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노동자에게 위험 떠넘기는 반도체산업, 누구를 위한 '미래'인가

[편집자주] ‘반도체특별법’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본회의 통과를 목전에 두고 있다. 반도체특별법은 재벌 퍼주기 ‘삼성특혜법’ 논란, 고용창출 등 경제적 효과에 대한 의문, 연구개발노동자에 대한 주52시간 노동상한제 규제 완화 우려, 기후위기 시대에 물과 전기의 과도한 사용으로 인한 우려, 지역 송전탑 대책위의 반대, 청소년 교육권과 노동권 침해 등 노동자와 지역주민, 시민사회의 각종 비판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이를 무시한 채 특별법을 일방적으로 통과시키려 하고 있다. 이에 <재벌특혜 반도체특별법 저지·노동시간 연장반대 공동행동(이하 반도체특별법 저지 공동행동)>에서는 반도체특별법의 문제점에 대해 5회에 걸쳐 연재한다.

 

2022년 윤석열 정부가 발표한 반도체 관련 인재양성 방안(100만 디지털 인재 양성)을 기반으로 전국에 반도체고등학교가 설립되고 있다. 대구, 충북, 이천, 용인, 인천, 충남, 음성에 이어 8번째 학교인 서울반도체고등학교 역시 2026년 개교를 예고하고 입학 설명회를 개최하였으나 몇 달 만에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2027년으로 개교를 미뤘다. 서울반도체고등학교가 제출한 계획서를 보면 장비과 32명, 제조과 32명으로 총 64명의 학생을 모집할 예정이었다. 산학연계를 강조하는 마이스터고의 경우 교육부가 관할하지 않는 학교들이 있는데 서울반도체고 역시 산업통상부 관할이며 교육부는 학교로서 기능을 할 수 있는지 검토하여 지정동의를 한다. 2026년 3월에는 용인에 9번째 반도체고가 설립되며 총 사업비 455억원에 288명을 모집한다.반도체 산업 관련해 10년 간 15만 명의 인재를 양성한다는 목표 아래 대학 정원을 늘리고 교수 채용 조건도 완화하며 인건비도 정부가 지원한다. 인재양성 세부 계획을 보면 학사 5.4만 명, 고졸 3.4만 명을 목표로 하고 있다.(출처: 행복한교육)

7월 24일, 반도체고 설립 규탄 기자회견 현장. 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읜권지킴이 반올림 제공

전 세계가 반도체 산업에 주목하고 있고 한국 역시 국가 기간산업으로 반도체 산업에 주력하고 있다. 대선 후보들의 공약에도 반도체 특별법이 등장할 정도이다. 반도체고등학교로 검색해 보면 이왕이면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반도체고가 생기길 기대하고 반도체 고등학교나 대학 학과 개설이 확정된 지역은 집값이 뛰었다는 글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반도체 산업으로 인해 세상을 떠난 수많은 노동자를 알고 있다. 특히 그들 중 다수는 20대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최근에도 울산에서 마이스터고를 다녔던 학생이 인천에 있는 스테츠칩팩코리아 라는 기업에서 반도체 공정을 다루다가 독성간질환을 얻는 일이 발생했지만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업재해 인정을 받지 못해 소송 중이다. 반도체 고등학교 지정 승인의 조건에도 산업안전에 대한 부분은 보이지 않는다. 

반도체 연구나 기술개발이 아닌 제조 공정에 참여하게 될 반도체고의 졸업생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도록 하는 책임이 국가와 기업에 있다는 것을 명확히 해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은 반도체 산업을 대한민국의 미래라고 말한다. 미래의 먹거리 산업. 그러나 그 미래를 누가, 어떤 환경에서 만들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다.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은 보호되고 있는지, 재차 질문해도 답이 없다.

우리가 현장에서 만나는 반도체 산업의 현실은 참혹하다. 수백, 수천 종의 유해화학물질이 사용되는데, 그중에는 발암성 물질도, 생식독성 물질도 많다. 그러나 기업들은 “영업비밀”이라는 말 한마디로 정보를 감추고 있다. 앞서 말했던 스테츠칩팩코리아 역시 피해당사자의 말에 따르면, 매주 화학물질이 바뀌는데도 어떤 물질인지 알 수 없었다고 한다. 자신이 어떤 물질을 다루는지도 모른 채 노동자들은 백혈병과 암에 걸리고, 희귀 질환에 쓰러진다.

