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센터 반대 세력은 강력한 정치적 힘을 결집했다. 하지만 더 폭넓은 비전이 없다면 이러한 ‘테크래시(techlash·기술에 대한 반발)’는 기득권에 포섭돼 결국 동력을 잃을 위험이 있다.
미국 캔터키. 출처: Nils Huenerfuerst, Unsplash
“미국인들이 데이터센터를 받아들이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최근 미 의회에서 일하는 민주당 보좌관이 내게 물었다. 수사적인 질문이 아니라 진지한 질문이었다. 데이터센터는 미국 정치의 뜨거운 쟁점이 됐다. 미국인들은 데이터센터에 진저리를 내고 있으며 활동가들은 건설을 막으려 한다. 반면 개발업자와 금융업자, 기술기업, 에너지 생산업체들은 막대한 이익을 거두기 위해 사업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들은 데이터센터를 충분한 규모로 확충하지 못하는 것이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사회를 변화시킬 번영으로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는 병목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갈등은 AI를 둘러싼 정치적 논의의 방향을 바꿨다. 이제 논쟁의 초점은 AI 혁명의 운명이 달린 물리적 인프라를 미국이 어떻게 건설해야 하는지에 맞춰졌다. 이러한 사업에 맞선 일부 풀뿌리 운동은 실제로 성과를 내고 있다. 대중의 반발에 부딪히면서 2026년 1분기에만 투자액 약 420억 달러에 이르는 최소 20개의 데이터센터 건설 계획이 취소됐다. 하지만 정치인들이 AI의 확산 자체를 어디까지 막을 의향이 있는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뉴욕주 주지사 캐시 호컬(Kathy Hochul) 같은 노련한 정치인들은 단기적으로 혼란을 일으키지만, 장기적으로는 결국 실현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AI 인프라 확충을 잠시 중단함으로써 선거의 이점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할지도 모른다.
새로운 타협 구조도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정치인과 기술기업들은 데이터센터가 ‘공정한 몫’을 부담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수렴하고 있다. 전기요금 납부자를 보호하겠다는 약속, 지역사회 이익협약, 데이터센터 운영업체가 자체 전력을 확보하겠다는 약속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도널드 트럼프의 백악관조차 데이터센터를 향한 미국인들의 반감을 인식하고 있다. 백악관은 기업들에 AI 인프라가 전기요금을 인상하거나 지역의 수자원을 고갈시키거나 지역 전력망에 과부하를 일으키지 않도록 보장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 모든 움직임은 데이터센터 반대 운동의 힘을 보여준다. 활동가들은 새롭게 분출하는 대중적 에너지를 끌어모아 정치인들이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강력한 정치세력을 구축했다. 하지만, 이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더 폭넓은 비전, 즉 ‘데이터센터 반대’를 넘어서는 더 큰 목표가 없다면 이러한 ‘테크래시’는 동력을 잃을 위험이 있다. 기업 엘리트가 이 운동을 포섭해 AI 인프라의 성장을 저지하거나 다른 용도로 전환하는 대신 그 성장을 관리하는 정책으로 방향을 돌릴 수도 있다.
환경과 노동에 미치는 영향을 넘어 AI에 대한 불만의 근저에는 공동체의 삶이 갈수록 낯설어지고 있다는 감정이 자리 잡고 있다. 사회적 관계를 자동화하고 창의적 표현을 합성하려는 시도가 삶을 지배하기 시작했으며, 이런 시도는 인간의 보편적 경험과 동떨어져 있거나 심지어 이를 경멸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새로운 현대성으로 우리를 데려갈 획기적인 기술을 손에 넣었다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동시에 많은 사람은 감당하기 어려운 생활비, 계층 하락, 기후위기라는 가혹한 물질적 현실이 자신의 미래를 옥죄고 있다고 느낀다. 이처럼 명백해 보이는 모순은 절박한 질문을 던진다. AI를 좋아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면 왜 이렇게 많은 데이터센터를 짓는가?
