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나누기

임신과 피임 사이

문화연대 소식지 "상상나누기" 2010년 16호 후일담 2

 

임신과 피임 사이

 

랄라


# 청소년 인터넷 라디오 ‘모난라디오’의 정기 수다회 “무엇이 두려운가, 산부인가” 의 촉발이 되었던 글 랄라의 임신과 피임사이로 후기를 대신합니다. 토론회에 참석했던 10대 여성에게도, 20대 여성에게도, 30대 여성에게도, 미혼이든 기혼이든 산부인과는 여전히 임신으로 연결되었습니다. 결국 임신은 피임과 연결 되었구요. 여성들에게 산부인과는 부인과 질병을 치료하는 곳이 아닌 아이를 낳거나 지우는 공간으로 인식되어 두려움의 대상으로 변했다는 것을 확인하며 산부인과이름을 바꿔야 한다는 황당무계한 결론이 난 수다회였습니다. [모난라디오]


의사 : 축하드려요. 임신 5주시네요.

여느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과 똑같고 식상한 멘트를 날리는 의사언니. 과연 축하할 일인가 생각도 하기전에 얼굴이 찌뿌려졌다.

나 : ??????

의사 : 아.. 계획하지 않으셨나봐요?

나 : 예...뭐..네....(그러다가 문득 든 생각) 저 담배랑 술 완전 많이 하는데 괜찮아요?

의사 : 네..이제부터 끊으시면 되요.

나 : 참.. 저희집에 개랑 고양이랑 있는데..

의사 : 우선은 같이 안사는게 최고의 방법이긴 한데..

 

그리고 블라블라 임산부로서 지켜야 할 도덕적인 덕목은 아니고 먹지 말아야 할 음식과 피해야 할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그렇게 뱃속의 생명과 만나게 됐다. 사실 반갑지 않은 손님이었으나 뱃속의 생명에게는 ‘쉿’ 비밀이다.

 

곰곰이 생각해 봤다. 이 아이가 어떻게 나에게 오게 되었는지. 사실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같이 사는 이는 언젠가 술 마시고 한 그날이었다고 한다. 이런.. 근데 생각이 안 난다. 왜 피임을 하지 않았는지.. 정말 누군가의 말대로 ‘진상규명, 책임자처벌’을 해야 하는 것인가. 한 번의 실수가 이런 커다란 숙제를 나에게 던져주다니. 정말 이런 젠장 맞을이다.

 

결혼 하고도 아이에 대한 생각이 많이 없었기에 자연스레 피임을 해왔다. 결혼하기 전에도 그랬다. 피임은 나의 성생활을 유지시켜주는 자연스러운 하나의 절차였다. 언제부터였을까? 피임법을 알게 된 것이.. 아마 중고등학교 다니면서 성교육 시간을 통해서였을꺼다. 관계를 맺을시에는 피임을 해야 한다는 당연스러운 말을 좔좔 읊어대는 성교육 강사님. 근데 콘돔 끼는 방법(이런건 설명서에 다 나온다)만 알려줬지 콘돔을 누가 준비해야 하는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써먹어야 하는지, 애인이 콘돔을 안 끼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작 실전에서 중요한 것은 알려주지 않았다. 영화의 섹스 신을 보면 남녀가 자연스레 만나서 격렬하게 후다닥 옷을 벗고 관계에 돌입하는 것으로 나온다. ‘그럼 이 주인공은 피임을 한 것인가 안 한 것인가.’ 섹스장면의 자연스러운 과정 속에서 피임을 한다는 것은 쏙 빠져버렸다. 과연 여주인공을 어떠했을까? 영화에서 삭제된 결말은 남주인공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책임져’ 이런 게 아니었을까?

 

내가 접하는 일상적인 문화 속에서 피임은 섹스에서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되어져 온 것 같다. 정작 제일 중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글을 부탁받고도 한참을 생각했다. ‘피임을 왜 해야 하는가?’ 근데 아무리 이리저리 생각을 해 보아도 답은 당연한 것 같다. ‘임신을 원치 않는 어떠한 경우든’ 이것이 내가 내린 피임을 해야 하는 결론이다. 어찌 보면 너무나 단순한 문제이지만 어찌 보면 가장 심오한 뜻을 지니고 있지 않을까? 아, 그러고 보니 요즘 출산파업에 대한 이야기들이 종종 나오는데 출산 파업 시에도 피임은 정말 중요한 존재이다.


아이를 갖는 다는 것은 막중한 책임이 생기는 것 같다. 특히 나처럼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나 말고도 함께해야 할 인생이 한 명 더 늘어나는 일이니 더욱 신중해야 할 문제이다. 그러하기에 아이를 갖는 것은 많이 고민하고, 결정해야 할 문제인 것 같다. 피임의 실패로 떡 하니 생기면(나 같은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난감하고 고민되어 지는 지점이 더 많아진다. 그런 경우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피임을 잘 해야 한다.


아.. 너무 남들 다 아는 이야기를 써놓은 것 같아 살짝 민망하다. 어쨌든 머리를 쥐어짜도 너무 원론적인 고민들만 있는지라, 내가 더 피임에 대한 이야기들을 얻어야 할 것 같다. 내 뱃속에는 피임을 잘하지 못해 얻은 생명이 자라고 있다. 충분한 고민 끝에 계획적으로 생겨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좋은 부모가 되어주도록 노력할 생각이다. 그리고 이 아이가 커서도 즐거운 섹스를 즐길 수 있도록 피임법을 꼭 알려주어야겠다. 어디서, 어떻게, 왜, 해야 하는지..  

 

+ 이 글은 10대 여성주의 온라인네트워크 “깜” 의 [언니들의 지혜 공감] 코너에도 기고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