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고 오요안나 기상캐스터 문제해결을 위한 농성이 끝난다. MBC와 유가족이 줄다리기 협상 끝에 잠정합의안을 끌어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MBC는 15일 오전 10시 본사에서 대국민 기자회견을 열고, 고인에 대한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 및 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고인에게는 명예 사원증이 수여되며, 2026년 9월 15일 2주기까지 추모 공간도 마련된다.
잠정합의안이 나오기까지 상황은 순탄치 않았다. MBC 사측이 ‘유족 측에서 기상캐스터 정규직 전환 요구를 철회하지 않으면 사과나 보상 등 어떠한 요구에 대해서도 협상할 수 없다’면서 교섭이 결렬된 상태였다. 그때 3대 종단 대표들이 상암MBC를 찾았다. 종교계가 MBC 사측과 유가족을 번갈아 만나며 교섭의 물꼬를 틔었다. 그렇게 4일 재개된 교섭은 당일 세 차례 이어지면서 이견을 조금씩 좁혀갔고 그렇게 잠정합의안이 마련됐다. 어머니 장연미 씨의 단식이 28일째 이어지던 날이었다.
고 오요안나님 문제 해결 촉구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 현장. 출처: 참세상 자료
MBC여서
MBC 기상캐스터 고 오요안나 싸움은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고 오요안나 씨는 인기 있는 예능프로그램인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하기도 했던, 인지도가 높은 사람이었다. 그런 이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건 고인이 사망한 지 4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유가족들에 의하면 여러 언론매체를 찾아갔지만, 해당 언론매체들은 취재 및 보도에 소극적이었다고 했다. 그렇게 고인의 사망은 그토록 논란이 많은 가로세로연구소를 통해서 폭로됐다. 그리고 MBC 제3노조가 합류했다. 국힘 또한 국회에서 거세게 MBC를 몰아붙였다. 왜일까? ‘눈엣가시’였던 MBC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인의 사망은 ‘정쟁화’됐다. 그로 인해 고인의 사망 사건 자체는 커졌지만, 해결은 더 꼬여갔다. MBC는 정치적 소환에 민감할 수밖에 없고, 방어기제가 작동되면서 ‘사건의 본질’은 흐려졌기 때문이다.
실제 MBC는 고인의 사망이 조명되자마자 ‘고인으로부터 접수된 괴롭힘 사건이 없었다’면서 선 긋기부터 나섰다. 하지만 고인의 모바일 메신저에 복수의 MBC 관계자들에게 괴롭힘에 대해 상담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제야 MBC는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리겠다고 밝혔다. 그 과정에서도 유족은 배제됐다. 그리고 진상조사 결과마저도 공개하지 않은 MBC였다.
방송 비정규직 문제해결을 위해 꾸준히 싸워온 엔딩크레딧이 유가족과 함께 MBC에 문제 해결과 재발 방지를 요구했지만, 아무런 답을 듣지 못했다. 고 오요안나 씨의 어머님 장연미 씨가 고인의 1주기를 앞두고 △안형준 사장의 공식 사과 및 재발 방지 입장 표명 △고인에 대한 명예사원증 수여 △사내 추모공간 마련 △기상캐스터 정규직화 △MBC 내 비정규직 프리랜서 전수조사를 요구하며 단식 농성에 나선 까닭이다.
단식 23일째, 고 오요안나 씨의 어머니 장연미 씨, 가운데 아래. 출처: 참세상 자료
문제는 MBC의 태도였다. MBC는 본사 건물 내부에 유족 없이 분향소를 설치했고, 장연미 씨가 단식에 돌입한 이후에도 아무런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고인의 사망 1주기였던 15일에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MBC는 “프리랜서 기상캐스터 제도를 폐지하고, 기상기후 전문가 제도를 도입해 정규직으로 채용하겠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이는 농성 중이던 이들에게 충격을 안긴 발표였다. 기상캐스터 정규직화 등 처우 개선을 요구했더니, MBC의 답은 기존 기상캐스터들의 일자리마저 박탈하겠다고 밝힌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고 오요안나 씨는 MBC가 제시한 기상기후 전문가 공채에 지원할 수 있는 요건에도 해당하지 않았다.
