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페미니스트들은 국제사회의 도움을 요청했지만, 미국과 이스라엘의 전쟁으로 여성들이 목숨을 잃고 수많은 여성이 일자리를 잃었으며, 이란 정부는 이를 빌미로 여성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
2026년 4월 25일, 이란 테헤란 도심의 테헤란대학교 담벼락에 그려진 반미 낙서 앞을 한 이란 여성이 지나가고 있다. (그래픽: 트루스디그)
이란의 1월 시위는 “피바다”였다고 나스린 소투데(Nasrin Sotoudeh)는 지난 2월 테헤란에서 여성들을 위한 국제사회의 지원을 촉구하며 말했다. 이란의 저명한 인권 변호사인 소투데는 지난 20년 동안 활동을 이유로 여러 차례 체포됐으며, 6년 넘게 수감 생활을 했다. 그가 언급한 시위는 지난해 말 리알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처음 시작됐고, 이후 정부 지도자들의 퇴진을 요구하는 전국적인 시위로 확산됐다. 이란 보안군은 시위대를 향해 실탄을 발사했다. 사망자 수에 대한 추산은 크게 엇갈린다. 이란 정부는 3,117명이 숨졌다고 밝혔지만, 유엔 특별보고관은 희생자가 “수만 명”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했으며, 이란 의료진은 3만 명이 숨진 것으로 추산했다.
소투데가 국제사회의 지원을 요청한 지 2주 뒤인 2월 28일, 폭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정부 대변인 파테메 모하제라니(Fatemeh Mohajerani)에 따르면 그 뒤 한 달 동안에만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이란 여성 249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이들은 모두 민간인이었다. 그러나 폭격은 인명 피해와 기반시설 파괴에 그치지 않았다. 이란 정부는 국가적 단결을 내세울 명분을 얻었고, 이를 이용해 페미니스트와 시위대에 대한 탄압을 더욱 강화했다.
소투데는 1월의 학살이 이란 사회에 가한 “마지막 일격”이라고 판단했고, 더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봤다. 그래서 평화에 대한 위협을 다루는 유엔 헌장 제7장의 틀 안에서 국제법을 적용해 달라고 공개적으로 요청했다. 그러나 전쟁을 요구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호소한 것은 ‘보호책임’이었다. 이는 유엔이 2005년 만장일치로 채택한 원칙으로, 국가가 자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눌 경우 국제사회가 행동할 책임을 진다는 내용이다. 여기에는 사태 해결을 위한 권고와 평화적인 집단행동이 포함되며, 최후의 수단으로 유엔 헌장에 따른 봉쇄나 무력 사용도 포함된다.
소투데도 이란의 전략적 동반자이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 가운데 두 나라인 러시아나 중국이 이 모든 시도를 거부권으로 막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유엔 헌장 제7장에 따라 제재에서 무력 사용에 이르는 국제적 조치를 합법적으로 승인할 권한은 안전보장이사회에만 있다.
그러나 2월 28일 쏟아진 폭탄은 안전보장이사회의 승인을 받지 않았다. 그날 시작된 것은 워싱턴과 텔아비브가 일방적으로 벌인 전쟁이었으며, 명백한 불법 전쟁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전쟁 발발 직후 이란 최고지도자를 살해한 폭격의 목적이 정권 교체와 핵무장 해제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란 국민의 “안전”과 “자유”를 언급했으며, 여기에는 암묵적으로 이란 여성들도 포함됐다. 이들은 2022년 ‘여성, 생명, 자유)’ 시위를 통해 오랜 투쟁을 세계에 각인시킨 여성들이었다.
그러나 여기에 역설이 있다. 국제사회는 오랫동안 이슬람공화국을 국제 규범을 어기는 불량국가로 규정해 왔고, 이 정권에 탄압받는 민간인들은 마지막 방어선으로 유엔 헌장에 계속 의지해 왔다. 그러나 정작 법의 편에 서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법을 무시한 채 폭격을 감행했다. 2월 28일부터 4월 7일까지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이란 민간인이 최소 2,362명 목숨을 잃었고, 이 가운데 383명은 어린이였다.
