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나누기

명화를 보면서 성적 불감증을 배웁니다?

문화연대 소식지 "상상나누기" 2010년 17호 밥보다 문화

 

명화를 보면서 성적 불감증을 배웁니다?

 

소이
(문화연대 자원활동가)

 

뽀뽀조차 못해본 중학생도 클림트의 <키스>에서 키스의 은밀한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람이기 때문이죠. 저의 중학교 시절 가방 한 구석에 항상 들어있던 그저 중학생용 영어사전에는 클림트의 <키스>가 붙어있었습니다. 저는 그게 클림트가 그린 그림이고, 상징주의와 아르누보가 유럽에서 팽배하던 그 시절에 그려진 그림이라는 것을 대학에 오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중학생도 클림트의 <키스>에서 키스의 은밀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이 맞을 수 있다 할 수 있겠지요. 요컨대, 누가 그것이 그 유명한 클림트의 그 유명한 <키스>야, 라고 말해주지 않았어도 저 스스로 색色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겠지요. <키스>는 엄마가 재미로 보라며 주신 잡지의 한 면을 차지하던 이른바 이발소 그림이었는데, 그때의 저는 이발소 그림과 아닌 그림을 구별할 개념도 없던 터이니 사람들이 갤러리에서 그림 보는 것과 다르지 않게 그것을 보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키스>가 이발소 그림이기 때문에 그것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이 미술 풋내기의 풋풋한 잘난 채로만 들리는 지금의 현실이 부당하게 느껴집니다, 저는 진심이었기 때문입니다. 미술의 세계에는 교묘하게 이런 트릭들이 있어서 좋아해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는 기가 막히는 상황이 다반사입니다. 그러나 중학생이었던 저는 정말 <키스>의 남자의 젖힌 목이, 남자의 피부색이, 느껴지는 남자의 힘이 섹시해서 견딜 수가 없었음에 틀림없습니다.

 

미술의 트릭, 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어떤 생각이 있습니다. 사실 저는 다음의 의문을 내보이는 것 자체가 미술학도로서 좀 민망하고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저는 '왜 고전적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림들 속 여성의 나신이 섹스어필의 대상으로 느껴진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있습니다. 앵그르는 드가 같은 이들에게는 진정 고전으로 여겨졌지만, 몇몇 이들은 그의 신체 왜곡을 들어 완전한 신고전주의라고 하기에는 문제가 있다고 평가합니다. 여하튼 앵그르의 <샘>은 제가 가장 처음으로 눈을 뗄 수 없었던 명화입니다. 좀 더 정확히는 그림의 인물이 너무 섹시해서 보고 또 보게 되었던 명화입니다. 저는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이지만, 항아리를 든 소녀의 허리선과 피부의 느낌에서 아름다움 이상의 감정을 느꼈습니다. 물론, 앵그르의 그림은 허리를 너무 늘렸다는 둥, 발이 저렇게 꼬일 수 없다는 둥 인물의 성적 어필을 위해 과장된 그림이라는 비판이 있었기 때문에 '고전적' 그림의 예로서 적합하지 않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논지를 구성하려는 글이기에 논쟁의 여지가 있는 그림이지만 일단 제시해봤습니다.

 

각설하고, 제 의문의 요지로 더 가까이 가보겠습니다. 요지는 위의 의문을 조금 다르게 바라본 생각에 있습니다. 명화의 나신이 포르노와 다르니 마니는 여기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저는 그저 저 벗은 여신들 앞에서 남성은 본성을 감추라굽쇼!? 라고 묻고 싶은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 얼마나 순종적인 반半인류입니까? 이른 르네상스시기에 활동한 얀 반 아이크 이후로는 여성의 신체도 모델을 써서 실제적인 모습으로 그려져 왔습니다. 그러므로 그녀들이 상상 속의 그대이기 때문이라고 반박하고 싶은 분들은 그 생각을 접으셔도 좋습니다. 여성을 그리는데 어떤 추상적 공식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녀들은 화가들의 여성편력을 부축이면서도 계속해서 미美의 대상이자 관찰의 대상의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고전적 여인의 나신과 현대 포르노 등의 선정적 이미지 사이에 금을 그어 놓은 것일까요? 만약 그 금의 어느 쪽에 발을 디디는가에 따라 호르몬의 분비마저 조절이 가능한 것이라면 이만큼 경이로운 것이 없겠습니다. 풍만한 몸매에 하얀 살결, 매끄러운 입술에 숱 많은 머리카락 ... 모든 것을 다 갖춘 그녀들에게 이런 사실은 자존심 상하는 일일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우리는 오늘도 그녀들을 콘트라포스토('S'를 만드는 자세)로, 여신으로, 고전미로, 그리고 심지어 순수로 배웁니다. 다 벗고 있는데 '순수'라고 배웁니다.

 

착한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이는 건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사람들(여성포함)은 대단한 교육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배우가 전라全裸로 영화를 찍으면 그 씬이 몇 초만 나와도 매체를 달아오르게 하는 오늘날, 사람들은 그림이지만 다분히 사실적인 그녀들의 벗은 몸 앞에서 그녀들을 모욕하는 심미안을 배웁니다.

 

이 글은 그저 저의 생각입니다. 아마 제가 모르는 누군가가 이런 문제제기를 이미 했기 때문에 뒷북치는 글일 수도 있고, 그냥 제 생각 자체가 참으로 어이없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 생각은 누구나 그러듯, 제가 지니고 살아가면서 언젠가는 입증되기를 바라는 수많은 '만약' 중에 하나입니다. 만약 정말로 우리가 오랜 시간동안 교육을 받으면서 고전의 나신에게만은 성적 시각을 들이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워왔다면 대단한 발견이 아닐 수 없겠지요. 본능이라는 건 통제하기 어렵다는 꼬리표를 거의 항상 달고 다니잖아요. 일단은 저의 '만약'을 던져 봅니다. 이제 동의를 할지 비난을 할지는 제 몫이 아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