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나누기

용산, 337가지로 표현하기

문화연대 소식지 "상상나누기" 2010년 9호 후일담 3

 

용산, 337가지로 표현하기
-[매삼화후기]용산과 함께하는 아주 특별한 송년회

 

넝쿨
(용산 레아 활동가)

 

12월 22일 저녁, 인디스페이스에서는 박수와 훌쩍이는 소리들이 엇갈렸다. 이날 이 곳에서는 매월 셋째 주 화요일에 인디스페이스와 협력단체가 만드는 행사인 ‘매삼화’가 열렸다.  함께 했던 사람들은 성적소수 문화환경을 위한 모임 연분홍치마와 촛불방송국-촛불 미디어센터 레아였고, 타이틀은 <용산, 337가지로 표현하기>였다. 객석은 꽉 찼고 특히나 용산 4상공 철거민들이 앉은 자리에서는 쉴 새 없이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1월 20일,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용산에는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사람들은 미디어 센터를 만들고 카페를 차리고 갤러리를 만들었다. 누군가는 방송을 만들어서 인터넷에 올렸고, 누군가는 청소를 하고 물건을 가져다 놓으며 공간을 만들어나갔다. 그렇게 해서 이렇게 저렇게 모인 사람들이 4월이 되어서는 카페 레아와 미디어 센터를 개관했다.

 

내가 처음으로 레아 카페에 간 것은 6월 즈음이었다. 커피 볶는 냄새와 맛있는 커피 냄새가 솔솔 흐르는 와중에 커피 잔을 두고 누군가와 도란도란 이야기 했던 기억이 난다. 그 즈음 생각했던 것은 이것이었던 것 같다. 용산을 생각하면 눈물부터 나고, 울컥하고, 이런 세상에서 살고 있는 나는 뭔가, 돌아가신 분들은 어떻게 하나...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눈물들이 나를 짓누르고, 눈을 돌리면 보이는 돌아가신 분들의 영정사진들-남일당 주변 건물의 철거용 펜스 곳곳에 스프레이로 다섯 분의 영정 사진이 그려져 있다-이 차마 고개를 들 수 없게 만들었다. 이런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죄스러웠고 이런 방식으로 세상을 떠나버린 사람들의 ‘죽음’을 그 누구도 어떤 방식으로도 책임질 수도, 해결할 수도 없을 것만 같았다. 추측컨대, 이런 절망을 느낀 사람은 나 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모여들었다. ‘우리’라고 말하기도 조금 모호한, 각자 다른 색깔과 성격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남일당 전반을 감싸고 있는 것 같은 무거운 공기와, ‘용산’하면 떠오르는 어쩔 수 없는 슬픔을 안은 채, 각자의 악기와 표정으로 이야기를 이어왔다. 그리고 그것들은 올 한해 남일당 주변을 울리며 랜선을 타고 곳곳에 이어졌다. 1월 20일이라는, 그 커다란 침묵 앞에 심장이 울리지 않았던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각자의 리듬을 타며 울리는 심장소리를, 하나하나 담았던 것이 그간의 ‘레아’에서 준(准)생활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던 사람들이 했던 일이라고 말한다면 너무 거창할까.

 

이날 진행했던 매삼화가 조금 특별했던 것은, 그렇게 복닥거리며 생활했던 사람들이 각자의 표정을 잃지 않고 자신이 생각하는 용산을 표현하려고 했기 때문일 것이다. 오프닝은 캐비넷 싱얼롱즈가 예쁜 노래들로 채워주었고, 하루 온 종일을 긴장 타며 대본 연습으로 보냈던 사회자들은 용산참사 역을 소개하는 꽁트에서 관객들을 빵빵 터트리며 반짝반짝 빛이 났다. 이날 상영된 영상에서는 이제까지 용산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잔잔하게 담아내며 마음을 전한 사진 슬라이드와, 용산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밥 먹는 모습, 시청 앞에서 노숙 농성을 하는 모습, 일상적인 경찰 폭력에 대한 이야기, 4월 이후로 매일 용산참사 현장 옆 남일당 성당에서 이루어지는 미사까지 다양한 용산의 모습을 담은 영상도 상영되었다. 격하게 ‘투쟁’하거나, 유가족들이 눈물을 쏟아내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런 이야기들을 하고자 했던 것은, 용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멀리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힘들 때 울기도 하고 즐거울 때 웃기도 하는 사람들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일명 ‘활동가’들이 둥지를 틀고 있는 레아의 전(前) 사장님과 현 사장님의 토크쇼와 문정현 신부님과 순천이모 김순옥님의 대화도 이어졌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역시 이날의 ‘대박’은 4상공 철대위 ‘언니’들의 문선이었다고 생각한다. 익숙하게 딱딱 맞아 떨어지는 몸동작은 아니었지만 싸우는 철거민으로 살기로 결심했던 그 때부터 연습했을 ‘불나방’을 여러 사람들의 박수를 받으며 선보였다. ‘이름 하나 못 짓고’와 ‘한낱’의 공연이 이어지고 각자의 희망을 적은 종이비행기를 날리며 행사를 마쳤다. 이 날을 준비했던 사람 중 몇 명은 그 후 앓아누웠다는 후문이...

 

용산의 하루는 길다. 사람들은 337일이라는 날 동안 매일 다른 공기와 바람, 그리고 감정들을 마주치고, 보내고, 가슴속에 우겨넣으며 살았을 것이다. 300가지가 넘는 감정과 표현들로 지내왔을 사람들은 앞으로도 그렇게 남일당에서 밥을 먹고, 레아에서 복닥거리며 시청 앞에서 노숙을 하고 춤을 추고 노래를 하면서 지낼 것이다. 길고 긴 날들이 살아있는 서로를 위해 무엇인가 할 수 있는 감사한 날들이 될 테니 말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위해 작은 마음이라도 모을 수 있는 따뜻한 겨울이 되길 바란다. 심지어 카페 레아에는 맛있는 커피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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