데이터센터가 처음부터 정치인들이 AI와 관련해 우려한 핵심 문제였던 것은 아니다. 조 바이든은 2023년 10월 AI 행정명령을 발표하면서 이를 “세계 어느 정부도 AI의 안전과 보안, 신뢰를 위해 취한 적이 없는 가장 중대한 조치”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 행정명령은 대부분 정부가 AI를 사용할 때 적용할 시험과 규정에 초점을 맞췄다. AI 인프라에 관한 행정조치는 트럼프의 두 번째 취임을 엿새 앞둔 2025년 1월 14일에야 나왔다. 당시 바이든은 연방정부 소유 토지를 임대하고 환경 관련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해 데이터센터 건설을 가속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임기 말 바이든 행정부가 데이터센터를 대규모로 확충하는 정책을 받아들이게 만든 세력은 트럼프 정부 아래에서 더욱 강력해졌다. 트럼프는 미국의 기술 패권을 확보하기 위해 AI 인프라 건설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트럼프가 취임한 지 불과 하루 뒤 백악관은 오픈AI(OpenAI), 오라클(Oracle), 소프트뱅크(SoftBank), MGX가 참여하는 합작사업인 스타게이트 프로젝트(Stargate Project)를 발표했다. 이들은 미국에 데이터센터를 건설하기 위해 최대 5,00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약속했다. 화려한 발표 이후 트럼프는 데이터센터 개발에 따르는 금융·규제 부담을 완화하고 위험을 공공 부문으로 떠넘기는 일련의 행정명령을 내놓았다.
AI가 궁극적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오든 이 기술의 확산을 뒷받침하기 위해 쏟아붓는 투자는 이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 정치인들이 수십 년 동안 자국 산업 기반의 공동화를 한탄해 온 끝에 민간기업들이 막대한 자본지출에 나섰다. 기술기업들은 2026년 AI 인프라에 약 7,000억 달러를 지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동화와 아웃소싱으로 일자리가 오래전에 사라진 탈산업 지역에서는 투자 규모가 워낙 엄청나기 때문에, 데이터센터를 위한 맞춤형 산업생산이 전체 산업 역량을 되살리기는커녕 오히려 소진할 수도 있다는 모순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최근 대중의 반발이 거세지기 전까지 많은 지방정부와 주정부는 데이터센터 유치에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이들은 인허가 절차를 신속하게 처리하고 세제 혜택을 제공하며 개발업체를 끌어들이기 위해 서로 경쟁했다. 이러한 보조금 때문에 수십억 달러의 판매세 수입을 포기해야 하고 데이터센터가 창출할 일자리 규모도 심각하게 과장됐지만, 데이터센터가 지역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일부 증거도 있다. 전미경제연구소(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NBER)의 한 논문은 데이터센터가 “자본투자와 건설 활동, 전문직 고용”을 가져와 지역경제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어쨌든 미국인들은 데이터센터가 가져올 혜택이라는 주장을 믿지 않는다. 미국인 10명 가운데 7명은 자신이 사는 곳 인근에 데이터센터를 건설하는 데 반대하며, 55%는 강하게 반대한다. 주민들이 데이터센터를 거부하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데이터센터는 엄청난 양의 물을 사용한다. 냉난방공조(HVAC) 시스템이 끊임없이 내는 윙윙거리는 소음은 야생동물과 주변 생태계를 교란한다. 전력망에서 막대한 전기를 끌어다 쓰기 때문에 가정의 전기요금도 끌어올린다. 지난 5월 미국 최대 전력망 운영기관인 PJM 인터커넥션(PJM Interconnection)의 독립 시장감시기구는 데이터센터 때문에 에너지 비용이 76% 상승했다고 보고했다. 감시기구는 “소비자가 받는 가격 충격은 매우 컸으며 되돌릴 수 없다”고 밝혔고,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와 관련된 문제를 적시에 해결하지 않는다면 단기적으로 그 충격은 더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주적 절차가 부족하다는 문제도 있다. 지역 주민들은 시 당국과 개발업체가 비밀유지협약을 맺는 바람에 협상이 상당히 진전된 뒤에야 사업의 존재를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데이터센터 반대 운동에는 다양한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주택 소유자와 세입자, 환경운동가, 소비자 감시단체, AI 반대론자, 보수주의자, 사회주의자, 심지어 다국적 산업기업까지 불만의 물결에 합류하면서 활동가들은 광란에 가까운 건설 속도를 늦췄다. 지역사회에 AI 인프라가 들어오면서 정치적으로 각성한 주민들은 자신들이 당장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제 승리를 거뒀다. 이들은 타운홀 미팅을 방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치인들에게 압력을 가해 지역 차원의 건설 유예 조치(moratoria)를 도입하도록 만들고 있다. 사람들이 기술의 영향을 더 잘 파악하고 정책 당국이 위험을 평가해 보호 규정을 마련할 시간을 확보할 때까지 새로운 데이터센터 건설을 일시적으로 금지하는 조치다. 건설 유예는 시간을 벌기 위한 전략인 동시에 지역사회가 AI 거품에 대비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실제 수요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값비싼 컴퓨팅 인프라를 과도하게 건설해 결국 좌초자산으로 남는 일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역사회의 반대는 개발업체에 골칫거리를 안겼지만 더 큰 차원에서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현재 개발업체들은 저항이 가장 적은 길을 따라 움직이고 있다. 위스콘신과 오리건의 사업 부지에서 철수해 개발에 더 우호적이고 환경 기준이 약하며 물 부족이 더 심각한 뉴멕시코와 텍사스같은 주로 사업을 옮기고 있다.