“나스린이 국제사회에 개입해 달라고 요청했을 때 충격을 받았다.” ‘여성, 생명, 자유’ 시위의 최전선에 섰던 테헤란 동부의 교사 엘라헤(Elahe)는 <트루스디그>에 이렇게 말했다. 그의 안전을 위해 성은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것뿐이었다. 우리는 정권에 맞서 몇 번이고 평화적으로 일어섰다. 그런데 그들은 우리의 목소리를 듣기는커녕 우리를 체포했다. 1월에는 거리에서 우리를 죽이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외부에 보호를 요청하는 것 말고 우리에게 무슨 선택지가 있었겠는가?” 그는 말을 멈추고 긴 한숨을 내쉰 뒤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를 이어주는 화상 화면 너머까지 그의 지친 기색이 가득 차는 듯했다.
“나스린의 말에 동의하면서도 내 나라를 배신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국제법이 우리를 보호해 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렇지 않다면 국제법이 대체 왜 존재하겠는가?”
그는 다시 어깨를 으쓱했다. 이번에는 말을 꺼내는 것조차 고통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우리가 얼마나 잘못 생각했는지 보라. 폭탄이 떨어져 미나브(Minab)의 소녀들을 죽이고, 병원과 학교를 덮치고, 너무나 많은 무고한 사람을 죽였다…. 그리고 분명히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 국민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 미국을 믿은 우리가 어리석었다.”
전쟁에 동원된 페미니즘
미국이 주도한 전쟁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기는커녕 “이슬람공화국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고 빈에서 활동하는 페미니즘 연구자 피루제 파르바르딘(Firoozeh Farvardin)은 썼다. 그는 수년 동안 이란 여성운동의 흐름을 연구해 왔다. 파르바르딘은 전쟁 덕분에 이란 정부가 “스스로를 국가 주권의 수호자로 내세울 수 있었고 … 독자적인 페미니즘 정치 활동의 공간은 줄어 들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도 뼈아픈 역설이 있다. 이란 국민을 해방한다는 명분으로 시작한 전쟁이 오히려 이란 정부에 그와 정반대의 일을 할 손쉬운 구실을 제공했다. 정부는 외세의 침략에 맞서 국가적 단결이 필요하고 국가 주권이 위협받고 있다는 명분을 내세워 비판의 목소리를 억누를 수 있게 됐다.
이러한 명분의 왜곡은 ‘여성, 생명, 자유’라는 구호를 전쟁의 정당화에 이용하면서 한층 더 심해졌다. 베이루트에서 활동하는 페미니스트 작가 살라 오마르(Sahla Omar)가 <라시프22>에 썼듯이, 이 구호는 본래 “저항 속에서 생명을 긍정하던 의미를 빼앗겼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향후 군사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2024년 11월부터 2025년 6월까지 여러 차례 이 구호를 언급한 뒤 벌어진 일이었다. 이후 이스라엘은 지난해 6월 13일부터 24일까지 이란을 폭격했다.
“지난해 이스라엘이 우리를 상대로 첫 전쟁을 벌였을 때 네타냐후가 ‘잔, 젠데기, 아자디(Zan Zendeghi Azadi·여성, 생명, 자유)’라고 말하기 시작하는 것을 듣고 절망했다. 우리가 일군 아름다운 운동을 그들이 가로채 이용하는 것 같았다.” 테헤란 남부에서 활동하는 모니카(Monica)는 머리에 스카프를 쓰지 않았고 배꼽 피어싱도 그대로 드러낸 채 이렇게 말했다. 그의 안전을 위해 성은 공개하지 않았다.
“올해 전쟁이 더욱 격화되는 것을 보면서 이제야 ‘임베디드 페미니즘(embedded feminism, 전쟁에 동원된 페미니즘)’이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됐다. 예전에 혼자 페미니즘 이론을 공부하면서 접했지만 당시에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그는 <트루스디그>에 말했다. “국가가 페미니즘의 언어를 가져다 쓰면서 전쟁을 인도주의적 사업인 것처럼 포장하는 것을 뜻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란에서 바로 그런 일이 벌어진 것 같다.”
