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나누기

2PM ‘사건’으로 본 스타, 팬덤,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역학

문화연대 소식지 "상상나누기" 2010년 13호 특집기사 1

 

2PM ‘사건’으로 본 스타, 팬덤,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역학

 

정민우

(중앙대학교 석사 과정, 2bytelife@gmail.com)

 

 “20090908이 그냥 커피라면, 20100227은 T.O.P.야!” 아이돌 스타인 2PM의 전 멤버인 재범의 탈퇴확정에 이어, 나머지 6명의 멤버들과 100여 명의 팬들이 가진 간담회 이후 2PM ‘팬덤’에서 등장한 이 문장은 ‘팬덤’이 직면한 충격을 온라인에서 유행하는 패러디적 수사와 접합시켜 드러낸다. 6명의 멤버들과 팬들이 가진 간담회(2010년 2월 27일)는 재범의 탈퇴(2009년 9월 8일)가 준 혼란보다 더 큰 혼란과 더 많은 이야기들을 쏟아냈으며, 소위 ‘재범 사건’을 ‘2PM 사건’이라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전환시켰다. ‘사건’이라는 명명이 그 접두 명사를 사건의 원인이자 책임의 출처로 지명한다는 점에서 정치적이라고 할 때, ‘재범’이라는 인물과 관련해 시작된 9월의 논쟁이 이제 ‘2PM'이라는 스타를 둘러싼 보다 너른 논쟁으로 변환되었다는 점에서 이는 ‘사건’을 둘러싼 문화적, 정치적 담론지형 자체가 변화되었음을 의미한다.


지난 9월 초, 재미교포 3세 출신의 2PM 멤버였던 재범이 데뷔 전 미국의 소셜네트워킹 사이트를 통해 개인적으로 주고 받은 메시지에서 ‘한국(인)’을 ‘비하’하는 대목들이 문제시됨에 따라, 기획사(JYPE) 및 재범 본인의 사과문에도 불구하고 재범은 ‘사건’ 4일만에 2PM을 공식 탈퇴하고 미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소위 ‘한국(인) 비하 사건’으로 명명된 이 ‘사건’의 진행과정은 신속하고도 강렬했으며, 추후 이는 인터넷 미디어의 선정성, 인터넷 파시즘과 민족주의 정치학,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구조적 문제 등에 대한 여러 가지 논쟁을 불러 일으킨 시점으로 기억된다. 재범의 2PM 탈퇴 이후, 집단 시위, JYPE 관련 불매 운동, 관련 UCC 제작 및 배포, 플래시몹, 봉사활동, 모금 및 기부 활동 등 재범의 복귀를 위한 팬덤의 대응이 본격화되었으며, 다시 빠른 속도로 한 한국계 미국인 청년의 삶의 맥락에 대한 ‘이해’와 동정의 시선들이 주류가 되었다.


2PM은 2달여 간의 활동 자제 이후, 11월 6명의 멤버로 공식 1집 앨범을, ‘불완전한’ 2PM을 의미하는 “1:59PM”이라는 제목으로 발매한 이후 1월 초까지 활동했으며, 이후 1월 말부터 각 멤버들이 예능, 드라마, 영화 등 출연 소식을 알려 왔다. 연말 시상식에서 각종 상을 수상한 2PM은 소녀시대, 2NE1 등의 걸그룹들과 함께 2009년의 대표적인 아이돌 스타로 자리매김하는 듯 보였고, 그 과정은 끊임없이 재범의 복귀에 대한 JYPE의 암시와 그에 대한 팬덤의 적극적인 해석을 통해 의미화되었다. 9월 재범의 탈퇴 이후 2PM의 모든 행보에 재범은 공식적으로 ‘부재’했으나, 이를테면 재범의 자리를 비워둔 퍼포먼스나 재범의 목소리를 다른 멤버가 대체하지 않은 채 들려주는 무대와 같은 노골적인 방식이 아닐지언정, 6명의 2PM의 활동 자체가 재범의 ‘부재’ 자체를 상기시킴으로써 재범을 늘 2PM에 ‘현존’하게 했다. 2PM 팬덤은, 그리고 다수의 대중들은 6명의 2PM의 활동을 통해 재범의 ‘부재’를 계속해서 상기했으며, 따라서 6명의 2PM의 활동 모두는 마치 재범의 복귀를 궁극적인 목적으로 하는 과정으로 의미화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상상된’ 목적론은 “밝힐 수 없는, 그러나 대단히 충격적인 재범의 사생활 문제로 인한” JYPE의 재범의 탈퇴 확정 발표(2010년 2월 25일) 이틀 뒤인 27일, 6명의 2PM 멤버와 JYPE의 정욱 대표, 그리고 기획사에 의해 선정된 100명의 팬들이 함께 한 간담회에서 산산이 부서진다. 6명의 멤버들이 간담회에서 팬들에게 보인 태도나 언설은 재범의 탈퇴를 확정지었을뿐 아니라, 팬덤이 그간 6명의 2PM과 그들의 활동을 지지해 온 기반 자체를 붕괴시키는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짐승남’이라는 대표적 수식어가 보여주듯, 2PM이라는 보이그룹을 인기의 정상에 올려놓은 핵심에는 가창력이나 퍼포먼스 등의 ‘실력’이 아닌 이들의 ‘남자다운’ 이미지가 자리하고 있었으며, 그 남성성은 친근하고, 활력 넘치며, ‘가식적이지 않으며’, 의리있는 멤버들 간 관계, 즉 이성사회적(heterosocial) 관계로 구축된 것이었다. 아무리 웃통을 까고 괴성을 질러도 그들은 팬덤을 위협하지 않는 선에서의 ‘안전한’ 남성성을 재현하는 존재였다.