AI 인프라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반대 세력이 토지 이용에 관한 복잡한 민원과 환경영향평가를 무기로 휘두르는 또 하나의 님비(NIMBY) 연합이라고 비판한다. 좀 더 기발한 사람들은 AI 반대 운동을 중국의 심리전이라고 묘사하기도 한다. 이 운동이 경제개발 사업에 대한 광범위한 저항과 어느 정도 연결돼 있는 것은 사실이다. 유타주의 한 카운티 위원회는 “균형 있고 지속 가능한 개발 기준”에 대한 우려를 이유로 데이터센터와 대규모 태양광 발전사업 모두에 6개월간 건설 유예 조치를 내렸다. 그러나 이 운동은 과거의 님비나 ‘성장 억제’ 운동보다 훨씬 폭넓은 세력을 포괄한다. 인종차별적 속내를 에둘러 드러내는 표현도 없으며 세입자 같은 특정 이해집단을 종속시키지도 않는다. 다양한 요구와 넘지 말아야 할 선이 공존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새롭게 등장한 이 지역 기반의 권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데이터센터 반대 운동을 형성 과정에 있는 연합이라고 규정할 수도 있다. 문화이론가 스튜어트 홀이 ‘정치의 생산, 즉 생산 과정으로서의 정치’라고 부른 현상을 실시간으로 목격하고 있는 셈이다. 서로 다른 세력이 합류하면서 새롭게 만들어진 정치적 투쟁의 공간은 “근본적으로 열린 결말”을 갖고 있으며, “이미 통합된 집단적 정치 정체성이나 이미 확립된 투쟁 형태”를 반영하는 경우는 드물다. 실제로 일부 시위 참가자들은 데이터센터 반대 집회의 피켓을 만들기 위해 생성형 AI를 사용했다. AI 인프라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이 AI 기술 자체를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는 단서다. 이러한 내부 모순을 안고 데이터센터 반대 운동은 시간이 지나도 지속되는 정치세력을 형성할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이제 막 태동한 이 운동이 홀이 주장했듯 “이해관계는 주어진 것이 아니라 정치적·이데올로기적으로 구성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들의 정체성과 선호 가운데 상당수는 여전히 형성되는 과정에 있으며 “필연적으로 모순적”이다. 복잡하게 얽힌 정치적 성격 때문에 데이터센터 반대 운동이 다음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운동이 될지, 아니면 다음 ‘티파티(Tea Party)’ 운동이 될지를 놓고 이미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홀이 경고했듯 대중의 이해관계가 이처럼 불안정할 때는 “그들을 매우 다른 정치적 프로젝트로 끌어들일 수 있다.”
예상대로 기업과 정치 엘리트는 AI 인프라를 향한 대중의 반감을 자신들이 더 용인할 만하다고 여기는 방향으로 돌려 포섭하려 한다. 그러나 ‘친환경’ 인프라를 개발하거나 지역사회 이익협약을 맺거나 높은 임금을 받는 노조 노동자를 고용하는 식의 해법으로는 사람들이 AI에 불만을 품게 된 근본적인 이유를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다. 데이터센터에 대한 대중의 저항은 오랫동안 쌓여온 감정 위에서 성장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코드와 알고리즘의 세계에서는 그 감정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웠지만 이제 그것이 물리적 형태를 갖게 됐다. 많은 사람은 자신의 삶을 좌우하는 힘 앞에서 자신이 보이지 않는 존재이며 아무런 힘도 없다고 느낀다. 그런데 이제 그 세력은 대부분의 사람이 최근까지 들어본 적조차 없던 압도적으로 거대한 시설의 건설을 최우선 과제로 밀어붙이고 있다. 한 건축 비평가는 AI 데이터센터를 “최초의 진정한 대규모 포스트휴먼 건축 유형”이라고 불렀다. 데이터센터는 사람들이 고용 불안, 불공정한 경제, 감시, 끝없는 스크롤을 채우는 저질 콘텐츠, 기후재난, 우주로 향하는 억만장자, 서비스의 지속적인 질적 악화와 수익화, 그리고 자신들이 통제할 수 없다고 느끼는 수많은 불만과 불안을 투영할 수 있는 빈 캔버스가 됐다.
