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나누기

한겨울밤의 즐거운 꿈으로

문화연대 소식지 “상상나누기” 2010년 10호 후일담 1

 

한겨울밤의 즐거운 꿈으로

문화사회연구소 “2010년 문화사회아카데미 동계강좌”를 다녀와서


이용재
(정치학 박사)


내가 문화사회연구소와 인연을 맺은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대구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대학원까지 마치고 느지막이 서울에 올라온 2009년 4월경에 생소한 환경과 쏟아지는 정보의 양에 놀라, 공부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던 중에 문화사회연구소를 알게 되었다. 놀라운 경험이었다. 사람들이 모여앉아 인문사회과학에 대해서 2시간 이상을 진지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무엇보다 따분한 주제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다는 것이 더욱 놀라웠다. 솔직히 이제까지 대학에서 보지 못했던, 인문사회과학에 대한 열정을 문화사회연구소의 소모임에서 볼 수 있었다. 이 열정은 진짜였다. 학점 때문에 자리를 채우고 있는 마지못한 열정이 아니라, 자리를 차고 일어나 길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이 가진 목마름의 표현이었다. 어디에서도 한 점의 주저함과 가식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건 진짜였다.

 


‘한여름밤의 꿈’, 그 기억이 예년과 다른 한파로 서울을 꽁꽁 얼렸던 매서운 추위에도 불구하고 문화사회연구소의 “문화사회아카데미”로 나의 마음을 흔들리게 했다. 그러나 기다리던 1월 12일 오후 7시 30분, 첫 강의에 늦지 않기 위해 종종걸음으로 걷고 있는 길 곳곳에 마치 지뢰처럼 매설되어 있는 포장마차의 어묵국물과 숨쉬기조차 힘들게 만든 겨울바람은 지난 여름의 꿈은 그저 지나간 꿈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들게 했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니, 거리에는 한껏 움츠린 모습으로 오직 자신의 앞만 보면서 종종걸음을 하고 있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거리의 어느 누구도 다른 이의 발걸음에 한 치의 관심을 두지 않는, 분주한 삭막함이 거리에 가득 찼다. 여름의 추억은 이미 지나가버린 것이 아닌가하는 두려움이 고개를 들었다.


‘누가 있을까?’, 아감벤에서 발리바르까지, 모두 8강으로 구성되어 있는, 그 이름만으로 머리 한쪽에 찾아오는 고질적인 편두통을 생각나게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겠다고 누가 찾아올까? 불안함으로 소통을 잃어버린 우리 사회에서, 함께 공부하기 위해 모인 도서관에서조차 칸막이를 치고 입을 막고 귀를 막고 지식마저도 자신의 곳간에 양식을 채우듯 혼자서 경쟁하는 우리 사회에서 누가 소통을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의 삶의 모습에 관심을 가질까? 공동체를 잊어버린 무한경쟁 속의 개인들은 너와 관계없이 내가 살아갈 수 있음을 이야기하며, 돈으로 행복을, 욕망을 채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 누가 지친 몸을 이끌고, 자신의 시간을 여기에서 소비할까?


이런저런 생각에 길을 돌아 문화사회연구소에 도착했다. 오후 7시. 아무도 없다.
화요일과 목요일에 하는 교양강좌2와 수요일과 금요일에 하는 교양강좌1으로 구성되었다가, 교양강좌1이 신청자가 적어 폐강되었다는 공지를 보고, 인문사회과학의 위기(?)에 대해 고민했던 터라 ‘아무도 없는’, 텅 빈 강의실에 찬 공기는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뼈 속까지 추웠다.



그러나 7시 30분이 다가오자 점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체온으로 데워지기 시작한 공기는 빈자리 하나 없이 소복하게 강의실 이곳저곳에 쌓여갔다. 그러나 이내 또다른 의문이 고개를 내밀었다. ‘가능할까?’, 이렇게 대학생에서 일반인, 비전공자와 전공자가 함께 모인 이 공간에서 강의라는 형식의 소통이 가능할까? 우리는 마주보고 서로 다른 이야기를 나누며 결국 오해라는 것을 가슴에 가득 안고 돌아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삶 속의 언어는 일종의 방언이다. 그래서 단어 하나하나에 서로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이해하는 특수한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끼리만 이야기를 나눈다. 스토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알아들을 수 없다. 우린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만을 듣는다. 마치 발음할 수 없는 언어를 알아들을 수 없듯이, 나의 세계에 들어와 의미를 획득하지 않은 단어는 나에게 무의미하다. 그런데 이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경험이 있을까? 유사성에 기초한 범주 만들기는 다름을 같음으로 우길 수 있는 그 경계에서 멈춘다. 여기 모인 우리를 하나의 범주로 만들 수 있는 ‘우기기’는 무엇일까?


그러나 잡념은 잡념일 뿐이다. 열정은 그 모든 ‘우기기’를 눈앞에 펼쳐진 사실로 보여준다. 찬 겨울바람을 뚫고, 빈 강의실의 공기를 데워놓은 사람들의 열정은 환상이 아니라 눈에 잡히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최소한 그 시간만큼은 진짜였다. 그 여름의 환상이 다시 재현되었다. 태어난 후 처음을 접했던 폭설과 혹한의 경험처럼, 세상을 하얗게 덮었던 눈은 환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사람들의 발걸음에 눌려, 우리의 골칫거리가 되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공동체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개인에 대한 환상을 넘어, 하나의 열정을 만들어 내듯이 그것은 피조물이 아닌 주체로서의 그것이었다.


강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늦은 지하철에 몸을 싣고, 사람들을 돌아본다. 서로에게 무심한 눈길을 주고받는 사람들의 무리들 속에서 몸을 뉘이고, 그 속의 하나로 새로운 무리를 꿈꾼다.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뜨거운 사람이었느냐”는 시구(詩句)에 감동한 적이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그 누군가에게 항상 뜨거운 사람들이다. 우리가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모두가 모두에게 뜨겁지 않다고 하여도, 우리가 누군가에게는 뜨거운 사람이었기에, 오늘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시대의 지식인 읽기: 문화와 정치 사이에서”라는 이름을 건 2010년 문화사회아카데미 동계강좌의 첫 강좌를 보고 오면서, 처음 문화사회연구소에 발을 들였던 바로 그 때가 생각났다. 바로 그 열정은 사라진다. 그러나 거기의 열정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매번 새로운, 오직 같은 범주에서만 동일한 경험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잡는다. 아마도 올 여름에는 지금을 이렇게 기억하게 될 것 같다. 한겨울밤의 즐거운 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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