그러나 간담회에서 오간 이야기들은 6명의 2PM 멤버 개개인뿐 아니라 그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 팬덤에서 (또한 대중적으로) 상상된 이미지를 뒤엎기에 충분했다. 이들은 재범의 탈퇴를 동의했음을 밝힘으로써 ‘의리’와는 거리가 먼 ‘배신돌’이 되었으며, 팬들에 대해 불성실하고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함으로써 ‘무개념’으로 의미화된다. 의리와 친근감이 아닌, 이면성과 개인적 성공에 대한 욕망으로 표상되는 이들의 남성성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은 것이 되며, 팬덤을 실제적으로 위협한다. 이들을 가장 잘 알았던 팬덤은 이들의 ‘사생활’을 온라인 상에서 폭로함으로써 재범의 ‘사생활’ 문제라는 기획사와 6명의 멤버들에 정면으로 반박했다. 간담회 이후 며칠간의 팬덤의 소요는 단지 재범의 개인 팬덤만이 아니라, ‘7명의 2PM’이 가진 이미지에 호감을 가지고 ‘7명의 2PM’이라는 대중문화 상품을 소비하고 향유해 온 이들 모두에게서 일어난 것이자, 개인 팬덤, 특정 멤버들의 팬덤, 2PM 팬덤뿐 아니라 그 외부의 (아이돌) 팬덤에게까지 확장되며 공감을 얻었다. 이제 문제는 재범 개인이 아닌, (6명의) ‘2PM’과 이들의 기획사인 JYPE에게 귀속된 것이 된다.


간담회가 드러낸 것은 어쩌면 팬덤이 (또한 대중들이) 2PM이라는 스타에 대해 갖고 있던 판타지 이면의 이물감 가득한 ‘현실’이었다. 그러나 그 현실은 가혹하고 쓰라릴뿐 아니라 외설적인 것이었다. 기획사로 대표되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종속된(“힘이 없는”)’ 존재로 팬덤 내부에서 이해되어 온 스타는 기실 바로 그 산업의 논리에 가장 충실히 포섭된 행위자였음이 밝혀졌기 때문이며, 2PM 팬덤은 그들이 주장하고 제기해 온 어떤 것도 얻지 못했다는 점에서 기획사(산업)과 스타 사이의 산업 논리에 기반한 이 공고한 연대에 팬덤이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이란 지극히 미약하다는 사실 역시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심지어 6명의 2PM 멤버들의 전화번호, 인터넷 사용기록, 주민등록번호 등 신상정보와 각종 사생활에 대한 루머를 유포하는 등 적극적인 안티팬덤의 모습까지 보인 2PM 팬덤의 실천들은 단지 6명의 2PM의 ‘배신’에 대한 ‘처벌’일 수 없다. 이는 오히려 팬덤이 스타와 산업에 투여한 시간적, 경제적(돈), 감정적(애정) 자원 모두에 대한 상실감에서 비롯되는 자기애도에 가깝다.