물론 AI가 실제로 제대로 작동하는지와 관계없이 노동자에게 정면으로 가하는 공격도 있다. 생성형 AI가 노동생산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연구들은 여전히 엇갈린 결과를 내놓지만, 기업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노동자를 해고하고 있다. 지난 4월 메타(Meta)는 생성형 AI 투자 때문에 직원 8,000명을 해고한다고 발표했고, 스탠다드차타드(Standard Chartered)의 최고경영자는 경영진이 “가치가 낮은 인적자본”을 자동화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수천 개의 일자리를 줄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업 지도자들이 인간을 이처럼 무신경한 언어로 묘사하는 상황에서 여론조사에서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이 AI보다 더 높은 호감도를 얻는다고 해서 놀랄 일이겠는가?
AI를 둘러싼 과대선전도 점차 힘을 잃고 있다. 기술적 경이로움을 강조하는 서사가 훨씬 단순한 현실을 가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기술학 연구자들이 최근 논문에서 표현했듯 “서로 다른 자본주의 행위자들은 불확실성의 시기가 제공한 기회를 포착해 통신기술과 금융관계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동원했다.” 그 과정에서 “이들은 시장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재편하고 여러 거점 사이에서 자본과 자원, 데이터, 원자재, 노동이 흐르고 축적되는 방향을 통제하고 있다.”
다시 말해 기술 과두세력이 경제계획을 하고 있다. AI가 ‘필연적’이라면 그것을 필연으로 만드는 것은 시장의 힘도, 거스를 수 없는 진보의 물결도 아니다. 이 기술이 갑작스럽게 엄청난 규모로 확산하는 현상은 특정 금융 이해관계가 조직하고 그 이해관계에 봉사하는 계획의 산물이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소수의 기업이 경제적·정치적 권력을 이용해 새로운 기술, 어쩌면 실제로 매우 유용할 수도 있는 기술을 강제로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두 가지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대중의 광범위한 반감과 유료이면서 보조금도 받지 않는 AI 서비스에 대한 미미한 수요다. 달리 말하면 생성형 AI를 구축하고 보급하기 위한 투자는 그에 상응하는 시장 수요 신호가 없는 상태에서 이뤄지고 있다. 경제의 공급 측은 광범위한 불만을 잠재우고 막대한 투자 약속을 정당화하려면 얼마나 엄청난 매출이 필요한지 보여주는 놀라운 추정치를 축소해 말하는 가운데 AI는 비틀거리면서도 앞으로 나아간다. 경제학자 J. W. 메이슨(J. W. Mason)과 아르준 자야데브(Arjun Jayadev)가 지적했듯 이는 시장생산이 “실제로는 고도로 중앙집중화된 시스템을 통해 조직된다. 한편에는 기업의 명령·통제 경제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금융시스템에 내재한 계획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 일깨운다.
