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나누기

또 다시 새로운 희망을 약속한 날

 문화연대 소식지 "상상나누기" 2009년 11월 1호 후일담

 

또 다시 새로운 희망을 약속한 날

- 콜트콜텍기타를 만드는 노동자 투쟁 1000일 기념 콘서트


연두

(민중의 집 공부방 자원활동가)

 

문화연대에서 일하는 ‘또연’이 콜트콜텍 천일 기념 콘서트에 초대해주었다. 무작정 콘서트가 열리는 홍대에 간다는 생각과, 음악에 취하고 싶은 나머지 가벼운 마음으로 라이브클럽 ‘빵’에 들어섰다. 하지만 이런 나의 가벼운 마음과 몸을 부끄럽게 한 것이 있었다. 그 것은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투쟁의 첫날부터 지금까지 천일동안의 투쟁과정을 담은 다큐 영상이였다.


천일동안의 투쟁의 시작은 2007년도부터다. 콜트회사의 불법적 위장 폐업으로 수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그동안의 노동자들이 받은 수많은 억압과 폭력 또한 이로 말할 수가 없었다. 숨 쉬기 조차 힘든 밀폐된 공간에서 만들어지는 기타와 화려한 조명아래 반짝이며 멋스럽게 진열되어 팔려나가는 기타가 겹쳐졌다. 기본적 환경도 보장되지 않은 현장에서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내는 기타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왜 난 미처 몰랐을까.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들은 ‘기타’라는 하나의 악기를 만드는 엄연한 장인이다. 하지만 이런 노동자들이 공장이라는 곳에서 기본권도 보장되지 못한 답답하고 분업화된 공간에서 자신의 기술만을 이용당하고 인정받지 못했다는 사실에 씁쓸했다. 


천일이라는 시간. 연애한지 천일이 되면 기념하고 기뻐하기라도 할 텐데,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투쟁한 이 긴 시간을 어떻게 받아드려야 할지 참 난감했다.


이날의 ‘천일 기념콘서트’는 천일동안 투쟁의 끝을 보지 못한 노동자들의 기본권이 보장되지 못했다는 반증임과 동시에 지금까지 함께 해온 많은 사람들과 또다시 새로운 희망을 함께 약속하고 바라는 희망의 증거이기도 했다.


그 증거의 자리에 여러 사람이 함께 했지만 그 중에서도 음악인들에게 이 투쟁이 의미하는 바는 클 것이라 생각한다.


천일기념콘서트에도 여러 음악인들이 함께해주었다. 아스팔트 퀸트, 소희, 한음파  등 이날의 투쟁과 한을 신명나게 이끌어주었다. 음악을 듣는 내내 그들이 연주하는 기타들이 살아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착각을 했다. 기타를 안고 몸짓을 하는 그들은 자신의 일부처럼 그것과 하나가 된다. 그래서 살아 연주된다. 이러한 연주의 중심에 바로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있는 것이다.


음악인들에게 악기란 그 사람의 한 부분이 된다. 그러한 이유로 자신의 일부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그 악기를 만드는 과정의 주체인 노동자가 의미하는 바는 중요하다. 자신이 연주하는 기타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연주되는가는 연주의 한 부분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마다 갖은 모양이 있듯 그 사람 손으로 연주되는 기타는 그 사람의 마음과 기운이 함께 설여 있지 않은가. 연주자의 손을 타고 연주되는 기타 역시 노동자의 숨이 들어간다. 그 숨이 힘들고 지친, 생계에 허덕이는 거친 숨이 아니라 자신의 손으로 만든 기타가 누군가에게 새로운 희망으로 연주될 꿈을 꾸는 설레임과 기대의 숨이 될 때, 비로소 아름답고 따뜻한 울림이 되지 않을까.


한 보컬의 멘트가 기억에 남는다.
“저희가 나눌 것이라곤 음악밖에 없으니, 이것으로라도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는 온 몸으로 노래했다.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손에 새로운 희망을 갖고 만든 기타가,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그 사람들이 그 기타로 세상의 불의와 아픔을 노래하고, 그 노래가 서로를 울리면서 세상을 울려나가 누군가를 밟고 일어서야만 하는 차갑고 모진 세상에 따뜻한 둥근 원 하나 그릴 수 있지 않을까.


이 투쟁에 어서 큰 둥근 원 그리는 날 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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