그러나 바로 이 자기애도가 역설적으로 ‘힘’을 갖는 지점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스타(의 이미지)에 대한 판타지를 상품화하고 판매함으로써 이윤을 창출한다는 사실 그 자체에서 비롯된다. 이윤창출의 핵심인 판타지의 붕괴는 곧 2PM이라는 대중문화 ‘상품’에 대한 근본적 위협으로 언제고 변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출연 영상, 음반/음원뿐 아니라 모델로 출연하는 광고에 이르기까지 2PM이라는 이름으로 생산되고 판매되어 온 모든 문화상품들은 이제 팬덤에게 (또한 대중들에게)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 지금까지 팬덤이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하며 아끼고 열광해 온 2PM의 과거와 현재는 이제, 멤버들 간 관계에서의 균열과 6명의 멤버들의 ‘불건강함’이 잠재한 지대로 새롭게 (재)배열되고 읽힌다. 간담회 이후 한 팬이 이들에게 사용한 ‘찝찝돌’이라는 표현처럼, 이제 이들을 지켜보는 것은 더 이상 유쾌하기보다는 불편하고 찜찜하다. 남은 6명의 2PM에게 여전히 애정을 가지건, 그렇지 않건 간에 이들의 과거와 현재에 있어 9월의 재범 탈퇴 이후 2월 간담회까지의 시간들, 그 사이사이의 굴절들은 ‘재범’이라는 이름으로 2PM이라는 문화상품에 감추어지지 않는 흔적으로 선명히 배태되어 남았기 때문이다.


이는 대중문화에서 기억의 정치학이 작동하는 하나의 방식을 보여줄뿐 아니라, 개개인으로 환원될 수 없는 팬덤이라는 집합적 정체성이 특정한 사건의 연속을 통해 변화해가고 새롭게 재편될 수 있는 가능성을 드러낸다.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인 2001년 2월 27일은 1세대 아이돌 스타의 선두였던 H.O.T.의 해체가 발표되었던 날이며, 그 이후 10년 간 수많은 스타들이 새롭게 떠오르고 또 사라지며 2세대 아이돌 스타덤의 시대를 열었다. 당시 H.O.T.의 해체를 지켜 본 (여)학생들과 사라져가는 아이돌들을 함께 지켜 본 세대들은 이제 대학(원)생, 직장인, 어머니가 되어 새로운 아이돌 스타들을 소비하는 동시에, 새롭게 팬덤이라는 문화실천의 장에 진입한 신생 팬들에게 애정어린 조언을 제공해 왔다. 아이돌 스타를 둘러싼 역사의 반복과 변형 속에서 다양한 세대들이 공존하는 2PM 팬덤이, 더 나아가 이들이 직면한 상황에 공감하는 많은 팬덤을 포함한 일반 명사로서 ‘팬덤’이 배운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소비와 열광을 핵심으로 하는 애정의 취약함이기도 하고, 바로 그 애정이 기반한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아이돌 스타의 판타지의 무기력함이기도 하며, 연대를 통해 그 애정을 존속시킬 수 있지 않을까하는 실낱같은 믿음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20년에 가까운 한국 아이돌 대중문화의 역사에서 스타와 산업은 무엇을 배웠을까. 이는 2PM의 미래에 대한 질문으로 치환가능할 것이다. 예측가능한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이들의 문화상품으로서의 생명력이 과거와 같은 건강함과 활력, 의리와 같은 판타지를 통해서는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이다. 기실 2PM을 본격적인 정상의 궤도에 오르게 한 것이 재범의 탈퇴 ‘이후’ 생성된 (의도 여부와 무관한) 잡음들이라고 할 때, 더욱 더 강렬하고 선정적인 잡음이 아니라면 산업 내 이들의 위치는 유지, 재생산되기 어렵다. 재범의 탈퇴를 선언하고, 탈퇴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드러냄으로써 (재범뿐 아니라) 기존의 팬들이 가진 판타지와 신뢰를 상당 부분 꼬리처럼 잘라낸 2PM의 미래는, 어쩌면 역설적으로 '재범‘이라는 이름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를 둘러싼 스타, 팬덤, 엔터테인먼트 산업 사이의 논쟁의 연속이 될지도 모른다. 이 논쟁이 20년에 가까운 한국 아이돌 대중문화의 역사에서 아직 스타와 팬덤,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민주적으로 대화하는 방식, 더 나아가 합리적으로 이윤을 창출하고, 애정을 투사하는 방식들을 찾아 나가는 과정이 될지, 혹은 아직 찾을 수 없음을 증명하는 과정이 될지가 ‘우리’에게 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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