시장을 장악한 막대한 자본력을 갖춘 기술기업들은 자신들이 구상한 개발주의적 비전에 따라 경제를 재편하고 있다. 데이터센터가 공동체의 삶을 재편하려는 이러한 시도의 상징이라면, 좌파에는 더욱 야심 찬 요구를 제시할 기회가 있다. ‘AI 안전장치’ 자체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경제를 통제하고 조정할 수 있는 수단을 구축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AI 인프라에 대한 풀뿌리 저항으로 기계의 톱니바퀴에 모래를 뿌리는 것과 그 반대의 힘을, 경제를 적극적으로 재편하는 힘으로 전환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AI 생산구조 자체, 즉 민간자본과 핵심광물, 반도체 칩, 클라우드 인프라, AI 모델 개발업체, 노동자로 이어지는 네트워크를 공공의 이익을 위해 바꾸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분명 국가 역량을 대대적으로 복원하고 이를 활용해 AI 부문에서 더욱 다원적인 소유 모델을 추구해야 한다. 무엇보다 민간기업의 운영 논리 자체를 바꾸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많은 논의를 불러일으킨 트럼프 행정부의 국가 소유 실험에서는 이런 의지를 찾아볼 수 없다. 트럼프 정부 아래에서 미국 정부는 반도체 제조업체와 수출 수익을 공유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기술 공급망 전반에 공공자금을 직접 투자했으며, 인텔(Intel)과 희토류 광산업체의 지분도 취득했다. 오픈AI(OpenAI) 같은 AI 모델 개발업체의 주식을 편입한 국부펀드를 설립하는 방안도 논의했다. 이러한 조치는 국가가 민간시장에 선제적이고 심지어 강력하게 개입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정치경제학자 일리아스 알라미(Ilias Alami)가 설명했듯트럼프식 국가자본주의는 민간자본을 강화하는 경향을 보이며, 국가의 명시적인 지원과 제국주의적 경쟁을 향한 추진력을 민간자본과 결합한다. 이런 정치적 맥락에서는 세계적인 ‘AI 경쟁’의 모든 진전을 국가안보 문제로 받아들인다. 딥시크(DeepSeek)와 문샷(Moonshot) 같은 중국 기업이 대규모언어모델(LLM)에서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면 미국 AI 기업과 정치 당국은 정치적 거래를 통해 확보한 지대수익을 보호하기 위해 더 밀착한다. 새로운 변혁의 논리가 없다면 국가와 민간기업의 이러한 결합은 결국 “자원의 비합리적인 사용과 배분을 부추기고”, 시급한 인간적·생태적 필요를 충족하는 대신 “데이터센터와 기타 AI 인프라를 건설하는 데” 자본을 투입할 가능성이 크다.
생산력을 공익과 조화로운 성장이라는 더 큰 목표에 맞춰 조직하려는 합리적인 대안이라면 민간산업이 쥐고 있는 계획 권력을 되찾아야 한다. 자본시장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 AI 활용과 AI 이외의 생산적 투자 전반에 충분한 자금을 공급하지 못한다면, 정부는 데이터센터에 대한 민간투자의 위험을 대신 떠안기보다 직접 투자하고 자체적인 혁신 역량을 구축해야 한다. 민간자본이 충분히 투자하지 않는 기술 발전을 추진하려면 국가가 초기 자금을 제공하고 장기적으로 수요까지 보장할 수 있는 수단도 마련해야 한다. 벤처캐피털의 공공적 대안인 국가투자청(National Investment Authority)을 설립하면 다양한 형태의 혁신을 촉진하기 위한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에런 베나나브(Aaron Benanav)는 노동자와 기술 전문가, 일반 시민으로 구성된 산업별 투자위원회(sectoral investment boards)를 만들어 서로 경쟁하는 사업 제안에 자금을 배분하자고 주장했다. 정부가 실리콘밸리(Silicon Valley)의 자본집약적인 머신러닝 모델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바로 그것이 핵심이다. 공공자금은 민간자본과 똑같은 게임을 벌이는 대신 상업성이 떨어진다고 평가받고 자원 채굴이나 노동자 착취와 덜 얽힌 기술이 사회에 혜택을 줄 수 있는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
한편, 시민은 민간투자의 전반적인 방향을 결정하는 데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민간자본이 AI 부문의 눈부신 성과를 이끌고 있지만 미국 경제의 나머지 부문은 부진한 성과를 내고 있다. AI 투자가 다른 투자를 밀어내고 있다. 2026년 기업 회사채 발행액 가운데 거의 50%를 AI 기업이 차지하면서 미 국채에 대한 수요를 빼앗고 있으며, 산업 생산능력도 AI 기술 스택에 필요한 다양한 투입재를 공급하는 쪽으로 재편되고 있다. 그 결과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고 경제는 불균형해지면서 대규모 시장 침체 가능성의 벼랑 끝에 서 있다. 게다가 세계를 바꾸겠다는 AI에 대한 도박이 ‘성공’하더라도 AI의 광범위한 보급과 도입은 불평등하고 불안정한 노동시장, 기술 부문 밖에서의 불균등한 생산성 향상, 그리고 이제 막 이해하기 시작한 수많은 사회적 폐해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산업정책의 쌍둥이라 할 수 있는 신용정책을 활용하면 민간신용이 생산역량의 균형 잡힌 성장과 사회를 변화시키면서 공익에 기여하는 사업으로 흘러가도록 유도하는 동시에 금융투기의 역할을 억제할 수 있다.