모니카와 같은 여성들은 여전히 법을 어기면서 히잡을 쓰지 않고 공공장소에 나간다. 이는 지난 1년 동안 이들이 투쟁해 얻어낸 성과다. 실제로 이 기사를 위해 화상 통화로 만난 여성 가운데 히잡을 쓴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이들은 올해 폭격이 시작될 무렵 정부가 처음에 히잡 단속을 완화한 것은 양보해서가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다. 정부가 ‘국민적 단결’을 보여주기 위해 시민들이 거리로 나오게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현재의 전쟁이 시작된 지 몇 주 지나지 않았을 때부터 이란 여성들은 기자들에게 바로 이 점을 지적했다. 자흐라(Zahra)라는 여성은 <프랑스24>에 “지금은 그들이 전쟁 때문에 여기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을 뿐이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뒤에는 어떻게 나올지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7월 21일 그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히잡을 벗은 여성과 쓴 여성이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을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공공장소인 카페들이 이슬람 규범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다. 테헤란 중심부의 사나에이 거리와 이란샤르 거리에서는 여성들이 히잡 착용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부터 보도를 막았다는 이유까지, 당국이 카페 업주들에게 다양한 폐쇄 사유를 제시했다.
반대 세력 탄압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Ayatollah Khamenei)가 사망한 뒤 정부 최고위층에 변화가 생기면서 어느 정도 온건한 방향으로 돌아설 것이라고 예상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뒤이어 수감자들을 잇달아 처형했고, 그 가운데 1월 시위 참가자들도 포함되면서 그런 기대는 무너졌다.
국제앰네스티는 “이란 당국이 이른바 ‘전시 상황’을 구실로 대규모 자의적 체포를 벌이며 반대 세력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 경찰청장 아흐마드레자 라단(Ahmadreza Radan)은 5월 17일 전쟁이 시작된 뒤 6,500명이 넘는 “반역자와 간첩”을 체포했다고 발표하면서 탄압의 규모를 직접 확인해 줬다. 국제앰네스티도 올해 폭격이 시작된 이후 최소 41명을 당국이 “자의적으로 처형”했으며, 현재 시위 참가자와 반체제 인사 최소 78명이 추가로 사형선고를 받을 처지에 놓였다고 기록했다.
이러한 재판과 처형은 하나하나 모두 이란이 1976년 비준한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을 위반한다. 마찬가지로 군사 목표물이 아닌 민간인을 죽이는 모든 공격은 제네바협약과 무력 사용을 금지한 유엔 헌장을 위반한다. 그러나 테헤란이나 워싱턴, 텔아비브 가운데 어느 쪽도 자신들이 직접 비준한 이러한 법의 구속을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목숨을 잃은 이들은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다. 누군가의 딸이고, 교사이며, 영화 제작자이고, 어린이다. 이스라엘과 미국의 불법적인 폭격이든 이란 정부가 자국민을 상대로 벌이는 전쟁이든, 이란 민간인들은 국제법을 무시하기로 작정한 듯한 세력들 사이에서 고통받고 있다.
전쟁이 경제에 미친 영향
폭격이 초래한 피해는 사망자 수에서 끝나지 않고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병원이 공격받고 제약공장이 파괴되면 가장 큰 고통을 겪는 사람들은 여성과 장애인, 만성질환자, 노인 등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이들이다. 이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게 된다.
전쟁은 기존의 경제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물가는 더욱 가파르게 올랐고, 무역 고립으로 상품 공급에도 차질이 생겼다. 기업들은 지출을 줄이고 있으며 그 여파로 실업도 늘어나고 있다.
경제 상황이 어려워질 때 더 큰 피해를 보는 쪽은 언제나 여성이다. 이란 통계센터는 지난 6월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12%까지 떨어졌다고 발표하면서 그 원인으로 명시적으로 “전쟁의 그림자”를 지목했다. 통계센터에 따르면 일자리를 잃은 남성들은 다시 노동시장으로 돌아가고 있지만 여성들은 그러지 못하고 있다.