MBC는 사전에 유가족과 어떠한 내용에 대해서도 협의한 바 없다. 이에 대해 MBC는 미디어오늘과의 전화통화에서 “경영방침은 논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고인의 사망에 대한 책임이 없다는 전제가 없다면, 나올 수 없는 답변이다. 노동자가 사망한 사업장의 무게는 달라야 한다. CJB청주방송에서 프리랜서 이재학 PD 사망 당시 진상조사보고서와 대책위 요구안에는 방송사 내 노동자성을 인정받은 구성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CJB청주방송은 이에 서명했었다.
교섭이 결렬됐을 때도 MBC는 실망스러웠다. MBC 사측은 ‘기상캐스터 정규직화 요구를 철회하지 않으면 보상 등 다른 사안에 대해서도 협상할 수 없다’고 밝혔다. 당시 MBC의 보도자료에 분노했었다. “유가족은 당초, 현재 재직 중인 기상캐스터 4인을 MBC가 직접 고용해 안정된 수입을 보장해줄 것을 요구하였음. 그러나 유족에게 협상을 위임받은 <직장갑질119> 측은 기상캐스터 전원을 일반직 정직원으로 고용하라고 요구사항을 변경하였음.” 어디서 많이 본 수사다.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정부가 ‘순수한 유가족’을 운운했던 때가 떠올랐다. 서글펐다. 그 말을 한 곳이 공영방송 MBC였기 때문이다.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앞, 고 오요안나 기상캐스터 분향소. 출처: 참세상 자료
그리고 MBC여서
MBC 고 오요안나 기상캐스터 문제해결을 위한 농성장에서 많이 나왔던 말 중 하나가 ‘정의를 추구하는 언론사 MBC’였다. 농성하는 입장에서 이 말은, 사태를 이 지경까지 만든 MBC가 “매우 실망스럽다”는 의미로 쓰였다. 하지만 28일 만에 잠정합의안이 나온 것은 공영방송 MBC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평가와 역사성을 배제하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
실제 한국 사회 내에는 해결되지 않은 다양한 문제와 농성장들이 존재한다. 세계 최장 600일이라는 고공농성을 벌인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박정혜 지회장이 있었다. 여전히 고공농성 중인 노동자도 있다. 세종호텔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고진수 지부장은 이번 추석 명절에도 땅에 내려오지 못했다. 지난 9월 고공농성 212일 만에 노사 첫 교섭이 진행됐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서울시교육청 앞에는 지혜복 교사가 600일이 넘도록 농성을 벌이고 있다. 씁쓸하지만 이게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그에 비하면 MBC’는 이런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실망스러운 태도를 거듭했음에도 불구하고 재개된 교섭에서 MBC 사측은 문제를 매듭짓겠다는 의사가 뚜렷했다. 그렇게 잠정합의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앞으로 어떤 ‘MBC여서’를 만들어갈 것인가이다. 고 오요안나 씨의 죽음은 MBC 내 비정규직 차별 구조와 분리해 설명할 수 없다. 진정한 문제 해결은 조직 내부의 차별 구조를 해소하는 데서 시작돼야 한다. MBC가 진행 중인 비정규직 실태조사가 노동자성을 지우기 위한 수단이 아니길 바란다. 상시 업무에 대해서는 정규직 전환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하며, 노동자성 인정 이후 방송작가들에게 부여된 ‘방송지원직’이라는 새로운 차별 구조 역시 재검토되어야 한다. 지역 MBC의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도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광주MBC는 김동우 아나운서와의 근로계약을 언제까지 해태할 것인가. 이렇게 MBC가 풀어야 할 과제는 여전히 산적해 있다. 고 오요안나 기상캐스터 문제 해결을 위한 농성은 끝나지만, 투쟁은 계속돼야 할 이유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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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택은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