구체적인 정책 구조가 어떤 형태를 취하든 마찬가지다. 기업의 지분 보유와 지배구조 개혁, 컴퓨팅 인프라의 공공 소유, AI를 공공서비스(public utility)로 규제하는 방안, 다양한 형태의 금융억압 등이 여기에 포함될 수 있다. 이러한 제도는 정당한 정치적 경쟁과 민주적 참여가 이루어질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해야 한다. 후기 바이드노믹스를 포함한 미국의 산업정책은 기술관료적 방식으로 추진됐다. 산업계와 정치권에 연줄이 있는 엘리트 및 이익집단의 우선순위를 절충해 정책을 결정했다. 에이미 캅친스키(Amy Kapczynski)와 조엘 마이클스(Joel Michaels)가 구상한 것과 같은 민주적 산업정책에는 두 가지 중요한 요소가 필요하다. 한편으로는 경제를 관리할 행정권력이 필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행정국가를 견제할 대항권력이 필요하다. 민주주의의 요구를 실현하려면 둘 다 필요하다. 다시 말해 “정부를 통하거나 정부를 넘어 국민이 집단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힘”을 확보해야 한다. 좀 더 실용적으로 말하면 정치 프로그램에는 “대중운동 조직이 정부 행정기관과 자금 수혜자에게 요구를 제기할 수 있는 구체적인 연결고리”를 포함해야 한다.
이런 통치 방식은 정치적 역풍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정부 운영에서 모든 마찰을 없애려는 엘리트의 집착과 정면으로 충돌하기 때문이다. 어떤 기술이 사회적으로 유용할지 누구도 미리 알 수 없는데 굳이 기술투자를 둘러싼 논의를 ‘민주화’할 필요가 있느냐는 반론도 나올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불확실성은 양쪽 모두에 적용된다. 과대선전과 마케팅을 걷어내면 AI 기업 역시 자신들의 제품이 장기적으로 얼마나 가치가 있을지 우리보다 더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에이다 러브레이스 연구소(Ada Lovelace Institute)와 런던정경대의 연구자 맷 데이비스(Matt Davies)가 주장했듯기술의 중심에 대중을 놓으려는 모든 시도는 “기술을 둘러싼 갈등을 제거하고 안정적이고 우호적인 숙의를 가능하게 하는 깔끔한 정책적 해법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실제로 데이터센터 반대 운동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바로 그 경합적 성격이다. 이 운동이 때때로 경제개발에 반대하는 상당히 지역이기주의적인 주장을 펼치기도 했지만, 동시에 새로운 기술 인프라를 움직이는 기업의 감시체제와 화석연료 자본, 미국 제국이 형성한 권력구조를 냉철하게 비판했다.
그렇다면 AI에 대한 반란은 미국 정치의 미래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가? 풀뿌리 저항운동은 환경과 에너지를 보호하는 조치를 쟁취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하이퍼스케일러와 자산운용사, 부동산 개발업체 같은 신구 자본 세력은 이러한 과도기적 요구를 사업 비용의 일부로 흡수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AI 거품의 붕괴 가능성을 기다리고 있지만 민주사회라는 관점에서 더 시급한 문제는 따로 있다. 미국에서 여전히 대중의 강한 반감을 받는 노동 자동화 기술을 위해 전례 없는 규모의 자본을 동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특정 재분배 정책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보다 정치 자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라는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것이 우리가 원하는 미래가 아니라면, 다른 미래를 협상하고 실현하기 위해 어떤 형태의 제도적 권력이 필요한가?
AI가 부상하는 지금, 당장의 문제를 둘러싼 조직화와 함께 장기적인 비전으로 민주적 계획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은 좌파가 품어야 할 핵심적인 희망 가운데 하나다. 이제 자본을 통제하고 생산 부문 전반의 성장을 조율하는 더욱 대담한 프로젝트를 내걸어야 한다. 기술산업뿐 아니라 미국 경제의 핵심 자체를 변화시켜야 할 때다.
[출처] After the Data Centers - Dissent Magazine
[번역] 하주영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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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J. 첸(Brian J. Chen)은 데이터 앤 소사이어티(Data & Society)의 정책 책임자다. AI와 기술, 정치에 관한 글을 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