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나누기

‘성폭력’에서 자유로와 지기

문화연대 소식지 "상상나누기" 2010년 11호 후일담 2

 

‘성폭력’에서 자유로와 지기
-문화연대 반성폭력워크숍 후일담

 

정소연
(문화연대 대안문화센터 활동가)

 

지난 인권운동가대회에서 나눴던 수많은 이야기 중 인권운동가여서 불편한 경험담 등을 나누다 나온 이야기 하나.
 
“인권운동 또는 여성운동을 한다고 하면 악수를 청하다가도 ‘어이쿠 괜히 성폭력이라 하실까봐...’ 라며 손을 거두는 사람들이 있어요. 인권감수성, 여성감수성을 세우다 보니 종종 발생하는 일이기도 한 것 같아요”

 

꽤나 각성되어있다는 운동판(?) 에서도 여전히 성폭력이라는 단어는 어렵고 불편하다. 운동을 하고 있다 말하는 우리에게도 자유롭지 못한 단어인 이유는 우리가 여전히 성폭력에 대해 무지하고 게으르기 때문일 것이다. 문화연대는 일년에 한번 반성폭력 워크숍을 진행 할 것으로 내규로 정해두고 있다. 2010년의 반성폭력 워크숍은 지난 2월 1일 유현경님과 함께 문화연대 강의실에서 진행되었다.


대학 시절, 꽤나 마초적이었던 고학번 선배들을 앞에서 핏대를 높이며 싸우던 나의 까칠함은 성폭력이라는 단어만 튀어나와도 갑자기 정색을 하고 자리를 고쳐 앉는 사람들 앞에서 묘하게 부담스러운 단어가 되었다. 언젠가부터 동료들에 대한 신뢰도나 공유도가 높다고 생각될수록 성폭력이라는 단어는 금기어가 되어버렸다고나 할까? 성폭력이라는 단어를 내 뱉는 그 순간 얼어붙는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성폭력 사건’ 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와 심각성에 대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이라.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면 어느 곳이든 혼돈에 빠지게 된다.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는 엄숙한 반성과 재발방지를 위한 강한 의지들이 오고가지만 경각심은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내규를 만들었다고 해서, 대책위를 꾸린다고 해서, 몇 번의 교육을 받는다고 해서 성폭력이 사라질 수 없다고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성폭력의 문제는 여전히 ‘특정 몇몇의 정신 나간 사람들’의 문제로 여겨지는 것이다. 그래서 일상적이고 만성적인 성폭력 문제일수록 해결방안을 찾기 어려우며 친하고 가까운 사이일수록 문제해결은 지난한 과정을 겪게 된다. 문제해결의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지만 치유의 과정은 몇몇의 여성활동가들이나 대책위에게 떠넘겨지는 태도 역시 경계해야 하는 부분이다. 특히 우리는 가해자를 의도적으로 분리한 채 성폭력 문제를 가해자 개인의 문제로 치환하고 가해자가 갱생되기를 바라거나 재발방지를 이유로 감시와 격리를 하는데 그친다. 피해자의 문제 역시 의식적으로 분리시켜 몇몇의 여성활동가들에게로 격리 보호된다. 사건이 해결, 예를 들면 징계나 교육등을 통해 일단락지어지고나면(완전한 해결이라는 것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제 우리는 다시 안정적이며 정상적(?)인 조직으로 돌아왔음을 안도하며 성폭력은 다시 금기어가 된다. 재발방지를 위한 노력의 긴긴 과정을 생략한 채 다시 ‘신뢰하는 동료’ 들의 연대로 돌아오는 것이다.


반성폭력은 성폭력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워크숍이 아닌, 성폭력에 대항하기 위한 워크숍이었다. 때론 주변에서, 때론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성폭력이라는 단어가 들릴 때 마다 움찔거리며 더해왔던 고민들을 해결하기 위한 키워드는 결국 ‘꾸준함’ 이다. 우리가 걸음마를 배웠다 하여 넘어지지 말란 법은 없다. 우리가 성폭력이라는 개념에 대해, 무게에 대해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일깨우지 않는 한 성폭력은 언제든, 어디에서든, 누구에게든, 어떤 형태로든 나타날 수 있다. 잘 알고 있다는 생각들을 접어두고, 다시 한 번 이야기하며 그동안 편하게, 또는 불편하게 묻어두었던 마음들을 꺼내자. 자신을 돌아보고 조직의 소소한 문화를 되 살려 낼 때, 성폭력으로부터 자유로와 지는 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