을 충전하기 위해 빈자리가 잘 나는 환승역과 플랫폼 위치를 기억해둔다. 마찬가지로 지하철역에서 우측보행이라는 문자와 화살표 표지를 따라가는 것 또한 너무나 자연스럽다. 그것은 불가항력적인 명령 아닌가. 이 기호들을 위반해봤자 금쪽같은 시간을 허비할 따름이다. 요컨대 왼쪽이고 오른쪽이고 방향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효율적인 리듬이 중요하다. 이를 따르지 않으면 효율성이라는 사회적 상규를 어기는 것이어서, 결과적으로는 무능력하고 몹쓸 인간이 되고 말 뿐이다.

 

그렇다면, 이제 또 궁금한 게 생기지 않는가. 그들은 왜 이렇게 당연한 논리에 만족하지 못하고 여러 가지 무관하고 근거 미약한 논리들을 끌어 쓰고 있는 것일까. 그냥 쌈빡하게 원래 목적만 이야기하면 될 텐데 말이다. 보충물(supplement)이라는 것은 뭔가 부족(default)한 상황에서 동원되는 전략이다. 그러나 그것이 적정한 수준에서 맞아 떨어지는 법은 거의 없다. 여전히 부족해서 또 다른 보충물을 채워야 하고, 마침내는 부족분을 아예 초과(excess)해서 사람들의 의심을 사게 된다. 그 자체가 모순이라는 게 징후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니까, 위험 절감이라는 과학적 논리는 애초의 캠페인 목적(효율성 증대 같은 것)을 보충하기 위해 동원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자체로는 허점투성이여서 다른 대체물이 필요했는데, 그것은 바로 일제 청산이라든가 세계 교류 같은 허울 좋은 이데올로기이다. 이런 식으로 해서 우측보행이라는 캠페인 하나에 너무 과도한 의미가 부여된 것이다. 가뜩이나 지하철역 어딜 가도 ‘우측보행’이 넘쳐 나서 찜찜하던 차였는데 뭔가 확실히 이상하다는 점이 재확인되고 있다.

 

그런 까닭에 효율성 증대가 됐든 무엇이 됐든 간에 그 어떤 항목조차도 그들의 원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를 완전하게 설명해주지 못한다. 그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이번 캠페인의 구호에는 전혀 드러나지 않는 어떤 다른 논리가 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단 하나 우리가 확언할 수 있는 것은 캠페인 주창자들이 뭔가 켕기거나 꺼림칙한 목적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의미의 과잉이 나타나는 것이다.


보탬: 호기심의 원환이 생겼다: “그나저나 왜 하필 우측통행일까.” “자동차 보행자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서.” “그런데 지하철역에서만 우측보행을 하는 건 이상하잖아.” “보행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우측보행을 실시하는 거지.” “그럼 효율만 높이면 됐지, 왜 하필 우측통행일까.” “음모론은 언제나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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