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나누기

끝까지 멈추지 않으리라!

문화연대 소식지 "상상나누기" 2010년 17호 특집기사 1

 

끝까지 멈추지 않으리라!

 

혜원

 

화려한 불빛, 사람들을 유혹하는 온갖 진열대의 물건들, 북적이는 젊은이들을 지나 걸었다. 홍대 앞 휘황찬란한 거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어두침침한 골목. 철 판넬로 온통 둘러싸인 컴컴한 공사 현장 한 가운데에 우뚝 솟은 오래된 건물. 휘갈겨 쓴 ‘펜은 삽보다 강하다’, ‘작가는 기록하고 역사는 기억한다.’ 따위의 문구들. 아마 예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주린 배를 채우러 들어왔을 이 곳, 두리반의 문을 열고 이제는 농성장이 된 옛 칼국수 집에 들어선다. 몇 촉짜리 전구가 희미하게 밝혀진 차가운 바닥에 스티로폼과 눅눅한 이불이 깔려있다. 깨진 주방의 유리에 붙인 테이프가 너덜너덜하다. 마음이 절로 차가워지는 분노와 슬픔의 공간, 그것이 내가 처음으로 만난 두리반이었다.

 

내가 ‘두리반’ 이라는 이름을 처음 만나게 된 계기는 라디오였다. 일요일마다 진행하는 라디오의 소재를 찾던 중, 홍대 앞에 작은 용산이라고 불리는 철거 현장이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아직 채 용산의 슬픔이 가시지 않은 마당에 똑같은 상가 세입자들에 대한 가혹한 철거가 진행 중이라는 이야기에 꼭 한 번 취재를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무턱대고 찾아온 두리반에서 나는 안종녀 사장님과 소설가이신 유채림 선생님으로부터 그 지난한 쫓겨남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가슴이 먹먹했다. 나 또한 쫓겨남의 기억을 가지고 있기에.

 

나는 지난 2008년, 일제고사를 반대했다는 이유로 해직당한 전교조 해직교사이다. 정부의 입맛을 거슬렀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나는 한순간에 정든 교실에서 쫓겨나야 했고, 사랑했던 내 제자들과 헤어져야 했다. 강제로 쫓겨난 그 학교 바깥에서 아침마다 피켓을 들고 학교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려는 사람들, 경찰들과 실갱이를 벌이며 눈물 흘렸던 그 기억. 크리스마스 이브날에 갑자기 들이닥쳐 그릇이며 숟가락 하나 남기지 않고 싸그리 실어가버린, 텅 빈 식당의 모습. 사방을 철판으로 둘러싸 들어가지 못하게 막힌 그곳의 문을 두드리며 눈물 흘리던 사장님의 모습이 겹쳤다.

 

처음 싸움의 시작은 너무나 외롭고 쓸쓸했다. 유채림 선생님이 인천 작가회의의 지회장이었기에 농성장에는 응원 차 들른 몇몇 소설가와 시인들이 모였지만 앞으로 어떻게 싸워가야 할 지 막막할 뿐이었다. 철거 싸움의 현장이지만 제대로 된 집회 한 번도 하지 못했다. 농성장에는 늘 서늘함과 분노가 맴돌았다. ‘홍대 앞 작은 용산’ 이라는 말에 몇몇 언론사들이 취재를 위해 찾아왔지만 그 뿐이었다. 사람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나면 언제 용역이 쳐들어올지 모르는 춥고 쓸쓸한 농성장에 두 내외분만이 복공판 위를 쌩쌩 지나가는 차의 소음을 견디며 잠을 청했다. 나 또한 종종 찾아와 사장님과 맥주 한 잔을 기울이며 외로움을 덜어드리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두리반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두리반의 소식을 들은 몇몇 음악가들이 두리반에 찾아왔다. 인디 문화마저도 자본에 점령당하고 점점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고 있는 가난한 음악가들이 밀려나는 칼국수 집을 지켜내기 위해 연대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들은 토요일마다 ‘사막의 우물, 두리반’ 이라는 제목의 자립음악회를 열었다. 차갑고 외로운 농성장에 그들의 음악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자립음악가들 뿐 아니라, 용산에서 ‘행동하는 라디오’ 라는 이름의 미디어 액션을 하며 1년이 넘는 긴 시간 현장을 지켰던 평화활동가 조약골도 두리반에 함께 하기 시작했다. 길바닥 평화행동의 멤버들이 악기를 들고 모여들었다. 그렇게 생겨난 것이 금요일의 칼국수 음악회. 가진 재주도 무엇도 없던 나는 칼국수 음악회의 진행을 맡게 되면서 점점 더 깊이 두리반의 싸움에 함께 하게 되었다. 음악을 듣고자 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철거 현장인 두리반에 찾아왔다. 그냥 기사로만, 말로만 접하는 것이 아니라 철거 현장에 직접 찾아와 그 곳을 보고, 듣고, 느끼며 두리반 싸움의 정당성을 몸으로 겪고 가는 것이다.

 

그렇게 점점 사람들은 늘어갔다. 예전 밴드 천지인에서 활약했던 엄보컬, 김선수 두 부부가 월요일에 하늘지붕음악회를 열었고, 화요일에는 푸른영상의 문정현 감독님이 진행하는 다큐멘터리 상영회가 열린다. 이렇게 엮인 사람들이 두리반에 점점 마음을 주기 시작하면서 농성장에는 끈끈한 연대의 정이 생겨났다. 이제 더 이상 두리반은 단순한 철거 농성장이 아니다. 어떤 이에게는 무대가 되었고 어떤 이에게는 낮술의 추억으로, 또 어떤 이들에게는 끼를 펼치는 해방의 공간이 되었다. 그 뜨거운 마음과 즐거움이 모여 질긴 싸움을 만들어 간다. 우리는, 즐겁고도 질기게 싸운다!

 

같은 철거싸움의 현장인 정금마을은 귀때기가 문드러진 용역들이 철거민들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폭력을 가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위원장을 넘어뜨려 허리를 잘근잘근 짓밟고 계단에서 굴려 병원에 실려 갔다고 했다. 늘 음악이 울려 퍼지고 사람들이 모이는 즐거운 곳이라지만, 여기 또한 언제 용역이 들이닥쳐도 이상하지 않은 철거의 현장이다. 막상 그들이 쇠파이프를 들고 들이닥치면 우리 또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는 것만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끝까지 저항을 멈추지 않으리라. 끝까지 춤과 노래를 멈추지 않으리라! 더러운 자본에 붙은 눈 먼 투기꾼들의 폭력이 멎는 그 날까지, 끝까지 함께 싸우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