젊은 여성의 실업률은 35%로 젊은 남성의 거의 두 배에 달한다. 여기에 식료품 가격이 1년 전보다 134.6%나 오른 상황까지 겹쳤다. 이른바 ‘해방’이 치르게 한 대가는 바로 이런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스파한에서 수공예품을 만드는 마리암(Mariam)은 이 지역의 유명한 전통 목판 날염 기법인 칼람카리(qalamkari)를 활용해 맞춤형 현대 의류를 제작하는 작은 패션 브랜드를 운영한다. 그는 특유의 부드러운 억양으로 “지난해 6월 이후 주문을 단 한 건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의 안전을 위해 성은 공개하지 않았다.
수백만 명의 이란 자영업자처럼 마리암도 과거에는 인스타그램에서 사업용 계정을 운영했다. 올해 두 차례 인터넷이 차단되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당국은 먼저 1월 시위 당시 인터넷을 차단했고, 이후 전쟁 중에는 무려 88일 동안 인터넷을 끊었다. 이란 상공회의소는 인터넷 차단 이전에 인스타그램만을 기반으로 영업하는 온라인 상점이 전국에 최소 50만 곳에 달했으며, 이를 통해 약 100만 개의 일자리가 유지됐다고 추산했다. 이란 상공회의소의 아프신 콜라히(Afshin Kolahi)는 인터넷 차단에 따른 직접적인 손실만 하루 3,000만~4,000만 달러에 이르며, 간접적인 손실은 그 두 배에 달할 가능성이 있다고 추산했다.
이란 통신부 장관 사타르 하셰미(Sattar Hashemi)는 인터넷 연결에 의존하는 일자리에 종사하는 사람이 약 1,000만 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들 자영업자 가운데 상당수는 마리암처럼 여성이었다.
“이제 우리 가족은 저축한 돈도 다 떨어졌다. 미국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기로 했던 것도 취소됐다. 솔직히 말하면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다.”
마리암과 같은 처지에 놓인 수백만 명의 삶을 생각해 보면, 워싱턴과 텔아비브, 그리고 안전하고 편안한 곳에 자리 잡은 해외 이란인 사회에서 전쟁을 지지해 온 사람들이 결코 변명으로 덮어버릴 수 없는 현실이 드러난다. 나스린 소투데(Nasrin Sotoudeh)와 국제사회의 지원을 호소했던 이란인들은 이런 전쟁을 요구하지 않았다. 소투데는 첫 공격이 일어나기 몇 주 전부터 공개적으로, 바로 민간인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원칙에 따라 이란 민간인을 보호해 달라고 국제사회에 요청했다. 그리고 이를 합법적으로 실행할 권한을 가진 유일한 국제기구를 통해 행동해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그가 실제로 마주한 것은 그 국제기구를 완전히 우회해 시작한 전쟁이었다. 그 결과 소투데가 자신의 자유를 희생하면서까지 지켜온 운동은 목소리를 잃고 분열됐으며 두려움에 빠졌다. 전쟁 이후 사형선고를 받을 처지에 놓인 여성과 반체제 인사는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났다. 경제적 타격으로 여성들은 일자리를 잃었고 공적 생활에서도 밀려났다.
현재 알려진 바로는 소투데는 여전히 살아 있으며 이란에서 보석으로 풀려난 상태다. 하지만 지난 2월에 했던 발언 때문에 기소돼 그 대가를 치르고 있으며, 다른 많은 여성인권 활동가들도 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 이들은 도움을 요청했고,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이들의 호소는 오히려 누군가가 벌인 불법적이고 이해하기 어려운 전쟁을 정당화하는 논리의 재료로 이용됐다.
[출처] US War on Iran Is Devastating for Women Who Want Life and Freedom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
카민 모하마디(Kamin Mohammadi)는 작가이자 언론인, 방송인, 대중 연설가, 교사, 문화기획자다. 이란에서 태어난 그는 1979년 이란혁명 당시 영국으로 이주했다. 활발하게 활동해 온 언론인이자 작가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