그리고 그 위험은 하청 노동자들에게 떠넘겨지고 있다. 많은 학생들이 졸업 후 이런 하청 공장으로 진출하게 된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충북과 인천의 반도체고 졸업생들이 이미 그런 길을 걷고 있다. 

정부는 반도체고를 확대하고, 실습과 취업을 장려한다. 인천교육청은 올해 관내 직업계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반도체 업체 취업 설명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하지만 안전보건 교육에 대한 계획은 어디에도 없다. 노동자 건강권 보장을 위한 대책도 없다. 결국 청소년과 청년들이 위험을 모른 채 위험 속으로 내몰리게 될 것이다.

오랫동안 청소년 노동 현장의 문제를 지켜본 경험에 비추어볼 때, 사업주는 안전교육을 생략하고 실습생에게는 보호구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다. “학생이니까”, “배우는 과정이니까”라는 말로 위험이 가벼운 것처럼 포장한다. 그러나 어린 노동자일수록 위험에 더 쉽게 노출되고, 그 결과는 더욱 치명적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미래를 말하고자 한다면, 먼저 사람을 지켜야 한다.

반도체고의 전 과정에는 반드시 노동안전보건 교육이 의무적으로 도입되어야 한다. 그리고 모든 현장실습에 대한 사전 위험성 평가와 노동환경 상시 점검도 해야 한다. 산업재해가 발생하는 경우 정보 은폐를 금지하고 영업비밀 남용을 제한해야 한다. 하청업체를 포함한 반도체 산업현장의 안전한 노동환경, 노동 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 이런 전제들이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반도체고 학생들의 현장실습과 취업이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

반도체 산업의 확장에 대해 국가는 “미래”를 말하지만, 미래를 살아갈 이들의 건강을 앗아가는 정책은 미래가 아니다. 기업의 이윤 뒤에 숨은 위험을 청소년에게, 노동자에게 떠넘기는 산업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올해 국정감사 기간, 반도체고 설립과 관련한 자료를 찾기 위해 여러 의원실에 도움을 요청했다. 도움을 요청했던 곳에서는 이런 질문이 돌아왔다.

“아직 반도체고 현장실습이나 취업을 통해 직접적인 사건이 일어난 것은 아니지 않느냐? 뭔가를 요구하거나 주장하기에는 구체적인 근거가 좀 부족하다.”

2019년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삼성을 비롯한 6개 반도체 기업에서 근무한 노동자들이 백혈병에 걸려 사망할 위험이 두 배 이상 높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더 위험하게 일하는 하청노동자가 제외된 이 조사에서는, 반도체 노동자가 백혈병에 걸릴 위험은 전체 노동자의 1.5배였고, 사망 위험은 2.3배 높았다. 또, 혈액암인 비호지킨림프종에  걸릴 위험도 두 배 가까이 높았고 사망 위험은 무려 세 배가 넘었다. 특히, 이른바 '클린룸'에서 일하는 오퍼레이터라고 불리는 젊은 여성근로자들에게서 혈액암 위험이 높게 나타났다. 반도체 사업장의 직업성 암, 희귀질환 질병 재해자 10명 중 7명은 2030 청년이다. 반도체 산업의 위험성에 대해 말하기 위해 어떤 근거가 더 필요할까?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이 보장되지 않는 산업 성장, 그게 정말 대한민국의 미래일까?

반도체 산업현장의 노동자들이 병들고, 쓰러지고, 숨져가는 일을 더 이상 “몰랐다”며 지나쳐서는 안 된다. 반도체 산업의 성장은 청소년과 노동자의 건강과 권리 위에 세워져야 한다. 그것이 우리 사회가 함께 그려나가야 할 진짜 미래다.

11월 4일, "반도체 특별법 강행 처리 반대" 기자회견 현장, 박내현 서울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활동가. 재벌 특혜 반도체특별법 저지・노동시간 연장 반대 공동행동 제공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